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에서 떠나라. 스스로가 "좋다"고 생각한 것에 머물려고 하는 마음가짐을 '동굴'에 비유하였다. 동굴 속 '익숙함'과 '편안함'에 취해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지만, 결국 언젠가 상황은 변하고 가진 것을 잃어버리게 되므로 심한 괴로움을 느낀다. 아무리 괴로워도 '이때까지의 익숙했던 상태'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상황이 다시 좋게 바뀌길 하염없이 기다린다.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괴로움은 심해지나, 이때까지 했던 것들이 생각나서 동굴을 떠나지도 못한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니 '이대로 계속 괴로워하든지', 아니면 '변해버려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버리고 자기 인생을 살든지' 하라는 것이다. 건강에 대한 슬픔과 자신의 재산,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의 사랑, 사회생활, 사람의 죽음에 대한 걱정도 동굴에 해당된다.
내가 옳다고 남을 비난하지 마라. 내가 옳다고 여겨서 '나는 이렇게 한다'고 뽐내면서 가르치거나, 그렇게 하지 않는 다른 사람을 비하하지 말라'는 것. "내가 옳다"는 생각이 들면, 남에게 반드시 말하려고 하기 때문에 모든 싸움이 일어난다.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 "내가 틀렸다"는 것을 옳다고 여겨, 스스로를 비난하며 '자신의 일'이나 '실패 후 새로운 시도' 자체를 포기하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스스로가 스스로와 싸우는 셈)
결점 없는 완벽한 순수를 찾지 마라. 보고 듣고 느껴지는 그 어떠한 진리나 가르침에도, 결점없는 완벽한 순수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결점 없이 완벽하고 순수한 깨달음이 있다고 믿어서, 그 깨달음을 묻고 다니며 찾으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따름이다. 그것이 진리라고 해서, 종교적 가르침이나 삶의 깨달음이라고 해서, 그 말을 따르거나 하진 말아야 한다. 설사 완벽하고 순수한 진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자신 스스로가 그러한 완벽한 순수를 구현해내기란 불가능하고, 삶을 더 괴롭게 만들 뿐이기 때문이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완벽한 순수를 찾았는데, 완벽을 추구하여 도리어 괴로워진다면 본말이 전도된 것이니, 이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삶은 애초부터 괴로움에서 떨어질 수 없는 것인데, 왜 괴로움이 없는 삶(진리)이 있다고 믿어 그것을 찾아다니는 것인가?
최고를 생각하곤 비교하지 마라. 어떤 것을 최고라고 생각하면, 최고가 아닌 다른 것을 볼 때는 '수준이 낮다'며 비교하게 된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어떠한 것에도 "최고"를 두지 말라는 것. '좋아하는 것'을 두게 되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어' 지고, 여기에 매달리게 되어 집착이 되므로 괴로워진다. 이렇게 비교는 집착의 씨앗이 되기 때문에 경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