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씨, 현실 조작으로 제 월금 좀 올려주시면 안되나요?"

"그게 이미 올려드린 겁니다. 최시아 박사."

"진짜요?"

"진짜겠습니까? 현실 조작은 그런 사소한 데 쓰라고 있는 능력이 아닙니다."

"으에에에..."


보호관찰대상 0호, 속칭 영호.

이게 현재 저를 부르는 이름입니다.

그리고 옆의 이 인간은 제 전담 연구소장... 아 그건 아직이었나? 선임 연구원인 최시아. 이래 보여도 젊은 나이에 박사 학위를 2개나 딴 미치광..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대체 일은 왜 해야 하는 걸까요. 그냥 모두 다 놀고먹는 행복한 세상이면 좋을텐데."

"놀고 먹는건 모르겠지만 '행복'한 세상이라면..."

"엑? 그건 또 가능해요?"

단 한명도 빠짐없이 '행복' 했던 세상.

환한 미소 외의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던 세상.

으음... 최시아 선임연구원이 제 아픈 기억을 건드네요.

벌로 커피를 빼앗아 한번에 마셔버렸습니다.

"아니 내 생명수가!!!"

불쌍한 사축 박사의 절규를 들으며 즐기는 싸구려 믹스커피의 단 맛은 나름 별미였습니다.

"14개의 미래를 봤지만, 어차피 바닥에 쏟을 운명이었습니다."

"고작 14개?"

"뭐가 됐던 최시아 선임연구원이 생각한 것과는 다를 겁니다."

"커피가요?"

"커피도 커피지만 '행복'이요."

제 능력이 전능하다는 착각에 빠져 살던 시절 저질렀던 실수.

돌아올 수 없고, 돌아와서도 안 되는 낙원.


와작


손 안의 우그러든 종이컵을 쓰레기통을 향해 던져보지만 가장자리에 맞고 튕겨나와 버렸습니다.

"방금 저는 종이컵이 쓰레기통에 들어가기를 바라며 던졌습니다. 하지만 결국에 저 종이컵이 쓰레기통 안으로 들어갈 운명이라면, 그리고 그걸 알고 있다면 그 바람에 의미가 있을까요?" 

"영호씨..."

"행복도 결국 그런 바람이 있기에 의미가 있는 겁니다. 거저 주어지는 것은 그 의미를 변색시킬 수 밖에 없습니다."

"실패해 놓고 그런 말 하셔도 뻘쭘해서 말 돌리는 걸로밖에 안 보여요. 그리고 쓰레기는 가서 직접 버리세요."

"...그러고 싶지만 이제 곧 시작입니다."

"뭐가..."


콰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연구실의 <벽이 터져나가며 폭발에 휩쓸린 최시아 박사가 산산조각났습니다.>

'이건 회수'

굉음과 함께 연구실의 <벽에 구멍이 뚫리며 그 여파에 휩쓸린 최시아 박사가 바닥을 나뒹굴었습니다.>

'수정'


"꺄아아악!"

다행히 찰과상 외에 큰 부상은 없어 보이네요.

"아니 갑자기 이게 뭔 날벼락...!"

"최시아 박사의 커피를 바닥에 쏟을 뻔 한 범인들입니다."

"네?"

"다른 말로 테러리스트라고도 하죠."


벽에 뚫린 구멍 너머에서 고함에 이어 뭐라 웅성거리는 소음이 들려왔습니다. 당황한 듯 하네요. 벽을 통채로 날려버리려 했는데 작달막한 구멍 하나밖에 못 뚫었으니 그럴 만도 하죠.


<벽이 터져나가며 폭발에 휩쓸린 최시아 박사가 산산조각났습니다.>

=>

<불발했던 폭탄들이 터져나가며 폭발에 휩쓸린 테러리스트들이 산산조각났습니다.>

'인과 수정, 재배치'


콰아아아앙!!!


"끄아아아아악!!"

"아아악! 내 다리!!!"


구멍 너머에서 다시 한 번 폭음이 울려퍼지며 운 좋게도 살아남은 테러리스트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으윽... 이게 무슨..."

"뻔하지요. 감히 신의 뜻을 연구하냐는 쪽이거나 악마를 하루빨리 죽여야 한다는 쪽이거나."

괴이가 나타나며 사회가 혼란에 빠지자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정부에 항의를 하는 세력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정부나 사회야 제 알 바는 아니지만

"...감히 누구를 건드리려고...!"

'인과 재배...'

"영호씨 진정! 진정! 또 눈 돌아갔어요!"

"...아? 음. 죄송합니다. 못볼 꼴을 보였군요."

상황이 다 정리된 마당에 으르렁 거리며 힘자랑 해 봤자 꼴사나울 뿐이죠.

"나머지는 경비대 분들에게 맡기도록 하죠. 그리고..."


<저는 따뜻한 녹차라떼 한 잔을 최시아 박사에게 건넸습니다.>

'수정'

"카페인 좀 줄이십시오."

"엑 녹차 텁텁해서 싫은데."

"라떼는 먹다 보면 달달합니다."

"잠깐! 이거 어디서 났어요! 사소한 데 쓰라고 있는 능력 아니라며!"

"...다음 정기 실험 때 뵙겠습니다."

"영호씨? 제 월급은요? 어떻게 한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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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과거가 있고 나름 멋있는 말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외모 때문에 중2병 걸린 소녀로 보이는 현실조작 틋녀! 그리고 허접해 보이지만 나름 유능한 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