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탈기어 시리즈의 탄생과 함께했던 골판지 박스.



뒤집어 써서 사람 형상이 없어지기만 하면 잔뜩 경계하고 있는 군인들도 감시카메라도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골때리는 성능 탓에

등장인물이 막 죽어나가고 전쟁과 폭력을 비판하는 딥다크한 주제의식 속에서 시리즈의 개그를 담당하는 역할을 한다


그 덕에 모티브가 있어봤자 디즈니나 루니툰같이 익살스러운 작품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거 같지만....



코지마 히데오가 말하는 메탈 기어 솔리드: 피스 워커와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 (kotaku.com)

의외로 코지마 일본 소설중 <박스남>이 모티브라는 인터뷰를 한적이 있다.

인터뷰 출처 찾느라고 죽는줄 알았다 시발



박스남은 <모래의 여자>를 쓴걸로 유명한 아베 코보라는 사람이 썼는데

일본의 카프카라고 불릴 정도로 몽환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이고 아무튼 참 스피리추알 한 글을 쓰는 걸로 유명하다


아무튼 <박스남>의 내용을 살펴보면 박스남인 화자가 신문기사 스크랩과 자신의 생각을 적어놓은 노트의 형식을 띄고 있다

여기서 박스남이란 참 스피리추알 한긴데


말 그대로 길가의 박스 속에서 먹고자고 하는 사람인데

단순한 노숙자가 아니라 집도 직장도 팽개치고 거리로 나와서 의식주를 전부 박스 안에서 해결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니까 노숙자는 단순히 잠자리로만 박스를 쓰지만 박스남들은 먹고 싸는 것 까지 전부 다...

꼼짝 하지 않고 뚫어놓은 눈구멍 밖으로 세상만 바라보는 것이다.



무튼 글이 박스남의 입장에서 쓰여졌으니 자기 주관을 말하는데  

박스남들은 거리나 다리 밑, 해안가 같은 일반인들의 주변에도 많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박스남들을 본 기억이 없고 뉴스에도 기사 한 줄 나지 않는다.

화자는 그게 못 본 것이 아니라 못 본 척 하는거라 말한다. 거부감과 혐오감, 두려움에 본능적으로 눈을 돌리고 뇌내 필터에서 지워버리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간혹 말 한마디 걸지 않고 끙끙 앓다가 대뜸 공기총을 쏘아 쫓아낼 정도로 격한 평균 이상의 혐오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는데, 이들은 자신의 주위에 평균 이상의 관심과 관찰을 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글에서 등장한 한 사람은 남들은 눈치조차 채지 못하는 자기 집 앞의 박스남에게 집착해 골머리를 앓다가 공기총을 빌려와 겁만 줄 생각이었지만 우발적으로 쏴버린다.

그는 쭈그러든 박스에 나있는 총알구멍, 박스가 비를 맞는 소리, 총을 맞고 움찔 튀어오른 남자의 반응, 박스 속에서 웅크리고 있을 남자의 자세 등 온갖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혹시 박스남을 죽여버린거 아닌가 공포에 떨지만 다행이 박스남은 살아 자리를 떠난다.


하지만 박스남을 쫓아버린 후에도 신경이 잔뜩 날카로워진 그는 마음을 안정시켜 보지만 새로 산 냉장고를 포장하고 있는 골판지 박스를 보고 트라우마를 일으킬 정도로 예민해진다.

빳빳하게 선 TV 안테나, 난잡하게 너질러진 잡지, 쌓여있는 빈 깡통등 평소에 눈치채지 못했던 온갖 자극들을 느끼며 괴로워하고 공격받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다 문득 트라우마를 느껴 내던졌던 골판지 박스를 집어 일전의 박스남처럼 그 속에 들어가자 보호받는 느낌이 들고 안정감을 느낀다.

박스에 눈구멍을 내어 주변을 바라보자 두렵고 자극적이었던 주변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박스남을 쫓아낸지 5일이 안되어 그 남자는 박스 안에서 식사와 용변을 전부 해결하게 되었고

일주일이 지나자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직장도 내팽겨치고 집 밖으로 나가게 된다.

그는 새로운 박스맨이 되었다. 



대충 박스맨은 이런거고 이후 에피소드는 화자 박스맨이 겪는 여러 일과 그 와중에 느낀 개똥철학에 관한 이야기다.

뭔가 사회비판적인 요소도 있고 공황장애에 대한 내용도 있는거 같은데

글에 재미붙이기가 힘들어서 난 하차함;


그러니까 박스를 쓰면 안보여서 못찾는게 아니라 존내 혐오스러워서 못본척 한다는거;

코지마가 한말인지 게임에서 나온 말인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그런 박스를 뒤집어쓰고 있는 사람이랑은 아무도 대화하고 싶지 않아할 거라는 대사를 읽었던 것도 기억남



어쩌면 코지마의 골판지 상자에서 가장 중요한건 박스가 아니라 박스 속의 눈구멍이 아니었을까





메탈 기어 솔리드 V: E3 2014에서 코지마 히데오와의 인터뷰 | 시간 (time.com)

물론 이건 코지마의 철학에 해당되어 봐야 극초창기에나 좀 공감할 내용이고,

메기솔 5 당시 인터뷰에서 코지마는 골판지 박스를 잠입을 유지하며 스트레스를 받을 플레이어의 긴장을 덜어주기 위한 "유머러스한 요소"라고 언급했음

진짜 설정상 적들이 못본게 아니라 극혐에서 안본거라느니 하는 설정은 지나간 얘기라는것.



오히려 이제는 골판지 상자가 아베 코보의 것이 아니라 메탈 기어 솔리드의 오리지날리티가 되었으니

플레이어의 긴장을 풀어주는 개그 요소로 쭉 남아주길 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