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배낀 세키로

잠입의 맛은 세 배로


2019년 3월, 프롬 소프트웨어가 출시한 세키로는 수많은 겜창들의 고추를 불끈불끈하게 만들었지만

진성 잠붕이라면 시딸잡 이후에 현타가 다른놈들보다 좀 길었을 것이다.


왜냐면 프롬이 잠입 게임을 잘 만드는 놈들인지는 둘째 치고,

세키로가 온전한 잠입 액션 게임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거든.


세키로가 개발 단계일 당시에는 천주 시리즈의 후속작이 될 것이다, 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닌자 활극 액션 게임이 될 것이라는 말에 관짝 속에 있던 천주 팬들을 일시적으로 깨어나게 만들었지만

세키로의 잠입 시스템과 비중은 데몬즈 소울과 블러드본 다크 소울로 이어지는 TPS 액션 RPG에서의 잠입을 영향을 받았다던 천주의 힘을 빌어 살짝 강화시켜 놨을 뿐이었다.






뭔소리냐 하면..

프롬 게임의 적들은 주인공을 인지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배회하거나 가만히 있고, 시각과 소리에 반응해 움직인다.

때문에 발각되지 않은 상태에서 등 뒤로 발소리를 죽이고 천천히 걸어가 뒤잡을 넣어 큰 데미지와 우위를 점하고 싸울 수 있다.


레벨디자인 철저히 하는 프롬 답게 이는 정공법 중 하나이며, 그냥 이런식으로 돌파하라고 짤처럼 떡하니 등을 돌리고 서있거나

은밀, 보이지 않는 몸과 같은 마법이나 푸른 비약, 면룡의 반지와 같은 아이템을 이용해 잠입 플레이를 노려볼 수 있다.


다만... 프롬이 잠입 좆망겜이 될까봐 일부러 몹들을 예민하게 만들어놓은 건지

아니면 잠입게임 만드는 노하우가 더럽게 없는건지 위 게임들의 잠입은 좋게 말해주면 부조리하고 나쁘게 말하자면 존나 엉성하다.

발걸음을 죽이고 걸어가도 들키고 안들키고는 시시때때로 다르고, 직접 해보면 알겠지만 대체 어느 놈들이 코딩을 한건지 존나 엉성하고 어설프다.


게임이 어설프면 변수가 많이 생기고, 컨트롤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생기고, 개연성이 없어지고 부조리하게 느껴진다. 나쁜 잠입 액션게임은 그렇게 느껴진다.


세키로는 이러한 프롬의 잠입에서 한단계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엉성한 시스템은 그대로 두고 그 틈새에 개연성을 우겨넣으려 했다.

암살과 낙하암살이 생겼고, 탐지미터, 벽에 엄폐하기, 자세 낮추고 발소리 죽이기, 수풀 속에 숨기 등 겉으로는 잠입 게임의 옷을 걸쳤지만...

실제로는 다크 소울 시절의 부조리한 인지능력과 시야에서 

탐지 미터 시스템을 끼워넣어 의심~발각까지의 시간을 부자연스럽게 늘리고

황당할 정도로 적들의 시야각을 깎아내어

마치 판초 우의를 입은듯 몸에 맞지 않는 잠입 게임이라는 옷을 입었다.


갈고리 액션이 추가되었지만 갈 수 있는 장소와 루트는 다른 잠입게임에 비해 제한되어 있고, 잠입 플레이를 위한 루트를 발굴하는 재미 역시 제한되어 있다.

특히 낭떠러지 계곡 지역에서 이 단점이 크게 드러난다.

한 지역에서는 멀리서 조총을 든 원숭이들이 있어 발각되면 저격을 맞게 되는데, 그 원숭이들 머리 위로 정말 대놓고 갈고리를 걸 수 있는 나뭇가지가 줄줄히 있고 다른 곳으로 갈 선택지도 없이 이 나뭇가지를 따라가면 저격 원숭이의 등 뒤로 오게 된다.

직접 해봤을 때 참 창의력 없는 기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들의 반응은 억지로 딜레이를 걸어놓은듯 부자연스럽고 느리면서 시야는 터무니 없이 길어서 조금만 움직여도 탐지미터가 벌떡거리고, 이 때문에 루트를 개척하는 것도 제작자들이 닦아놓은 길을 되짚어가는 보물찾기 같은 기분 보다는 시스템의 헛점을 파고들어 어거지로 하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세키로는 나에게 실망스러운 잠입액션 게임이었다.



아라가미 2는 세키로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았다.

너무 많이 받아서 클래식 모드를 제외하면 1편에서 독자적으로 쌓아올렸던 색체를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UI, 시스템, 심지어 게임 오버시 최대 2번까지 그대로 재도전 할 수 있는 것까지...

심지어 전투가 전혀 없었던 1편과 정반대로 2편에서는 체력과 체간이 생겼고, 패링을 이용한 전투까지 매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편을 막 끝내고 2편을 시작하면서 이 점을 느끼고 좀 걱정했다. 유행하는 게임 보고 혹 해서 개발방향을 바꾸었다가 자기 색체도 재미도 잃어버리는 것 아닐까 했음.

그리고 그 걱정은 눈녹듯 사라졌다.


1편에 비해 많은 점이 개선되었다.

우선 1편에서는 움직임이 좀 이상했다.

걷는 속도가 굉장히 애매해서 어디 움직이기에는 너무 느리고 좁은 곳에서 정밀하게 움직이기에는 너무 빨랐다.

그림자 점멸로 움직이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 그림자 점멸 모션이 매우 어정쩡했다.

가뜩이나 템포가 느린데 암살 모션도 어색하고 느려서 움직임을 더욱 느리게 했다.


시스템적으로도 거슬리는 점이 많이 있었다.

목적지를 보려면 피리를 불어야 했는데 목표를 시인성있게 보여주지도 않고, 잠깐 보이다 사라져서 한번 길을 잃으면 목청이 터져라 피리를 불어대야 했다.

스킬트리를 올리려면 맵 상에 있는 두루마리를 얻어 스킬포인트를 얻어야 하는데 두루마리는 숨겨져 있어서 레벨업이 너무 느리고 가뜩이나 움직이기 힘든데 맵 상을 이잡듯이 뒤져야 했다.

그림자 점멸을 조준하기 힘들어서 어딘가 위로 올라설 때 조준을 잘 해야 했고, 완성도가 좀 거시기한 곳들이 종종 있어서 진행이 불편했던 경우가 많이 있었다.

무엇보다 전면전이 전혀 불가능하다보니 가슴 쫄깃한 첼린지라기 보다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제약으로 다가왔다


이 점들이 대부분 개선되었다.

이동속도는 매우 적절해졌고 무엇보다 맵의 크기와 캐릭터의 비율이 달라지다보니 많은 것이 달라졌다.

템포가 빨라지다보니 어느정도 애니메이션도 눈속임을 할 수 있어 모션이 매우 보기 좋아졌다.


목표 찾기는 매우 시인성이 좋아졌고 전환도 빨라졌다. 무엇보다 이제 좆같은 피리소리 들을 일이 없어졌다.

스킬트리는 경험치와 레벨업을 통해 스킬 포인트를 얻는 것으로 바뀌었으며 이제 맵을 이잡듯 뒤지지 않아도 스킬을 실컷 찍을 수 있게 되었다.

맵의 완성도는 훨씬 높아졌고 무엇보다 전투가 생겼다.



시스템은 세키로와 비슷하다. 공격을 해서 체력을 까고, 가드를 한 상대를 패서 체간을 깐다.

체간이 까지면 센 공격을 날려서 체력을 홀랑 날려줄 수 있다.

적의 공격과 동시에 가드를 하면 패링을 해서 턴을 빼앗아 올 수 있고 적의 체간도 깎아줄 수 있다.

말로만 들으면 위 영상처럼 화려하기 짝이 없고 난이도가 높은 전투를 하게 될 것 같지만...




평타-평타-평타-패링당하면 나도 패링-평타-평타-평타-패링-kill로 싸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멋이 없긴 한데 나름 쉽게 싸울 수 있으니까 장점은 장점인가... 특히 패링 유예가 거의 반격기 수준으로 널널해서 매우 쉽게 싸울 수 있다.

이건 난이도가 올라가고 후반부에 강한 적이 나와도 거의 변함없다. 가끔 가불기 쓰면 회피하고 평타 이런 변형이 있긴 한데 허벌이다.

단 이 방식의 전투가 1대1에서는 쉽지만 1대 2만 되어도 상대하는게 몹시 어려워지므로 제작진도 아무 생각 없이 만든 전투 시스템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기동력이 엄청나게 좋다보니 템포가 빠르고 스피드해졌다.

전작에서는 점프도 없는 대신 그림자 점멸로 상하좌우 쓱쓱 오갈 수 있었지만, 그림자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었고 좌클릭으로 그림자를 생성하여 움직이기에는 에너지 제한이 너무 빠듯했다.


2편은 기본적으로 2단 점프와 공중 대시가 가능하고, 그림자 점멸을 아무곳에나 할 수 없는 대신 지붕이나 모서리, 난간 같은 곳에 순간이동 하여 매달릴 수 있게 되었다.

때문에 지형지물이 많은 맵에서는 2단점프+공중대시+그림자 점멸 4단 점프로 날아다닐 수 있다.

기동력이 너무 좋아져서 이거 맛 보니 다른 게임은 생각도 안나는 수준, 디스아너드 스플린터 셀 뭐시기 뭐시기 다 저리가라다. 진짜 움직임이 시원시원하다.

여기에 공중 암살까지 겹치니 슉슉 날아서 멱따고 슉슉 뛰어서 도망가고 다시 슉슉 날아서 암살하고 물건 쎄비고

엄청 즐겁다.


세키로에서 필요했던 많은 점을 경험해볼 수 있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세키로에서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이 매우 많았다.

그런데 잠입 액션 게임이라는 정체성을 확실히 띄고 돌아와 정말 내가 부족했던 점을 몽땅 충족시켜 준 것 같다.


잠입 액션 게임이라는 점에 맞춰서 적들의 시야와 인지 범위, 그리고 납득 가능한 게임 플레이까지 전부 가지고 있고, 어세신 크리드 못지 않게 다양한 아이템이 있어서 플레이의 다양성을 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세키로의 갈고리 액션을 온전한 잠입 게임 속에서 경험해볼 수 있다는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프롬 놈들이 천주만 내놨어도....



물론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아직 인디게임 티를 벗지 못해서 좀 어설픈 곳이 보이긴 한다.

예를 들어 파수병의 경우 수상한 것이 발견되면 자신은 움직이지 않고 다른 적에게 순찰을 요구하는데, 파수병이 순찰을 해달라고 한게 다른 파수병이어서 서로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짬때리가다 멱이 따이는 경우가 은근 많이 보인다.

이는 이후에 사령술사나 사제 같은 적이 나와도 마찬가지, 이 둘이 지시를 내린게 하필 파수병이라 제자리에서 꿍얼꿍얼거리다 마는 경우가 은근 보인다.


또한 스토리가 중간에 고친 티가 많이 나기도 하고, 컷신이나 기타등등이 힘을 줬다 말았다 한게 눈에 보여서 좀 아쉬웠다. 인디 역량의 한계인가...


아무리 그래도, 잠붕이라면 세일할 때 반드시 한번 해보길 추천한다. 1편보다 확실히 진보했다.



83/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