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가 한국땅인지 의문을 중심으로 한국측 주장의 허구성을 다뤄보겠다.
 
"신라 이찬(伊飡) 이사부(異斯夫)가 우산국을 정벌하여 신라가 우산국을 복속합니다(512).  이로써 울릉도와 독도는 우리 역사와 함께 하기 시작합니다."<대한민국 외교부 홈페이지>

신라가 울릉도를 정복했다는 것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정부는 거기에 은근슬쩍 독도를 집어넣어 물타기를 하고 있다.
우산국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했다는, 아니 최소한 발견이라도 했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단지 자신들의 추측을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쓰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야만토족과도 같은 우산국이 90km나 떨어져 있는 독도를 지배했다고 보기에는 인과관계가 지나치게 막연하다.


 
"우산(독도) 무릉(울릉도)… 두 섬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세종실록지리지>


"두 섬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한국의 자랑스러운 영토 죽도(竹島)다.
2km(죽도)는 노를 저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이다. 
반면에 90km(독도)는 노를 저어서 갈 수 있는 수준의 거리가 아니다. 범선으로 가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바람의 방향이 북서풍이 되는 겨울에나 독도로 갈 시도가 가능했을 것이고, 낙후된 항해기술 때문에 정확히 독도에 닻을 내리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근처에 섬이 없기 때문에 한 치의 오차라도 있으면 독도를 지나쳐 망망대해에 표류할 위험까지 있다. 설령 독도에 도착한다고 해도 다시 울릉도로 돌아올 수 있는 항해술이 울릉도 거주민에게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결론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라고 묘사될 만한 섬은 죽도 뿐이다.
만약 세종실록지리지가 독도를 묘사하려고 했다면 "두 섬은 서로 멀리 떨어져있지만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서술하지 않았을까?
(울릉도에서 독도를 나안으로 볼 수 있는 날이 1년에 몇 번이나 될 지 의문이지만, 디테일에 깐깐해지고 싶지 않아서 그냥 보인다고 가정했음)
 
"안무사(按撫使) 김인우(金麟雨)가 우산도(于山島)에서 돌아와 토산물(土産物)인 대죽(大竹)․수우피(水牛皮)․생저(生苧)․면자(綿子)․검박목(檢樸木) 등을 바쳤다. 또 그곳의 거주민 3명을 거느리고 왔는데, 그 섬의 호수[戶數]는 15구(口)요, 남녀를 합치면 86명이었다." <태종실록>
우산도가 독도일 수 없는 결정적인 증거다. 무인도인 암초덩어리 독도에 사람이 살고 토산물을 바쳤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울진현을 중심으로 해서 울진현 주변을 설명후 울진현에서 보이는 서로 멀지 않은 우산 무릉을 설명 이 두섬을 울릉도라고 하였다. 그리고 지방은 100리이다. 그리고 아래 김인우가 나오는데 김인우는 이미 우산도에 갔다온적이 있다. 갔다와서 뭐라고 보고했었을까?
 
우릉이라고도 한다. 두 섬은 현의 정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 날씨가 맑으면 역력히 보인다.) 이 부분에서 말한 우산도와 울릉도는 별개의 섬이 아니라 하나의 울릉도를 가르킴. 예전 사람들은 울릉도가 2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고 판단한 것임. 따라서 저렇게 부를 수 있다는 것임. 즉 두 개의 섬이 아니고 더구나 두 개의 섬이 양쪽에서 관측된다는 건 더 말도 안되고, 날씨가 좋으면 육지에서 1개의 섬인 울릉도(= 우산)을 바라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산도가 죽도라고 가정하면 실록의 내용이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죽도는 대나무가 많아서 죽도(竹島)라고 불린다. 그런 죽도에서 사는 사람들이 토산물인 대나무를 바쳤다고 하면 누구라도 수긍이 가능할 것이다.
(참고로 독도는 대나무 한 그루 자랄 수 없는 암초덩어리다.)
 
"왜적이 우산도(于山島)·무릉도(武陵島)에서 도둑질하였다."<태종실록>
사람이 살지 않는 독도를 왜 구가 무슨 수로 약탈할 수 있겠는가. 왜 구는 울릉도와 죽도(우산도)를 약탈한 것이다.
 
이외에도 우산도가 독도가 아니라 죽도임을 뒷받침하는 사료는 셀 수 없이 많다. 인터넷에 '우산도' 치고 뒤져보면 비슷한 내용이 산더미같이 쌓여있다. 기록을 소개하는 건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고, 이제 한국측이 제시하는 고지도를 살펴보겠다. 
한국측이 독도라고 주장하는 부실한 고지도 모음
하지만 우산도가 죽도라고 가정하면 실록의 내용이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이건 아예 우산도(죽도)가 울릉도의 서쪽에 그려져 있다. 
황당하게도 한국사학자들은 울릉도 서쪽에 그려진 이 섬조차 독도라고 우긴다. 그 사람들 눈에는 울릉도 근처에 있기만 하면 다 독도로 보이나보다. 일단 독도라고 끼워맞추는 데 급급한 나머지 엄밀성과 객관성이라는 학자적 요청을 현저히 무시한 것이다.


한국사학자들은 더 나아가서 울릉도 근처에 그려진 섬이면 우산도, 천산도, 자산도, 삼봉도,가지도, 죽도, 송도 등등 뭐라고 써져 있든지간에 일단 독도라고 우기고 본다. 그래서 독도가 그토록 이름이 많은 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 살펴본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조선 정부의 영토는 울릉도와 우산도(죽도)였고, 독도라는 섬은 19세기까지 인지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대동여지도에도 안 나옴) 그럼에도 한국측은 우산도(죽도)를 독도라고 날조하여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논쟁을 유도하고 있다. 
우산도가 죽도인 것은 문언상 분명하기 때문에, 안용복이나 막부의 외교문서 따위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조선 영토로 인정한 것은 언제나 울릉도와 우산도(죽도)였지, 독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독도와 울릉도는 서로 다른 대륙붕에 속해 있어서 부속도서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울릉도를 통치한다고 해서 독도가 자동적으로 자국 영토로 편입되는 것도 아니다. 
일본은 한국의 불법점거에 대해 지속적이며 일관되고 완강하게 반대의사표시를 하고 있으므로, 분쟁지역인 독도에 대한 한국의 불법점거는 인정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