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직은 찬바람이 부는 봄의 어느 날.


바람에 흩날리던 꽃잎 하나가 머리 위로 떨어진다.


살면서 몇번째 맞이하는 봄인지, 또 사람들은 뭐이리 많은지 생각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가치없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두려워 억지로 연명하는 매일이 시작됐다는 신호였다.


그런 나의 삶에 유일한 활력소가 되는 것이 있다면,


[어서 와, 주인님! 귀여운 토끼 차림으로 기다렸어!]


휴대폰의 액정 너머로 메이드복 차림의 미소녀가 활기차게 인사를 건넨다.


[지휘관님,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자, 오늘의 업무를 시작하지요.]


그건 분할화면 너머로 비추어진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주인님, 선생님, 지휘관, 프로듀서, 트레이너....


뭐라고 부르던 초라하기 그지없는 나의 삶에 억지로라도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세상으로 들어왔다는 걸 알리는 소리.


여기서만큼은 나도 사랑과 관심을 받고, 또 주어진 일을 해내는 훌륭한 어른이었다.


그 사실이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모를 정도로 감격스러워서, 진짜 내 삶이 휴대폰 액정 너머에 비추어진 이 세상이었으면 하는 망상을 단 하루도 거른 적이 없었다.


"4천원입니다."


자취방으로 들어가기 전,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하나씩 집어드니 어이가 없는걸 넘어 억울하기까지 한 액수가 출력된다.


그렇다고 한 끼도 먹지 않은 채로 하루를 마칠수는 없었기에 마지못해 카드를 꺼내 결제했다.


안녕히 가시라는 알바생의 형식적인 인사를 뒤로 하고 발걸음을 옮기자, 익숙한 풍경이 눈 앞에 나타났다.


어슴푸레한 가로등 불빛과 그 아래 드러난 토사물들, 어느나라 말인지 짐작도 안 가는 외국어와 생선 굽는 냄새까지.


못사는 동네 원룸촌이 으레 그렇듯 내가 살고 있는 이곳도 참 볼만한 장소였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허름해 보이는 주황색 페인트가 덧칠된 3층짜리 건물이 나의 보금자리.


보증금 없이 관리비 포함 월 50을 잡아먹는 네 평짜리 단칸방에 들어와 대충 끼니를 떼우고 몸을 눕히니, 하루 종일 일한 피로가 뒤늦게 몰려왔다.


[토끼는 외롭게 두면 안돼. 그러니까, 주인님한테 잔뜩 쓰다듬어져야지!]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화면 너머 바니걸 차림을 한 미소녀는 밝은 목소리로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


힘없이 입꼬리를 올리며 녀석의 머리 부근을 터치하자, 뭐가 그리 좋은지 배시시 웃으며 간지럽다는 대사를 출력했다.


사랑일까.


순간, 스스로 생각해도 비참하기 그지없는 감정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모바일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를 상대로 사랑을 하다니, 내 인생도 진짜 갈때까지 간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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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비참하기 그지없는 생각만 나서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