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녕재() 남쪽 산기슭에 정자각()을 지어 중미정이라는 현판을 붙였는데 정자의 남쪽 시내에 흙과 돌을 쌓아 물을 가두고는 못 가에 띠 집을 지으니, 갈대숲에 물오리와 기러기가 노는 모양이 완연히 강호()의 경관과 같았다. 


그 가운데 배를 띄우고 아이 종을 시켜 뱃노래와 고기잡이 노래를 부르게 하며 유람하는 기분을 한껏 돋우었다.



정자를 지을 당시 부역에 동원된 일꾼들은 개인적으로 도시락을 지참해야 했는데 한 역졸이 너무 가난한 탓에 밥을을 댈 수가 없는지라 동료 일꾼들이 다들 밥 한술씩을 갈라서 먹여주었다. 


하루는 그의 아내가 음식을 장만해 와서 먹게 한 후, 친한 사람을 불러다 같이 먹으라고 권했다. 


그 일꾼이,
“가난한 살림에 어떻게 이런 음식을 마련했소? 딴 남자에게 몸을 팔아 얻은 것이오? 아니면 훔친 것이오?”
라고 닦달하자 


그 아내는,
“용모가 추한데 누가 나와 통정할 것이며, 나같이 겁이 많은 여자가 어찌 남의 것을 훔치겠소? 머리털을 팔아 사왔을 뿐이요.”



라며 깎은 머리를 보여 주었다. 그 일꾼이 흐느껴 울며 음식을 삼키지 못했고 듣는 사람들도 다들 슬퍼했다.


ㅡ 고려사 의종 21년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