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벅...터벅...


우거진 수풀 사이로 한 사내가 걸어옵니다.


식물 줄기들이 얼굴에 닿을세라 양팔을 휘휘 저으며 걸어오는 모습은 영락없는 시골 마을 이장님입니다. 희끗희끗 흰머리로 가득한 머리, 노년의 주름살, 끈을 목에 걸어 죽 늘어뜨린 밀짚모자,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유아처럼 순수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는, 시민 노무현입니다.


"그...거기에 왜 있습니까?"


그런 노무현의 앞에 혀를 밖에 내밀고 한바탕 숨고르기를 하는 반려견의 이름은 코코. 산책을 보채는 코코에게 억지로 이끌려 왔지만 이내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말을 한동안 잃습니다.


휘이이이이...

기분 좋은 바람이 그의 몸을 가볍게 감쌉니다. 적당한 햇살, 높낮이를 보여주는 초록색으로 빽빽이 우거진 숲,  저 한편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건물들. 아름답습니다.


그런 풍경의 유혹에서 위화감을 느끼고 제정신을 차리게 된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코코가 서 있는 곳이 무척 위험한 곳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코코가 네 발로 바닥을 딛고 서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낭떠러지 위였습니다.


"하라보지 따라오너라~"


평소처럼 노무현은 코코에게 등을 보인 후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이상합니다. 네 발로 지면을 박차며 들려야 할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노무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짓더니, 몸을 돌려 코코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샛노란 털 뭉치와 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이쯤 가면 막 가자는 거지요?"


노무현은 코코를 덥석 들어 두 팔로 감싸 안으며 배에 밀착합니다. 이제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모든 것은 순조로웠습니다.



철푸덕.



단발마의 마찰음을 마지막으로 중년의 남성과 반려견은 낭떠러지에서 미끄러진 채 숲속에 삼켜져 영영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망각에도 삼켜져 그가 사라진 현세는 그를 잊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을 잃은지 얼마나 지났을까 


중년의 남성은 안면에 뜨거운 액체가 흐르는 불쾌한 감각을 접하는 것을 계기로 천천히 눈을 뜹니다.


낮선 천장입니다. 

그러나, 그는 살아있습니다. 안도감이 몰려옵니다. 안면에 흐르는 액체를 손등으로 닦아냅니다.


그 액체의 정체는 노무현 자신에게서 새어 나온 붉은 피였습니다. 그런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 


그런데... 그런데... 무언가 허전합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코코가... 사라졌습니다.


자신을 따라온 샛노란 털 뭉치의 존재를 떠올린 노무현은 황급히 지면을 박차고 일어나 주위를 살핍니다. 바닥에 흐른 피투성이에도, 수풀 속에도, 나무줄기 어딘가에도 코코의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찾아야만 합니다.


노무현은 코코를 부르짖으며 잘 닦아진 길을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잘 닦아진 바닥은 주위에 마을이 있다는 이정표입니다만, 다급해진 그에게는 그것까지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찰랑찰랑찰랑.


그렇게 한참을 코코의 이름을 부르며 걸었던 그때, 나뭇잎과 나뭇가지가 서로 부딪히고 마찰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코코일지도 모릅니다. 아니여도 상관없습니다. 노무현은 소리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나갑니다. 


"코코야! 코코 대답하래이~"


전속력으로 달리던 노무현이 멈춰섰습니다. 이는 무언가와 조우를 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생김새가 상당이 특이합니다. 코코가 아닌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