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방패의 전설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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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붉은 눈의 사나이


아인은 여관으로 돌아가지 않고 일부러 트리움피한의 대로를 빙빙 돌았다. 역시나, 그자는 확실하게 아인을 미행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에게서 흐르는 어두운 기운이 아인에게까지 느껴질 정도니 그의 미행을 느끼지 못할 수가 없었다. 황궁 앞을 지나 군사 구역, 대형 시장 근처까지 빙빙 돌던 아인은 돌연 어느 골목으로 꺾어 들어갔다. 그자도 따라 골목을 도는 순간, 푸른 칼이 그의 목 바로 앞에 겨누어졌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거적때기를 머리에 뒤집어쓴 그자는 조용히 양 손을 들었다. 잠깐의 대치가 이뤄지고, 아인은 가만히 팔을 뻗어 놈이 쓰고 있는 거적때기에 가까운 두건을 벗겼다. 그 순간…


“Purga”


그자가 알 수 없는 언어를 중얼거리더니 순식간에 아인은 피를 토했다. 검붉은 피가 흙 바닥과 그자에게 튀자 검은 머리칼을 가진 그 남자는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미소를 지었다.


“좋은 피로구나… ‘용을 쓰러뜨린 자’여.”


“크윽… 뭐 하는 놈이냐?!”


“Bullet imperium”


놈이 또다시 무어라 중얼거리자 이번엔 아인의 몸이 공중에 살짝 뜨더니 무어라 대응하기도 전에 뒤로 날아가 벽에 강하게 부딪히고 말았다.


‘뭐지…? 이건 마법이 아니야! 이 느낌은… 온 몸의 피가 한쪽으로 쏠리는 듯한 이 기분 나쁜 감각은!’

”정체가 뭐지?”


“네놈의 그 검과 방패… 역시 보통의 물건은 아니로군. 보통 인간이었으면 방금 주문에 온 몸의 피가 몸 밖으로 빠져나왔을 텐데 말이야. 하지만… 역시 더 강해지기 전에 여기서 끝내는 것이 마음 편하겠군. 쪼그라든 미라로 만들어주마, ‘Dehydrat…’”


“멈춰라!!”


노인의 목소리가 골목과 시장을 뒤흔들었다. 아인도, 그 남자도 모두 그쪽을 돌아보았다. 그 자리엔 다름 아닌 대마법사 올리버가 있었다.


“이 신성한 트리움피한에 더러운 피비린내가 풍긴다 했더니… 네 녀석이 여기 기어들어와 있었구나, ‘알루카드’!!”


그 남자, 알루카드는 올리버를 바라보더니 묘한 미소를 지었다.


“대마법사께서 친히 오시다니, 대단하기 짝이 없군. 하는 수 없지, 네 피를 취하는 것은 다음으로 미뤄주마. 하지만 안심하지 마라, ‘붉은 눈’의 자객들이 너를 항상 지켜볼 것이다. ‘Transformatio’”


알루카드의 영창과 동시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자 놈은 꺼림칙한 생김새의 박쥐가 되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더 많은 피를, 더 많은 생명을. ‘식욕’이 우리를 진화시킨다!”


알루카드는 그렇게 소리치며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아인은 가만히 놈이 사라진 하늘을 바라보다 쓰러지고 말았다.


몇 시간 후, 아인이 정신을 차렸을 땐 마리와 잔은 물론이고 올리버까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리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정신이 들어?”


“…여긴?”


“자네가 묵던 여관일세. 내가 이리 데려왔고, 자네는 반나절이나 쓰러져 있었다네.”


“올리버 링케 님…”


“그냥 올리버 씨라고 부르게. 그나저나 그놈들과 엮이다니, 그것도 일개 졸개도 아니고 ‘알루카드’ 본인이 직접 나설 줄이야.”


올리버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잔이 더욱 경악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알루카드요?! 설마 그 ‘알루카드’입니까?”


“그래, ‘혈마법’의 수장, ‘식탐의 알루카드 백작’을 말하는 걸세.”


“죄송하지만 ‘혈마법’은 뭐고 ‘알루카드’는 누굽니까?”


아인의 물음에 잔이 답했다.


“혈마법사… 그 녀석들은 우리와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어. 아주 오래전, 미카엘 드래곤베인과 함께 용들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태초의 대마법사’는 우리가 쓰는 이 마법과 혈마법을 모두 쓸 수 있었다고 전해지지. 하지만 그 혈마법을 지금의 그것으로 변화시킨 건 트리움피한이 세워진 뒤 ‘알루카드’를 필두로 한 혈마법사들이 이곳에 찾아와 함께하기를 청하고, 우리가 그들을 받아들인 약 200년 동안이었어. 

그런데 1000년 전, 갑작스럽게 마나의 샘이 오염되는 사건이 벌어졌고, 신성한 마나가 오염되자 마나의 힘을 빌어 마법을 쓰는 우리들은 급격히 힘을 잃게되어 자연스럽게 혈마법사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려 했지. 덕분에 범인은 금방 찾을 수 있었어. 바로…”


올리버가 이어 말했다.


“자네를 공격한 그자, ‘알루카드’일세. 200년 동안 수많은 생명에게 상처를 입히고 잔인하게 죽인 혈마법사들과 일반 마법사들 사이에 갈등이 그 즈음해서 한계에 다다랐으니까. 게다가 200년이라는 세월동안 대마법사는 수없이 바뀌었는데 오로지 알루카드만은 젊고 건강한 20대 청년의 모습 그대로이니 마법사들 사이에서 두려움과 의심이 싹트고 있기도 했다네. 결국 우리는 그들과 전투를 벌였고, 카이저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놈들을 제국에서 내쫓고 혈마법을 영구히 금지시켰지. 

하지만 놈들은 집요한 것들이야. 혼자 돌아다니는 초보 마법사들이나 사람들을 납치해 그들의 피로 지금도 제국 변방의 어딘가에서 자기들의 세력을 키우고 있는 것이 자명해. 그것들을 처리하는 것 또한 우리의 임무 이기도 하지.”


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 알루카드란 자는 1000년도 넘게 살아온 것이군요.”


“그렇게 되는 거지. 그리고 이제부터는 그자가 말했듯 그의 수족인 혈마법사들이 자네의 목을 노릴 걸세. 지금 자네에게 이야기해두지, ‘붉은 눈’은 절대 믿지 말게. 이 제국에 ‘하얀 머리’를 제외하곤 자연적으로 붉은 눈을 가지고 태어나는 이들은 아무도 없어. ‘붉은 눈을 가진 자들’은 곧 알루카드의 수족이자 바라보는 눈이야. 이미 알고 있겠지만 르블랑 양이 그대의 여정길에 함께할 것이니 그녀의 조언을 귀담아 듣게나.”


“알겠습니다. 조심할게요.”


올리버는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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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헬싱 BG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