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가 부마항쟁에 데여서 광주에서 소요가 일어났을 때 본보기로 과잉 진압을 했음.
광주 사태의 본질은 아들 딸들이 무참히 폭행당하는거에 분노한 광주 시민들이 신군부에 무력으로 저항한거임.
당연히 초기 이들에게 민주화라는 개념은 없었고 그냥 독재의 폭력에 저항한거였음.
독재에 대한 저항이 민주화 운동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되지 않기 때문에 항쟁 전체를 민주화 운동이라 하긴 어려움.
항쟁이 길어지면서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이들이 시민들에게 "우린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어요"라는 식으로 일종의 동기부여/합리화를 했고 이러한 인식이 공유되면서 민주화 운동으로 발전한거라 보는게 맞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