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에 유산지를 깐 다음, 천천히 부어. 그래. 그렇게. 그다음은 기포가 생기지 않게 바닥에 내리쳐."


"저... 엎어야 하나요?"


"…. 원형 팬의 가장자리를 잡고 가볍게 툭툭."


이렇게. 케이크 팬의 가장자리를 툭툭 쳐대는 남자는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지만, 굉장히 서투른 솜씨를 자랑이라도 하듯 손끝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비유하자면 세살짜리 어린아이가 딸랑이를 만지작거리며 꼬물거리는 것과 같은 느낌.


남자는 그런 여자를 보고 가볍게 한숨을 쉬며 지켜보다가 머리를 긁었다.


그가 아는, 적어도 자신의 앞에 있는 여자는 종종 특이한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했다.


이번 일도 그렇다고 느꼈지만, 오늘은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사고나 안 치면 다행이라며 언제나 그녀의 뒤를 봐주는 그는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기에, 단도직입적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제누아즈라면, 사는 편이 간단할 텐데."


"제누아즈요?"


"…. 스펀지케이크. 이거."


남자는 지금 형체를 간신히 잡아가고 있는 반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자는 그것을 보며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다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렇긴 하지만, 정성이란 게 있잖아요?"


"효율성의 문제다."


"에휴... 낭만이 없으셔."


"낭만을 찾기에는 너무 간단한 것 아닌가?"


"네네~ 그러시겠지요~"


그는 이 건방진 여자를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물론 가벼운 꿀밤 한 대라면 토라질 생각을 하니, 금방 수그러들었지만.


여하튼, 그는 그녀를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멋모르고 오븐을 갑자기 열어 손을 집어넣으려는 그녀를 말리기도 하고, 유산지를 빼지 못하는 여자를 위해 가볍게 빼내 주기도 했다.


결국 반쯤 포기한 그는 무심하게 냉장고에서 갓 꺼낸 크림을 짤주머니에 넣어 건네주었다.


"그래서, 누구에게 줄 생각이지?"


"어머. 궁금하세요?"


고양이 같은 웃음을 지으며 몸을 밀착시키는 그녀를, 그는 떨쳐내지 않았다.


남자는 종종, 이 작은 고양이가 사실은 몸만 작은 여우가 아닐까 하는 어이없는 상상을 하며 다시금 가벼운 한숨을 내뱉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라고 고민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후였기에.


하지만 묘하게도 그것이 싫지는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었다. 케이크는 식어가고 있는데, 그와 그녀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처럼 뜨뜻 미지근한 그런 느낌.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며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완성이나 시켜."


"흐음~ 신경쓰이는구나요?"


"존대와 반말, 둘 중 하나만 해."


"네에~"


즐겁게 콧노래를 부르며 어설프게 크림을 바르는 자그마한 여우는 얇게 펴 바른 크림 위에 쌉싸름한 초콜릿 파우더를 사글사글하게 뿌렸다. 다크 초콜릿. 그가 그나마 입에 넣는 초콜릿이었다.


물론, 그녀답다고 말할 수 있을, 중간중간에 파우더의 산이 생겼다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이제 토핑을 뭐로 할까요?"


"나에게 묻지 마라."


"흥, 알았어요. 무뚝뚝해."


"…. 초콜릿 파우더가 베이스라면, 그냥 장식으로 충분하다."


"역시, 모르는 게 없으셔. 박학다식이다. 그죠?"


"잡학다식이야."


그는 이 한숨이 마지막 한탄이 되길 바라며 그녀의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서는 마지막 장식이 올려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자그마한 숫자들의 배열과 함께 끄트머리에 큰 하트 장식이 달린 양초 세 개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마치 생일 케이크 같은 모양이 되는 것을 의아하게 여겼다.


하지만 의구심도 이내 사그라들었다. 정성을 들이는 이유와 대상의 은닉은 이런 이유에서였다는 것을 납득하기도 전에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생…, 생일 축하해요!"


그는 자신에게 들이밀어지는 초코케이크에 당황스러움은 상상 이상이었다. 물론, 성격 탓에 대놓고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그에게 있어 상당히 곤란한 상황은 맞았기에 그는 속으로 그녀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다. 물론 당장 결론을 내어 보이지는 않았다.


"…. 내 생일 선물인가."


"네! 오늘 생일이잖아요!"


"…."


그는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감사를 표할지, 아니면 그의 본심을 말해야 할지. 잠시 고민한 그는 결정을 내 뱉었다.


"…. 미안하지만."


"네?"


"내 생일은 음력이다."


"네…?"


그런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