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편의점 알바에서도 또 다시 해고당했다.


거기다가 퇴직 급여도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5만 엔. 이걸로 한 달을 나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아니, 이 돈으로는 2주도 간신히 버틸까 말까였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 이유는 터무니없다.


내가 초능력자인 게 점장에게 들통났기 때문이다.


초능력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돌연변이를 가지고 태어나 초능력을 가진 것만 제외하면 보통의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의 힘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상위종에 대한 본능적인 위기의식, 그리고 초능력자 범죄자들의 테러 활동으로 악화된 초능력자들에 대한 이미지. 이러한 일련의 요소들로 인해, 초능력자는 계속해서 차별을 받아왔다.


그러한 차별을 견디다 못한 초능력자들이 시위를 벌이던 중 갑작스러운 능력의 폭주로 수백 명의 초능력자들과 일반인들이 휩쓸려 사망한 사건인 12.24 사태 이후, 이 나라 안에서는 초능력자에 대한 규제와 경계가 나날이 심해져 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행운아였다. 내가 초능력자인 것이 부모님께 들통났음에도, 부모님은 나를 버리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내 정체를 숨기려고 최선을 다했으니까.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했던가. 몸에서 전기를 발생시키고 전자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능력을 가진 내 정체를 숨기는 것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학교의 선생들 사이에서도, 그리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내가 초능력자라는 소문은 이미 교내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나는 그런 시선이 싫었다.


초능력자인 것을 숨겨야만 하는 이 세상이 너무도 싫었다.


그냥 초능력자와 무능력자가 사이좋게 지낼 수는 없는 거야?


다른 게 곧 틀린 건 아니잖아. 그런데 대체 왜 우리는 차별당해야만 하는 건데?


엄마에게 이 질문을 했을 때, 엄마는 끝내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엄마와 크게 다투고, 결국 가출했다.


“아, 카즈야…?”


그렇게 ATM기 앞에서 내가 회상에 젖어 있을 때, 갑작스레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그 목소리가 난 곳을 돌아봤을 때 서 있는 것은 역시 유즈였다. 


“유즈구나, 오랜만이네.”


애써 침착하게 대답해 봤지만, 나는 당황한 티를 감추는 데 실패했다. 이런 곳에서 하루를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이내 그 말을 들은 유즈는, 예쁜 얼굴에 공부도 잘하는데다 성격도 언제나 당차던 평소의 그너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떨리는 목소리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는 태도를 보이며 대답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나는 2주째 학교에도 안 나가고 지인들의 연락에도 전혀 응답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응, 오랜만이야. 왜… 왜 그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거야? 학교에도 나오지 않아서, 걱정 많이 했어.”


나는 잠시 그녀에게 내가 처한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숨기는 것보다는 나을 거 같아서 그냥 사실대로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사실, 나 가출했어."


그 말을 듣자 유즈는 눈이 땡글해지며 크게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간신히 이 한 마디를 꺼냈다.


"가출? 왜, 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혹시 네가 초능력자인 걸 부모님한테 들켰다던가…!"


"그건 아니야. 애초에 너도 알잖아? 우리 부모님은 내가 초능력자라는 걸 진작에 알고 계신 거. 단지… 내 초능력자 등록 건에 대해서 다툼이 있었을 뿐이야."


하지만 그건 내가 원하지 않았던 역효과를 냈다. 그 말을 들은 유즈는 오히려 더 걱정이 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게 오히려 정상이었다. 12.24 사태 이후 제정된 "공공의 안녕과 사회질서를 위한 초능력 범죄 등에 관한 특례법"에 의거해 공공 안전을 위하여 모든 초능력자는 정부 기관에 등록해 감시와 통제 아래 있어야 하고, 이를 회피하거나 거부한 자는 징역에 처해지는 것이 현실이니까. 분명 유즈는 초능력자 등록을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겠지. 하지만 그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초능력자 등록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인간으로서의 자유 대부분을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런데, 유즈의 입에서는 뜻밖에도 초능력자 등록에 대한 말은 일언반구도 없이, 이런 말이 나왔다.


"혹시 길바닥에서 자고 있는 건 아니지?"


"지금은 아츠로네 집에서 지내고 있어. 너도 알잖아? 우리 학교에서 내가 초능력자란 걸 확실히 아는 사람은 너하고 아츠로밖에 없다는 거."


유즈는 그제서야 안심이 조금 되는 듯했다. 아츠로가 중증의 컴퓨터 오타쿠이긴 해도, 그 녀석은 절대로 남을 배신하지 않는 의리파인 데다가, 초능력자도 편견 없이 대해 주는 몇 안 되는 무능력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거구나…. 일단 지낼 곳이랑 같이 지내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밥은? 건강은?"


그렇게 말하면서 여전히 불안해하는 그녀를 본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 주면서 말했다.


"밥은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컵누들이나 주먹밥 등으로 먹고 있지. 건강도 보다시피 전혀 문제 없고!"


"아… 으응. 그렇구나. 나는 카즈야가 하는 거라면 뭐든 괜찮으니까… 응, 다치진 말고. 오늘 있었던 일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을게.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바로 그때였다. 저 멀리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며 낯익은 얼굴의 소년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때였다.


"어이, 유후! 카즈야!"


"아, 아츠로구나."


그리고 저 멀리에서 달려오는 아츠로. 녀석은 컴퓨터 오타쿠답게 어김없이 새로 나온 해킹 툴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다가 유즈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이후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가,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역시 아츠로였다.


"그보다... 너희 둘이 이렇게 만났다는 건, 유즈 너도 카즈야가 가출한 걸 안 거구나."


"으응, 어쩌다보니."


유즈도 살짝 멋쩍은 듯 답하고는 입술을 닫았다. 


나는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내가 직접 말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그보다... 간만에 만났는데 뭐라도 할래?"


그래도 마냥 안전하진 못한 상황이면서, 태평히 놀 생각을 하는 내가 유즈는 조금은 염려스러운 듯 보였으나 그 걱정도 곧 그만두기로 했는지 가볍게 미소지었다.


"그러게, 꽤나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은데, 뭐 재미있는 거 없으려나. 생각나는 거 없어?"


"음, 이렇게 셋이서 만나는 건 오랜만이니까, 도쿄 돔 근처의 유원지에 가 보는 건 어때?"


오늘만큼 내 연기력이 고마운 적은 없었다. 어제 내 상황을 모르는 사촌 형이 보내 준 세 장의 무료 티켓. 이걸 쓰면 도쿄 돔 인근에 있는 놀이공원인 "도쿄 퓨처랜드"에 들어갈 수 있고, 하루 종일 놀이공원에서 놀 수 있다. 일종의 자유이용권인 거지.


그렇게 도쿄 돔으로 향하게 위해 시부야 역으로 향해 들어가려던 그때, 어디선가 연설이 들려왔다.


"...정부는 그 괴물들을 등록하고 통제하려 하지요. 하지만 그들은 결코 우리가 길들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우리들 중에는 초능력자라는 이름의 괴물들이 있습니다!"


거리를 울리는 목소리, 그 음성이 더할 나위 없이 또렷하게 우리들의 귀에 박혔다. 유즈는 문득 발걸음을 멈춰세우고 그것을 들었다. 의심의 여지조차 없는, 초능력자 박멸을 주장하는 내용. 그녀는 황급히 뒤돌아서서 나 바라보았다.


"있잖아, 우리... 다른 곳으로 갈까?"


유즈의 미소가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입술을 살풋 물고선, 연설을 하는 사람들에게 적의적인 시선을 돌렸다.


"괴물이느니, 뭐니… 멋대로 떠들어대고 말이야."


그리고는 그녀는 내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나는 이대로 지나칠 생각이 없었다. 


"아니, 한 번 뭐라고 지껄이는지 들어나 보자고."


자고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태라고 했다. 그렇기에, 나는 분노를 억누르고, 아츠로와 그녀가 말릴 새도 없이 연설을 듣는 사람들 사이로 숨어들었다. 곧이어서, 연단에는 푸른 지구를 형상화한 라펠 핀을 양복에 꽃은 청년이 올라섰다.


"저는 쿠즈류 야마토. 블루 어스 재단의 대표이사, 쿠즈류 야마토입니다. 오늘 여러분께 말씀드릴 내용은 초능력자는 공존의 대상이 아닌, 우리 인류와 생존경쟁을 벌이는 적이라는 것입니다."


"뭐?!"


"뭐라고?"


"우리 인간은 초능력자들과 대립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들 중에는 분명 죄 없는 이들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 분들도 있겠지요. 하지만 정말 그런 것일까요? 우리 인간이 그렇게 굳게 믿고 있는 것뿐이라고... 그런 식으로 생각해보신 적은 없습니까? 초능력자는 인류를 멸망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인류가 그들과의 생존경쟁에서 밀려날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 않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습니까?"


"그건 그래…"


"그렇지만…"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 초능력자들은 인간과 달리 이미 하나의 종으로 분기된 존재입니다. 우리와 손을 잡을 상대가 아닌, 맞서 싸워야 할 적입니다. 그런 초능력자들에 대해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모르겠군."


"토벌?"


"그렇습니다! 그들을 토벌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인간은 비로소 이 지구의 진정한 지배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이라는 종을 보존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생각해 주십시오. 이상으로 저 쿠즈류 야마토의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곧이어 남자와 그 수행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철수한 이후 사람들 사이에서는 한 차례 동요가 있었다.


"그 사람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뭘 어떡하긴 어떡해! 초능력자가 우리의 적인 건 당연한 사실이잖아. 그런 위험한 놈들이랑 친하게 지내는 거야말로 말이 안 되는 거 아냐?"


"그렇지만 그 사람의 말을 모두 믿는 것도 역시 무리가 있는 거 같아. 그들이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위험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게 아닐 텐데… 물론 그들이 위험하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 못 하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수런대던 사람들이 모두 흩어져 제 갈길을 간 이후에도 나는 1분 넘게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하아, 역시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오르는 기분이네. 사실 연설을 듣는 내내, 남자의 혀를 전기로 지져서 다시는 말을 못 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내 결정이 이 정도로 후회되기는 처음이었다.


"저기… 카즈야? 괜찮아?"


"...미안, 얘들아. 그냥 유원지는 너희 둘만 가는 게 좋겠어. 유원지에 간다고 한들, 난 이런 기분으로는 도저히 즐겁게 놀 수 없을 것 같아."


갑작스러운 내 로우텐션 상태에 아츠로는 어쩔 줄 몰라하며 쩔쩔맸다. 바로 그때, 유즈가 내 앞으로 다가와  내 손을 꼭 잡는 바람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내게 다정하면서도 따스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카즈야, 저런 말에 너무 흔들리지 않아도 괜찮아. 나쁜 건 저 사람들이지, 네가 아닌걸? 저런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나는 언제나 네 편이니까… 그러니까 기운 내!"


"..."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향해 웃어주는 유즈의 미소를 보자 나도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거기다가 아츠로도 그녀를 거들었다.


"그래, 저런 나쁜 놈들 말에 굳이 귀를 기울일 필요는 딱히 없잖아?"


하긴, 확실히 그랬다. 어렸을 때부터 저런 이야기는 익히 들어 왔다. 괴물, 별종, 돌연변이.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내게 말하곤 했다. 남들과 조금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그런 말들을 곱씹은 덕에 간신히 화가 가라앉은 나는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유즈의 손을 꼭 잡은 채 말했다.


"좋아. 너희가 정 그렇게 나온다면 조금은 어울려 줄게. 자, 그럼 이제 유원지로 가자!"


그렇게 우리들은 야마노테선 철도를 타고 도쿄 퓨처랜드로 향했다. 무서운 놀이기구를 즐겨 타는 아츠로가 온갖 롤러코스터를 타러 다니는 사이, 스릴 있는 놀이기구를 싫어하는 우리 둘은 잠시 아츠로를 기다리며 관람차에 올라탔다. 유즈 녀석은 쑥스러운지 나랑 손을 잡고 있는 내내 얼굴이 살짝 발그레해져 있었다. 당연한 거겠지.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내 오면서, 나 역시도 가끔 유즈랑 같이 있으면 마음이 살짝은 설레곤 하니까. 아니, 어쩌면 살짝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관람차가 위로 올라가자, 더더욱 긴장이 되었다. 내가 고소공포증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유즈와 함께 있는 것 때문이었다. 잠시 동안 침묵이 이어지다, 유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있지, 카즈. 앞으로는 갑자기 사라지지 말아줘. 2주 동안이나 연락이 안 돼서… 초능력자 수용소 같은 곳이라도 끌려간 줄 알았단 말이야."


"…!"


유즈는 애써 미소짓고 있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울 거 같은 얼굴로, 억지로 미소 짓고 있었다. 자신이 울어 버리면 내가 슬퍼할 거라고 생각한 게 틀림없다. 나는 그런 유즈를 어떻게 달래 줄까 고민했지만, 좀처럼 해 줄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결국 그녀를 위로해 줄 말 대신 행동을 떠올린 나는, 말없이 그녀를 끌어안아 줬다. 이내 깜짝 놀라는 유즈.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를 끌어안고 조용히 말해 주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다시는 네 곁에서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이제 걱정하지 마."


"흐…흐윽…!! 흐윽… 히끅…"


유즈는 이내 참아왔던 눈물을 내 품 안에서 마음껏 터뜨렸다. 나는 그녀를 토닥여 주며 속삭였다.


"그래… 얼마든지 마음껏 울어도 괜찮아… 내가 다 받아 줄 테니까…"


그러는 사이, 관람차는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