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기 전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었다. 

얼음틀을 꺼내어 비틀고 뒤집어서 털어내니 얼음들이 후두둑 떨어져 나간다.

그런데 하나의 얼음이 고집을 부리며 단단히 붙어있다.

얼음틀을 깨끗이 헹구고 뒤집어 두고 싶었다.

그러려면 저 자식이 떨어져 나가야 하는데 몇 번의 노력에도 끝끝내 떨어지지 않았다.
시간도 없고 그냥 식탁 한켠에 올려둔 채 커피를 급하게 말고는 휙 하고 마셔버렸다.

남은 얼음들은 싱크대에 뿌리듯 버리고 텀블러를 헹군 뒤 급하게 집을 나섰다.


한참 뒤 귀가한 나는 샤워를 하고 물 한잔하고자 텀블러를 집어들었는데 그 때 얼음틀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씩 맺혀있던 물기는 싹 다 말라서 흔적이 없는데 단 한 칸에 물이 가득 차있었다.
아까 끝까지 나오지 않았던 얼음이 녹아 있었던 것이다.

집을 나서기 전 못 했던 일을 마저 하려 얼음틀을 집었다.

그 작은 움직임에도 한 칸 차지한 물이 이리저리 저항 없이 흔들린다.
아까는 왜 그렇게 고집을 부렸니
뭘 위해서


얼음틀을 뒤집으니 아무 미련 없다는 듯 또롱하고 떨어진다.
뭔들 누구든 시간이 필요한 거겠지
잘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