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인()은 어지러운 운수를 이어받고 전쟁의 시기를 당하여, 서쪽으로 백제를 치고 북쪽으로는 고구려를 쳐서 능히 봉강()을 안정시켰으며, 배반자는 치고 끌어들일 만한 사람은 불러들여서, 이에 멀고 가까운 곳을 편안케 하였으니, 위로는 종묘()의 유고()를 위로하고 아래로는 부자()의 오랜 원한을 갚았으나, 스스로 풍상()을 겪어 드디어 고질()을 얻었고, 정치 교화에 노심()하여 다시 위중함을 더하였다. 



운()이 가고 이름은 남아 있는 법이어서 문득 황천()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태자()는 일찍이 밝고 빛나는 덕을 쌓아 오래도록 동궁()의 위치에 있었으며, 종묘의 주인은 잠시도 비워서는 안되니, 태자는 즉시 구전()에서 왕위를 잇도록 하라. 그리고 산곡()은 변천되고 인간의 세대()는 옮겨져서, 옛날에 만기()를 도맡아 다스리던 영주()도 마침내 한 봉()의 흙이 되는데, 한갓 재물을 허비하며 헛되게 인력()만 수고롭게 할 것이니, 죽은 후 10일이 되거든 곧 고문() 외정()에서 서국(西)의 예식에 따라 불에 태워 장사지내고, 복제()의 경중()은 절로 상례()가 있을 것이나 상사()의 제도는 검약()을 힘써 따르라.”



7일을 지나 태자 정명()이 즉위하여 ‘문무()’라 시호를 올리고, 여러 신하들이 유조대로 동해() 어귀 돌 위에 장사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