그건 정말이지 성대하기 짝이 없는 환대였다.


영웅들의 귀환을 축하하고, 또 인류에게 드리워진 거대한 악의 그림자가 개어졌음을 알리는 천지를 울리는 음악소리가 대륙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만인의 얼굴엔 웃음 꽃이 가득했으며, 모든 왕국의 수도에는 폭죽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한동안이지만, 온 세상에 그림자 없이 영원할 것만 같은 축제가 이어졌다.


“용사님이다!!”

“그 옆에는 마법사님도 계셔..!”

“감사합니다! 용사님!!”


이 모든 것이 용사가 마왕을 무찌른 덕이니.


만인들은 기뻐했다. 수 년 동안 그들의 얼굴을 수척하게 만들었던 근심은 사라지고 없어졌으며 그들은 순수하게 이 경사를 즐겼다.

용사파티는 그야말로 구국의 영웅을 넘어서, 세상을 구해낸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용사를 대신하여 용사파티의 단장을 맡고있던 유스에게도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그는 영웅이 되었다.










“유스, 나 결혼한다.”

“…뭐?”

“테르엠에서 식을 올릴 거야. 지금 하고 있는 임무가 있으니까, 아마.. 3개월 즈음 뒤가 되겠지.”


용사 파티가 마왕을 무찌른 뒤, 귀환을 축하하는 축제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의 오후였다.


유스는 파티의 단장이었으므로, 마왕을 죽이기 전과 후 그 모든 것의 후처리를 도맡았다. 그리고, 그 날도 역시 그 후처리를 위해 서류작업을 하고있던 때였다.


여러 곳에서 온 지원금, 마왕의 곳간을 털어 들고 온 재화와 보물, 용사 파티를 기리기 위해 만든 여러 파생 상품, 그 외 수없이 많은 팬 레터와 섞인 여러 단체와 나라에서 온 제의들.. 비록 일차적인 분류는 전담 부서가 있었지만, 결국 최종 결재는 오로지 유스의 몫이다. 


삼일 밤낮을 일하고 또 일했음에도, 끝이 보이지 않아 골머리를 썩히는 중인데 어느 날 갑자기 용사가 그런 말을 해왔다.


자기가 결혼한댄다.


유스는 순간 이 눈앞의 머저리가 자신의 일, 아니 따지자면 우리의 용사 파티의 일을 도와주기 위해 온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헌데, 자신에게 오는 것은 구원의 손길이 아닌 청첩장이었다. 유스는 그 보답으로 주먹이라도 날려주어야 하나 고민했다.


“리헨이랑 결혼할 거야. 아마.. 너랑 엘리움..그리고 그외 몇몇 정도만 불러서 조촐하게 열려고.”


리헨은 용사파티의 사제였다. 사실 용사와 리헨 사이의 관계 정도는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놀랍지는 않았지만, 그냥 유스는 이 상황 자체가 어이가 없었다.


“축하는 하는데…이게 도대체 뭔..”


그래서 무어라 따져보려고도 했지만.


“아, 생각해보니까 엘리움한테도 전달하려면 시간이 꽤나 걸리겠구나. 그래, 고맙고! 혼례날에 보자!!”


정신을 차려보니 용사는 이미 눈앞에서 사라진 후 였다. 아마 내가 무슨 말을 할 지 한발 앞서서 알아채고 도망간 듯 했다.


그렇게 며칠 후, 서류 작업을 마칠 즈음 용사의 소식이 들려왔다. 엘리움에게 청첩장을 주려 엘프 마을에 도착했단다.


참고로 당시 유스가 거주하던 제국의 수도에서 엘프 마을 까지는 말을 타고 꼬박 한달은 이동을 해야 겨우 닿는 거리였다.


“허.”


유스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제…제국 상공에.. 레드 드래곤이 나타났습니다!!”

“…뭐?”


제국에 머물며 마왕이 남기고 간 것을 연구하던 시기였을 거다.

유스가 지하실에 틀어박혀 있던 어느 날. 제국의 기사가 갑자기 들이닥쳤다.


한창 중요할 시기라 예민해져있었지만, 기사는 어차피 전령과 같은 것인지라 그에게 따져봤자 명료히 해결될 일은 없다. 라는 것을 알고있는 유스는 짜증을 감추며 기사에게 되묻는다.


허나, 그 뒤에 갑자기 쳐들어온 기사의 입에서 나온 말은 꽤 황당한 것이었다.


드래곤이 나타났댄다.


제국 수도의 상공에.


“방위 마법은 어디가고?”

“그..그게 드래곤에 의해 파훼되었습니다.”


그 너무나 간단히 튀어나오는 대답에 머리가 아파올 무렵, 유스는 돌연 머릿 속에 떠오른 너무나 당연한 답변을 그에게 해주었다.


“근데 왜 나한테 와? 황궁으로 가거나, 니네 상관한테로 꺼져.”


인정한다. 오랫동안 보이지 않던 진전이 막 근시일 내에 보이기 시작한 터라 그 어투는 다소 살벌했다.

물론 그럼에도 기사는 유스에게 아무런 딴지도 걸 수 없었다. 이미 유스는 고작 기사따위가 무어라 할 수 없는 위신을 지닌 후였고, 무엇보다 유스의 말이 정론이었기 때문이었다.


“…황..명입니다..”


그랬기에 그 기사는 오로지 그 말 한마디를 남길 수 밖에 없었다.


유스보다 윗줄에서 내려온 명령인 황명. 그것을 기사는 매우 경직된 표정으로 그에게 전달할 뿐이었다.


“……뭐? 황명?”


본디, 황명이라 함은 황제의 말이다.


황제가 눈앞에 있지 않더라도, 황궁에 자리해있지 않더라도, 황명을 담았다는 종이쪼가리 하나와 함께 입을 연다면 그것은 어떤 머저리의 말이더라도 황제의 말이된다.

물론 지금은 공식적인 서찰과 대리인 등등의 형식적인 절차가 모조리 생략된 터라, 황명이라기 보단 그보다 살짝 유한 어조의 말이긴 했지만.

유스조차도 그에 반문을 할지언정, 정면에서 그 말을 거절하기란 썩 쉽지않은 일이다. 


“..이런 씨발.”


유스는 표정을 구기고 챙길 것을 챙긴 뒤 황궁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세시간 정도가 흐른 뒤.


수도의 상공에서 미쳐날뛰던 드래곤은 무언가에 의해 격추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밝혀진 기사의 말로는 흙먼지가 개어져 시야가 트인 후에 드래곤의 사체 앞에서 쪼그려 앉아있던 유스만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역천의 죄는 본디 거열형으로 사지를 찢고 팔족을 모두 멸하는 대죄이다.”


아마 마왕이 남긴 것을 해독하고, 제국에 본격적으로 눌러살 때였을 거다.


“허나, 유스 프레이나, 그대의 헌신과 노력을 기억하는 바. 우리 모두는 그대에게 빚이 있었지.”


제국에서 보물찾기를 좀 하던 도중 작은 일에 휘말려 버렸다.


“한 때, 세상을 구했던 그 위업을 기리며 본 황제는 그대에게…”


그리고 그 결과.


“제국에서의 영구적인 추방을 선고하는 바이다.”


제국에서 쫒겨나버렸다.


















“…모험가 라이센스.. 영구 박탈?”


고향마을을 찾은 유스에게 날라온 한 통의 편지였다.


사실 기억조차 안나는 옛날 사용하던 라이센스였기에 유스로서는 그저 그런 것이 있었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넘겼다. 

돈은 어느정도 평생 먹고 살 수 있겠다. 싶게 쌓여있고, 이젠 슬슬 은퇴를 생각할 나이가 아닐까. 싶었으니.

당시 유스의 나이는 고작 스물 언저리였다.








“아..아저씨가 그 용사맞죠..?”

“너넨 또 뭐냐.”


마을의 변두리에서 은퇴 후 슬로우 라이프를 즐기던 그에게 어느 날, 작은 손님들이 찾아왔다.


사내아이 둘에 계집아이 둘. 와중에도 그에게 말을 거는 녀석은 사내아이 한 놈 뿐이었고, 나머지는 숨었다고 숨은 건지 저 뒤의 나무에 숨어 그를 쳐다보기나 할 뿐이었다.


“…강해지는 법을 알려주세요!”


그리 말하는 녀석을 보며 유스는 십수년전, 그가 아직 어린시절이었을 때를 떠올렸다.


“싫어.”


그리고, 귀찮아서 돌려보냈다.




그렇게 돌려보낸 다음날이었다.


“용사님..오늘에야 말로 가르침을..!!”


녀석들도 나름대로 진심이었나보다.


“싫다고. 그리고 나 용사 아니라니까?”


허나, 길고 긴 시간동안 퇴적되어온 은퇴에 대한 열망은 나름대로 유스도 진심이였다.


그렇게 하루가 흐르고, 이틀이 흘렀다. 


점점 무단으로 남의 토지에 들어오는 꼬마손님들을 마을로 돌려보내는 것이 유스의 하루 일과가 되어갈 무렵.

여느 날과 다름없이 유스는 새로운 날의 아침을 맞이했다.


헌데, 그날은 뭔가 분위기가 달랐다.


쨍한 태양빛 대신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고 미묘한 물냄새와 습기찬 공기가 기관지를 통해 들어온다.


야영을 한 햇수만 세어도 일 년이 넘을 유스는 직감적으로 파악했다.

그건 폭우의 전조다.


물론 그 사실은 마을의 노인들도 아는 사실이다. 그들은 이 마을에서 자고 나랐고, 긴 세월에서 지식을 배운 자들이니까.


그러니, 마을의 아이들이 오늘 오지않은 것은 마을의 어른들이 일러둔 것이겠지. 라 유스는 생각하고 나름대로의 방비를 하러 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에 홍수가 나면 안되니까. 


적당히 방비를 끝낼 즈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유스의 콧잔등에 장대비의 시작을 알리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그 한방울이 떨어지길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빗소리가 세상을 메우는 데 까지는 1분도 걸리질 않았다.


유스는 손가락을 튕기며 마법을 펼쳤다. 그의 위에 작은 반구형의 막이 생겨나 떨어지는 비로부터 그를 보호한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의 사이로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리곤 유스는 잠시 허공을 쳐다보았는데, 저 멀리 마을이 위치할 곳의 허공이 일렁이고있었다.

자신의 방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한 유스는 발걸음을 옮겼다.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그의 터전인 오두막으로 향했다.


마을의 변두리에 위치한 유스의 집은 마을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성인을 기준으로 20분 정도는 걸어야 마을이 나왔으니, 마을로 부득이하게 걸음을 옮길 때마다 유스가 불평을 내밷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강해지는 법을 알려주세요!


헌데 그런 거리를 유스의 허리춤은 올까 한 녀석들이 매일 오며가며 했던 것이다. 그 신장으로는 대략 40분은 걸어야 내 집에 도착할 텐데 말이다.


아무리 주기적으로 유스가 주변을 정리한다 하지만, 그 사실을 마을의 사람들이 알리란 없다.

따로 티를 내지는 않았으니.


아무리 모험심이 많을 어린 때라 하지만, 위험하게 이런 산길을 돌아다니게 하는 것은 어른으로서 두고 볼 일은 아닌걸까. 집으로 가는 도중, 바닥을 적시는 빗소리에 상념을 이어가던 유스가 생각했다.


그리고 후엔 고개를 주억이며 결심했다. 장마가 끝나고, 녀석들이 다시 자신의 집을 찾을 때엔 더이상 오지 마라고 단단히 말이라도 해야겠다고 말이다.


호기로워 보이는 그 모습도 부모를 마주하고 말한다면 적잖이 움츠러들겠지.


유스가 꽤 먼 거리까지 와서 방비를 하긴 했지만, 여러 생각과 함께 느긋하게 걸어오자 머지않아 저 멀리 유스의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습한 공기에, 진흙이 덕지덕지 뭍어버린 신발, 아침부터 움직여 피로한 몸. 어서 씻고 잠이나 자야겠다며 유스가 한숨을 내쉰 순간이었다.


저 멀리 오두막의 앞쪽 부근에서 무언가 들썩였다. 그리고, 그건 유스의 눈에는 작은 인간의 형체로 보였다.


설마, 라 생각하면서도 유스는 속도를 높였다. 


이제와서 따져보면 뭔가 이상하기도 했다. 도대체 어느 부모가 집에서 거진 30~40분은 되는 거리에 있는 이름도 모를 녀석의 집에 가는 걸 허락하겠는가.


“…하.”


빗물이 굵다. 폭우에 대한 방비를 해놓은 것은 오로지 마을 뿐. 이곳까지 한번에 하기엔 내 역량이 부족할 뿐더러, 시간도 없었기에 미뤄두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략 수십분 동안 저곳에서…


우레처럼 쏟아지는 비 속에서, 유스의 속도에 맞춰 조정을 거듭하던 반구형의 막조차 유스의 신경이 다른 곳으로 쏠리자 이내 마력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풀어져 사라진다.


결국 온 몸이 축축하게 젖어가지만, 유스는 한 곳만을 바라보며 달렸다. 


그렇게 더 가까이 다가가니 유스의 눈으로 마나가 흘러들어왔다. 생명을 지니고 있는 것들이라면 모두가 지니는 것. 


이를 확인하곤 헛웃음을 지은 유스가 그의 오두막에 도착하자, 아니나 다를까 그의 예상대로 예의 그 꼬마들이 몸을 움츠리곤 오두막의 앞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비에 쫄딱 젖은 채로 그를 바라본다. 그리곤 언제나 처럼 입을 여는 것이었다.


“스..스슨님.. 부디 가르침을..”


이번 장마는 아무래도 예상보다 더 길 성 싶어 보인다. 유스는 한숨을 푹 내쉬며 꼬맹이들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내가 졌다. 이놈들아.”


졸지에 제자가 생겨버렸다.






















대충 6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꼬마였던 녀석들은 모두 성인식을 앞둔 나이가 되었다. 성장기를 거치며 신장 또한 급격히 늘어났고, 두 사내놈 중 한명은 되려 유스보다도 키가 커졌다. 

유스가 왕국 표준 키를 상회하는 것을 감안하면, 고작 마을의 꼬마인 녀석이 그 유스를 따라잡은 것은 꽤 대단한 것이었다.


그 즈음엔 이미 유스도 이놈들이 범상치 않은 녀석들이란 것을 깨달은 이후였던지라, 그다지 놀라진 않았다.

대신, 그건 유스의 고민거리가 되었다. 


‘생각보다 제자들의 재능이 너무 뛰어나다.’


가르침을 청했기에 될 수 있는 것까지는 다 알려줬다만, 이젠 밑천이 다 털렸다.


알려줄 수 없는 것 빼고는 모든 것을 알려줬다. 검이면 검, 마법이면 마법. 사실, 초기엔 치기어린 꼬맹이들의 변덕이라 생각해 일부러 강도를 세게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끝에는 그 모든 것을 흡수한 천재 녀석들이 유스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나를 보고 둘을 알고, 그 뒤에는 기어이 더 나아가 셋을 습득한다. 


버겁다.


어느 날 유스는 자신의 네 제자가 버겁다고 생각했다.


“하산해.”

“…예?”


그래서 내쫒았다.


“너희들에게 더 이상 알려줄 게 없다. 이제 니들이 나보다 강할걸?”


유스, 볼드, 레나, 마논.


유스는 자신의 네 제자를 바라봤다. 모두, 평민이기에 성은 없다. 허나 그 재능은 평민의 선을 넘어섰다.


이미 평민으로서 노릴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인 기사 시험을 노려봐도 이 녀석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합격하고 말거다.


이제야 고작 열 여섯, 성인식을 앞둔 나이인데 말이다.

그 재능이 과연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 지 보는 것도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을 지도 모르지만, 더 이상 녀석들을 잡아두는 것은 되려 그 재능에 누가 되는 일일 뿐이다.


“…너무.. 갑작스러운데요.”

“원래 이별은 갑작스러운 거야.”


유스는 그리 말하곤 하늘을 쳐다봤다.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이 마을을 찾은 지도 이젠 한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없을 햇수가 지난 이후다.


처음엔 별 마땅찮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 재밌는 시간이었다.


처음 마주했을 땐, 지들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눈치라 좀 짜증도 났지만서도.


“뭐, 여튼 해산이다.”


이정도 키워놨으면 여기저기서 소식은 들리겠지.


“기회가 된다면 또 보자.”


그리 말한 다음 날.


유스의 네 제자는 유스를 찾았지만, 그는 이미 그 오두막을 떠난 이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