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


태별이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용상에 반쯤 드러누운 김민현이 기운 없는 목소리로 명령했다.


"좆같은 소리면 그냥 하지 말게."


"들으셔야 합니다."


태별이 김민현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절을 한 번 한 뒤 고개를 들고 아뢰었다.


"일주일 전에 중화민국군이 장강을 넘었습니다."


"뭐라?"


김민현의 표정이 경악스럽게 변했다. 잠시 생각하던 그가 다시 물었다.


"흑건적은 2004년에 이미 소탕된 것이 아니었나?"


"흑건적이 아니라 중화민국 정규군이옵니다."


김민현이 벌떡 일어서면서 앞에 놓여 있던 서안을 우당탕 뒤집었다. 옆에 정갈하게 걸려 있던 5자루의 검이 우르르 무너지고 고려청자가 산산조각나면서 땅바닥에 사금파리의 모습으로 널브러졌다. 태별이 눈을 질끈 감았다. 잔인하고 냉정하던 철혈의 독재자는 이제 조울증 환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중화민국 정규군이 왜 장강을 넘는단 말이냐!"


"또한 중화민국 측에서 지난 2차 세계대전기에 강탈당했던 북중국 지역을 반환하라고 요구해왔습니다."


"황하 이북 지역을 몽땅 내놓으란 말인가?"


김민현이 이를 악물고 한 바퀴 돌면서 헐떡거렸다. 내관이 다가가서 김민현이 쓰러지지 않게 부축했다. 김민현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그가 물었다.


"중화민국군의 전력은?"


"적어도 소신이 듣기로는 1만 1천이 된다고 하옵니다."


"1만 1천이라..."


김민현이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유등평의 제918군단을 북중국 위임통치령 방어선 일선에 배치하고, 기갑여단을 추가배속하는 것은 어떻겠는가? 물러가서 비변사에서 논의토록 하라."


"예, 대통령 각하."


태별이 막 나가려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고 선전관이 달려왔다. 그가 김민현 앞에 엎드리면서 소리쳤다.


"각하! 각하! 중화민국군이 양양, 신양, 신예, 소주를 함락시켰고, 회안방면 전선에서 우리 군 17개 사단을 모조리 포위섬멸했사옵니다! 사태가 매우 급박하옵니다!"


"뭐라!"


태별이 깜짝 놀라서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소리쳤다.


"1개 사단도 안 되는 병력으로 우리 군 17개 사단을 어찌 포위섬멸했단 말인가!"


"...예?"


선전관이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태별을 보고 대답했다.


"중화민국군의 수효를 조금 많이 잘못 알고 계신 듯 합니다."


"거짓말 말게. 분명 우리 첩보원이 1만 1천이라 했어."


"1만 1천 개 사단, 1억 2,800만 대군이 북상하고 있사옵니다. 병판 대감."


김민현이 뒷목을 잡고 단말마를 내지르며 혼절해 버렸다. 태별이 급히 달려가 김민현을 간신히 받치고 밖을 향해 소리쳤다.


"대전내관! 대전내관은 무엇 하느냐! 어서 어의를 부르라!"



+ + +



"1만 1천 개 사단이라니, 이자들이 정녕 미친 것이 아닌가?"


황룡이 이마를 짚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태별이 지도를 내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대체 이자들은 1억 3천만에 육박하는 대군을 어떻게 먹이고 입힐 생각인가?"


"간단하지."


황룡이 대답했다.


"굶어 죽으면 굶어 죽은 만큼 밑에서 먹여서 또 올려보내는 거지. 적지를 돌파할 때보다 점령지를 건너가는 속도가 더 빠르니까 시체로 땅을 덮어버리면서 조금씩 조금씩 진격하겠다는 소리네."


태별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게 땅을 수복해서 뭘 하겠다는 거지?"


"자기 업적으로 삼겠다는 거지."


장제스의 집권 이래 3대에 걸쳐 장씨 집안이 실질적으로 왕정처럼 군림하고 있는 중화민국은 제국과 다를 바가 없었다. 태별이 이마를 꽉 누르면서 다시 한 번 한숨을 쉬었다.


"1억 3천만 명? 참나."


많아도 적당히 많아야 실감이 나지, 아예 상식을 뿌리부터 개무시해버리는 물량으로 밀어닥치자 그게 많다고 느껴지지를 않았다. 황룡이 입을 열었다.


"...수소폭탄을 쓰자고 주청해 보세."


"그건 안 되네."


태별이 고개를 저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야."


"나라가 망하는 것보단 낫지 않겠나. 중국엔 수소폭탄이 없잖아."


"원자폭탄은 있네. 그걸로도 대한성, 평양성, 합빈성을 없애버리기에 충분해. 중국은 본토에서 1억 명이 죽어도 여전히 본토에 10억 명이 남아 있지만 우린 본토에서 1억 명이 죽으면 국체가 존속하지 못해."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1억 3천만 대군. 이제까지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군대를 다 합친 것보다도 많은 숫자다. 정말로 김민현에게 가서 수소폭탄을 쓰자고 주청하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태별은 참았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생물무기, 화학무기, 그리고 방사능무기는 국제협약 없이도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전쟁 중에 국가간의 암묵적인 룰. 태별이 크게 한숨을 쉬고 머리를 탁자에 처박았다. 그의 사모가 머리에서 벗겨져 나와 탁자에 굴렀다.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