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대신들에게 전교하기를,


  
"아! 지난 200년간 과인만큼 이토록 부덕한 임금은 없을 것이다,
  
'현명치 않은 신하들을 두어' 왜의 침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여 200년 조종을 위기에 몰아넣고, 나라의 신민들을 저 야차와도 같은 왜적들에게 무참히 도륙당하게 하였다,
  
비록 이와 같은 전례없는 전란에서 조종이 위태로워지고 신민들이 도륙당하게 된 책임이 가장 큰 것은 무능한 신하들이나, 그들을 등용하여 조정에 있게 한 것은 과인의 책임이다,
  
무능한 신료들을 조정에 두어 조종을 위태롭게 하고 신민들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지 못하였으니 과인은 가히 죄인이라고 할 만하다,
  
이러한 내가 무슨 염치가 있어 용상에 더 앉아 있겠는가? 동궁(왕세자)에게 선위를 할 것이니 사관은 전교를 받아적도록 하라."



이에 모든 대소신료들이 명을 거둘 것을 청하니, 상이 다시 말씀하시기를,



"동궁은 전란 중 분조를 이끌며 풍전등화와도 같았던 나라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그 덕에 지금 과인과 여기 있는 대소신료들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온 나라 곳곳을 다니며 신민이 다시 하나로 뭉쳐 야차 같은 왜적을 물리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큰 공을 세웠으니,
  
가히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의 자질이 손색이 없음을 보여주었다,
조종과 나라에 큰 누를 끼친 과인보다는 세자가 과인의 뒤를 이어받은 만 하다."



하고, 승지 김사붕이 상의 말을 끊으며 말하기를,



"오늘은 소신에게 더할 나위 없이 기쁜 날이옵니다,
  
성상께서 스스로의 무능함과 무책임함을 깨우쳐 나라와 신민의 안위를 우려하며 임금으로서의 자질이 충만하심을 만방에 보여 주신 세자 저하께 선위하시겠다 전교를 내리시니, 이 어찌 종사와 나라의 복이 아니옵니까?

성상께서는 신민과 나라를 버리고 명으로 가시려 하셨고, 만고의 충신인 이순신을 파직하고 무능하고 탐학한 원균에게 수군 지휘를 맡겨 칠천량에서 이순신 장군이 기른 수군을 모두 날리게 하셨고, 성상께서 직접 엄포를 내리시며 출정케 한 군대가 패하자 그 책임을 다른 이에게 떠넘기셨나이다.

이렇듯 무능하고 무책임하며, 나라와 신민을 버리고 도망만 다니신 성상께서 계속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심히 우려스러웠으나, 성상께서 스스로의 무능함과 무책임함을 깨우치고 분조를 이끌며 큰 공을 세우신 세자 저하께 선위를 하시겠다고 전교를 내리시니 신은 체통을 내던지고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옵니다.

선위는 언제 진행하실 예정인지, 전교를 내리시어 사관이 쓰게 하소서."

하니, 상이 크게 노하여 차마 들을 수 없는 하교를 내리고 대소신료들이 모두 놀라워하고 분노하며 김사붕을 꾸짖고 엄히 정법(사형에 처하는 것)하기를 청하였다.




더 밑바닥으로 떨어짐?


아니면 별로 달라지는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