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의 마음 속을 유영하는 검정. 짙게, 더욱 짙게 섞이거라. 언젠가 하양이 들어찰 때까지.


 태어난 것은 행운인가. 태어난 것은 불행이다.


 짊을 필요도 없는 것만을 등에 지고, 연고조차 없는 누군가의 따뜻함을 위하여 장작이 되어라, 재가 되어라.


 아아, 인조의 십자가 위에서 소신을 공양당하는 나는 만들어진 마녀인가 만들어진 성인인가.


 알 수 없다. 눈 앞을 가리는 것은 오직 튀는 불똥과 매캐한 잿가루 뿐.


 검은 마음은 더욱 타들어 잿빛으로. 옅게, 더욱 옅게 타올라라. 다시금 검정을 채우지 않도록.


 살아남은 것은 행운인가. 살아남은 것은 불행이다.


 먹을 필요도 없는 것만을 욱여넣고, 상판도 모르는 누군가의 쓰레기를 지우러 괴물이 되어라, 재가 되어라.


 아아, 콘크리트 담 위에 발리는 나의 피는 어린 양의 피를 모방했나 장남의 피를 모방했나.


 알 수 없다. 눈 앞을 가리는 것은 오직 미친 야만과 역겨운 잿가루 뿐.


 하늘은 넘치는 재에 물들어, 색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