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 7-60. 미스터리 교수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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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모리오시 공동묘지. 유키카게와 시즈카는 묘지 앞에 나란히 서 있었다. 짧은 묵념이 끝나고, 유키카게가 하얀 백합을 내려놓자 시즈카는 다시 묘비를 보았다.


카와지리 코사쿠(1966~1999)

카와지리 시노부(1968~2018)


유키카게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머니, 아버지… 또… 만나러 올 게요.”


잠시 후, 묘지를 나가던 둘은 우연히 죠스케와 마주쳤다. 셋 간의 기묘한 흐름이 이어지던 끝에, 시즈카가 물었다.


“여기서… 뭐 해?”


“너희야말로 여기서 뭐 하냐?”


“유키의 어머니 기일이라서 같이 왔어. 죠스케 오빠는?”


“친구 ‘기일’이 어제라 보고 왔지. 아, 시즈카 너 우리 집에 ‘물건’ 놔두고 갔더라. 말 나온 김에 지금 가서 가지고 가.”


“알았어. 유키, 나중에 보자.”


시즈카는 죠스케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다녀왔어.”


시즈카는 거실에 앉아 있던 아야나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2층으로 올라갔고, 죠스케 역시 화장실에 잠시 들어갔다가 자기 방으로 가려던 그때, 아야나가 손짓을 했다.


“죠스케, 말해야 할 게 있어. 앉아 봐.”


죠스케가 맞은편에 앉자, 아야나는 채점된 시험지를 보였다.


“무네타카 말이야, 이젠 좀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국어’ 30점, ‘산수’ 45점, ‘영어’ 14점. 애가 성적이 이게 뭐야!”


죠스케는 시험지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빗으로 머리카락을 살짝 다듬었다.


“심각하긴 하지만, 무네타카는 ‘야구부’잖아. 센다이에 야구 명문 중학교에 갈 녀석이라고.”


“그래도! 아무리 야구선수로 대성한다 한들 공부 성적이 이따위면 돌머리 밖에 더 돼?!”


아야나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시험지를 치웠다.


“너나 나나 공부를 못하던 사람도 아니고, 분명 무네타카도 조금만 노력하면 잘할 수 있어. 사실, 이미 적당한 ‘과외선생님’을 불렀거든.”


“나랑 이야기도 안 하고?”


“하고 싶었는데, 당신 3일 연속 철야였잖아.”


죠스케는 무어라 반박할 거리가 없는지 머리를 긁적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낡은 탁자를 번쩍 들었다.


“그러고보니 이거 버린다고 했지? 그 과외선생 오기 전에 밖에다 두자.”


그때, 2층 계단 위에서 시즈카가 소리쳤다.


“죠스케 오빠, 안 보이는데?”


“거기 있어! 잘 찾아봐!”


죠스케가 거실 유리창을 넘어 담장에 탁자를 기대 놓은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아야나가 현관으로 다가갔다.


“네, 나가요.”


그 너머에는 왜소한, 시즈카보다 조금 큰 남자가 자기 몸이랑 전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채 서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히가시카타 아야나 씨 되시죠? 무네타카 군의 과외선생님을 맡게 된 픽시즈입니다.”


죠스케 역시 거실 유리창을 닫고 그를 바라보았다. 갈색 머리카락은 염색을 한 것 같았고, 유순한 눈꼬리를 가진 것이 정말 과외선생 같았다.


“실례하겠습니다.”


남자는 키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죠스케와 맞먹는 크기의 신발을 벗었다. 죠스케가 말했다.


“여기 앉으세요. 무네타카를 불러오겠습니다.”


아야나가 나서서 무네타카의 방으로 다가갔다.


“무네 군! 과외선생님이 왔어!”


곧바로 무네타카가 방에서 나와 픽시즈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무네타카구나? ‘픽시즈 선생님’이라고 부르렴. 그쪽이 무네타카의 아버지 되시죠? 죄송하지만 여기 앉아주실 수 있을 까요? 첫 ‘만남’이라 부모님과도 이야기가 되야 하거든요.”


죠스케와 아야나가 옆에 앉자, 픽시즈는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다.


“무네타카 군은 확실히 ‘재능’이 있어요. 물론 ‘공부 재능’이요. 조금만 가르치면 분명 상위권 성적을 받을 겁니다.”


무네타카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하지만 난 ‘야구 실력’만으로 명문 중학교에 갈 수 있는데요…”


아야나가 그를 다그쳤다.


“무네타카! 어쩜 아빠랑 똑 같은 대답을 할까! 야구만 잘해선 성공할 수 없어.”


픽시즈는 그저 웃었다.


“다들 그런 이야기를 하죠. 하지만 저와 공부를 하면 금방 공부에도 재미가 붙을 겁니다.”


그러더니 픽시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한데 화장실이 어디죠?”


“코너 돌아서 오른쪽이요.”


픽시즈가 화장실에 갔을 때, 무네타카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네 군, 어디가니?”


“방에 ‘필기구’를 두고 왔어요. 금방 가지러 갈게요!”


무네타카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자, 이번엔 아야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 마실 차라도 내어 올까? 그러고보니 차가 다 떨어졌네… 2층에 또 올라가야 하나.”


아야나까지 자리를 비우자, 죠스케는 가만히 복도를 바라보다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어? 복도 ‘바닥’에 저건…? ‘발자국’?”


직후, 픽시즈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무네타카 군은 어디로 갔죠?”


“자기 방에 들어갔는데, 아직 안 나오네요. 제가 부르겠습니다.”


“아니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자기 방에서 ‘못’ 나올테니까요.”


죠스케의 목소리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한 듯 점점 낮아졌다.


“이봐…”


“그리고 히가시카타 죠스케, 네놈도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못’ 움직일 것이다.”


“이 자식!”


그 순간, 죠스케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자연스럽게 바닥에 손을 짚었다. 그와 동시에 죠스케의 양 손이 진흙처럼 무르게 변하며 무너져 내렸다.


“뭣이이이이이?!”

‘손이… 무너져 내린다! ‘진흙’처럼…!’


픽시즈는 그 특유의 눈꼬리로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저의 ‘러브 앳 퍼스트 스팅’이 어떠신가요? 질척질척 한 게… 당신 ‘첫 경험’ 때 같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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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 헐렁하다 발이 크다 눈꼬리가 유순하다 같은 건 ai가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