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인데 청일전쟁때 보통 청나라가 일본에 비해 무기가 딸려서 진 것이라고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실제로 보자면 청나라 무기와 일본의 무기체계는 거의 비등한 수준이였고 일부는 청나라가 더 앞섰음(특히 해군.) 그런데도 청나라가 일방적으로 쳐발렸는데 이는 단순히 개혁을 통해서 신문물을 접한 것만의 문제가 아니라 체재 문제의 차이가 제일 컸던 거임. 즉, 조선이 개혁해서 신문물을 받아들여봤자 체재가 변하지 않으면 답이 없었단 거임.
정조 죽음으로 세도정치가 판쳤던 게 아니라 정조로 인해 세도정치가 생겨난 거지 초창기 홍국영부터 시작해 그 이후로 소위 왕 따까리와 안동 김씨 등을 위시로 한 탕평파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다니며 반대파를 '응 너 왕명에 반대한 역적' 이러며 찍어누르고 그랬는데 뭔.....그나마 시스템 망친 거와 별개로 능력은 있던 대갈통이 사라지니 날뛴 거고
소현세자는 몰라도 광해군은 그닥 의미가 없을만한게 뭐냐면 일단 그의 가장 큰 업적인 중립외교가 큰 의미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거임. 흔히 아는 것 처럼 광해군은 청나라와 우호적으로 지낼려도 했지만 명나라를 포기할 마음도 없었고 그것은 후금 입장에서도 매우 거슬렸던 것이였음. 즉, 잠시나마는 위기를 모면할 수 있겠지만 외줄타기 식의 간당간당한 정책으로 언제 전쟁이 촉발될 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황이였음. 뭐, 인조가 결국 병크 터뜨리는 바람에 확실히 전쟁이 나기는 했지만. 그리고 광해군은 또 궁궐 짓는데 제정을 파탄내어 민생을 궁핍하게 한데다가 정치도 한쪽 붕당을 너무 편애 했던지라 적도 많이 만드는 등 나름 폭군이였기에 개혁이 잘되었을 지는 의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