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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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 정리글


이 글은 바닐라 이야기 이전편과 예쁜 인형 아가씨, 소년의 불꽃 등을 보고 오면 좀 더 재미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님 말고


안방에서 고개를 내미는 그의 아버지와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있던 그의 어머니가 그를 쳐다본다.

밥은”

아직…들어와”

문 밖에서 흰색의 전등을 맞으며 서있던 바닐라를 집 안으로 끌고 들어온다. 긴장한 탓인지 얼어있는 표정의 바닐라가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안녕하세요”

니꺼야?”

인사하는 바닐라를 보고 눈이 잠깐 커진 그의 모친이 양혼과 바닐라를 번갈아 쳐다보다 묻는다.

어”

들어와요”

양혼에게는 서울이나 인천이나 편한 자기집이었으니, 자연스럽게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온다. 올때마다 넓은 듯 좁은 집이다. 그래도 이번엔 바닐라까지 있으니, 확실히 조금 더 좁아보인다.

둘이 살기엔 확실히 넓은 집에서 지내다 자신을 포함한 다섯 명이 있는 집에 들어오자 바닐라는 마치 작은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묘한 위화감을 느낀다. 벽에 어릴적의 자신의 주인이 말끔한 옷을 입고 앉아서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

주인님입니까?”

어린 주인의 모습이 신기하게만 보인다. 지금과 많이 다른 듯 똑같아 보이는 기묘한 모습, 바이오로이드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세월의 흐름이다.

이거? 어”

선유와 비슷한 나이대 쯤으로 보인다. 물론 생긴건 선유쪽이 훨씬 기품있고 예의바르고 잘생기긴 했지만 말이다.

저 분은 누구십니까?”

바로 옆에 걸린, 태권도복을 입고 일자로 옆차기를 하는 조금 더 어린 남자의 사진이 있다.

얘”

분홍색의 나무문을 열자 남자 한 명이 모니터 앞에 앉아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이 새끼는 형이 왔는데 인사도 안해”

게임에 열중한 마른 남성을 양혼이 발로 후려친다. 한창 중요한 포인트인 듯, 마른 남성은 그의 발길질을 무심하게 손으로 쳐낸다.

어 뭐야 그거?”

슬쩍 눈만 돌린 남성이 양혼의 뒤에 쭈뼛거리며 서있는 바닐라를 쳐다본다. 꽤나 호기심이 동했는지, 모니터 보다 바닐라 쪽을 힐끔거리며 오래 쳐다본다. 바닐라가 양혼의 등 뒤에 꼭 붙어서 고개만 까딱거린다.

만져봐도 돼?”

좆까”

나가 그럼”

내 방이야 이 새끼야”

푸른색의 조금은 유치한 무늬의 장판과 파란색의 꽃무니 벽지, 자신의 주인이 조금 독특한 걸 좋아하긴 했다만 이건 분명히 어릴때의 인테리어를 바꾸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티격태격 하지만 같은 게이머로써 게임하는 사람을 방해할 수는 없었기에 양혼이 먼저 물러선다. 거실에 나와 바닥에 앉자, 바닐라가 조용히 그의 옆에 앉는다. 

양혼의 부모도 바이오로이드를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저렇게 따라다니는 개인용의 바이오로이드는 거의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그것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더더욱, 게다가 자기 아들이 이런 걸 데리고 왔으니 신기하게 볼 만도 했다.

양혼의 어머니도 굳이 신경을 안쓰려곤 하지만 시선이 돌아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얘가 그러면 집안일이랑 다 해주는거야?”

대부분은”

그래, 니 혼자 살면 꼬라지가 말이 아닐텐데…그쵸?”

바닐라가 앞이어서 그런지 싱글싱글 웃으면서 자기 아들을 마음껏 디스한다. 왜 인지 함부로 대하면 안되는 어른이란 생각에 바닐라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할 일은 많지 않아요?”

괜찮습니다. 가사용 바이오로이드고, 주인님도 일거리를 많이 만들진 않습니다”

그의 엄마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남자는 집 안과 밖에서 다르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듯 했다.

주인님”

양혼의 팔을 자신의 팔로 쿡 찌르는 바닐라가 조용히 속삭인다.

청소라도 할까요?”

가만 있어 그냥”

어른을 보고 있으니 불편함을 느끼는 걸까, 괜히 처음 와 본 집의 청소를 하겠다고 하는 바닐라의 모습이 황당하지만 나름 귀엽게 보인다.

세차게 김이 빠져나오는 밥솥이 곧 맑은 목소리로 취사가 완료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양혼의 어머니가 자연스레 자리에서 일어난다. 집의 구조를 잘 알고있는 양혼이 안방으로 들어간다.

상 여기 있지?”

뒤따라 들어온 바닐라가 어두운 방에서 작은 티비를 보며 침대에 누워있던 그의 아버지에게 인사한다.

뭐여”

네이티브 사투리는 아니지만 미묘하게 충청도 사투리의 억양이 남아있는 말투, 바닐라는 처음 들어보는 톤에 살짝 고개를 기울인다.

양혼이 커다란 나무 옷장 사이에서 검붉은색의 큰 상을 하나 꺼낸다. 바닐라가 잽싸게 반대쪽을 잡으려하지만, 두 사람이 잡을 만큼 큰 상은 아니었다.

바닐라가 괜히 반찬을 몇 개 날랐지만, 굳이 처음 본 손님에게 일을 시킬 성격도 아닌 그의 모친이 연신 그녀를 말린다. 양혼도 거실의 쿠션에 등을 기대고 앉아 바닐라를 부른다.

금세 넉넉한 한 상이 차려진다.

바닐라에게 있어서는 다섯 명이 앉아서 식사를 하는 경험이 처음이었다. 물론 양혼도 다섯 씩 같이 먹어본 적은 없지만 최소한 넷이서 밥을 먹은 적은 자주 있었다. 둘에서 다섯은 차이가 크지만, 넷에서 다섯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런데 옷은 왜 양복이여”

티비를 등지고 앉은 그의 아버지가, 벽을 등지고 앉은 양혼에게 지극히 당연한 점을 묻는다. 생각해보면 양복 입고 집에 올 일도 없었고, 굳이 양복을 선호한 적도 없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게”

그의 동생도 거든다.

양혼에게는 언제 말을 해야하나 타이밍만 잡고 있을 때, 그 타이밍이 걸어 들어온 꼴이었다. 그래, 말을 안하고 나갈 수는 없었다. 바닐라가 이야기를 할 리는 없었으니, 이야기를 할 거라면 본인이 해야만 했다.

주황색의 플라스틱 컵에 담긴 물을 한 모금 마셔 입 안의 음식물들을 다 넘긴다.

그, 할 말 있어”

이상할 게 없는 한 마디이지만 평소에 그런 소리를 하지 않던 사람이 하면 어딘가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리기 마련이다. 그의 부모도 갑자기 바이오로이드를 데려온데다 평생 안입던 양복을 입고, 각 잡은 채 할 말이 있다고 하는 걸 들은 순간, 뭔가 진지한 이야기를 할 거란 것 쯤은 직감하고 있었다.

옆에 쥐어지는 빛바랜 리모콘으로 티비를 끈다. 순식간에 방 안이 조용한 정적에 감싸인다.

침을 한 번 삼키고 마음을 다 잡은 양혼이 결국 입을 뗀다.

나, 얘랑 결혼할거야”

저질렀다. 열어선 안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만 같은 불안감, 갑자기 세상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 그의 가족의 모든 피부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 하나가 마치 하나의 필름처럼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 하지만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대답은 금세 들린다.

뭐?”

결혼?”

네, 그렇습니다”

사안의 심각성을 아는 지 모르는지, 바닐라가 나지막이 이야기한다. 그 말을 끝으로 방 안이 다시 한 번 정적에 휩싸인다. 식탁 앞인데도 젓가락질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고요함, 양혼이 터뜨린 폭탄이 그만큼 놀라운 것이라는 반증이었다.

2분? 3분? 그냥 대화가 끊어진 것이라면 정말 오랜 시간이겠지만 결혼이라는 심각한 사안에 대해 고민하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생각은, 얼마나 해봤냐”

올해 초부터”

그의 어머니가 먼저 정적을 깬다.

지금이 4월, 올해의 시작으로부터 벌써 네 달이 지난 시간이었다. 자신의 주인이 올해 초부터 그 생각을 하고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사람은 맞아?”

언제나 그의 아버지는 시대에 뒤떨어졌었다. 굳이 시대의 흐름을 탈 이유가 없었다고 하는게 더 맞을지도 몰랐다. 양혼은 저 질문이 바이오로이드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는 그의 아버지가 바이오로이드를 사람이 아닌 로봇 비슷한 것으로 보고있기에 하는 말이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바이오로이드가 사람인가? 사실 그도 단언할 수는 없었다.

네, 사람입니다”

바닐라가 그를 대신해 긍정해준다. 아들이 결혼을 한다는데, 그 원초적이고 단순한 답변을 듣자마자 그의 아버지는 다시 닭볶음탕에 젓가락을 가져다댄다.

결혼할 거면, 끝까지 책임져”

응?”

결혼은 네 맘인데, 네 맘대로 이혼하면 집에 들어올 생각도 하지마”

걱정인가 핀잔인가, 뭐라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목소리 톤과 멘트였지만 양혼은 그래도 그 이야기를 듣자 가슴이 놓이는 듯 했다.

괜히 가족과 얼굴 붉힐 일은 없었다는 것, 그것만 해도 충분히 다행이었다. 만약 자신이 사람과 결혼을 한다고 해도 이렇게 빨리 결정했을까? 그것은 영원한 의문이 되겠지만, 굳이 해결될 필요 없는 의문이기도 했다.

식사가 끝나고 굳이 괜찮다는데 바닐라가 설거지를 맡는다. 사람보단 빠르고 확실하단 걸 알고있는 양혼이 이번에는 그의 모친을 말린다. 결국 그의 모친이 거실로 온다.

티비를 다시 켜자 평소와 같은 집 분위기로 돌아온다.

식은?”

식?”

결혼식 말이야”

됐어, 부를 사람도 없고, 그냥 가볍게 기념만 할거야”

뭐든 안 아깝게만 해, 나중에 생각나면 골치아파진다”

알았어”

주인님, 설거지 끝났습니다”

바닐라의 무심한 듯 조용한 목소리가 그를 부른다. 양혼이 몇 걸음 앞의 그녀에게 걸어간다. 그의 모친이 아들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본다.



사실 지금도 드는 생각이

인간과 바이오로이드의 결혼이라 부모가 고민을 적게 했다는 느낌을 주고싶었는데,

그게 잘 안된듯


그리고 쓰면서 무슨 쓰레기 본성이 자꾸 깃드는지, 막 마지막에 울면서 죽어가는 양혼을 붙잡고 사랑한다고 오열하거나 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돼




픽크루란 재미있는게 있길래 하나 만들어 봄

당연히 주인공인 윤양혼의 모습을 바닐라가 찍어준 사진 컨셉으로 만든거고

보면 민트색으로 눈에 잘 띄는 옷 색깔과, 별모양 안경으로 관종끼를 표현해 봄, 뒷배경도 그래서 정신없는 줄무늬에 별까지 잔뜩 박은거고

옷의 뱃지는 연두 - 흰 - 검으로 바닐라 를 표현한거고


실실 웃고다니는게 기본적인 이미지라 눈 뜰때랑 감을 때 둘 다 만들어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