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워요.” 아이가 말했다.

“쉬, 쉬, 괜찮아.” 내가 부드럽게 달래주었다.

 

내 이름은 래리. 사람들은 좀 웃긴 이름이라고 내게 이야기하지만, 내 직업에는 도움이 되는 이름이다. 아동상담사로서 아이들의 마음 속 벽을 허물고 다가갈 때, 웃긴 이름은 첫인상을 좋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의뢰받은 환자이자 내 앞에 앉아 있는 아이는 앨런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아이의 부모에 따르면 최근 들어 급격한 분리불안과 우울증 초기 증세를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우리는 불 꺼진 앨런의 방에 있는 침대에 걸터앉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소리가 들려요.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려요.” 앨런이 웅얼거렸다. 그의 손안에서 철 지난 음악을 내뱉고 있는 오르골을 감안했을 때, 무언가가 오르골 소리를 뚫고 계속해서 그의 귀에 들리는 듯했다. 나는 앨런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처럼 용감한 아이를 놀래키다니, 아주 무서운 소리인가 보구나. 어떤 소리가 들리니?”


앨런은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손에 들린 오르골을 더 꽉 움켜쥐었을 뿐이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내가 질문을 한 번 더 던질까 고민하던 차에, 앨런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더 낮아져 있었다.


“삐걱대는 소리요.”


흠, 이건 좀 의외인데. 이 또래 아이들이 흔히 상상하는 비명 소리나 신음 소리를 말할 것이라 예상했던 나는 약간의 의문을 품은 채 앨런에게 말했다.


“삐걱대는 소리?”


“...침대가 삐걱대는 소리가 계속 나요. 누가 잡고 흔드는 것처럼.” 


앨런은 천천히, 그러나 또박또박 말했다. 마치 그의 목소리가 점점 사라져 누구도 들을 수 없는 것처럼. 어두운 방에서 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앨런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은 피부로 느껴졌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침대 밑의 괴물은 만국 공통의 소재인가 보군. 이런 문제를 여러 번 다뤄 본 만큼, 나는 해결법에 대해서도 통달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앨런의 말을 무시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도록, 적당히 무섭다는 표시를 섞어서 말했다.


“이런, 그렇게 말하니 아저씨도 좀 무서운걸. 혹시 침대 밑에 뭔가가 숨어 있는 건 아닐까?”


앨런은 내 말을 듣고는 흠칫하며 떨었다. 그의 눈이 침대 바닥으로 자연스레 향했다. 그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침대 밑에 진짜 뭔가가 있는 건가요?”


“아저씨가 아까 말했던 적 있지?” 나는 말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공포 퇴치 1단계, 공포감을 극대화시키기. 


“아저씨는 여러 괴물들을 봐 왔단다. 냉장고 크기만한 외눈박이 괴물, 하늘을 날아다니는 줄무늬 괴물, 온몸이 번쩍이는 유리로 된 괴물... 그 중에는, 물론, 침대 밑에 숨어서 아이들을 잡아먹는 괴물도 있었단다.” 


나는 마지막 말과 함께 두 손을 갈고리 모양으로 구부려서 괴물 흉내를 내 보였다. 앨런의 두 눈이 떨렸다.


“아주 흉악한 괴물이었지! 침대 밑에서 삐걱대는 소리를 내다가, 공포에 질린 아이들이 부모님을 부르러 침대에서 내려오면... 발을 확 낚아채서, 침대 밑으로 끌고 가 잡아먹는 거야.”


킬킬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집어 먹는 시늉을 했다. 앨런은 두 귀를 막은 채로 눈을 꼭 감았다. 더는 듣기 싫다는 신호였다.


자,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다. 2단계, 공포의 원인을 체험하기.


“물론, 아저씨는 그 괴물이 판치게 두고 다니지는 않았단다. 아저씨는 그 괴물을 멋지게 물리치고, 침대 밑에 갇혀 있던 아이들을 모조리 구해줬어. 그 보답으로 맛있는 쿠키 한 상자도 받았지!” 내가 웃으며 말하자, 귀를 꼭 막은 척하던 앨런이 두 눈을 슬쩍 떴다. 좋은 신호였다.


“아저씨가 그 괴물을 어떻게 물리쳤는지 아니?” 내가 물었다.


앨런은 나를 쳐다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동자에 호기심이 비쳤다.


“아저씨는 침대 밑으로 용감히 들어가서 그 괴물을 보고 소리쳤단다. 이 사악한 괴물아, 아이들을 내놔! 라고 말이지. 그러자 그 괴물은 내 커다란 목소리에 놀라서는 헐레벌떡 도망쳤었단다.” 


내가 씩 웃자, 앨런도 따라 미소를 지었다. 이보다 더 잘 될 수는 없겠군. 


“그리고 이제... 앨런, 네 차례가 온 것 같구나.” 나는 은근한 목소리로 말하며 앨런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가 놀란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았다.


“준비됐니, 앨런? 이번에는 우리가 함께 괴물한테 맞서는 거야. 같이 소리쳐 보는 거지.”


“전...” 앨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나는 그의 입에 손가락을 대고 계속 말했다.


“괜찮아, 할 수 있어. 내가 뒤에서 지켜 줄게. 너는 그저 밑으로 들어가서, 소리치기만 하면 돼.”


“괴물이 제 입을 막으면 어떡해요?” 앨런이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내 손을 잡으렴. 내가 대신 소리쳐 줄 테니.”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괴물이 내 입을 막으면, 네가 내 손을 잡아 줘. 그리고 소리치는 거야. 알겠지?"


앨런은 내 얼굴을 보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고민하다가, 결심한 듯 말했다.


“...알았어요.” 그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내가 씩 웃었다. 마지막 단계만 남았다. 3단계, 공포를 없애 주기.

 

부모님이 자주 청소해 주시는 건지, 침대 밑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다. 그리고 우리 둘 다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나는 침대 밑부분에 머리를 넣은 채로 뒤쪽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앨런의 작은 손이 내 손을 꽉 잡았다.


“...무서워요.” 앨런이 다시 한 번 말했다. 


“괜찮아. 괴물도 지금 무서울 테니까.” 내가 말했다.


“왜요?”


“그야, 지금 우리가 들어가고 있는 중이잖니. 누가 알아? 괴물이 혹시 이미 내빼 버렸을지도.”


앨런은 그 말을 듣자 안심된다는 듯 나를 따라 침대 밑으로 들어왔다. 나는 안쪽에 누워서, 침대의 밑바닥을 바라보았다. 방 안은 어두웠고, 여기서는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좋아, 완벽한 환경이군.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앨런이 침대 밑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가 침대 밑으로 오자, 앨런의 숨이 가빠졌다. 겁에 질린 것이다.


“앨런, 진정해.” 나는 조용히 말하며 손을 뻗어 앨런의 어깨를 잡았다.


“괴물이 보이니?”


앨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로 있었다. 그러나 그의 숨은 시간이 지날 때마다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도 이제 침대 밑에 괴물 따윈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앨런이 작게 웃는 소리가 들리자, 나도 따라서 웃었다. 이제 다 됐다. 앨런은 공포를 극복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침대 밑의 괴물은 우리를 두려워해서 이미 달아났으며, 앞으로도 걱정할 필요 없다는 이야기만 대충 버무려 주면 끝이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


침대 위에서 누군가 움직이자, 침대가 삐걱대는 소리를 냈다.


나는 숨을 멈췄다.



침대 위에 있는 무언가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침대의 무게중심이 변하며 마호가니 나무 장식이 삐걱이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나는 감히 입조차 뻥긋하지 못한 채로 얼어붙었다. 분명히 방 안에는 그와 앨런 말고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지금 침대 위에 있는 건 누구란 말인가?


그 정체는 곧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맹세하건대, 나는 그것의 정체를 알자마자 그 정체를 궁금해한 것을 후회했다.


“엄마!” 침대 위에 있는 누군가가 말했다. 앨런의 목소리였다.


침대 위의 앨런은 침대에서 내려와, 두 발로 바닥을 지탱하며 일어섰다. 자신이 꾼 악몽, 조금 전 내게 말해 준 내용을 다시 부모님께 말하러 가는 것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소리치려 했지만, 누군가가 내 입을 막은 것처럼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그게 아니었다. 전신마비라도 된 것처럼 나는 지금 마취 상태였다. 


오로지 심장만이 쿵쿵 움직이며 조금이라도 침대 밖의 앨런에게 내 존재를 알리려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이 무색하게도, 앨런은 나를 듣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 


앨런이 방문을 닫자, 어두운 방 안에는 완전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움직여. 움직여. 움직여. 나는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그러나 뇌의 제어를 잃고 풀려난 혀는 다시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축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나는 차선책으로 눈을 감았다. 고개를 돌렸을 때 내 옆에 누가 있는지, 내 눈에 비칠 광경을 도저히 보고 싶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로, 다시 소리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내 입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내 입을 막은 것처럼.


괴물이 내 입을 막은 것처럼.


내 옆에 누워 있던 앨런이 내 손을 잡자, 나는 비명을 질렀다.


내 입에서는 침대가 삐걱대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