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이후 사회가 격변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질만한 근대 교육의 역사가 시작된다. 

신분제도가 사라져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유교 동양학 대신 수신, 작문, 법률, 영어, 의학 등의 체계적인 과목들이 신설된 것이다. 또한 학생들의 수준향상에 따른 수요에 따라 여러 대학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대학이 아닌 전문학교. 하지만 법학, 의학, 상학 등의 전공이 있었으며 3~4년제라는 점으로 비추어 보았을때 외국의 대학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정론이다.


[일제시대의 관립학교 목록]

경성의학전문학교(1916) - 제중원

경성고등공업학교(1916)

경성법학전문학교(1922) - 법관양성소

경성고등상업학교(1922)

경성사범학교(1935) - 한성사범학교

경성여자사범학교(1935)

경성광산전문학교(1939)


위의 대학들은 관립학교로서 학비가 저렴하고 실무용 지식을 빠르게 익힐 수 있어 조선인들의 경쟁률이 높았다. 경성의전을 제외한 학교들의 학내 조선인 비중도 높아 민족주의적 색체를 보였으며 전문학교로 취급되었다. 한편 경성의전은 졸업시 면허취득이 가능하여 일본인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그냥 한꺼번에 묶어서 경성전문학교라고 이해해도 괜찮다. 각 학교들의 의학, 법학, 상학, 공학, 사범 등은 그냥 단과대학의 전공 정도뿐이다.


일제는 중학교에서 중등교육을 받는 일본인과 달리 대부분의 조선인을 고등보통학교에서 수업을 받게했다. 그러나 전국의 고등보통학교의 수가 제한되어 있는 만큼 고등보통학교의 경쟁률은 매우 치열한 편이었다. 거의 의무과정으로 진화된 지금의 과정과는 분명히 다른편. 중등교육을 받는 것 부터가 학문에 뜻이 깊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대학 진학이 거의 보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대학과 동일선상에 놓기도 한다.


당시 일반적인 학생의 경우의 교육루트는 다음과 같다.

1. 소학교를 졸업한 후 중학교/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다

2. 중학교/고등보통학교을 다니며 경성제대 예과 혹은 전문학교 입시, 유학을 준비한다

3-1 경성제대 예과 혹은 관립전문학교/사립전문학교의 국내학교에 입학한다

3-2 일본 대학에 유학한다

4-1 학교를 졸업한 후 고등고시를 치거나 은행, 관공서, 회사 등에 취업한다.

4-2 전문학교의 경우 일본의 대학으로 유학한다(전문학사를 예과과정으로 인정해주어 6년 중 3년을 제해준다)

*의치약전의 경우 제외

*당시에는 여학교들도 많았으므로 여자들의 교육도 보장이 돼있던 편.


몇몇학교들은 아예 조선인들이 모여서 일본한테 정식 허가를 받고 대학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 대표적 예시가 조선인 약사들이 조직한 강습소를 전신으로 하는 경성약전으로 일본 문부성의 허락을 받아 무시험으로 면허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경성치전과 경성약전은 조선 내 유일한 치의학, 약학 교육기관이었기 때문에 그 인기가 매우 높았다. 또한 일본 본토에도 약대와 치대가 5개 미만이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의 인기도 매우 높은 편이었다. 




위 회고상은 당시 사람들도 대학 입시에 진땀을 뺏으며 캠퍼스의 자유를 누렸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의무교육의 활성화, 양반의 전유물이였던 교육이 평민으로 확대

2 여성들도 공부를 할수 있게 됨.

3 교육의 다양성, 성균관하나로 통일된 조선시대의 교육보다 훨씬더 스펙트럼이 넓어짐


다만, 조선의 교육제도에 있어서 일제의 차별이 있었다는 점 역시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