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내 머리에 권총을 갖다댔다.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보다 더 최악인것은 내가 죽은 뒤에도 내 시체를 치워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는 멸종했으니까.


인류를 끝장낸것은 지구의 자원을 노린 사악한 외계인도 아니었고, 인류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자연재해도 아니었고, 바다 밑에서 나온 거대한 괴수도 아니었고, 자아를 가진 AI의 반란도 아니었고, 운석 충돌도 아니었다.


인류를 멸종시킨것은 다름아닌 인류 스스로였다. 


누가 먼저 쏜것인지, 왜 쐈는지는 사흘 밤낮을 토의해도 결론이 나지 않겠지만,


아무튼 강대국들은 서로를 향해 고성능 핵무기를 수없이 쏘아올렸고, 스스로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로부터 몇년 뒤, 막 벙커에서 나온 나는 깨달았다. 적어도 내가 다시는 사람을 만날 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영화처럼 생존자를 노리는 소수의 약탈자라도 있었다면 그놈들과 피터지게 싸우면서 삶의 의지를 다졌겠지만, 그런것도 없으니 내 인생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남은 날까지 대피소에 가득한 넉넉한 양의 통조림과 생수를 까먹다가 뒤지겠지.    


그래서 나는 내 머리에 권총을 갖다댔다.


방아쇠를 당겨서 내 쓸모없는 인생을 쉽게 끝장낼 작정이었다. 


"I don't  want to set the world on fire. I just want to start a flame in your heart. 나는 세상이 불타는 걸 원치 않아요 그저 당신 마음속에 불꽃을 터뜨리고 싶을 뿐이죠."


뜬금없는 노랫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뭐야...이건?"


뒤를 돌아본 내 눈에 들어온것은 바로 이상한 로봇이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형체는 인간이되 겉은 모조리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는 로봇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무섭다거나 기괴하기는커녕, 오히려 내게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로봇은 마치 아줌마들이 즐겨보는 아침 토크쇼 프로그램의 도입부처럼 말하고 있었다. 아니면, 아까 그 노래처럼 진짜 도입부를 따온것일지도 몰랐다. 


"넌 뭐야?"


"음성에 대한 반응 확인. 언어사용. 확인. 지적생명체. 확인됨. 사용언어. 확인됨. 안녕. 하십니까?"


뭐? 안녕하냐고? 삶에 대한 의지를 잃고 제 머리에 권총을 쏘려던 놈에게 다짜고짜 말을 걸고는 기껏 한다는 말이 안녕?


잠시 어이가 없긴 했지만, 화가 나지는 않았다. 


나는 뜬금없이 내게 말을 거는 이 로봇을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보통 이런 이상한 물체는 경계심을 가지는게 먼저겠지만, 어차피 나는 죽으려던 참이었기에 그 정도쯤은 별로 상관없었다.  


인간의 호기심이란건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방금전까지도 자살할 생각을 하고 있었으면서, 어느새 나는 권총을 내 홀스터에 집어넣고 이 요상하게 생긴 로봇과 대화를 하고 있으니.


"그래, 나는 씨팔 지금 존나게 안녕하다. 넌 대체 누군데?"


"출처. 삼만. 오천. 오백. 육십. 광년. 종다양성보존위원회 활동. 종 다양성 및 거주 환경. 연구."


"그게 뭔 소리야? 네가 먼 우주에서 온 외계인이라도 된다는 소리야? 그것도 뭔 종 다양성 뭐시기 연구를 하러 온?"


"유사한 정의."


나는 눈 앞의 '이것'을 믿을수 없었다. 추리해보자면, 분명 인류의 것은 아니다. 전쟁 전 남아있던 로봇이라면 고성능 핵폭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강력한 EMP에 작동을 멈추었을 것이고, 용케 파손을 피했다고 해도 지금쯤이면 연료가 다 떨어지고도 남았을테니.


그리고 내 기억에 그 로봇들은 이 로봇만큼 똑똑하지도 않았다. 


"너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종 다양성 연구. 보존. 중요. 환경연구. 중요. 장난. 아님."


"그럼 내게 대체 뭘 바라는거야? 그 중요한 연구를 하면서 나 같은게 필요해? 난 학자도 아니라고."


"행성. 지적생명체. 이론연구. 한계발견. 지적생명체. 직접. 소통. 이론확인. 필요." 


"지적생명체와 직접 소통?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왔다는거야?"


"유사한 정의. 연구 대상. 1일. 대여. 요망."


그야말로 엄청난 영광이 아닐수 없었다. 내가 전 인류를 대표해 외계인과 심도 높은 학문적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니. 


세상이 아직 멀쩡했다면 높으신 정치인이나 똑똑한 교수들이 해야할 일이었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 사람은 이미 다 죽었는데.


지금은 유일하게 살아남은 내가 논란의 여지 없이 지구상에서 제일 똑똑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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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 예전에 여기는 햄버거라는걸 파는 곳이었다고. 햄버거가 뭔지 아냐?"


"햄버거. 구운 패티. 다양한 부재료. 빵 사이에 끼우는 음식. 변형지방 과다. 다수."


놀랍게도, 놈은 이미 인류에 대한 상당 부분을 이미 다른 경로로 공부라도 했는지, 대략적으로 파악한 상태였다.


단지 내 확인을 요했을 뿐. 


"그래 그거. 몸에는 해로워도 맛이 있으면 그냥 존나 먹는거야."


"식습관 이론. 생리구조 이론. 확인됨. 극도로 비효율적." 


인류의 모든것을 연구하겠다는 각오를 가진 놈과 함께 나는 도시의 폐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좆돼버린 지구 코스'에 대한 관광 가이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나는 정말 쉴새없이 떠들었다. 


세상이 끝장난 이후로 이렇게 말을 많이 지껄인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사람도, 동물도 없었으니 혼잣말 말고는 할 말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연구 목적으로 이 먼길을 온 정신나간 놈 답게, 인류에 대한 것이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매우 큰 관심을 보였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하찮은 깡통 쓰레기조차도 놈에게는 분석과 기록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책상위에서 하는 연구가 다 그렇듯 잘못 알고있는 정보도 적잖아 있었다. 


예를 들면, 그놈은 대체 어디서 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거대 괴수가 인류와 치고박고 싸우는 영화를 보고서는 그게 진짜 인류가 실제로 겪었던 사건을 기록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 오해를 풀어주느라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잠시나마 내게는 삶의 이유가 생겼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생판 처음 만난 놈에게 내가 기억하는 모든 사실을 털어놨다.


놈이 궁금해할지는 모르겠지만, 전쟁 이전 내 구구절절한 가족사부터 내가 인류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것까지. 


그리고, 제일 중요한 사실인, 인류가 어떻게 종말을 맞았는지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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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주류 의견. 핵전쟁 멸종 이론. 사실로 확인됨."


"그래, 누가 먼저 쐈는지는 잘 모르겠으니 네가 한번 잘 연구해서 밝혀봐. 그리고, 세상이 멸망했더라도 나는 이 수프를 먹어야겠어. 왜냐하면 지금 존나게 배가 고프거든."


쉴새없이 떠들고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배가 고파졌던 나는 그나마 아직 멀쩡한 식당의 잔해에 자리를 잡고 통조림을 까먹었다.


놈은 내 바로 앞에 앉아서는 내가 식사를 하는 모습을 매우 유심히 살펴보았다.  


숟가락으로 수프를 뜨고 내 입에 들어가는 그 순간을 카메라로 촬영하거나 스캔하듯 유심히 '관찰' 당하고 있다는 것에 기분이 참 묘했다. 


나를 지켜보는 이 놈이 금속 덩어리 외계 학자로봇이 아니라 예쁜 인간 여자였으면 더 좋았을텐데.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나는 문득 불만이 생겼다. 


"뭐 하나만 물어보자. 너는 왜 그따위로 말하냐? 더 자연스럽게는 못 말하는거야?"


말투도 기계적이기 그지없는 놈에게 나는 퉁명스레 물었다.


"인류의 언어. 지나치게 많음. 복잡. 극도로 비효율적. 문법구조. 완전분석. 25일. 소모예상."


그건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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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이 생기니 하루는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었다.


오히려 전쟁 이후의 세상에서 처음으로 '바쁘다'는 개념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시계가 없으니 정확한 시간을 알수는 없지만 어쨌든 족히 하루는 충분히 지난것 같았다.


"도움. 감사표명."


어느새 놈은 인류의 인사예절까지 파악했는지 내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말끝마다 인류의 모든것에 '극도로 비효율적'이라는 사견을 남기는 놈 치고는 꽤나 의외였다.


나는 이 성가신 학구파 외계 로봇과 헤어져야 한다는것에 알수 없는 아쉬움을 느꼈다. 


"넌 이제 어떻게 할 셈이지? 그 종다양성인가 뭔가 하는 중요한 연구를 하루만에 끝내지는 않을것 아냐."


"정확. 계속. 도움. 요망."


"내가 뭘 도와주면 되는거지?"


"더 많은 지원. 위원회의 동의. 필요. 지적생명체. 실물. 확인 필요."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거지?"


"해당행성. 지적생명체. 극소수. 판단. 보호조치. 자격."


"보호조치?"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보호받아야 할 멸종위기종이 됐으니 자기네 행성으로 데려가 보호를 해주겠다는 것이다. 옛 인간이 멸종위기종이라는 동물들을 데려다가 애지중지했듯이. 


외계인이 이렇게 우리를 각별히 생각해주다니, 기뻐해야하는것인지 헷갈렸다. 


"궁금한게 있어."


"답변요청. 접수."


"왜 굳이 내 동의을 받는거지? 내가 뭘 바라던 그냥 냅다 납치할수도 있잖아. 응? 당신네들같이 3만 뭐시기 광년에서 여기까지 올 정도로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라면 말이야."


"종 다양성. 보존 규정 제5002조. 1항. 모든 지적 생명체. 보호조치시. 대상자의. 명시적인 동의행위. 필요. 강제구금. 납치. 절대 불가."


절로 웃음이 나왔다. 고도로 발달한 문명만큼이나 고도로 발달한 윤리의식이라니. 


"종. 보존. 보호조치. 동의 여부?"


나는 잠시동안 고민했다.


보존을 한답시고 나를 즉시 냉동해서 외계인 박물관에 박제해버리면 어쩌지? 내 옷을 발가벗겨 놓고 온갖 생체실험을 한다면? 


하지만, 생각해보니 어차피 나는 더 손해볼것이 없었다. 어차피 인류는 망해버렸고, 여기서 내가 할 역할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망할 로봇을 만나기 하루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 내 머리에 권총을 쏘려고 했었다.


하지만, 거기, 이 로봇이 왔다는 3만 5560광년 너머 행성에서는 쓸모있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쓸모있는 인간이 된다는것은 정말 기쁜 일이다. 


놈, 아니 그는 나의 구원자다. 


잠깐의 고민 끝에, 나는 기꺼이 그의 손을 잡았다.  


"동의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