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바다 너머에는 무엇이 있나요?"



"신의 요람이 있단다 얘야, 그 어떤 법과 윤리로도 재단되지 않는 위대한 존재가 살아 숨쉬고 있는 거야."



디케섬의 높은 절벽가에 만들어진 테라스에서, 셰르딘의 이모는 당연한 사실을 알리듯이 말했다.

그 어떤 반박도, 의심도 하지 않는 단호한 말에, 셰르딘은 더 물어볼 의지를 잃었다.

그녀는 에메랄드빛으로 빛나는 바다에서 시선을 옮겨 저 아래, 드넓은 모래밭과 해안가에서 조각배를 타고 나아가려는 이들을 보았다.



셰르딘의 이모, 텔은 언제나 그렇듯이 귀찮은 조카의 물음에서 벗어나 드디어 제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기꺼운 듯 했다.

그녀는 해풍에 밀려 바닥으로 떨어진 갈매기 모양의 나무조각; 에글라예 씨족의 상징을 선반 위에 올려놓고는 천천히 윗층으로 몸을 옮겼다.



이 조그마한, 그러나 이곳의 거주민들에게는 하나의 세계인 디케섬은 휴화산으로 이루어진 부유한 섬으로, 예전에 분출되었었던 화산재가 섬의 토양을 부유케 해 섬의 인구를 충분히 부양할 수 있었다.

더불어 이 섬의 거주민들은 총 8개의 씨족으로 나뉘었는데, 셰르딘은 에글라예 씨족, 즉 공중을 유영하는 갈매기 씨족의 일원이었다.



"에세다, 생각을 한 번 해봐, 저 갈매기들은 신의 요람이 있는 곳으로 향해, 저기에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힘차게 날아가는 게 아닐까?"



셰르딘과 동년의 사촌형제이자 텔의 독남인 에세다는 그녀의 말에 곧장 토를 달았다. 



"그들은 그냥 신들에게 바쳐진 우리 씨족들을 대접하러 다녀오는거야. 어제도 봤잖아? 오밤중에 그 갈매기들이 섬 쪽으로 다시 돌아오는 걸."



그는 쓸데없는 것에 관심을 쏟는 그녀를 한심하게 쏘아본 에세다는 셰르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훈계하는 선생님처럼 그녀의 어리석음을 탓했다.



"셰르딘, 너는 너무 쓸데없는 호기심이 너무 많아, 저 너머에 무엇이 있든간에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어? 그냥 우리의 세계 안에서 행복하게, 그리고 엘피나 여신에 대한 찬양을 하며 살아가면 되는거야."



"...그, 그럼 엘피나의 신족이 된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걸까? 저 바다 너머로 가서 뭘하고 있을까? 정말 궁금하지 않단 말이야?"



"..."



에세다는 그녀의 말에 집 밖을 나서려는 발걸음에 주저함이 생겼다. 

그 잠깐의 주저함을 파악한 셰르딘은 밝은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달려가 옷소매를 잡고는 다시 테라스쪽으로 끌고왔다.



"저 수평선 너머를 봐, 저 하늘색과는 다른 느낌의 푸른색 띠가 저 바다 너머를 가득 채우고 있잖아, 배를 타고 조금만 더 나아가면, 조금만 더 가면 우리도 볼 수 있을텐데."



"...헛소리야, 배로 저 먼 곳까지...갈 수 있을리가 없잖아."



에세다는 조금 전처럼 부정의 어투로 말을 하였지만 마음이 동하는 건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원한다고 하여도 불가능한 것이 있었고, 오히려 이렇게 상상만 하는 것이 더 고통스러웠기에, 에세다는 다시 퉁명스러운 투로 입을 열었다.



"정 그렇게 가고 싶어도 할 수 없지, 하지만 엘피나의 신족이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져. 마침 이번에는 우리 씨족 차례네."




이 디케섬에서는 5년에 한 번, 8개의 씨족이 번갈아서 엘피나의 신족이 되는 행사를 치뤘다.

만약 한 씨족이 엘피나의 신족으로 간택된다면, 그 씨족 중에서 제비로 뽑은 500명의 사람들이 바다로 몸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엘피나의 품 속으로 들어간 그들은, 엘피나의 신족이 되어 그녀를 모시고, 영원토록 행복한 삶을 얻는다 하였다.



그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를 떠났다.



"...그렇네...벌써 내일이잖아..."



셰르딘은 조용히 그 말을 입 안에서 되새기며 입꼬리를 곱게 올렸다.



*



다음날의 여명이 디케 섬을 다시 한 번 비추고, 에글라예 씨족들은 마을의 광장에 한데 모여 제비를 뽑을 준비를 했다.

분명히 저 망망대해에 몸을 던지는 위험천만한, 자살과 다를바 없는 행위를 하기 위한 제비를 뽑는 것이었지만 그 어떤 사람도 두려움이나 불평따위는 하지 않은 채, 오히려 기대에 가득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부모가 그리했고, 그 부모가 그리했으며 수많은 세대에 걸쳐 행해져 왔던 관습과도 같은 행위는 이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텔이 제비를 뽑았고, 에세다가 제비를 뽑았으며 또한 셰르딘이 제비를 뽑았다.



셰르딘은 제비의 결과가 적혀있는 부분에 올린 손을 치우기 전, 주변을 둘러보았다.

얼굴에 아쉬움이나 수심이 깃들어있는 것을 보니 에세다나 텔은 제비에서 뽑히지 못한 것 같았다.

긴장되는 심장을 억누르고, 만약 이번에 뽑히지 못하면 40년 뒤에야 다시 에글라예 씨족의 차례가 될 수 있다는 불길한 생각 또한 집어넣고,

조심스레 진실을 거둔 손을 움직였다.



선명한 X, 



"...!!"



제비에 뽑혔다는 사실에, 기쁨의 감정이 격류처럼 그녀의 머리를 강타한지라, 그녀는 입 밖으로 새어나오는 비명을 참기 위해 제비를 든 손으로 두 입을 막았다.

엘피나의 신족으로 뽑힌것보다도, 이 답답한 섬 밖으로 나가 저 수평선 너머 놀라운 것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네가 원하던 대로 되었네."



에세다가 조금은 상심한 듯한 얼굴로 터덜터덜 셰르딘의 옆으로 걸어왔다.

결국은 관심이 없는 척 해도, 엘피나의 신족으로 뽑혀 그도 바다 너머로 가고 싶었던 거겠지 - 라며 셰르딘은 웃음을 속으로 삼켰다.



"같이 못 가서 아쉽게 되었..."



순간 그녀의 시야가 암전됨과 동시에 비릿한 바다 향기가 콧속을 강하게 파고들었다.

마치 멀미를 하는 듯이 속이 울렁거리면서, 식도에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식은땀이 흐르고, 숨이 막혀오면서...



"...읍, 커헉!"



셰르딘이 갑작스레 말을 멈추고 목을 부여잡으며 물에 빠졌다가 겨우 살아나온 듯이 격한 숨소리를 내뱉자 에세다는 놀라 그녀를 부축했다.



"괘, 괜찮아? 어디 아파?"



"커, 콜록! 나, 난 괜찮아...어서 가자!"



잠시간 물 속에 빠져 질식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셰르딘은 미지에 대한 고통 속에서도 만약 몸이 아프면 엘피나의 신족이 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몸이 괜찮은 척을 하며 다른 씨족들을 따라 제단을 향해 비적이며 걸어갔다. 



엘피나의 제단, 즉 엘피나의 신족이 되는 이들이 뛰어내리는 절벽은 디케섬의 북쪽 끝자락에 자리해 있었다.

저 넓고 푸른 바다를 향해 삐쭉 튀어나온 돌모퉁이는 마치 뛰어내리기 위해 자연이 빚은 건축물처럼 부자연스러운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셰르딘은 엘피나의 제단을 향하는 와중에도 지속적으로 숨이 막히는 느낌과 속이 부글거리는 감각때문에 창백한 얼굴을 감출 수 없었다.

그저 운이 나쁜 배앓이나 독감에 걸렸다고 치부하며 발을 옮길 뿐이었다.

그러나 엘피나의 제단에 도착하고 수면과 제단의 높이를 어림짐작해보니 머리가 점점 더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냥 저 아래로 뛰어내리는 게 정말로 신의 요람으로 가는 방법인걸까?'

'무서워, 두려워.'

'가고 싶지 않아.'



두려움은 그릇 안을 점차 채우는 물처럼 그녀의 발끝부터 차오르기 시작해, 절벽 끝자락에 다달았을 때에는 목젖까지 닿아 실신할 것만 같았다.



풍덩!

풍덩!



벌써 여러 에글라예 씨족들은 바다를 향해 몸을 던졌고, 점차 셰르딘의 차례가 다가올 때마다, 깊은 후회와 함께 두려움 속에 가려져 있었던 감정이 자아나기 시작했다.

환희.

드디어 진실을 마주하고 바다 너머로 갈 수 있다는 그 강한 감정이 그녀의 발을 이끌었으며, 끝내 그녀도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



"---"



새된 비명이 작은 입에서 나왔지만 옷자락을 스치는 바닷바람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셰르딘의 몸은 청록빛 물 사이로 사라졌다.



풍덩!



시원한 냉기가 그녀의 피부와 맞닿으며 순간적으로 강한 소름이 끼쳐왔고, 눈에 물이 들어와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채로, 그녀는 팔다리를 허우적댔다.

물속에서 몇초간 버티고 있기를 찰나, 재빠르고 격렬한 파도가 셰르딘의 몸을 강타해 그녀를 먼 대해로 이끌었다.



엘피나의 요람으로 가기 전에,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던 그녀는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물 속에서 눈을 떴다.

깊은 심연, 아래를 향한 그녀의 눈은 괴물의 아가리같이 검고 아득한 심해의 눈을 엿봤다.

깊고도 무거운 그 모습은 셰르딘의 오감을 자극했고, 본능적으로 그녀는 수면을 향해 헤엄쳤다.



물이 입과 콧속으로 들어가 목구멍이 아렸고 폐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지만, 죽음직전의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겨우 수면 밖으로 얼굴을 꺼낼 수 있었다.



"커헉! 콜록, 콜록....아흐으....죽을 뻔...했네에..."



숨을 고르기도 잠시, 수면 위에서 찰랑이며 해류에 의해 몸을 맡기던 그녀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 아니지...? 아닐꺼야..."



그녀와 함께 바다로 몸을 던졌던 사람들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녀가 태어나고, 살아왔던 디케섬또한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망망대해에, 이 세계에 태어났을 때처럼 홀로, 있는 것이었다.



아니, 한 물체가 보이기는 했다.

하얀 돌덩이처럼, 혹은 천조각처럼, 잔잔히 파도치는 수면 위를 돌아다니는 무언가가 보였다.

그녀는 그 정체나마 알아보고자 두 팔을 저어 다가갔다.



"..."



희망을 위해 힘썼던 셰르딘이었지만, 그것에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는 반대로 지독한 절망을 느꼈다.

그 희끗한 형체는, 셰르딘과 함께 절벽에서 뛰어내린 씨족의 사람이었다.

이미 차갑게 식은 인간의 시체는 그녀의 미래를 예언하는 듯이 악의적으로 비웃었다.



*



억척스러운 움직임, 소금기가 가득한 수염을 휘날리며 배 위에 굴러다니는 드럼통을 옮기고, 해풍에 올이 삭기 직전인 밧줄을 잡아당기며 바다 그 자체와 삶의 전쟁을 벌이는 이들.

굵은 빗방울과 괴수와도 같은 파도와 힘껏 몸을 부딛히고 난 이후에도 이를 들어내며 웃는 이들은 바닷사람들이었다.



비록 강철 전함의 등장 이후 시대에 뒤쳐진 물건이라는 말을 시시때때로 듣지만, 여전히 돈 없는 서민들이나 해적들은 나무 범선을 애용했다.

이들도 해적질은 정말 상황이 곤궁할 때만 할 뿐, 본업은 고기잡이였다.



"어이, 에릭손! 아까 던져놨던 그물이나 올려!"



"왼쪽? 아니면 오른쪽?"



"둘 다 올려!"



어부들은 오랜 바닷생활로 우락부락해진 팔근육을 들어내며 기나긴 그물을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나무가 삐그덕대는 소음과 장정들이 힘쓰는 소리가 병치되며 들려왔고, 그 소음 사이로 거미줄처럼 오밀조밀한 그물이 이물질들과 함께 배 위로 끌어올려졌다.



대충 보이는 수확물의 결과에 이 배의 선장 하벨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바다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 때, 한 선원이 급히 그를 불렀다.



"어, 어이! 선장, 그물에 이상한게 같이 잡혔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하벨이 선원의 괴상한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안색이 매우 창백하고 입술이 푸르딩딩하게 변한 한 소녀가 그물에 엉켜있는 것을 보았다.

아무리 오래 바닷생활을 하다 보면 술자리에서 이야기할만한 괴상망측한 일들이 종종 벌어지기는 했지만 이 망망대해에서 사람이 그물에 의해 건져 올라오는 것은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뭐야, 살아있기는 해?"



에릭손이라는 선원은 다급히 그물을 걷어내고 소녀의 턱밑에 두꺼운 두 손가락을 넣어 맥박을 확인했다.



"옅긴 하지만 살아는 있군."



"어떻게 여기에 사람이 있을수가 있지? 동서남북 몇백 킬로미터는 사람이 사는 섬 같은게 없을 텐데..."



"주변에서 배가 침몰했거나 좌초된거 아뇨?"



"그렇다기에는 애 옷도 이상한데..?"



몸을 파들파들 떨어대는 소녀를 두고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죄책감이 든 하벨은 서둘러 선원들에게 소리쳤다.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애 잡겠다! 어서 담요로 싸주고 갑판 안에 눕혀놔!"



"에이, 알겠소, 우리가 죽어가는 애 그냥 냅둘 정도로 냉혹한은 아뇨."



선원들은 부산을 떨며 소녀를 갑판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하벨은 이 상황에 한숨을 쉬며 다시 뱃머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떻게 여기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벨이 중얼거렸다.



"그 간교한 운명이 네 목숨을 살렸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