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메시스는 흉내, 모방이라는 뜻을 지니는 그리스어 단어다. 미학적으로 볼 때 미메시스의 개념이 중요한 것은, 물론 플라톤이 미메시스를 예술(테크네)의 본질적인 속성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미메시스의 개념은 초기 대화편인 <이온>에서 처음 나타나며, 시인추방론을 비롯한 후기 담론들은 <국가>의 후반부에서 언급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죽음의 미메시스가 갖는 의미는 그러한 미학적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테오도어 아도르노의 중심 개념 중 하나인 죽음의 미메시스는, 우리 문명이 본질적으로 죽음에 대한 모방에서 탄생한 것이라는 불길한 암시를 주는 듯하다. 이 개념을 우화적인 방식으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물론 나는 대학원에서 아도르노를 전공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하의 내 이해는 틀렸을 수 있다):


  당신이 자연상태에 홀몸으로 떨어진 인간이라 생각해보라. 당신에게 자연은 그야말로 죽음의 형상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압도적인 폭력이란 형태로 드러난다. 그런데 당신이 만약 이러한 자연에 대항하고자 한다면, 바로 이 죽음의 형상, 자연의 형상을 취하고 이용하는 것으로만 대항할 수 있다. 보다 원시적인 문명에서는 자연의 무시무시한 형상을 흉내낸 가면을 쓰고 공포스러운 죽음의 정령인 것처럼 행사했다는 이야기를 쉽게 들어볼 수 있다. 굳이 이런 예시를 들지 않더라도, 당신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당신을 상처입힐 돌멩이 하나조차 인간의 탁월한 투척력과 더해진다면 살인무기가 될 것이다.


  어쨌거나 아도르노는, 우리 문명의 출발이 죽음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모방에서 출발했다 믿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그와 동등한 죽음의 이미지를 현대의 기술에서도 읽어낸다. 잠언집 <미니마 모랄리아>에서 기술의 본질적인 폭력성을 설명할 때, 아도르노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의 예시를 들었다. 당신이 만약에 자동차의 운전석에 앉아 있고, 한 무리의 아이들이 갑자기 당신의 앞을 가로막으며 뛰어간다면, 그 순간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아이들을 쳐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내 생각에는 무기를 다루는 일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원리가 동등하게 적용되는 듯하다. 일전 <콜 오브 듀티> 시리즈에서 등장한 지나치게 '현실적인' 폭격 장면이 논란이 됐던 이유는, 그것이 단지 게임의 폭력성 따위의 일상적인 질문이 아니라 보다 더 심오한 영역의 질문, 즉 기술의 본질적 폭력성이라는 문제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당신이 만약에 게임 화면으로 보는 것처럼 간편하게 폭탄을 떨어뜨려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민간인이든 군인이든 어쨌거나 당신에 대한 잠재적 위협이라면, 그렇다면 발사버튼을 눌러서 인명을 살상하지 않을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는가?


  막스 베버의 말대로 현대는 고대인들이 정령에게 부탁해야만 했던 그러한 힘의 행사가 과학기술의 힘을 빌어 실제로 가능해진 시대다. 이 기술의 강대한 힘이 주는 음울한 그림자는 비단 거창한 영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에 현대소설의 의의 중 하나가 일상의 미시적 영역에 거시적이고 신화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데 있다면, 현대의 소설가는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힘의 압도적인 폭력성을 직시해야만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