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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가시고 산천초목이 울긋불긋한 빛깔을 뽐낼 무렵. 인류가 멸망한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듬성듬성 존재하는 건축물은 이가 빠지고 금이 갔지만 자연의 품안에서 그들과 어우러져 묘한 정취를 자아냈다. 산새가 지저귀는 소리, 개울이 졸졸 흐르는 소리, 산들바람이 나무를 쓰다듬는 소리가 한없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배가시키는 때에 별안간의 소음이 흩어버렸다.


 주변 풍경과 대조적으로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는 도로로 큰 트레일러 1대와 지프 2대가 달리고 있었다. 트레일러 안의 잿빛 머리에 노란 눈을 가진 여자아이가 연신 머리를 숙여댔다.


"익스프레스 씨가 없었으면 어떻게 돌아가나 했어요. 3년 만의 귀향이 국토대장정이 될 뻔했네요. 정말 고마워요."


"에이, 메리 씨가 얼마나 저흴 위해 힘썼는 지 아는 데요. 너무 그렇게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돼요."


 익스프레스는 사람 좋은 미소를 띄며 손사래를 쳤다. 인사치레를 마친 두 사람은 이내 이야기꽃을 피웠다. 3년 전 메리는 출장 차 서쪽으로 가서 여러 공동체의 도시계획을 도왔고 의뢰를 완수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경호원 레프리콘, 브라우니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 지프가 고장나 복귀가 요원하던 차에 다행히 익스프레스를 만나 무사히 돌아갈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메리는 출장지에서 겪은 여러 소란을 과장 섞어 익스프레스에게 얘기했다. 브라우니가 카엔에게 인술을 배우다가 건물을 태워먹을 뻔했다든지, 브라우니가 재채기를 하다 제로의 옆구리를 건드려 레프리콘이 감전될 뻔했다든지, 브라우니가 물을 가져다 주다 메리의 도면을 날려먹었다든지 등 왜인지 브라우니가 연관된 에피소드를 잔뜩 늘어놨다.


 한참 담소를 나누던 때에 숲에서 금속성의 큰 소리가 들려오더니 폭발과 함께 트레일러가 크게 꺾였다. 익스프레스가 핸들을 급히 돌려봤지만 소용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이변을 감지한 지프 2대가 멈추더니 경호병력이 내려 일부는 메리와 익스프레스의 상태파악을, 나머지는 숲을 주시했다.


"메리님, 괜찮으신가요? 익스프레스님은 어떠신가요?" 레프리콘이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트레일러의 문을 열었다.


"저흰 괜찮은 것 같네요. 어떤 상황이죠?" 익스프레스가 메리를 품안에 안은 채로 되물었다.


 레프리콘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브라우니가 외쳤다. "레프리콘 분대장님, 숲에서 나이트 칙 18대가 돌진하고 있슴다!"


 기관총이 흩뿌려지는 소리와 쿵쿵대는 발소리, 레프리콘의 고함소리와 메리의 비명, 브라우니의 소총소리가 어우러져 불협화음을 냈다. 메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몸을 덜덜 떨었다. 이내 시야가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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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됐다.


3년 간의 긴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요안나 씨의 따뜻한 환대와 다프네 씨의 맛있는 식사를 기대해왔다.


마을의 아쿠아와 LRL에게 그림을 가르쳐주기로 약속했는데.


레프리콘 씨와 브라우니 씨에게 한 끼 대접하려고도 했는데.


이런 도로에 스무 기 정도의 철충이라니, 동면기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발포음과 발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린다.


브라우니 씨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레프리콘 씨의 이 악무는 소리가 들린다.


익스프레스 씨가 튕겨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총구가 눈 앞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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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는 죽음을 직감하고 눈을 감았다. 찰나의 순간에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크나큰 행사를 위해 문화의 성지로 떠나던 날, 머나먼 타국 땅에서 지옥이 시작됐을 때, 요안나와의 만남으로 삶의 희망을 얻게 된 때, 공동체와 자신을 위해 일에 매진하던 때, 그리고 동료가 죽어가는 이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력함, 미안함이 눈물이 되어 감은 눈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아!" 메리는 꺽꺽대며 소리쳤다.


"그 부름에 응답했소."


 자욱한 포연과 강렬한 격발음. 한 가운데 구멍이 뚫린 나이트 칙이 맥없이 쓰러졌다. 메리는 자신을 구해준 은인을 바라봤다. 맑은 목소리로 사극에서나 나올법한 말투를 구사한 총사는 꽤나 추레한 행색을 하고 있었다. 챙이 넓은 모자는 군데군데 찢어져 제멋대로 나풀거리고 깃털장식은 몇 개 남지 않아 볼품없었다. 망토는 색이 바랬고, 셔츠와 치마는 여기저기 뜯어져 살갗을 드러냈으며 구두 가죽이 해져서 돌부리에도 찢길 것 같았다. 머리카락은 대충 잘랐는지 멋대로 뻗쳐 삐죽삐죽한 상태의 단발이었다. 그럼에도 몸 관리 자체는 철저한지 머리는 아름다운 금발이었고 백옥같은 피부에 푸른 호수같은 눈동자는 뭇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아가씨."


 총사는 한 손으로 뒷짐을 지고 다른 팔은 앞에서 접으며 허리를 숙여 과장되게 인사를 하곤 사뿐히 뛰어 다음 나이트 칙에게로 갔다. 총사가 근접해오자 나이트 칙은 기관총을 발포하며 맞돌진했다. 총사는 좌측으로 빙글 돌며 가볍게 피한 후 회전속도를 살려 그대로 나이트 칙을 베어버렸다. 칼날이 강철을 베어내고 반대쪽 공기를 맛 보는 순간 지체않고 폴짝 뛰어 다음 적에게 찔러 들어갔다. 나이트 칙은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하고 가동을 중지했고 바로 옆의 칙은 총사가 적을 관통한 직후 우아하게 돌며 쏜 머스켓에 명을 달리했다.


"우아한 춤을 추는 거 같아." 


 메리는 생각했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매우 비효율적이어 보일정도로 우아해 결투 보다는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것 같다고. 하지만 총사의 공격의 끝은 새로운 공격의 시작이었고 회피는 다음 공격을 위한 예비 동작이었다. 적을 난도질 하는 경우없이 오로지 최초의 일격만으로 신속한 죽음을 안겨줬다. 모든 동작이 물 흐르듯이 이어진 아름다운 칼춤은 마지막 나이트 칙이 무릎을 꿇고 쓰러지며 막을 내렸다. 총사는 아주 짧은 시간에 15대의 나이트 칙을 사냥했고 큰 동작을 연속적으로 취했음에도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움직일 수 있겠소?" 총사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안부를 물었다.


"네, 덕분에요. 정말 고마워요." 메리는 머리 숙여 감사를 표했다.


"저, 폐가 되지 않는다면 수습을 도와주시겠어요?"


"물론이오, 아가씨. 곤경에 처한 자를 지나쳐서야 의기를 가진 이라 할 수 있겠소?" 시원스레 동의한 총사는 메리와 함께 다른 이들에게 갔다.


 갑작스런 기습을, 그것도 수적 열세에서 벌어진 공격을 당한 것 치곤 피해규모가 크지 않았다. 익스프레스는 단순한 타박상에 브라우니 5명 중 2명은 찰과상, 2명은 엉덩이에 관통상을 입었다. 나머지 1명의 브라우니는 다리 하나가 날아갔고, 분대장 레프리콘은 어깨가 탈골됐다. 레프리콘의 지시하에 다리를 잃은 브라우니에 대한 응급처치가 진행됐다. 울먹이며 응급처치를 돕는 메리를 보며 다리를 잃은 브라우니는 활짝 웃어보였다.


"너무 슬퍼하지 않으셔도 됨다. 요즘은 자원이 좀 남아서 이런 부상도 어느 정도 치료해준담다. 운 좋으면 이뱀 대신 먼저 전역하고 슈퍼 알바하면 되지 말임다."


"그나저나 큰일이네요. 트레일러가 쓰러져서 지프에 여러 명 끼여가야겠는데요. 그리고 트레일러 안의 물자는 어떻게 하죠?" 레프리콘이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찰과상입은 브라우니씨가 중상자를 데리고 먼저 마을로 가주세요. 그리고 요안나 씨에게 자초지종을 고해주세요. 나머지 분들은 일단 제가 다 태우고 서행해서라도 가볼게요." 익스프레스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알겠슴다. 분대장님하고 브라우니 1명 먼저 데리고 가겠슴다. 천천히 오십셔."


먼저 가는 지프를 뒤로하고 메리와 익스프레스는 총사에게 감사를 표했다.


"저.. 이렇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총사님이 아니었으면 저희 모두 죽었을 거예요."


"아니오. 어려운 자를 보면 당연히 도와야하지 않겠소?"


"보답을 어떻게 해야될지...."


"아, 언제나 그 부분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지. 먼저 말씀 꺼내줘소 고맙소. 숙녀 여러분. 대금은 1인당 10참치 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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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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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게 언제나 어려운데 전투 씬은 더 어려운 거 같다. 이건 쓰다 보면 늘겠지


근데 글 10000자씩 적는 사람들은 어케 쓰노 4천자도 안 되게 쓰는 거도 개 힘든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