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있으면, 더 소원은 없을텐데. "



쓸쓸하게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던 여성, 카밀라는 저번 노암과의 해프닝이 있었던 이후로 큰 고민에 빠진 상태였다.


여태까지 마음에 들었던 남자들과 헤어졌을 땐 어떻게든 이를 악물며 버틸 수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그게 마음처럼 잘 되질 않았다. 노암 제이콥스, 그 남자를 잊으려 할 수록 오히려 머릿속에서 더 생각나게 만들어 카밀라의 마음 한 구석을 도려내기까지 할 정도였다.



" 평생토록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마치 운명이라도 되는 것마냥 내 마음을 주체하질 못하겠어. 그 남자가 아니면 안된다는 느낌을 받아본 건, 이번이 처음이야! "



 노암 제이콥스, 그의 이름을 머릿속으로 되새길 때마다 절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저 한 번 만났을 뿐인데도, 결국엔 서로 헤어져야 할 수밖에 없음에도 그가 없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수시로 하게 되었다. 어떻게든 찢어질 수밖에 없는데... 갑작스레 이렇게 속으로 집착을 하게 되는 제 스스로를 혐오하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했다.


조지 타운 주변을 하염없이 걸으며 카밀라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해 밝은 날 출근 때문에 모두가 버스, 지하철역으로 달려가느라 바쁜 와중에 그녀 혼자만이 소외되는 기분이었다. 그 때문인지 더욱이 하루하루가 더 서럽게만 느껴졌고.



' 헤매고 있구나, 그렇지? '



어디선가 들려오는 낯선 여성의 목소리, 이 많은 인파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당연히 아니었고, 무엇인가 머릿속에서 맴돌아 속삭이는 듯한 말소리였다. 분명 낯선 사람인데도 이렇게 조곤조곤 속삭이며 빨려드는 듯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뭔진 모르겠지만 굉장히 마음이 편해.


목소리가 들리는 쪽이 어디일까, 주변을 둘러봐도 나오질 않았다. 한참을 주변을 둘러보다가, 눈에 보이던 것은 웃는 얼굴의 가면을 쓰고 있는 분홍빛의 영혼이었지.



' 길을 알려줄게, 하지만 그 전에 너가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 날 따라와주렴. 그 사람을 만나 너가 가야할 길을 안내를 받아두는 게 좋을거란다. '



영혼은 마치 따라오라는 듯 카밀라를 등지며 천천히 자신의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카밀라도 혹여 놓칠까 수많은 인파들을 헤쳐나가며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도착한 곳은 생각보다 멀진 않았다. 어느 건물의 지하쪽으로 향해가는 분홍빛 영혼이었다. 카밀라가 따라서 지하실로 들어서니, 눈앞에 보이는 것은 퇴폐업소 분위기의 간판이 붙어있는 현관문이었지.


정말 이곳으로 들어가는게 맞을까...? 험한 꼴이라도 당하는 거 아닐까. 하고 반쯤은 의심에 가득 찬 채로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니, 퇴폐적인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로맨틱한 분위기의 정원이 눈에 보였다.


분홍빛 꽃들이 난무하는 이곳에서 어느 여성이 또 모습을 드러내었다. 방금 봤던 분홍빛의 영혼을 곁에 둔 채로, 스탠드... 저 분홍빛의 영혼은 그녀의 스탠드였구나.



" 길잡이에 온 것을 환영해, 손님. 내 아이가 또 한 명, 인생의 가이드가 필요한 사람을 불러들였구나. "



간판에도 쓰여있었다. 길잡이, 인생의 가이드... 길을 알려준다, 인생 조언인걸까? 아니면 지속적인 상담? 어떤 걸 해주려는걸까. 어쩌면 저 스탠드에 그와 비슷한 능력이 있는걸지도 몰라, 카밀라는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였다.


이곳 지하실의 주인인 여성이 천천히 의자 두 개를 끌어와, 카밀라를 보고 앉으라는 듯 의자를 톡톡 쳐오는 것에 카밀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 쪽으로 가까이 가 앉았지.



" 일단, 잘 왔어. 내 아이가 데려온 사람은 전부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었거든. 분명 우리 숙녀 분도 똑같겠지? "


" ...저, 전 여기가 어딘지조차도 모르는걸요, 근데 당장에 제 얼굴만 보고 어떻게 저를 도울 수 있을거라 생각하시는 거에요? "



그 말이 이어지자마자, 여성은 표정을 굳혔다. 싸늘한 것이 아니었다. 카밀라의 불신에 대한 원망의 표시도 아니었고, 마치 증명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유지하며 여성은 이내 입을 연다.


    러버  이즈 어 데이

" Lover Is a Day, 이 아이는 사람들의 기억을, 현재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아내진 못해도, 전체적인 형태는 간단하게 알 수 있어. 단순히 헤매고 있다는 이야기로는 전혀 납득이 가지 않겠지.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앞으로 천 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을 운명의 상대가 네 앞에 있으나, 넌 그걸 허무하게 놓칠 위기에 처해있지. 그걸로 인해 넌 지금까지 골머리를 썩게 된거고, 이 아이가 그런 널 찾게 된거란다. 지금은 어떻니? "



제 상황을 적나라하게 꺼내놓은 듯한 그 한 마디에, 결국 카밀라는 납득이 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제가 처한 상황을 설명해주니 결국 어떻게든 신뢰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건가요? 여전히 헤매고 있는 건 마찬가지인데, 여기서 당신이 해결책을 찾아줄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거, 아닌가요? "



카밀라는 답했다. 당장 이 문제를 모두 해결해줄 것이라고 말하는 듯한 여성의 어투가 계속해서 신경이 쓰여서 그런 것도 있었다. 해결해줄건지, 아닌지... 계속해서 빙글빙글 돌고만 있으니 이젠 즉각적인 답을 얻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결국 여성은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 잠시 말이 길어졌네, 맞아. 너와 너와 같은 이유로 헤매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길잡이가 되기 위해, 누구보다도 돈독하고, 하나뿐인 사랑을 이루게 해주기 위해. 그게 내가 이곳을 차린 이유이기도 해. " 



카밀라는 그 말에 그대로 매료되었다. 얼마든지 내겠다며 제 지갑을 꺼낸 그 순간에, 여성은 지갑을 꺼내던 그 손을 내려주면서 말을 다시금 이어가는 것이었다.



" 돈은 필요 없어, 첫 시도는 언제든지 무료니까. 정 도와주는 대가를 치루고 싶거들랑 너가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과 이어져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만 한다면 난 그걸로 충분해. 


그리고, 하나 경고해둘 게 있어. 이건 똑똑히 기억해야 해. 어느 이야기든 기승전결로 끝나는 것은 당연한거야. 너와 그이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부정적인 일들은 필연적이게 될거야. 그리고 그 위험이 어디까지 커지는지는 나도 몰라, 적게는 사소한 상해부터, 주변인들의 사망까지... 다양하지. 리스크를 견뎌낼 준비가 됐어? "




카밀라는 거기서 고민했다. 사랑을 이루는 대신, 주변 이들이 안 좋은 일에 엮일 수 있다, 라는걸... 그것이 설령 오랜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사랑하는 노암은 물론이요, 부모의 역할을 대신해 이쪽을 열심히 키워주던 오빠인 빌 라르손이 될 수도 있었다. 가장 밉고, 제멋대로여서 늘 싫어하던 인간이었지만, 동시에 그 인간이 죽는 것만큼 끔찍한 것이 따로 없을 것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단단히 결심한 듯한 모습의 카밀라였다. 한숨을 푹 쉬더니, 곧 답한다.



" 사랑하는 사람과 몇 번이고 억지로 찢어져 고통스러웠던 적이 한둘이 아니었어요. 만일 제 소중한 주변 사람이 위험에 휘말리게 된다면, 그땐 제 몸을 기꺼이 바쳐 구해낼테니, 기꺼이 위험을 감수해야겠죠. "



당장 사랑을 구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내뱉는 빈말이 아닌, 정말로 주변인들과 사랑까지 쟁취하겠다는 굳은 의지의 눈빛을 보여주는 카밀라였다. 이에 여성은 감탄하며 속으로 생각했지. 운명을 너무 얕보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정작 저 눈빛을 보면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다고. 운명마저 깨뜨릴 다이아몬드같은 의지가 서린 저 눈빛이 그걸 증명하듯 했다. 


간만에 만족스러운 손님이 온 것 같아. 싱글벙글하던 여성은 카밀라를 데리고 개인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여성의 업무는 시작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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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세 일행이 주인공이 아닌, 카밀라가 주역이 되는 시리즈야. 딱 봐도 노암의 히로인 루트를 타게 되는게 뻔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재밌게 봐줘! 오늘도 피드백과 질문 환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