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당 소설은 창작이 아닌 원저작자(현재 티스토리 블로그 폐쇄)가 따로 있으며, 개인 소장 목적으로 필사 + 오타를 수정한 개정 복사본임을 밝힙니다. 공유 등 적절한 태그가 없어서 창작(불건전) 태그를 사용하였으니 이 점 참고 바랍니다.


* 문제가 될 시 자삭하겠습니다.



[촉수] 얼음 계곡, 깊은 곳


칼브람 용병단의 분위기는 어두웠다. 마치 물에 젖은 솜처럼 축 가라앉은 정적이 건물 내부를 가득 채웠다. 얼마 전 용병 두 명이 평원에서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정찰 임무였건만 예상치 못했던 적과 마주쳤던 것이 분명했다.


두 용병이 이틀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자 용병단장 아이단은 마렉과 게렌을 추가로 보냈었다. 이비와 리시타는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한 모습의 시신으로 돌아왔다. 시신은 하얀 천에 덮인 채 관에 들어갔다. 그 누구도 천을 들출 생각을 하지 못 했다.


용병단의 거의 모든 자들이 충격을 받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연인인 리시타를 잃은 피오나였다. 그 일이 있은 후 피오나는 두 용병의 영결식에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티이의 말에 따르면 그녀가 삼일 밤낮을 여관방에 틀어박힌 채 아무것도 먹지 않으며 울기만 했다고 한다.


"...분위기 되게 어둡네. 여기 용병단은 원래 이렇습니까?"


벌써 한 달 전의 이야기가 되었지만 말이다. 용병단의 차가운 정적을 깬 것은 사제복을 입은 한 청년이었다. 앞머리를 쓸어 올려 핀으로 고정한 그는 짜증난다는 듯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청년의 말에 주변을 스윽 훑어본 드윈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제님, 이들은 얼마 전 소중한 동료를 잃었습니다. 원래는..."


청년 사제가 드윈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용병들이야 하루에도 수십씩 죽어나가는데 그때마다 분위기가 이렇게 되나요? 용병도 꼴에 전우애 같은 건 있나보군요."


그의 말에 드윈의 눈썹이 작게 꿈틀거렸다. 그때였다.


쾅! 누군가가 탁자를 강하게 내리쳤다. 깜짝 놀란 청년 사제와 드윈이 고개를 돌리자 평소 말이 없던 황색 피부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등에 자신의 키만한 대검을 걸친, 2미터 가까운 거구의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창문이 가려져 잠시 용병단 안이 어두워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사내는 붉은 눈으로 사제를 노려보다 곧 용병단 문을 걷어차며 나갔다.


"어? 어어? 신참! 야, 허크!"


곧바로 그의 뒤를 게렌이 쫓아 나갔다. 허크의 박력에 잠시 어깨를 움츠렸던 청년 사제가 그들이 나간 문을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엉망이네요. 이 용병단은. 이래서야 이거, 믿어도 되겠나요? 타메인 사제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용병단을..."


끼익. 용병단의 문이 다시 열리며 차가운 바람이 용병단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용병단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하얀 사제모를 쓰고, 입 주변에 수염을 단정하게 기른 중년의 사내였다. 청년 사제가 그를 반갑게 맞았다.


"아, 타메인 사제님! 오셨군요!"


"허허, 디오엘 사제. 먼저 와있었군요."


타메인이 얼굴에 미소를 띠며 디오엘의 인사를 받았다. 자리에 앉아있던 드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그를 향해 인사했다.


"...! 타메인께서 직접 오실 줄을 몰랐습니다. 미리 연락을 해 주셨으면 마중을 나갔을 터인데..."


드윈이 고개를 돌려 모든 용병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자, 다들 인사드리도록. 이분은 타메인 사제님, 법황청의 상급 사제님이시다."


용병들이 잠시 웅성거리더니 하나둘 일어서더니 타메인 사제를 향해 경례를 해왔다. 타메인 사제가 그런 용병들을 둘러보며 손을 들어올렸다. 그가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타메인입니다. 드윈도 오랜만입니다. 여신님의 불민한 종복이 법황청의 칼을 뵙습니다."


"불민하시다니요. 어찌 그런 말씀을."


타메인이 빙그레 웃었다. 그가 잠시 입을 다물더니 이번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허허, 이 모든 것이 제 부주의의 소산인 것을... 어찌 불민하지 아니하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미리 보낸 서신은 읽어 보셨습니까?"


드윈이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서신을 흘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했다.


"운반 중 분신된 성물...에 관한 의뢰더군요."


"네, 맞습니다. 그다지 중요한 성물은 아니기에 분실해도 별 상관은 없지만... 역시 성물은 성물인지라..."


드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서신에는 얼음 계곡, 깊숙한 곳에서 성물을 분실했다고 되어 있었다. 지상으로 이동했으면 분실하지 않았을 터인데, 굳이 빠른 길을 택하다 성물을 분실한 셈. 그렇기에 타메인의 얼굴에도 미안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타메인이 말했다.


"그다지 복잡한 일은 아닙니다. 저희가 들러왔던 그곳에 마족의 기척은 없었으니까요. 그냥 여기... 디오엘 사제가 왔던 길을 돌아 성물을 되찾을 때까지만 엄호해 주시면 됩니다."


"음. 그것도 미리 생각하고 인원을 따로 차출해 뒀습니다."


드윈의 말에 타메인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 차출된 용병은... 지금 여기에 있습니까?"


타메인의 말에 용병단을 슬쩍 훑어보던 드윈이 굳은 얼굴로 데스크의 케아라에게 다가갔다. 드윈이 목소리를 낮춰 케아라에게 말했다.


"용병. 피오나는 어디에 있지? 그녀의 임무 아니던가."


케아라가 당황하며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그게 맞긴 한데... 아직 안 왔네요."


드윈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타메인의 앞으로 돌아와서는 말했다.


"아직 그 용병이 오지 않았군요.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그때였다. 끼익. 용병단의 문이 열리며 차가운 바람이 또 다시 밀려들어와 용병단 내부에 휘몰아쳤다. 타메인과 디오엘, 드윈과 케아라를 비롯한 용병들의 시선이 문에 꽂혔다. 그곳에는 롱소드를 허리에 차고 새하얀 방패를 팔목에 고정시킨 금발의 여성, 피오나가 서 있었다.


"..."


피오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서서는 잠시 안을 둘러보다 데스크의 케아라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눈동자는 연인, 리시타를 잃은 이후로 생기를 완전히 상실했다. 탁하고 슬픔에 잠긴 눈동자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애처로움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드윈이 말했다.


"왔군요. 디오엘 사제님의 호위를 맡을 피오나 양입니다."


피오나가 고개를 돌려 디오엘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두 사람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생기 없는 피오나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디오엘이 이마를 찌푸렸다. 그가 드윈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쏘아붙이듯 말했다.


"뭐야, 저 용병은 또 왜 저런 얼굴입니까? 저런 짜증나는 눈을 해서는 싸울 수나 있겠어요? 뭐, 용병 남자 친구라도 뒈졌답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재미있다는 듯 깔깔 웃어대는 것이었다. 디오엘을 바라보는 모든 용병들의 눈에서 살기가 치솟았다. 피오나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케아라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용병단의 내부의 살기 어린 반응에 디오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진짜인가요? 진짜로 죽었나봐?"


"흠흠... 디오엘 사제."


타메인 사제가 디오엘 사제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디오엘이 싱글벙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더니. 그러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어. 근데... 그거랑은 별개로 저는 잘 못 믿겠는데요. 저런 여자가 절 엄호한다고요? 영 불안해서... 잘 싸울 수나 있겠어요?"


그의 말이 끝나자 데스크 앞에 있던 피오나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녀가 한 걸음 한 걸음 디오엘을 향해 다가왔다. 그 모습에 드윈이 잠깐 손을 뻗어 그녀를 말려보려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한숨을 내쉬었다.


"...용병 아가씨?"


디오엘 사제는 자신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피오나를 바라보며 겁없이 그녀의 얼굴 바로 앞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댄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붉게 번뜩였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퍽! 쾅!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디오엘이 용병단 저 구석으로 처박혔다. 쌓여 있던 먼지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꽤 실력이 있는 용병들은 그 와중에도 그녀의 행동을 똑똑히 지켜볼 수 있었다.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흰 방패로 디오엘 사제의 복부를 강하게 가격한 뒤, 방패를 다시 들어올려 머리를 내려찍고 마지막 일격으로 반대쪽 팔꿈치를 이용해 머리를 강하게 내려친 것.


한순간에 다운 상태에 빠져버린 디오엘이 끅끅거리는 신음을 뱉으며 바닥에 웅크린 채 꿈틀거렸다. 피오나가 쓰러져 있는 그의 앞으로 서서히 다가와 허리를 숙이고는 싱긋 웃었다. 그녀가 말했다.


"당신 정도는 충분히 지킬 수 있는 능력이 되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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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늘한 냉기가 두 사람의 발끝부터 감싸며 올라왔다. 디오엘 사제가 부들부들 떨며 양털 겉옷을 껴입었다. 그가 이를 딱딱 떨며 칭얼거렸다.


"으, 으으으... 다시는 오기 싫었는데 젠장!"


반면 피오나는 약간의 노출이 있는 플레이트 아머만 입었으면서도 무덤덤하게 걸음을 옮겼다. 분명히 그녀가 더 추울 텐데도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디오엘 사제는 그녀에게 얻어맞은 얼굴과 복부를 문질거리며 그녀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피오나가 슬쩍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한 번 얻어터진 경험이 있는 디오엘은 서둘러 시선을 회피했다. 피오나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저나 어디부터 수색을 시작할 생각이십니까. 미리 말씀 드리는데 왔던 길을 돌아갈 뿐 한 번도 들리지 않았던 곳에는 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녀가 잠시 말을 끊고 숨을 돌린 후 계속해서 말했다.


"왔던 길은 안전이 최소한 보장되어 있지만, 이 얼음 계곡에는 특이한 생명체들이 우글거린다는 걸 명심하시길."


"누가 그런 거 모를까 봐. 그런 것 알려주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지요."


디오엘이 오들오들 떨며 더욱 양털 외투를 웅크렸다. 엄살 가득한 그의 모습에 피오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입김이 뿜어져 나오지 않을 정도로 주변의 온도에 익숙해질 때 즈음 디오엘이 손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여기서부터 성물을 수색하겠어요."


피오나가 허리춤에서 롱소드를 꺼내들었다. 제법 깊은 곳까지 왔는지 얼음 너머로 스며들어오는 햇볕도 약해 새볔녘 마냥 주변이 푸르게 보였다. 사제들의 말대로 주변에 몬스터는 없는 듯했다.


"히익!"


"음?"


그때 디오엘 사제의 짧은 비명이 들려왔다. 피오나가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바닥에서 솟구쳐 나온 어린이 키만한 디거 하나가 그 사나운 입과 이빨을 뻐끔거리며 몸을 위아래로 흔들어대고 있었다.


디오엘은 깜짝 놀란 듯 넘어진 채 얼음 기둥을 껴안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피오나가 그의 모습에 실소를 머금으며 롱소드로 망설임없이 디거의 몸체를 잘라냈다.


"끼이익!"


디거가 요상한 소리를 내며 양단되어 바닥을 굴렀다. 잘려나간 후에도 한참을 꿈틀거리던 디거는 잠시 후 조용해졌다. 그러자 얼굴이 창백해진 디오엘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흐트러진 옷을 추스리고 '흠흠' 하며 점잔을 빼는 것이었다. 피오나가 말했다.


"이곳에 디거는 많습니다.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다지 위협이 되지는 않습니다."


"아, 알아! 지난 번에도 봤다고!"


피오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뒤로도 수색은 계속되었다. 몇 번이나 디거에게 놀라 자빠지는 얼빠진 모습을 보고 있자니 피오나의 이마에도 혈관이 솟아오를 것 같았다.


"어라?"


디오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저 어두운 고석에서 은은한 녹색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피오나를 흘끗 바라본 그가 슬그머니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보지 않은 곳은 절대 가지 말라. 그녀의 경고가 있었지만 그의 호기심을 죽이기에는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피오나가 잠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그는 점점 더 그 녹색 빛덩이를 향해 다가갔다.


"음?"


그곳에는 초록색 위습 한 마리가 공중에 두둥실 뜬 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위습도 디오엘을 발견한 듯 그 초록색 몸체를 위아래로 격하게 움직였다.


위습을 난생 처음 보는 디오엘이 마냥 신기한 위습의 행동에 그것이 공격을 준비하는 동작인지도 모르고 가만히 서 있었다. 위습이 빠르게 디오엘을 향해 쇄도해 들어왔다.


"악!"


디오엘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의 몸이 차가운 바닥을 우당탕 뒹굴며 나가떨어졌다. 어느새 다가온 피오나가 그를 밀쳐내고 위습의 몸통 박치기를 방패로 막아낸 것이었다. 피오나는 그대로 방패를 내질러 위습을 가격해 소멸시켰다.


"어, 어어?"


디오엘이 얼빠진 모습으로 쓰러져 있자 피오나가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인간을 공격할 수도 있는 위습이라는 몬스터입니다.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곳은 거들떠도 보지 마시라니까."


"흥, 별일 없었잖아? 그럼 된 거 아닌가요? 용병?"


"위험합니다."


디오엘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가 차가운 얼음 바닥에 손을 짚고 일어서려 했다. 문득 그는 자신의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느꼈다.


그가 고개를 내려 손을 바라보자 작은 매듭 같은 것이 잡혀 있었다. 피오나 역시 그것을 본 듯 그 매듭이 길게 이어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꼬아진 로프는 앞으로 이어지다 갑자기 아래로 꺾여 있었다.


순간 피오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서둘러 외쳤다.


"디오엘 사제님! 잠깐...!"


그 순간 디오엘 사제가 손에 쥐어진 로프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쩌저적...


얼음판에 금이 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디오엘이 멍청한 표정으로 바닥을 바라보았다.


"어?"


얼음 바닥에 금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곧 피오나가 움직일 틈도 없이 산산조각나며 움푹 파여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람이 벗어날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순식간에 디오엘과 피오나가 서 있던 곳 또한 무너져 내렸다.


"으아악!"


디오엘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두 사람은 어디가 끝일지 모를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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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떨어졌을까. 바닥에 닿을 때의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던 것일까. 피오나는 머리가 깨질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정신을 차렸다. 주변에 영롱한 푸른 빛이 가득했다. 그의 앞에는 아직도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디오엘이 보였다.


그녀가 머리를 몇 번 흔들어 간신히 정신을 추스르고는 디오엘을 흔들어 깨웠다. 어디 심하게 다친 곳은 없는지 디오엘 또한 금세 정신을 차렸다.


"으윽... 머리야, 허리야..."


피오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앞에는 큰 공간이 있었다. 뒤와 옆을 보았다. 뒤에는 얼음벽이고 옆으로는 좁아 앞으로 갈 수밖에 없는 지형이었다.


피오나는 고개를 들어올려 위를 바라보았다. 그다지 깊지는 않은 듯 떨어졌던 곳이 보였다.


피오나는 벽을 살피다 길게 내려와 있는 로프를 발견했다. 나무로 엮인 로프였다. 아까 디오엘이 잡아당긴 것이 이 로프의 끝부분이리라. 오래 되었지만 얼음 속에 파묻혀 있었던 만큼 부식되지는 않은 듯했다. 피오나가 말했다.


"디오엘 사제님. 우선 먼저 타고 올라가시지요."


"에, 에에?! 이걸? 어떻게 올라가? 떨어지면 어쩌려고!"


디오엘이 손을 내저으며 로프를 타고 올라가기를 거부했다. 피오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그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말했다.


"빨리 올라가시라고."


"으으..."


마지못한 디오엘이 로프를 잡았다. 그때였다.


스스슥...


어디선가 음산한 소리가 들려왔다. 약간은 질척한 물기가 배어 있는 소리, 뭔가가 바닥을 기는 듯한 소리였다.


"..."


피오나가 경계하며 방패와 롱소드를 들어올렸다. 그녀가 말했다.


"뭔가 오는 듯하니 먼저 올라가시지요."


뭔가 오고 있다는 그녀의 말에 디오엘은 방금 전 어떻게 올라가냐는 말과 다르게 재빨리 로프를 잡고 기어올라 가기 시작했다.


피오나는 푸른 기운이 감도는 앞쪽에서 뭔가가 다가오는 것을 감지했다. 그녀가 꼴깍 마른 침을 삼켰다. 이윽고 그녀의 눈에 꿈틀거리는 사물이 들어왔다.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디거?"


놀랍게도 그것들은 그녀가 알고 있는 얼음 계곡의 디거였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바닥에 박혀 있지 않고 기어와...?"


놀랍게도 디거들은 늘 보아 왔던 것과는 달리 기어오고 있었다. 항상 위아래로만 움직이던 디거들이 마치 애벌레처럼 몸을 구부렸다 펴며 다가오는 모습은 혐오, 그 자체였다.


디거들이 피오나를 발견하고는 주둥이의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키이이..."


이윽고 떼를 지은 디거 중 한 마리가 피오나를 향해 몸을 날렸다. 제법 날렵한 디거의 쇄도. 방패를 들어올린 피오나는 곧바로 디거를 저 멀리로 쳐내었다. 초록색 체액을 내뿜으며 디거가 날아가 벽면에 처박혔다.


"큭, 너무 많...!"


피오나는 고개를 돌려 위쪽을 바라보았다. 디오엘 사제는 어느새 저 위까지 로프를 타고 올라가 이제 막 땅에 발을 딛고 있었다. 그 모습에 피오나 역시 올라가기 위해 뒷걸음질치며 로프를 잡았다.


한 마리가 피오나의 방패에 피떡이 되자 나머지 디거들은 그르륵, 거리며 그녀를 경계했다. 무작정 달려들지는 않는 듯했다.


그녀는 잠시 디거들을 노려보다, 재빨리 몸을 돌려 로프를 잡고 벽면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키에엑!"


피오나가 등을 보이자 광분한 디거들이 일제히 그녀를 향해 뛰어올랐다. 그녀가 로프에 매달린 채 벽면을 강하게 차자 그녀의 몸이 뒤로 쭉 밀려났다. 날아든 디거들은 애꿎은 빙벽에 머리를 처박고 체액을 줄줄 흘리며 바들바들 경련하다 이내 잠잠해졌다.


"너무... 많아!"


바닥은 이미 디거로 가득했다. 저기에 떨어진다면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어지리라.


피오나는 필사적으로 로프를 잡고 벽면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문득 무거워진 느낌에 고개를 내려 아래를 바라보았다.


"...!"


디거들이 로프를 타고 똬리를 틀며 그녀를 쫓아 올라오고 있었다.


"히, 히익!"


위에서 그 광경에 놀란 디오엘이 비명을 질렀다. 디거들은 피오나보다 빠른 속도로 타고 올라 그녀의 플레이트 갑옷에 이빨을 박아 넣었다.


"큭!"


비록 아직 뚫리진 않았지만 갑옷 여기저기가 우그러지는 느낌에 피오나가 작게 신음을 터뜨렸다. 어느새 피오나는 온몸에 디거를 잔뜩 붙이고 벽면을 타는 꼴이 되었다. 너무나 무거워진 탓에 로프가 끊어질 정도였다. 그때였다.


"시, 싫어... 그, 요, 용서하시오...!"


피오나는 눈동자를 크게 치켜뜨며 위를 바라보았다. 디오엘이 언제 챙겨 왔는지 모를 작은 칼로 로프를 썰어내고 있었다. 아마 디거가 따라 올라오는 것이 두려웠으리라.


피오나의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그녀가 외쳤다.


"그만둬!"


"미, 미안해요!"


서걱...


그 순간 피오나는 사방이 정적으로 가득한 것처럼 느껴졌다. 시끄러운 디거들의 괴성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저 서걱, 하고 로프가 잘리는 소리만이 그녀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다시 모든 현실의 소리가 그녀의 귓가로 파도치듯 밀려들어 왔다.


그녀의 몸이 디거들과 함께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잡고 있던 로프는 힘을 잃었다.


그녀는 수많은 디거들과 함께 허공으로... 그리고 점점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디오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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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는 기분 나쁜 감촉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힘겹게 눈동자를 들어올렸다. 아직 시야가 흐릿하게 보였다. 뭔가 형태가 보이는 것을 보아 빛이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작게 신음을 흘렸다.


"으...윽..."


어떻게 된 것이더라. 그래, 디오엘 사제... 그 작자가 나를 버리고 로프를 끊었다. 그리고 올라왔던 곳을 다시 떨어진 다음... 디거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달려들었었지...


그 뒤에? 분명히 엄청난 고통을 각오했었는데... 아, 그래. 디거들이 나를 물어뜯지 않고 어디론가 끌고 갔었지. 아주 거친 운반이었어. 이리저리 부딪히며 비명을 지르다가 결국 정신을 잃은 건가...


그녀는 머릿속으로 기억나는 것들을 떠올렸다. 조금씩 머릿속이 정리되며 정신이 수습되었다. 흐릿하던 시야도 다시 돌아오는 듯했다. 피오나는 힘겹게 눈썹을 들어올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뭐야."


그녀는 주변의 풍경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자 헉, 하고 신음을 터뜨렸다. 무언가에 잡아먹혔던 것일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방이 살점으로 가득했다. 꿈틀거리는... 시뻘건 속살. 마치 생명체의 내장 속 같았다.


그녀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디거들에게 물어뜯겼던 플레이트 갑옷은 너덜너덜해져 이제는 더 이상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 했다. 오히려 거슬릴 뿐이었다.


그녀가 힘을 줘 망가진 갑옷의 이음새를 부숴냈다. 너덜거리던 부위들을 전부 뜯어내고 나자 한결 나아졌다.


"여긴..."


피오나가 꿈틀거리는 벽면, 아니 살점에 손을 가져다 대자 벽이 꿀럭거렸다. 주변을 둘러보자 이 안쪽은 제법 넓었다. 원통형 생명체?


그녀가 고개를 들어올리자 위쪽 천장은 빛이 들어오는 빙벽이었다. 아마도 원통형의, 입을 위로 향한 생명체의 안인 것 같았다.


피오나는 벽면의 살점을 움켜쥐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뜨겁고 끈적거리는 체액이 미끈거려 몇 번이나 떨어질 뻔했다.


꽤 긴 시간을 안간힘을 쓴 끝에 그녀는 빙벽과 이 생명체의 '입' 사이에 거의 도달했다. 그녀가 바깥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순간, 살점을 잡고 있던 손이 미끄러지며 그녀의 몸이 크게 휘청했다.


"으윽!"


밖으로 뻗은 손으로 뭔가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것을 뽑음과 동시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퍽!


"아, 아야야..."


피오나는 신음을 흘리며 자신의 엉덩이를 어루만졌다. 다행히 바닥 또한 물컹한 살점으로 이루어져 있어 다친 곳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뽑아낸 무언가를 들어올려 바라보았다.


"...이건..."


그녀의 손에는 익숙한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아니, 생소하다고 해야 할까? 분명히 이 모양은 그녀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크기는 자신이 알던 것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디거의 이빨이었다.


"어떻게... 이런 크기가..."


이빨 하나가 피오나 자신의 팔뚝만한 크기였다. 전체의 크기는 어떨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녀가 지금까지 봐왔던 가장 큰 디거, 퀴르미갈조차 이빨의 크기가 이것의 절반조차 되지 못 했다.


문득 그녀는 불길한 생각에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위로 높게 치솟은 원통형의 공간... 사방의 살점... 그리고 이 거대한 이빨. 피오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설마... 디거의 뱃속? 그럴 리가... 이렇게 큰 디거는 본 적도 들은 적도..."


피오나는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나 그곳에 있어야 할 롱소드는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방패 또한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녀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때였다.


"키익..."


가래가 끓는 듯 섬뜩한 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한 구석에 작은 알들이 잔뜩 붙어 있었다. 디거의 알? 그 중에서도 가장 단단해 보이는 알의 껍질에 금이 가 있었다.


피오나는 그 장면을 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디거의 생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난태생인지 아니면 알을 낳는 생물인지조차. 양성인지 무성인지, 새끼는 어떻게 낳는지도...


"키익!"


잠시 후 알이 깨지며 그 속에서 작은 디거 한 마리가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피오나를 발견하고는 방금 태어난 것이라 생각하지 못 할 정도로 빠르게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큭!"


그녀는 자신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는 디거를 단번에 걷어찼다. 아직 새끼라 몸체가 약했던 작은 디거는 그녀의 발길질에 전신이 터져나가며 체액을 사방에 흩뿌렸다.


"하아... 여길 나가야 해."


그때였다. 새끼 디거가 터지며 사방에 체액이 뿌려지자 잠시 후 사방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피오나의 눈동자가 커졌다. 점차 벽면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


피오나가 깜짝 놀라 발을 옮기려 할 때였다. 그녀의 발이 바닥의 살점에 파묻혔다. 비틀거리던 그녀가 한쪽 팔로 벽면을 짚었다. 그러자 그녀의 팔이 살점에 파묻혔다.


"이게... 무슨...!"


양쪽 발과 한쪽 팔을 움직일 수 없게 된 피오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벽면의 수축은 한 평 남짓한 공간의 여유를 남기고 멈추었다.


"앗!"


벽면에서 붉은색의 두꺼운 촉수가 빠르게 튀어나오더니 그녀의 자유롭던 나머지 팔 하나마저 낚아챘다. 사지를 속박당한 피오나가 버둥거리며 몸을 비틀었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그녀가 몸을 비틀어 댈 때 정면의 벽에서 묘한 현상이 나타났다. 살점 속에서 인간의 것과 비슷하게 생긴 눈동자가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눈동자는 주변을 살피다 피오나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잠시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던 눈동자는 시선을 옮겨 바닥에 차갑게 식어가는, 새끼 디거를 보며 바들바들 떨렸다. 이윽고 눈동자는 다시 살점 속으로 쏙 사라졌다.


"아?!"


변화가 생겼다. 이 거대한 디거는 자신의 속에 묘한 액을 분비해내기 시작했다.


피오나의 머리카락에, 어깨에, 몸에 디거의 액체가 잔뜩 흘러내렸다. 그 불쾌한 느낌에 그녀가 몸을 비틀었다.


끈적이는 액체를 뒤집어쓴 그녀는 버둥거렸다. 입으로 약간 스며든 디거의 체액은 비릿했다. 그녀가 재빨리 액체를 뱉어냈다.


"으...윽...?"


치직... 그녀의 전신에 타들어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기화되는 연기도 서서히 솟아올랐다. 아니, 그녀의 몸이 아니었다.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던 금속들이 일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어째서... 소화액? 그렇다면 나는 왜...!"


인간의 연약한 육체보다 금속이 먼저 녹아내렸다. 그 기이한 현상에 피오나는 잠시 의아함을 표했지만 그런 것을 생각하는 것조차 여유였다. 피오나는 안간힘을 다해 버둥거렸으나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


툭, 투둑, 툭...


몸을 감싸고 있던 그나마 멀쩡하던 플레이트 갑옷이 하나둘 녹아내린 조각으로 바닥에 떨어졌다. 갑옷을 연결하던 천 조각들도 그 위에 떨어졌다. 어느새 피오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서 있었다.


"아!"


피오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갑옷들이 전부 사라지자 벽면에서 서서히 그녀의 팔을 속박한 것과 비슷하게 생긴 굵고 가는 촉수들이 잔뜩 솟아났다. 리시타와의 관계에서 처음 봤던 남성의 성기를 연상시키는 모양의 촉수도 있었다.


"윽, 무슨... 그만둿!"


붉은색의 촉수들은 끈적한 체액을 분비하며 피오나의 전신에 서서히 감겨왔다.


손목을 타고 팔목으로, 그리고 어깨로. 가슴을 감싼다.


발목을 타고 허벅지로, 그리고는 엉덩이를 감싸고 사타구니 사이에 똬리를 튼다.


"윽! 그만! 그만둬!"


피오나는 디거들이 자신의 요구를 들어줄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필사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어디선가 보았던 문헌. 그것에는 가끔 하등 생명체 중에는 자체 생식도 가능하지만 다른 생명체의 자궁을 이용해 생식하기를 선호하는 종도 있다고...


그것을 떠올린 피오나의 표정은 더욱 창백해졌다.


"싫...어, 그런 짓 당할까 보냐! 힉!"


그러나 그녀는 곧 숨을 크게 들이키고 몸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다리를 단단하게 속박하던 바닥의 살점이 점차 옆으로 벌어졌다. 그녀의 다리 역시 민망할 정도로 쩍 벌어졌다.


곧 갈라진 바닥에서 뭔가가 솟아올랐다. 그것은 인간 남성의 성기와 비슷하게 생긴, 그러나 굵기와 길이는 그것보다 훨씬 굵고 긴 촉수였다.


자신의 허벅지만한 촉수가 올라오자 피오나는 그녀답지 않게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런 거... 들어갈 리가...! 리시타, 도와줘!"


그녀가 결국 리시타의 이름을 울부짖으며 눈물을 터뜨렸다.


그때였다. 그녀가 울음을 터뜨리며 입을 벌리자 두꺼운 촉수 하나가 곧바로 그녀의 입에 박혀들었다.


"읍! 흐읍!"


그녀가 눈을 부릅뜨며 눈물을 흘렸다.


단번에 그녀의 입을 점령한 촉수는 그 속에서 더 가느다란 촉수를 뿜어내 그녀의 목구멍까지 파고들었다. 피오나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버둥거렸다.


수많은 촉수들이 그녀의 몸에 얽혀들었다. 또 다른 촉수가 봉긋한 가슴에 강하게 똬리를 틀었다. 그녀가 고개를 젖히며 버둥거렸다. 그녀의 허리에도 촉수가 감기고 허벅지에도 촉수가 감겼다.


바닥이 상승하여 벌려진 다리가 약간 들어올려졌다. 이 디거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더 자연스럽게 인간 여성을 범할 수 있는지 이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흐급! 읍! 으읍!"


그녀가 입안의 촉수를 깨물며 발악을 했다. 그러나 생각 외로 질긴 촉수는 그녀의 턱만 아프게 할 뿐이었다. 놀랍게도 입안을 점령한 촉수는 그녀가 조금이지만 숨을 쉴 수 있게 조절을 하고 있었다.


"으, 읍!"


입안의 촉수가 앞뒤로 움직이며 피스톤 운동을 시작하자 피오나의 입가를 타고 그녀의 침과 촉수의 체액이 흘러내렸다.


촉수는 쉬지 않고 그녀의 가슴을 범했다. 끝이 갈라진 촉수가 그녀의 봉긋한 가슴으로 달려들었다. 갈라진 틈 사이로 유두를 콱 머금은 촉수가 그 속에서 실과 같이 작은, 수많은 촉수를 뿜어내 유두를 자극했다.


그녀의 작은 꼭지가 실뱀과 같은 촉수들에게 휘감기고 빨려들 때마다 피오나는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흐읏, 읏!"


촉수가 그녀의 목을 휘감는다. 가슴을 휘감고 허리를 휘감는다. 그녀는 마치 촉수로 온몸을 휘감은 미이라 같았다. 혐오스러운 붉은 촉수가 연신 끈적거리는 촉수로 그녀의 전신을 적신다.


"하, 하읏!"


어쩔 수 없을 정도의 쾌감이 온몸을 자극하며 신음을 유도한다. 촉수는 집요하게 그녀의 민감한 부분만 골라가며 자극했다. 학습 능력까지 가진 듯, 그녀의 반응을 천천히 살피다 그녀가 크게 반응하는 부분만 골라 자극한다.


그녀는 촉수가 잠시 입을 빠져나간 사이에 간신히 말했다.


"흣, 흐읏! 거짓말... 아, 아아... 디거 따위에게...!"


피오나는 이미 자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음부는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녀의 여성은 남자의 성기를 받아들이기 위해 충분히 젖어갔다. 그러나 곧 들어올 대상은 남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피오나는 자신이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치욕을 느끼고 울상을 지었다. 눈물과 침이 그녀의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하, 읍!"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몸은 녹초가 되어 축 늘어졌다. 그녀의 반응이 강한 부분만 골라 자극해 오는 촉수 앞에 피오나는 점차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그녀는 자신의 아래를 압박해 오는 무거운 무언가를 느꼈다.


"아...아..."


촉수를 목구멍 깊이까지 머금은 채 피오나는 간신히 눈동자만 아래로 내려 밑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허벅지만한 생식용 촉수가 그녀의 작은 입구에 비벼지고 있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할 정도의 자극 속에 잔뜩 젖은 그녀의 꽃잎은 피오나 자신도 믿지 못 할 정도로 음란하게 애액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이 촉수의 체액인지 아니면 자신의 애액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마치 머릿속이 붕 뜬 기분이었다.


"으...긋..."


쩌적...


점차 중압감이 그녀의 아랫배를 짓누른다. 두꺼운 무언가가 그녀를 뚫어버리기 위해 힘을 준다.


강한 고통과 쾌감이 뒤섞여 머릿속과 몸을 지배했다. 그러나 그녀는 비명 지르지는 않았다. 머릿속이 어떻게 되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흡!"


그 순간 그녀는 머릿속의 뭔가가 끊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몸이 강하게 아래로 내려갔다. 그와 동시에 음부가 크게 벌어지며 거대한 기둥이 그녀의 음부를 꿰뚫었다. 강렬한 쾌감, 고통이 동시에 몰려왔다.


"흐그! 으으읍!"


자신의 허벅지만한 촉수가 뱃속에 들어온 것을 확인한 피오나가 고개를 떨어뜨리고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표정으로 신음을 흘렸다. 거대한 것이 들어온 아랫배의 윤곽이 선명했다.


"으그...급..."


피오나의 상태가 어떻든 촉수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입 안의 촉수는 그녀의 목구멍을 괴롭히다 어느 순간 부풀었다. 입 안에서, 목 안에서 촉수가 부풀자 피오나는 숨이 턱 하고 막혀왔다. 그녀의 몸이 본능적으로 버둥거렸다.


"그으읍!"


목구멍으로 촉수의 체액이 쏟아져 들어왔다. 촉수의 겉에 잔뜩 묻어있는 체액과 달리 더욱 비릿한 향과 맛에 머릿속이 멍해진다.


다 삼키지 못한 체액이 입술을 비집고 역류했다. 새하얀, 남자의 정액보다 그 농도가 짙은 정액이었다.


피오나는 숨을 쉬기 위해 그것들을 전부 삼켰다. 눈물이 마르질 않았다.


"흡!"


피오나는 상체를 약간 웅크렸다. 하반신의 그 거대한 촉수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마치 제삼자가 된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마치 본인의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보는 것만 같았다.


거대한 촉수가 그녀의 질을 들락날락한다. 배꼽까지 촉수의 윤곽이 볼록 솟아올랐다가 빠져나간다. 유두와 음핵에 계속되는 자극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한 쾌감이 그녀를 덮쳐 왔다.


"하아...앙!"


그녀가 정액을 전부 삼키자 입의 촉수가 빠져나갔다. 피오나는 잠시 숨을 돌렸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일 뿐, 또 다른 촉수가 우격다짐으로 그녀의 입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그저 신음을 흘리며 받아들일 뿐이었다.


"흐읍...! 으...! 아아!"


곳곳에 힘줄까지 솟은 거대한 촉수는 점차 그 삽입 운동의 속도를 높여갔다. 피오나의 애액과 촉수의 체액으로 잔뜩 젖은 접합부는 촉수가 드나들 때마다 찔꺽이는 음란한 교접음을 만들어 냈다.


"힉, 히익..."


피오나의 표정에 더 이상 고통과 공포는 없었다. 쾌락이 그 부분을 거의 몰아내고 있었다.


촉수는 더욱 속도를 높여 그녀의 질을 마구 범했다. 마치 사내가 여인을 범하듯, 빠른 속도로 그녀의 질에 자신의 생식용 촉수를 박아댄다.


"흐아...하아, 그마안..."


그녀가 힘겹게 말을 쥐어 짜낸다. 그러나 촉수가 멈출 리 없었다. 그녀의 눈물은 어느새 멈춰 있었다. 멈추었다기보단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어 말랐다는 표현이 옳을지도 모른다.


"읏..."


그 거대한 촉수가 그녀의 보지를 마구 유린할 때마다, 촉수가 빠져나올 때마다 그녀의 선홍빛 질벽이 조금씩 딸려나왔다 들어간다.


작은 촉수들이 그녀의 다리 사이로 몰려들어 딸려나오는 질벽을 비벼댄다. 그때마다 피오나는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아아, 하악! 아, 흐윽! 아...?"


비명을 지르던 피오나가 순간 의문을 터뜨렸다. 깊게 삽입된 촉수가 갑자기 멈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곧 다시 신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뱃속에서 자궁구에 바짝 끝을 가져다 댄 생식 촉수. 곧 촉수의 끝이 갈라지더니 가느다란 관과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힉!"


피오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굳게 닫혀져 있던 그녀의 자궁구를 촉수의 얇은 관이 비집어 열고 들어간 것이다. 그녀가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젖혔다.


그 순간 엄청난 양의 무언가가 그녀의 자궁 속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촉수가 꿀럭거리며 액체를 주입하는 것이 그녀의 눈에도 똑똑히 들어왔다.


"흐읍, 읍! 으으읍!"


그것이 무엇인지는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방금 자신에게 촉수가 먹였던 바로 그 정액이리라.


피오나는 자신의 뱃속, 자궁이 빵빵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랫배가 땅길 정도로 정액이 강제로 주입되고 있었다. 마른 줄 알았던 그녀의 눈물이 다시 쏟아졌다.


"싫...어엇!"


피오나의 아랫배가 촉수의 윤곽 외의 볼록한 새로운 윤곽을 만들어냈다.


한참을 그녀의 자궁 속에 사정하던 촉수는 그녀의 배가 한눈에 보기에도 부풀었다는 것을 알 정도가 되자 멈추었다.


"싫어... 이런 거..."


디거에게 있어 이 행위는 중요한 듯 그녀의 입을 범하던, 가슴을 범하던 모든 촉수들이 활동을 멈추었다. 그러나 그녀를 붙잡고 있는 것은 여전했기에 그녀는 몸부림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아... 하아..."


그녀는 몽롱해진 눈, 침이 줄줄 흐르는 입가, 엉망이 된 얼굴로 자신의 아래를 바라보았다. 마지막 의식이 희미하게 남아 자신의 추한 꼴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아..."


피오나의 아랫배에 정액을 주입하던 촉수는 그 꿀럭거림을 멈춘 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는 점차 그 색을 변화시켰다.


붉은 촉수는 보라색으로 변하더니 점점 반투명해졌다. 속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투명해진 촉수는 아직도 자궁에 박혀있는 관을 점차 확대시켰다.


"흡! 으읍!"


자궁구가 벌어지는 느낌에 피오나가 크게 신음을 터뜨리며 사지를 떨었다. 그러나 몸부림의 수준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이미 그럴만한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촉수가 하는 짓을 지켜보았다.


"...!"


반투명해진 촉수의 속에서 둥그스름한 무언가가 점차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둥긍둥글하고 약하게 생긴, 안쪽의 핵이 다 보이는 그것은 분명한 알이었다. 디거의 알.


피오나는 마지막으로 다리를 흔들며 저항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효과도 가져오지 못 했다.


잔뜩 정액이 뿌려진 그녀의 자궁을 향해 아직 수정되지 않은 알들이 다가온다. 피오나는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


벌어진 자궁구를 더욱 벌리고 디거의 무정란이 자궁 속으로 들어간다.


하나, 둘, 셋, 넷...


끊임없이 들어오는 알의 느낌에 그녀의 허리가 부르르 떨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피오나는 더 이상 들어오는 알의 감촉이 느껴지지 않자 눈을 뜨고 자신의 아랫배를 바라보았다.


피오나의 아랫배는 마치 만삭의 임산부처럼 크게 부풀어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매끈하지 않고 알들의 윤곽으로 우둘투둘하다는 것 정도.


피오나는 그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마지막 이성의 끈을 놓았다.



.

.

.

.



"아...아앙."


이미 예전의 인격을 완전히 상실한 피오나는 혀를 입 밖으로 빼문 채 울음을 터뜨렸다. 침을 줄줄 흘리며 고개를 제대로 가누지 못 한다. 눈동자는 반쯤 돌아가 흰자위를 내보이고 있었다.


"하으읏!"


그녀가 크게 신음을 터뜨리자 그녀의 너덜해진 질구가 벌어지며 수정된 디거의 알이 주륵... 하며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의 밑으로는 수십, 수백, 수천 개의 알 껍질들이 즐비했다. 이미 부화한 알들도 상당수인 듯했다.


꼬물꼬물 기어나온 새끼 디거들은 거대한 디거의 외벽을 뚫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나면 외벽은 금방 재생된다.


"아아, 얘들아... 디오엘... 그 자를..."


며칠, 몇 십일, 몇 백일이 지났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수정되고, 산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오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중얼거린다.


"죽...여."



.

.

.

.



"디오엘 사제님, 굳이 따라오실 필요는..."


"아하하, 저와 함께 임무를 수행하다 실종된 용병이니... 제가 함께 수색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드윈은 얼굴에 미소를 띤 채 말하는 디오엘을 보며 의아함을 느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용병이라면 소모품 취급하던 그가 아니던가? 그래도 그 역시 정이란 게 있었던 걸까.


드윈은 디오엘을 슬쩍 보다가 걸음을 옮겨 수색대개 정찰 중인 곳으로 걸어갔다.


"..."


디오엘은 저 멀리서 빙판을 수색 중인 드윈과 수색대를 흘끗 보고는 몸을 돌려 어딘가로 달려갔다.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가 품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회색 점토를 꺼내었다. 그가 중얼거리며 뜀박질을 더욱 빠르게 했다.


"아, 안 돼... 그들이 그 년을 찾게 되면... 내가 한 짓을 알게 되면...!"


디오엘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그때 그 장소를 찾았다.


"이, 이쯤일 텐데...!"


한참을 달리며 주변을 살피던 그가 드디어 피오나를 버렸던 그 장소를 찾아냈다. 그는 조심스레 그곳으로 다가갔다.


그때 만들어진 깊은 구덩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그때보자 많아진 디거들이 징그럽게 우글거렸다.


"우욱!"


디오엘이 헛구역질을 하며 벽면에 새하얀 폭발성 점토를 붙였다. 그가 떨리는 손으로 불을 피워 점토에 불을 붙였다. 점토는 점차 타들어갔다.


"아, 아아! 빨리...!"


그는 느리게 타들어가는 점토를 보며 속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뒤에서 드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이윽고 치직, 하는 소리가 멈추었다. 디오엘이 서둘러 몸을 숙이고 웅크렸다.


콰광!


굉장한 폭음이 지축을 흔들었다. 점토가 폭발하며 벽면을 무너뜨리고, 부서진 빙벽이 구덩이를 메웠다. 다시는 그 속에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게끔. 그리고 이내 조용해졌다.


"아하...아하하... 됐어...  이제 나, 디오엘이 한 짓은 이젠 아무도, 아무도 몰라."


주저앉은 디오엘이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그 계집년은 결코 나올 수 없다. 이걸로 자신이 한 짓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으리라.


유쾌하고, 통쾌했다. 그가 고개를 젖히고 천장을 바라보며 미친 듯이 웃었다.


"아하하! 아하하하!"


"...디오엘?"


한참을 웃던 디오엘은 누군가의 목소리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마치 찬물을 끼얹은 듯했다.


그가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그 목소리는 분명 '피오나'라던 여성의 목소리였다.


디오엘은 두리번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죽여...?"


그것은 그의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디오엘의 머리 바로 위에 새빨간 디거 한 마리가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디거는 어딘가 모르게 다른 디거들과 달랐다. 입 속의 또 다른 입은 마치 인간의 입술 같았다.


거대한 이중턱이 그의 이마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디오엘은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입술이 달싹거렸다.


"디오엘... 죽여."


무언가가 터져 나가는 섬뜩한 소리가 얼음 계곡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