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호랑이나 배회하던 으슥한 인왕산에도 언젠가부터 앵목을 심어 철마다 남산과 함께 앵화가 만발하니 도회 경성의 풍치는 한껏 더하여지고, 명치정의 불 밝힌 거리는 사십만 경성의 번영하는 오늘을 알게 하는지라.


인왕산록에 앵화가 만발한 그 가운데로 우뚝 솟은 붉은 집은 또한 경성의 볼 거리 중 하나인데, 세간에서는 이를 한양의 아방궁이라 손가락질 한다. 그 집은 송석원, 혹은 벽수산장이라 부르는 집으로, 창덕궁 왕대비 전하의 친정 큰아버지가 되는 윤덕영 씨가 지은 집이다.


그 이의 궁사극치함은 조선팔도에 비견할 자가 없으리라고 부민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하는 바이다. 다만 경성 제일 가는 집의 이야기는 종로통 호사가들의 먹이가 되고 만다. 화신 앞 끽다점에서 가배와 함께 들기에 그 만한 다과가 없으리라.


종로통에 새까만 자동차 한 대가 인파를 가로지르고 화신 앞에 선다. 딱 봐도 도련님처럼 뵈는 멀끔한 사내가 차에서 내린다. 송석원 막내 손주가 되는 이인데, 요즈음 그가 화신상회에 자주 들른다는 건 종로통에 모르는 이가 없다. 뭇 부인네들은 혹여 한 번이라도 볼까 화신 앞을 기웃거리곤 한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