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쓰고 싶던 글이 있었는데, 하나는 최대한 유행 반영(추방물)한 인트로


하나는 작가 필체, 분위기, 주인공 이입 및 설명에 중점을 둔 인트로임


둘 다 보고 부족한 점좀 말해주면 감사하겠음












https://youtu.be/lgq0OdRIEao














추방물 인트로




‘떠오른 것은, 태양이 아닌 우리의 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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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님. 마차에서 나가주세요. 우리는 더이상 당신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짐칸에서는 정적이 맴돌았다.


누군가는 그런 모습에 염증을 느껴 시선을 피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무슨일인가 싶어 고개를 내밀기도 한다.


“…….”


이번이 벌써 네 번째. 지긋지긋해서 화조차 나질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 말을 너무나 많이 들어버려서, 그 문장을 사랑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지.


모두의 주목이 끌린 이 광경은, 마치 동물원 속 구경감이 된 것만 같아 유쾌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익숙했기에 삼켜낼 수 있었다.


"……."


나를 향해 나가라고 말한 이의 얼굴은, 내 침묵에 되려 의아한 얼굴을 짓는다.


원래라면 내가 지었어야할 표정이겠지만.


하지만 덤덤한 모습이 예상외 였던걸까. 그의 표정에는 되려 무안한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 무안함에 담긴 감정을 헤아릴 수 없다.


그 표정에 담긴 것은 일말의 동정심일지, 아니라면 자신의 체면이 깎이는 것을 깨달음에 생긴 무안함일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순례자님께 그러지마요! 갑자기 왜 내쫒으려는거에요!"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정적.


그 정적을 가장 먼저 부순 것은, 어린 목소리의 소녀였다.


목소리의 출처로 시선을 돌리자, 이윽고 연두빛 머리의 소녀가 내 옷깃을 잡으며 버티고선다.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길게 솟은 귀와, 딱봐도 아름다운 얼굴.


내 예상이 맞다면, 그녀는 하프 엘프겠지.


순혈 엘프는 특별한 일 없이는 세상 바깥으로 나올 수 없다고 한다. 그들은 평생을 이름 모를 곳에서 살아간다고 하니까.


더군다나, 이런 어린 애들은 더더욱 바깥으로 내보낼 생각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경우의 수는, 그녀가 다른 종족의 피가 섞인 아종이기에 버려졌다는 경우 뿐이다.


엘프는 순혈이라는 것에 민감하니까.


"........"


귓동냥으로 들은 것은, 그녀의 나이는 올해로 14살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엘프라면 숲 안에서 세상을 배워야할 시기이다. 사회로 나오기에는 너무나 이른 나이다.


"…맞아요. 순례자님이 무슨 일을 벌이신 것도 아니고, 마차에 자리가 없는 것도 아니잖아요?"


마차 속 인파는 그의 말에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그 반응은 곧 모두가 정하고서 내린 결정이 아니라, 이 마차의 리더가 독단적으로 계획한 일이라는걸 유추하게 했다.


사전에 모두가 내쫒자고 합의를 했다면 이런 반응을 보여주지는 않았으리라.


적어도 숙연해져선 시선을 피하거나, 이런 나를 경멸스럽게 여겨 쏘아보았겠지.


내게는 네번째였을지언정, 다른 사람들에게는 처음 겪는 일.


하지만 이 끝이 결코 깔끔하지 못할 것은 예상할 수 있었다.


“제 의견은 전혀 근거없는 것이 아니에요.”


내게 마차에서 나가달라고 말한 이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중앙까지 걸어나왔다.


역시나, 나에게 나가달라 말한 이는, 이 마차호위를 담당한 팀의 리더였다. 


"이레귤러. 이 중에서 처음 듣는 분 계십니까?"


마차안의 리더는 손을 들어올리며 물었다. 못 들어본 사람이 있으면 손을 올리라는 제스쳐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을 들어올리지 않았다. 이 마차의 목적지는, 이레귤러와 깊은 연관이 있는 장소였으니까.


하지만 단 한 사람. 내 옷깃을 부여잡은 하프엘프만이 번쩍 손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저, 모릅니다!”


아직 세상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하프엘프.


그녀가 이레귤러에 대해서 의문을 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리라.


“…이레귤러는,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건 저보다 순례자씨가 설명해주시는게 더 자세하겠군요.”


이레귤러는 종교적인 부분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그러니, 순례자인 내게 설명을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지.


“우리는 모두, 탄생의 성수인 가이아로부터 태어났습니다. 가이아는 우리를 빚어내실 때, 주신 아가레스의 파편을 이 몸에 담아내셨죠.”


주신은 이 세계의 진정한 주인. 그리고 성수는 그 주신의 시신으로부터 태어난 존재다.


“그리고 주신 아가레스는 마나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태어나 마나를 다룬다는 것은, 곧 주신의 아들임을 증명하는 길이지요.”


모두가 다 알고 있을 얘기. 모두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왔을 얘기.


하지만 단 한 소녀. 하프 엘프만이 내 말에 귀를 귀울이며 눈을 반짝이고 있다.


“다만, 모든 이들이 마나를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채내에 마나가 아닌 오러가 깃들어 있는 자들도 있죠."


"..........."


"우리는 자신의 몸에 마나를 깃들지 못하게 한 이들, 마나를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을 이레귤러라 부릅니다. 주신 아가레스의 파편을 몸에 지니지 못했기에, 이는 곧 신에게서 버림받은 존재라는 것을 예시하는 바."


종교라는 것은, 신이라는 것을 숭배하고 찬양하는 집단이다.


집단마다 숭배하는 신이나 방향은 다를지언정, 자신이 감히 우러러볼 수 조차 없는 존재를 떠받든다는 것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고작 마나를 쓰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버림받았다고 말한다니, 너무하잖아요!"


연두빛 머리의 엘프는 불안한 표정으로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런 나는 후드로 얼굴을 가린채, 보드라운 그녀의 손을 마주잡음으로써 뜻을 대신한다. 그녀에게는 아직 이른 세상이었기에.


이레귤러에 관해 하고 싶은 말은 많다.


하지만 해도 될 타이밍이 아니었을 뿐더러, 이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생각한 것을 전한다 한들, 이들이 고개를 끄덕여줄거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이레귤러를 박해하고 탄압하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레귤러를 감싸거나 길을 같이하는 것만으로도 똑같이 극형을 처하는 나라들도 있죠. 아닙니까?"


"....맞습니다."


안타깝고 슬프게도, 이레귤러는 어디서도 좋은 취급을 받을 수 없다.


국가에 따라 취급하는게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결국 좋은 꼴을 보여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뜻이다.


짧게는 멸시부터 시작해서, 극단적인 경우, 이레귤러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죽여버리는 곳도 존재한다.


또한 말에서 알 수 있듯, 이레귤러를 보호해주거나 일행이 되는 것만으로도 똑같이 극형을 처벌하는 국가도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그의 말대로다.


이 마차가 향하는 목적지. 아이헨이라는 국가에서는 이레귤러를 발견하면 비밀리에 일을 처리한다고 한다.


말이 비밀리지, 결국은 어떻게 죽이느냐에 차이일 뿐이다.


노예로 넘겨서 죽을 때까지 노동을 시킬수도, 아니라면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처형을 내릴 수도, 사람이 살 수 없는 개척지로 추방할 수도 있지.


하지만 그걸 비밀리에 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처신을 관리하기 위함이다. 그런 반인류적인 행위를 한다고, 직접적으로 드러내줄 필요는 없으니까.


그저 이레귤러를 처벌했다는 말만으로도 충분하다.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납득한다.


길가에 역병을 뿌릴 수도 있는 들개를 동네 바깥으로 내쫒는다 해서, 그걸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은 없다.


이레귤러를 좋게 취급하면 그런 들개정도가 된다. 어떤 경우에는 흉조를 부르는 까마귀처럼 취급할 수도 있고.


"순례자씨. 제가 볼땐 당신도 이레귤러같습니다. 아니라고 하신들, 실제로 증명하지 않으신다면 계속 의심할 수 밖에 없어요."


"근거가 무엇이죠?"


그의 말은 충분히 무례하다


확실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레귤러라고 말하는 것은, 난데없이 너는 부모가 없구나? 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심한 모욕이다.


부모가 없다고 그 사람을 죽이지는 않겠지만, 이레귤러라면 길가다가 칼을맞아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 정도의 발언이었다.


"맞아! 순례자씨는 오러를 사용하지 않았어. 그러면 이레귤러가 아니잖아!"


연두빛 머리의 소녀는 계속해서 나를 변호했고, 나는 아무 말 없이 먼 곳을 쳐다보았다.


이 소녀가 나를 계속해서 변호하는 이유는, 아마도 정의감 때문이라기보단,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엘프 소녀는 세상에 대해서 목말라했고, 나는 짧은 시간동안 내가 알고 있는 세상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알고 있는 것이라면 뭐든. 그녀의 목마른 지식욕을 채워주곤 했기에, 그녀는 여전히 날 필요로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레귤러는 오러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말하는게 아니라, 마나를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마차의 리더는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마차는 여전히 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 그를 보면 얼마나 노련한지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순례자씨가 보여주시는 재주는, 대단하지만 마나를 사용한다고 받침할 수 없습니다. 마법이라는 것은 결국 스펠을 통해 형성하니까요."


"..........."


어느새 내 앞에 선 채 내려다보는 마차의 리더.


나는 애꿏게도 그를 올려다보지 않은 채, 여전히 무덤덤하게 얘기하고 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종교, 단탈리온은 타인에게 함부러 마법을 보여주지 않을 것을 교리로 삼고 있습니다. 저희와 교류하는 마법 원소 학회, 아마란스에 피해가 갈지도 모르기 때문이죠."


"모두 다 보여달라는게 아닙니다. 스펠을 영창하는 모습의 일부분만 보여드려도 되는 것 아닙니까?"


크고 작은 신경전이 오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에게 마법을 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교리라는 것은 그렇게 느슨한 것이 아닙니다."


더이상 언쟁을 길게 늘어뜨려봐야 좋을 것이 없다.


그런 생각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차의 리더와 시선을 마주했다.


"당신은 제게 시련을 내려주시는군요. 마치, 제게 교리를 어기지 않으면 죄와 시련을 부여한다고 신께서 말씀하시는 것 처럼요."


그러고선 양 팔에 걸린 채 부유하는 쇠를 한 번 만지고서, 손 끝에 불로 만들어진 검을 전개한다.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것은 이 것 뿐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마법을 쓰는 모습을 보고 싶으시다면, 아이헨에 도착한 뒤, 그 곳에서 만날 아마란스의 사람에게 허락을 구한뒤 보실 수 밖에 없겠지요."


"아이헨에 도착했을때, 당신이 이레귤러라면? 그러면 우리 모두는 당신과 함께했다는 이유만으로 교살대에 끌려갈겁니다. 당신이 아마란스와 만나기 전에요."


"............"


"순례자, 아니. 켈트벨씨."





"다시 한 번 말합니다. 마차에서 나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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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이라는 것은, 보통 예고없이 이루어지는 법이다.


이별을 예상하고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의 경우 그렇게 아름답게 끝을 맺는 경우는 없지.


나는 팔뚝에 부유하고 있는 팔찌를 쓰다듬으며 길을 걸었다.


"....하아. 걸어서는 일주일 걸리려나."


그럼에도 늦지는 않을 것 같아 다행이었다.


조금 더 몸을 혹사시키면 된다. 나는 그 점을 위안삼아, 정처없이 펼쳐진 길을 적막하게 걸었다.


그 곳에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에게서 숨긴 것이 많다.


아니, 세상에게서 숨긴 것이 한 없이 많다.


왜냐하면, 내게는 너무나 많은 원죄가 있으니까.





'---그러니, 내일 떠오를 것은 태양이 아닌 우리의 죄이라 하더라도.'



나는, 죽는 그 순간까지 죄를 마주할 수 밖에 없다.










트렌드 반영안한 인트로





‘떠오른 것은, 태양이 아닌 우리의 죄였다.’










“순례자님. 잠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세상은 가을과 작별할 준비로 분주했고, 길을 달리는 마차 안은 꿈을 품은 채 잠꼬대를 하는 것 같았다.


마차 안의 사람들은, 각자 내일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떠드느라 조용할 틈이 없다. 목적지에서 볼 일들이 기대되나 보다.


“순례자님은 나랑 얘기해야돼! 바빠!”


“무슨 일이시죠?”


내 무릎에 앉은 엘프 아이는 내 두 팔을 이끌어 껴안은 채 답했고, 마차를 호위하는 용병단의 대장은 굳이 내 맞은편까지 걸어온 다음 물었다.


그러고선 허락도 하기 전에 앉는 것이, 아마도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대화를 시작할 것만 같다.


“궁금한게 많아서요.”


그의 눈 끝에는 노련함과 피곤함이 넘실거렸다.


마치 길 옆에 피어있는 갈대처럼, 안타까우면서도 아름답게 흔들리는 것 같다.


이번 일에 지친 것은 아닌 것 같고. 미뤄보건데, 아마도 그간 이어져온 생에 지친 것 같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속한 종교, 단탈리온. 당신의 이야기. 그리고, 당신이 마차를 타기 전 말씀하셨던 리자드맨에 대해서.”


“가장 큰 목적은 리자드맨이겠군요. 맞죠?”


“…네. 맞습니다.”


제 목적은 마차를 안전하게 호송하는거니까요. 라고 말하며 용병대 대장은 여전히 피곤한 눈가를 넘실대며 말했다.


“리자드맨의 대한 소문과, 순례자님의 얘기에 혹해서 태워드리기는 했습니다만. 조금 더 자세히 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괜찮으신가요?”


“얼마든지요.”


나 혼자만 가지고 있어서 이득이 될 정보도 아닐뿐더러, 언젠가 말해야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리자드맨이 여행객을 습격한다는 얘기. 그건 대체 무슨 얘기입니까?”


그는 상체를 앞으로 내민 채 물었다.


무게 중심이 기울어진 그 행동이, 그가 얼마나 내게 흥미를 가지고 있는지 말해준다.


“좀 길어지겠군요.”


가벼운 얘기가 아니었기에, 나는 내 무릎에 앉은 하프 엘프를 품에서 떨어뜨리려 했지만, 엘프는 그 얘기마저도 듣고 싶어하는지 내 곁에 매달리며 버텼다.


그러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것으로 뜻을 대변한다.


“엘프씨. 즐거운 얘기는 아니에요.”


“엘프가 아니야. 내이름은 셀라!”


셀라라고 하는 엘프는, 이내 뒤돌아서서 내 볼을 잡았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은 퍽 설렜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죽고 다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지는 않다.


“듣고싶어! 그 일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귓동냥으로 듣기론, 그녀는 엘프의 숲에서 쫒겨난 엘프라고 한다.


순혈 엘프는 특별한 일 없이는 세상 바깥으로 나올 수 없다고 한다. 그들은 평생을 엘프의 숲에서 살아간다고 하니까.


더군다나, 이런 어린 애들은 더더욱 바깥으로 내보낼 생각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경우의 수는, 그녀가 다른 종족의 피가 섞인 아종이기에 버려졌다는 경우 뿐이다.


엘프는 순혈이라는 것에 민감하니까.


굳이 직접적으로 묻진 않았지만, 나는 그녀의 출생이 불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엾은 출생과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간다. 적어도 내 곁에서는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정말로 괜찮아요?”


그렇기에 남들보다 더 깊이 신경써주고 있었것만.


그럼에도 셀라라는 하프엘프는 이야기를 듣길 원했기에, 나를 향해서 새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나는 흐트러진 연두빛 장발을 정리해주고선, 아이같은 체구의 그녀를 품에 안아주었다.


그러고선 숨을 고르곤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게는 썩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를.


“저희는 심판의 성수, 벨테온을 숭배하는 집단. 단탈리온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번 아이헨에서 진행될 회담 때문에 순례단을 파견했죠.”


성수라는 것은, 주신의 시신에서 태어난 신의 대리인을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주인은 주신이며, 그 주신이 모종의 이유로 사망한 뒤, 주신은 자신을 대신할 네 성수를 만들어 내었다.


벨테온은 그 중에서 파괴와 심판을 상징한다.


문화권이 발달한 서구와 중구에서는 심판의 성수라 칭하지만, 빈곤하고 발전하지 못한 동부에서는 파괴의 성수라고 말하는데. 이건 설명하면 길어질 것 같으니 나중에 말하는거로.


“듣기론 네 명의 성수를 숭배하는 종교 단체와, 4대 원소 마법 학회. 그리고 여러 유명한 사람들을 모집했다고 했는데, 맞나요?”


“맞습니다. 많은걸 알고 계시는군요.”


“용병일로 벌어먹고 살려면, 이런 소문들을 잘 알고 있어야하거든요. 큰 것이 오고가는 곳에 돈도 오고가니까요.”


지당하신 말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긍정했다.


하프 엘프는 왜 거물들이 움직이는 곳에 큰 돈이 움직이는가를 이해하지 못한 듯 했지만, 지금은 그녀에게 설명해줄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순례단이 진행하던 와중에 용과 사람이 섞인 듯한 이들에게 습격을 당했습니다. 본래라면 큰 피해 없이 이길 수 있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를 뺀 나머지가 모두 사망하셨죠.”


“제가 궁금한게 그 부분입니다. 단탈리온같은 종교단체라면, 그에 대응하는 원소마법학회와도 제휴관계를 맺을 것이고. 그렇다면 마법을 쓸 수 있지 않습니까?”


그가 진정으로 궁금해하는 부분에 진입하기 시작하자, 그의 입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가 궁금했던 부분들이 이제서야 봇물터지듯 쏟아진다. 그의 눈에도 생기가 맴돈다.


“마법은 우리 세상에서 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법을 다룰줄 아는 무리가 한 명을 남기고 전멸이라니. 저는 납득할 수가 없어요.”


그는 용병단에서 생을 살아왔기에, 순례단에서 그가 주목한 것은 순례단의 무력이었나.


“저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무력하게 당해버릴줄은 몰랐거든요.”


나는 내 팔뚝에서 부유한 채 천천히 도는 금속 덩이를 만지며 신음했다.


내 앞에 있는 이에게는 이 금속을 순례단의 유품이자, 성유물이라고 설명했었다.


“마나를 차단하는 공간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아뇨, 지금 처음 들어봅니다.”


“용과 사람이 섞인 이들…. 저는 리자드맨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마법을 부릴 수 없게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재주라고 말해야할지, 물건을 사용한 것인지는 잘 모르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이 전개한 공간 안에서는 그 누구도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마법사는 민간인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리자드맨들은 비늘도 단단했고, 병장기를 다루는 솜씨도 대단해서, 순례단이 죽는건 삽시간이었죠.”


“그들이 노린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금은보화를 노리기 위함이라면 굳이 순례단을 노릴 필요가 없다.


종교단체가 가지고 있는 성유물은 값조차 매길 수 없지만, 출처가 확실하기에 매입을 하려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만약에 단탈리온의 성유물이 분실되었고, 그걸 누군가가 가지고 있음을 확인한다면, 단탈리온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집단을 뭉개버릴 것이다.


종교단체라고는 하지만, 이 세계에서 종교단체란 가장 강한 힘을 가진 단체 중 하나이다. 까딱하다간 나라와도 전쟁을 할 수 있는 수준인 것이다.


그렇다면 원한 때문일까?


‘그것도 확실하지가 않아.’


고작 몇 십명 정도로 이루어진 집단이 아니기에, 단탈리온이 가지고 있을 사정은 내가 아는 것보다 더 크고 복잡하리라.


더불어, 순례단은 불특정 다수로 이루어진 집단이며, 맴버는 항상 변한다.


그러니 단탈리온의 순례단이라고 표적을 지목할 수도 없고, 단탈리온 그 자체에 원한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빠르리라.


“생각나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개연성이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저도 왜 그들이 습격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습격한 모두를 죽였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덤덤하게 넘겨버렸다.


“……”


그는 내 반응을 신기하게 여기는 듯 했다.


같은 순례단 아니셨나요? 그들의 죽음에 무언가 느끼는 것은 없으신가요?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 같겠지만, 그럼에도 무언가를 뱉을 수는 없는 사이. 그렇기에 그 질문들을 침묵 속에 담아 버릴 것이다.


”순례자님은, 어떻게 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셨습니까?”


“재주가 있었거든요. 그들에게서 살아남을 재주요.”


나는 애둘러 말헀지만, 등 뒤에 꽂힌 생존용 단검을 내비추며 표현했다.


날을 드러낸 단검은 날이 나가있었다. 애초에 사람을 죽이기 위한 단검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는 날빠진 단검에서 유추할 수 있으리라.


이 단검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나뭇가지나 가죽같은 것을 자르며 생존하기 위한 도구인 것을.


“설마 그 단검으로 모두를 죽였다고 말하고 싶으신건 아니겠죠?”


“무기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가령, 그 리자드맨들이 들고 있던 무기라던가.”


농담하듯 말했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였다.


그렇게 말하자 용병단의 대장은 바뀐 눈초리로 나를 살핀다.


무기를 빼앗아 쓴다 한들, 결국 상대를 무력화시키거나 죽이지 않는 이상 쉽게 해낼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걸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얘기하는 나를 바라보며, 많은 것을 생각했으리라.


내가 가지고 있는 '재주'라는 녀석이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내가 가졌을 실력이 어느정도일까.


그의 두 눈에는 그렇게 쓰여있다.


순례자라는 것은 본래 무력과는 거리가 먼 법. 그런데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 이리도 무감할 수 있다니.


그 의도를 모두 파악한 나는.


"부디, 제가 가진 재주를 보여드릴 일은 없으면 합니다."


"그때가, 가장 최악의 상황이 될 때니까요?"


그의 물음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순례자님이 해주시는 세상 얘기 재밌어!”


마차는 그렇다할 일 없이 목적지에 도착해갔다.


내 바람과 같이, 리자드맨이나 다른 도적때들에게 습격받지않고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그 근거에는 용병단 대장이 일부러 무력을 과시한 바도 있겠지만. 그래도 아무렴 어떤가. 이건 그가 노련하다는걸 나타내는 증거일테니.


“그저 세상을 오랫동안 떠돌고, 배웠을 뿐이에요.”


나는 여전히 무릎에 연두빛 머리 소녀, 셀라를 앉혀놓은 채 말했다.


이 아이를 안아주고 있으면, 옛날 헤어진 의붓 여동생 생각이 난다.


그 아이도 사람을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지금은 어디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순례자님은 어디서 그렇게 많은 얘기를 배웠어?”


“상당수는 책으로 배웠고, 중부 대륙에서 있던 일들을 직접 경험한 바가 크죠.”


셀라는 세상이야기에 목말라하는 아이였다.


그녀는 순수 엘프가 아닌 하프엘프일 것이라고. 더불어 엘프의 숲에서 쫒겨난 아이일 것이라고 예상헀는데, 그 예상이 맞아 떨어졌다.


그녀가 전해주는 얘기는 상당히 한정적이었지만, 나는 그 조각들을 맞추어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인간과 엘프의 혼혈로, 어머니는 엘프의 숲에서 추방당했고, 인간 쪽은 살해당한 것 같다.


더불어 엘프 부모쪽은 아이도 만나보지 못한 것 같고, 그렇게 태어나서부터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누군가 우연찮게 엘프를 발견하여 키웠다고.


“순례자님, 대단해!”


아이는 다행히도 주워준 사람 밑에서 적당히 잘 자랄 수 있었다.


엘프라는 것은 평생동안 엘프의 숲에서 나오지 않는지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상당히 희귀한 경우다.


셀라를 주운 사람 역시, 순수하게 아이를 보살피고 싶다는 의도보다는, 엘프를 주워서 관찰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 같다.


그나마 악의적인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이 아이를 산제물로 쓴다거나, 해부한다거나, 노예로 부린다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불건전한 목적으로 다룰 수도 있었을텐데.


주운 양부모가 선택한 것은, 엘프라는 것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리고 같이 동거를 하면서 어떤 경험을 내게 보여줄지. 그 것을 궁금해하는 듯 했다.


“배운게 도둑질이죠. 셀라는 저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될거에요.”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않은 듯 하다.


이내 엘프의 생태계가 인간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부모는, 셀라가 13살 때 셀라를 파양했고, 셀라는 그렇게 혼자 여행길에 올라 세상을 떠돌기 시작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죽을뻔한 고비도 여럿 있었고, 그러면서도 세상의 여러 부분을 알아갔기에. 그녀는 버려졌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세상을 떠도는 것에 흥미를 가졌다고 한다.


때문에 나의 이야기에 이토록 즐거워하는 것이겠지. 나는 그녀가 바라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니까.


“배운게 도둑질이라는게 뭐야?”


그녀의 질문은 시간이 지나는 것도 모른 채 이어졌다.


나는 그녀에게서, 오래 전 헤어진 여동생을 떠올리며 질문에 답해주었다.


그 아이는 어디에 있을까. 살아있다면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부디 살아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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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했습니다.”


마을의 초입을 지나, 마차들이 경유하는 역에 도착했다.


마부는 도시안에 체류하기 위한 절차와 계약서등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용병대의 대장 역시 잔금을 치르고 다음 계약을 준비하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그럼, 여기서 헤어지겠네요.”


나같은 승객들은 잔금을 치르고 떠나면 된다.


다만 내 경우는, 리자드맨의 정보와 내 무력으로 인해 무전으로 탑승할 수 있었고, 셀라는 승객의 호의로 인해서 승객이 대신 값을 치뤄주었다.


한 손으로도 번쩍 들 수 있는 승객의 무게가 얼마나 차지하랴.


되려 14살에 세상길에 올라야했던 것이 안타까웠는지, 사람들은 셀라에게 자신들의 아이를 대입하며, 이리저리 잘 챙겨주었다.


손길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 좋은 의미로.


“순례자님은 어디로가?”


나는 마차에서 내리며, 잔금을 치르는 셀라와 손인사를 하며 헤어지려 했지만, 셀라는 아직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듯 내 말꼬리를 이어잡았다.


“어, 저는 아이헨으로 가요. 그 곳에 볼일이 있거든요.”


이 곳은 아이헨으로 가기 전 마지막 경유지.


나는 이 곳에서 기다려서, 아이헨으로 가는 마차에 얻어타 갈 생각이었다.








븎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