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에서 시간을 버리는 인간. 나를 표현하기에 딱 좋은 문장이다. 허구한 날 멍하니 공책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머리속에 가끔씩 무언가가 떠오른다. 천천히 그것들을 적어내려간다. 적어내려간다. 


 다만 그것은 무언가의 도용일 뿐이다. 다만 도용이란걸 알아차린 순간 그 글자들은 오마쥬로 모습을 바꾸니, 결국 부족한 자신을 한탄할 뿐이다. 아, 이 문단마저도 결국 무언가의 오마쥬일 뿐이니. 


 작가가 쓰는 글들은 결국 자신 인생의 도용일 뿐이다. 내가 나를 작가라 칭해도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다 가끔씩 그 천한 단어들 마저도 떠오르지 않는 날이면 표절할 글들을 찾아 인터넷으로 향하거나 머리를 침대에 박고서 눈을 감을 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베르나르 베르베르. 나는 그저 ‘재밌었다’ 라는 말만 되풀이 한다. 분명 배울것이 많건만.


 이상, 나츠메 소세키, 헤르만 헤세. 나는 그저 이해도 하지 못한 채 그들의 말을 그저 멋들어진 양 따라 외운다.


 아, 그래, 날개. 이상의 ‘날개’.


 그 작품을 읽을 때 마다 나는 그저 하늘을 날고싶다고 생각한다. 생각하는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학생가의 살인’.


 그 작품을 읽을 때 마다 나도 언젠가 이 방에서 떠날 날 만을 꿈꾸고 있다. 꿈꾸고 있다. 그저 꿈일 뿐이다.


 노력도 하지않는 어리석은 망령아.


 그래, 가끔 그러다보면 또 거실에서 어머니가 나를 부르신다. 그러면 또 비척거리며 방에서 나가 차려주신 밥을 먹고 방으로 돌아온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다.


 어머니, 당신은 그저 미소짓는다. 뭐든지 다 이해한다는 듯이, 그래도 괜찮다는 듯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구직 사이트를 바라보는 게, 비단 오늘 일만은 아니지. 그러다 결국 눈을 돌려 다시 공책을 바라볼 것이라는걸 정말이지 잘 알면서도. 잘 알면서도...


 그러다 또 몇 자를 흐느적거리며 적어본다. 아무 의미도 없는 그것을. 아무도 모르는 그것을.


 결국 돈을 벌어야 한다는데 생각이 미칠 즈음이면 공모전을 조금씩 찾아본다. 하지만 나는 내 글을 상업적으로 쓰고싶지 않다. 그저 예술일 뿐이다. 그것이 사실 단순한 겁인걸 알면서도, 입으로 되풀이한다. 그저 내 마음일 뿐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다.


 이러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왠지 그냥 정신이 멍해서 안하던 짓거리를 해본다. 창문을 열고 바닥을 내려다본다.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갈 용기는 없으니. 저 멀리 바닥에는 지금도 개미가 열심히 움직이려나. 병정개미는 더듬이를 비비며...


 그러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들의 등에 날개는 보이지 않고, 그저 부담감만이 보인다. 저 멀리 담배피는 아저씨. 밤 늦게 학원에서 돌아오는 학생.


 그리고 가방을 들고 돌아오는, 돌아오는 아버지.


 쓸데없이 또 심장이 아플라, 괜히 창문을 세게 닫는다.


 아버지는 누굴 위해 그리 열심히.

 어머니는 누굴 위해 그리.

 나는 누굴 위해.


 ...알고 있는데 말이다.


 어쩐지, 조금은 다른 마음이 들어 다시 공책을 바라본다.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그래, 결국 나는 누군가를 따라할 수 밖에 없다.

 그건 나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다시 몇 자를 적는다. 이번엔 어딘가에 이 글을 올려보리라 다짐하면서.


 이 글 마저도 다시 읽어보니 결국 오마쥬인걸 깨닫고서라도. 아무런 계산도 없이 그저 새벽 감성에 뒤틀려있다는걸 깨닫고서라도. 전혀 개연성 따윈 없는, 납득 할만한 플롯도 없는, 스토리도 뭣도 없는 글이라는 걸 깨닫고서라도. 이런 식으로 펼친 날개는 결국 다시 찢어질 거란걸 깨닫고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