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내가 6.25의 인해전술에 대해서 배운건

1.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운내용

2.국방부에서 정신교육 시간에 배운내용

이 있는데 학교보단 

국방부의 견해에 더 중점에 두고 설명하겠음


배경: 6.25전쟁의 발발은 김일성 단독의 결정이 아닌

소련의 스탈린이 개입하고 소련제 무기로 지원을 받은

명백한 “대리전”이였음 

그리고 당시에 중국은 국공내전으로 장제스와 마오쩌둥이 피비린내나는 혈전을 마친지 얼마되지 않은 상황이였고 중국과 러시아는 그다지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였음 (실제로 둘 사이에선 크고작은 전쟁들도 있었음)


그렇기 때문에 맥아더는 전략적으로 오판을 하게 되는데 바로 “내전이 막 끝난 중국이 이 6.25전쟁에 참전할리가 없다” 라는 판단 미스를 하게됨 


맥아더는 태평양전쟁과 인천상륙작전을 주도하면서 

전쟁영웅이 되었고 미국내에선 대선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었었음 그리고 전세를 뒤집은 후엔 쭉 북진하면서 만주까지 진출할 의도를 보였는데

당시의 만주는 일제가 망하면서 괴뢰정부인 만주국이 터지고 사실상 만주는 마땅히 주인이라고 할 사람은 없지만 소련의 영향권 안인? 그런 상태였음


전쟁의 개입자체를 부정하는 스탈린의 곤란한 입장을 몰아침과 동시에 만주까지 점령하면 냉전에서의 우위나 소련이 부동항에 찝적대는걸 양방향으로 견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맥아더가 눈독을 들인건데


중국이 만주국을 교두보 삼아 본토를 유린했던 일제의 

역사를 의식하고 만주로 오기전에 개입해버린거임


2.인해전술의 방법

일단 인해전술은 단순히 머릿수로 찍어누르는 것도 아니고 한국전쟁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신개념도 아님


중국 공산당이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국민당의 군대를 상대로 펼쳤던 전술인데 일단 적을 통신이나 시야가 차단되는 특정 장소로 유도해낸 다음에 눈에 안보이는 곳에 있던 분대단위로 구성된 병력이 여러방향에서 꽹가리같은 장비를 동원해서 큰소리를 내면서 동시 공격하면 인간은 3인칭 시점으로 상황을 볼수가 없기 때문에


공격받는 입장에선 주위에서 백만대군(인해)이 공격해오는 것처럼 느껴서 착각을 하게되고 겁먹어서 도망치거나 어디부터 조준할지 몰라서 허둥지둥하는 상태로 조준선이 이미 정렬된 상대에게 유린당하게 되는 것임


실제로 북한지역에서 일어났던 전투들을 보면 연합군이 크게 패주한 전투는 대개 산간지역에서 일어났었고

6.25전쟁에 투입된 병력의 차이도 그렇게 압도적인 차이는 아니였음 


3.여담 

연이은 패전으로 인해 맥아더의 인기는 사그러들었고

가질수없다면 부수자는 심정이였는지 만주에 핵무기 사용을 승인해달라고 까지 말하게 됨 하지만 오랬동안

본국을 떠나있던 맥아더는 자국의 정치적 상황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고 미국내부의 여론이 “대체 언제까지 전쟁할거냐” “핵무기의 끔찍함을 알고도 저러냐” 하면서 맥아더는 지휘권을 박탈당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미군의 적극적 참여가 힘들어지면서 6.25는 지지부진한 소모전만 하다가 휴전상태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