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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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난 예빈의 표정은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개운하다거나 시원한 표정이 아닌, 발자국 하나 없는 눈밭과도 같은 공허한 표정이었다.

가자”

뭐?”

테이크아웃 컵에 담긴 아메리카노를 집어든 예빈이 의자에서 일어나자 금란 역시 자연스레 몸을 일으킨다.

너 길바닥에서 이렇게 꼴보기 싫게 울어놓고, 여기 있고 싶을 거 같니?”

양혼은 어째서인지 방금 전 까지 자신과 바닐라가 대화의 흐름을 리드한 느낌인데, 갑자기 예빈의 말대로만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받는다. 이야기하던 도중에 눈치없이 음료를 쪽쪽 빨아댄 덕에 자기 음료수는 다 마셨지만 치즈케이크는 결국 반의 반도 먹지 못하고 테이블에 남겨둔 채 일어난다.

그러고보니, 아메리카노 싫어하십니까?”

저 말입니까?”

인간과 인간, 그리고 바이오로이드와 바이오로이드가 짝을 지어 걷는다. 한강 공원 위를 걸어올라 주차장으로 걷는데, 햇살이 따갑다. 손으로 그늘을 만드는 바닐라가 금란에게 묻는다.

한 모금도 안드셔서 말이죠”

아, 네…커피보단 차를 좋아합니다”

무슨 얘기하냐?”

별 얘기 아닙니다”

금란이 아까처럼 뒷자리에 타자, 바닐라가 자연스레 그녀의 옆에 앉는다. 당당하게 뒷자리를 점령한 바이오로이드에 밀려 인간 둘은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는다.

담배 펴도 되지?”

맘대로 하세요”

차가 슬슬 출발하자 예빈이 담배에 불을 붙인다. 창 밖으로 담배연기가 보일새도 없이 스러져간다. 차 창에 한쪽 팔을 걸친 셔츠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성인 화보에서나 볼 만큼 관능적이고 어른스러운 모습이었다. 저런 아가씨가 방금 전까지 서럽게 울었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바닐라님, 언니라고 불러도 됩니까?”

저 말입니까?”

네”

편한 자세로 앉아있는 바닐라에게 조금씩 흔들리는 차에서도 다소곳한 정좌를 유지하고 있는 금란이 묻는다. 언니라니, 2년이 조금 안되는 삶을 살아온 바닐라에겐 살면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왜죠?”

어지간하면 말을 늘이는 적이 없는 바닐라의 목소리가 늘어진다. 두 바이오로이드의 대화를 백미러로 보고있던 양혼도 아예 시트 너머로 시선을 넘긴다. 척 봐도 당황한 듯한 바닐라의 모습이 백미다.

저는 몇 달이나 주인님과 같이 지내면서 주인님의 마음을 돌려놓지 못한 무능한 바이오로이드였습니다. 하지만 바닐라님께선 한 마디의 말로 주인님의 마음을 깨워주셨습니다. 아마 경험에서 나온 차이겠죠…그래서입니다”

경험이라고 해봐야 둘은 사실 한 살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물론 1년 반을 산 바이오로이드와 반년을 산 바이오로이드의 시점에서 보면 그 차이가 엄청 커보이겠지만, 인간의 시점으로 그 모습을 보면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너 그러고보니 생일 언제냐”

나? 3월 21일”

강한 바람에 얇은 담배꽁초를 놓친 예빈의 시선이 저 도로 끝까지 머무르다 양혼쪽을 바라본다.

나보다 반년 빠르네”

언니라고 불러”

지랄을…”

역시 그 앞에선 여자고 뭐고 없다. 자신의 주인이 일평생 자기 말고는 여자친구를 만나지 못한 절망적인 이유를 눈 앞에서 직접 목도한 바닐라는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돌린다.

그…그렇게 불러도 됩니까?”

편한대로 하세요”

바닐라의 무심한 긍정 표현에 금란의 표정이 살짝 밝아진다. 무표정에서 가끔씩 표정이 휙 바뀌는 바닐라와는 다르게 감정의 표현이 모두 은은한 금란의 모습 역시 색다른 매력으로 느껴진다.

그쯤 생각했을 때, 바닐라의 날카로운 시선이 양혼과 마주친다.

차가 자동운전이 되어서 좋은 점은, 운전의 피로도가 줄어들었단 것과 운전에 소요되는 시간이 상당히 줄어들었단 점이다. 과거의 운전이라면 30분은 걸렸을 거리도 금방 주파해서 도착한다.

예빈이 도착하자 집 안에 걸린 락이 자동으로 해제된다. 삐리릭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자 수 많은 인형들이 그녀를 반긴다.

집 안의 물건을 건드린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갑자기 그 모든 인형들이 변한 것 같은 위화감을 느낀다.

이 인형들 다 치워버릴까?”

우리 집에 분리수거 하지만 마”

바닐라가 인형에 관심을 보인 것이 문득 생각난 양혼이 선듯한 불안을 느낀다.

꼭 그래야합니까?”

응?”

객과 주인의 신발을 정리하는 금란이 조용히 묻는다.

인형들…이젠 예쁘니까 그냥 두어도 좋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조신하게 몸을 일으킨 금란이 싱긋 웃으며 손님들을 접대하기 위해 복도를 지나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된거겠지”

예빈이 방 안으로 따라 들어간다.

너네 밥 뭐 먹을래?”

아무거나 상관 없는데”

제발 남의 집에 손님으로 왔으면 고민하는 척이라도 좀 해라”

손님에게 저녁 메뉴를 고르라고 하는 것 치고는 오히려 금란이 손님을 갈구고 있었다. 사실 아무거나 바닐라가 해주는 메뉴대로 잘 먹는 양혼은 메뉴를 고르라는 말에 눈을 질끈 감는다.

주인님은 아무거나 해주시면 대파 한 단만 줘도 잘 먹습니다”

피자?”

한참의 고민이 지루해지던 차에 바닐라가 대신 대답하는 순간 양혼이 번뜩이는 메뉴를 생각해낸다.

또, 피자입니까?”

맛있잖아. 페퍼로니 빵빵한거로”

그러고보니 피자 안 먹은지도 꽤 됐네”

거의 항상 둘이서 식사를 하는 양혼과 바닐라는 딱 네 조각씩 먹으면 양이 맞았기에 피자를 자주 먹는 편이었다. 게다가 오리진더스트로 강화된 신진대사는 칼로리도 잘 태워주는 몸이 되어 피자 네 조각으론 두 사람의 몸에 부담 따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예빈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보통 혼자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피자 한 판을 먹을 만한 일이 없었다. 대학때 이후로 피자라는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었던 듯, 한참을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다.

금란, 나가서 피자 재료 좀 사와”

바이오로이드에게 명령을 하는 이 일상적인 풍경이, 이 집에서는 낯선 풍경이 된다. 싱긋 웃는 금란이 나갈 채비를 한다.

같이 가죠”

아, 네 언니”

그래도 살림에 훨씬 익숙할 바닐라가 먼저 금란에게 같이 가자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주인에게 허락을 구하는 눈빛을 보내자 양혼이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아 그리고”

복도를 돌아 나가려던 금란과 바닐라를 예빈이 멈춰세운다. 고개를 살짝 내민 바닐라와 다시 바른 자세로 주인을 마주보는 금란의 모습에서 둘의 오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염색약도 하나만 사와”

괜히 신경쓰이는 듯, 자신의 앞머리를 다시 뒤로 넘기며 정리하는 예빈의 한마디에 금란이 눈을 살짝 뜨며 웃는다.

가장 검은색으로 사오면 될까요?”

그래”

다녀오겠습니다”

고개를 공손히 숙인 금란이 몸을 틀자 바닐라가 앞장서서 걷기 시작한다. 1인 쇼파에 걸터앉은 예빈을 양혼이 재미있다는 듯 쳐다본다.

고마워”

뭐가”

좀 사람이 이렇게 얘기하면 분위기 좀 보고 대답해라…과자 그만 쳐먹고!”

테이블 위에 올려둔 초코맛 과자를 하나씩 입에 가져다대던 양혼이 바닐라에게서 듣던 것과 같은 핀잔을 듣는다.

하여간 넌 학교 다닐때부터 눈치가 없어가지고…넌 몰랐지?”

포기했지 무슨…너가 왜 바닐라랑 똑 같은 소리를 하는데?”

바이오로이드한테도 욕먹을 정도면 고쳐라 좀”

신발장에서 나갈 채비를 하던 바이오로이드 둘이 애매한 인간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으며 문을 연다. 점점 따사로워지는 햇살이 두 바이오로이드의 눈을 간지럽힌다.

-完-



결국 예빈이란 캐릭터를 표현하는데는 실패한거같다

하 시발

뭔가 디자인 할때만 해도 제일 공들인 캐릭터였는데, 너무 조졌어

심리묘사랑 암시에 모든 걸 때려박아넣었는데 그것도 잘 안된거같고

생각해보면 대사도 썩 마음에 안들었고, 서사는 없는 수준이고


다음번엔 ㅂㅏ닐라 이야기 완결 느낌으로 써볼까

아니면 모모가 주인공인 얘기를 써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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