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배하면서 철도라던지 공장 같은 사회인프라들을 많이 깔아놨는데 이것은 단순히 우리민족을 위해 선한 의도에서 깔아준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자국의 이익을 위해 깔았던 것임. 게다가 사회 인프라는 그 이유에서 깔렸을지 몰라도 일반 국민들의 삶은 피폐했음. 당장에 그 때에도 먹고살거 없어서 만주로 떠나는 사람도 많았고 농업이라던지 이런 것에서 진전은 없었음. 게다가 일본은 식민지배 초기에는 무조건적인 억압으로 저항을 불렀고 이후 철저한 동화교육 즉 친일파를 길러 독립할 의지를 꺽으려 하기 위해 유화정책을 펼쳤는데 이 때에도 완전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등 선진국처럼 발전된 사회는 아니었음. 그러니까 인프라도 단순히 자기들을 위해 깔아준 거고 사회도 선진국처럼 된 게 아니라 여전히 억압적인 분위기의 전근대사회였음. 그러니까 인프라나 제도만 근대화된 것이라고 봐도 되지. 여담으로 여전히 우리나라 국민은 그 때만 하더라도 양반의 자식, 천민의 자식 이렇게 서로를 생각하면서 신분에 의해 사람을 판단하는 봉건적인 의식이 있었지. 그러니까 이러한 의식도 없애지 못하는 일본이었음.
전공자로서 먼저 한 가지 지적합니다. 저 주장은 꽤 그럴듯한 세련되고 냉철한 주장입니다. 박정희와 5.16 주모자들 대다수 그리고 정일권 등 그에 협력, 동조한 대다수 역시 일본식 교육을 배우며 메이지유신과 일본식 산업화를 공부하고 직접 목격한 일제시대의 조선인 엘리트 출신임은 사실입니다. 또 장기영을 비롯한 조선식산은행(특수은행) 출신 관료들, 김유택을 비롯한 조선은행(중앙은행) 출신들이 해방후 산업화시기 활약한 것도 사실입니다. 아울러 산업화 시기 수많은 지식인들이 경성제국대(현 서울대) 출신이거나 일본도쿄대 법학전공 등 일본 유학파 출신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상당히 중요한 게, 세계2차대전 이전 아시아 국가 중에서 산업화 성공한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는 겁니다. 즉, 일본(식민지 조선 포함) 대학, 일본 유학파 내지 일본 관료 출신 라는 점은 산업화의 상당한 메리트임이 사실이고 대만, 한국 빼고 이런 메리트를 가진 나라는 없는 게 사실입니다.
저거 반론하는 방법이 딱 한가지있습니다. 전통적인 반론은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에게 고급기술을 전수해주지 않았고 절대다수의 조선인들은 초등교육, 기술교육정도만 받았지 고등교육을 받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적절하지 못한 주장입니다. 근대화에 있어서 국민의 다수가 고등교육을 받아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일본도, 영국도, 미국도 산업화 초기에는 소수만이 고등교육을 받았고 절대다수는 무식했지만 근대화 했답니다. 따라서 이건 제대로된 반론이 아닙니다.
한강의 기적 주역이 박정희나 일제 출신 관료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유일한 반론입니다. 즉, 한강의 기적 주역은 미국이었다는 주장입니다. 친일파를 싫어하는 국내 학자들이 박정희가 아니어도 한국이 경제성장했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이것때문입니다. 박정희와 박정희 정부 주요인사들이 일본출신엘리트에 정책또한 일본을 모티브로 했기때문입니다. 따라서 저 주장을 반증하려면 박정희 등 당시 주요 인사들이 한강의 기적과 무관하다는 점을 입증해야만 합니다.
"생활수준은 도시권(특히 서울)만 양호해졌고 대부분의 농촌권은 그저 그랬지요. 하지만 그렇기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생활수준이 향상되었다."는 게 식근론의 전반입니다. 실제로 溝口敏行(Mizoguchi Toshiyuki)&梅村又次(Umemura Mataj), 구일본식민지경제통계 표6-1와 6-4에 따르면, 조선인들의 실질소비지출은 1912년부터 1938년까지 매년 0.97%씩 성장하는 꼴이었어요. 물론, 태평양전쟁기에 들어서면서 숟가락 젓가락은 물론이고 뒷산에있는 나무뿌리랑 낙엽까지 쓸어갔으니 암담합니다만, 하필 그 시기에 대한 통계자료는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일본의 자본진출이 활발해졌다는 기록만 남아있어 실증적 반박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다만, 공장이 윗동네 밀집이었다는 말은 북한놈들의 선동입니다(공장이 북쪽에 어마어마 하게 있으니 북한으로 넘어와라 뭐 이런거죠). 조선경제연감(1948)을 보시면, 한반도 공장의 44%는 남한에 있었고 특히 경인공업지대의 규모는 3.5억환으로서 북한의 북부공업지대와 대등한 수준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호남과 영남, 그리고 삼척지방에 1억환 이상 크기의 공업지대가 존재하였으니, 공장이 윗동네 밀집이라는 진술은 사실과 약간 다릅니다.
반박은 쉬움. 대부분의 일제시대 한국인들은 일부 친일파 이외에는 고의적으로 우민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거의 다 기초적인 지식인 초등학교 나 중학교 졸업이었고, 고등학교 조차 극소수인 상황으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데다, 한 건 기업활동이나 전문직이 아닌 단순노동이었음. 실제로 체계적으로 교육을 했다면 맞을 수도 있는데, 일제는그렇게 한 적이 없음. 따라서 한강의 기적에 식민지근대화론을 도입하는건 말이 안 됨. 그런 교육을 애초에 받은 사람이 드무니까. 박정희의 경우 만주군 복무의 친일파 계열이므로 그런 교육을 받았던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