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청하가 거창하게 말하고는 내 손을 잡아채더니 어딘가로 끌고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끌고간다기 보다는 내가 청하의 발에 맞추어 같이 걸어가는 것에 가까웠지만.


내 앞에서 먼저 걸어가는 청하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팍에 두 개의 거대한 언덕에 비해 키가 생각보다 작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160쯤인 내 키보다도 더 작아보이는 걸 보면 가슴만 빼고 본다면 어린애랑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그런 작은 키를 분위기라고 해야하나, 느껴지는 기운같은 것으로 메꾸다보니 작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지금도 청하에게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다른 종족들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가만히 보는 것만으로도 이 종족은 나와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무언가가.


…앞에서 신나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전혀 그런 느낌을 안 줄 것처럼 보였지만… 글쎄.


사장님과 대화할 때의 모습을 장난이라고 봐야할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느낌상으로는 장난에 가까웠던 느낌이었음에도 그런 느낌을 받게 했으니.


아마 진지해지거나 급한 상황이라면 분위기가 휙휙 바뀌는 편이지 않을까 싶었다.


뭘 그리 쳐다보고 있는 게냐.


"내 모습에 반하기라도 했느냐?"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때문에 그렇… 아. 그렇군. 내 키때문에 그런가."


"실례되는 발언일지도 모르겠지만, 처음 봤을 때에는 전혀 몰랐습니다."


"음, 음.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어. 아마 용으로서 가지는 품격, 아니면 기운때문에 그런 것이겠지."


이것때문에 인간, 아니. 사람들도 좀 두려워하거나 매번 격을 갖춰야 한다면서 곤란했느니라.


그렇게 내 머릿속에서 말하는 청하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쓸쓸해보였지만, 안 지 몇십분밖에 되지 않은 나로서는 뭐라 말할 수 없었다.


뭘 안다고 위로를 해주겠는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데.


뒤에서 그저 그렇습니까. 하고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청하의 뒤를 따라갔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같은 인, 사람은 꽤 귀하느니라."


"예?"


"옛 인간들은 내가 손을 잡기라도 했다가는 경을 치면서 고개를 조아리고 살려달라 사죄를 빌었으니."


"…지금이라도 그렇게 해야 합니까?"


"아니! 제발 그러지 말아주게나. 나도 처음에야 그렇게 반응하는 인간들을 신기하게 보았지만, 고작 며칠만에 내가 불편할 지경이 되었으니라!"


청하가 걷던 것을 멈추고 급히 뒤를 돌아서서는 내 쪽을 바라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파란 모습에 눈동자도 파란 색일까 궁금해 청하의 눈동자를 보니 하늘과 우주의 사이에 있는 어두운 청색이었다.


…카페에서 얼핏 봤을 때에는 이렇게까지 어두운 색은 아니었던 것 같았는데.


"어흠, 에흠. 아무튼, 이제는 관련없는 이야기이니 부디 그런 반응을 보이지는 말아주게나. 나도 질색이니."


"알겠습니다."


"…아까부터 생각했던 것인데, 내가 혹여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라도 있는가?"


"아닙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하는 말들이 전부 딱딱하지 않나!"


허리춤에 양 손을 대고는 내게 항의라도 하듯이 따져 묻는 청하의 말에 뭐라 할 말은 많았지만, 하지는 않았다.


이게 말버릇이라 어쩔 수 없는데.


남들에게 좀 더 친절하게 말해도 괜찮겠지만, 어렸을 적부터 이렇게 말하는 게 일상이었다보니 자연스럽게 붙은 말버릇이라 떼기가 힘들다.


이걸 모르는 청하의 입장에서는 강제로 끌고가는 것에 불만이 있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건… 제 말버릇이 그래서 그렇습니다. 딱히 불만이 있지는 않습니다."


"정말인가?"


"정말입니다."


"그렇다면야…."


…정말로 불만 없는 것이겠지?


"없습니다. 애초에 불만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겠습니까?"


"그것도 그렇군. 알겠네."


그제서야 몸을 뒤로 돌려 원래 향하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청하는, 뭔가를 까먹었다는 듯이 제자리에 서서 무언가를 생각하나 싶더니 내 오른손을 잡았다.


"엉뚱한 곳으로 가지 않게 손은 잡고 가겠네."


"편하신대로."


"…정말, 옛날에 나를 시중들던 인간들이 떠오르는 말버릇이군."


"그렇습니까?"


"그렇다네! 사람이 왜 이렇게 딱딱하게 말하는 건지…."


나에 대한 불만을 투덜거리며 자기 손에 잡힌 내 손을 몇번이고 보던 청하는 그제서야 발걸음을 옮겼다.


솔직히 말하자면, 남의 손에 잡혀 어딘가로 향하는 건 생각보다 신기한 느낌이었다.


남들과 같이 갈 때 손을 잡고 가는 일은 거진 없었던 편이었고, 동성끼리 손을 잡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기에.


물론, 내 몸이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기는 했지만 청하또한 여성이었으니 신체적으로는 동성끼리 손을 잡는 것이었지만, 내 느낌으로는 그냥 남자와 여자가 손을 잡은 느낌이었다.


딱히 특별한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이런 걸로 특별한 느낌을 받기에는 한달동안 일어난 일들이 너무 특별하다 못해 다시 겪고 싶지 않을 정도였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기회를 준다고 해도 무조건 거절할 정도로.


이미 어중간하기는 하겠지만 어느정도 적응한 상황인데도 남자에서 여자의 몸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괴리감이 엄청난 상황이었는데, 여태까지 봐왔던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종족들이 있는 상황에서의 적응이라니.


정말, 어찌어찌 현실을 인정하고 적응하기는 했구나 싶기는 하다.


아무튼, 청하의 손에 이끌려 도서관으로 걸어가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큰 기대는 하고 있지 않았다.


도서관이 특별해봐야 도서관이 아니겠는가.


카페 사장님이 특별했듯이 그것에 맞먹는 청하또한 특별하겠지만, 그렇다고 사장님의 카페가 특별하지는 않았으니까.


걸린 마법이라던가 하는 것들을 보면 특별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카페처럼 보였으니.


청하의 도서관도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함이 없을 지도 모른다.


"내 도서관은 내게는 특별하지는 않겠지만, 인간… 아니,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이종족들에게도 특별한 곳이라네."


"그렇습니까?"


"내게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책들을 모았을 뿐인데, 그들에게는 아주 진귀한 것들을 모아놓은 것처럼 반응했으니 뭔가 특별하기는 하겠지."


살면서 내가 모아왔던 책들로 만들어진 도서관이니.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으로 직접 말하는 청하의 모습에 이걸 따져야 되나, 아니면 말아야 되나 고민이 든다.


게다가 방금은 생각을 안 읽는 다고 말한 것 치고는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반응해서 말하지 않았나.


물론, 아주 우연히 운이 맞았을 뿐일지도 모른다. …따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이유는 모르겠지만, 도서관에 대해 말한 청하는 그곳으로 향하면서도 그 입구 앞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카페에서 도서관까지 걸은 시간은 대략 십여분정도 걸렸다.


이 정도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갈 곳이 없다면 이곳으로 와도 괜찮을 지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게 도서관이라고? 싶은, 아무리 봐도 평범하게 생긴 서점을 보며 청하의 뒷모습을 눈동자만 꿈뻑거리며 쳐다본다.


그런 내 모습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진짜로 모르는 건지 알 수 없는 청하는 내 손을 놓고는 서점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뭘 기다리는 겐가! 어서 빨리 들어오게나!"


서점의 출입문 뒤쪽으로 상체만을 보여주며 따라오라는 청하의 말에 살짝, 아주 살짝 들어갈 지 말 지 고민했지만 이내 들어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여기까지 와서 빠지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던 것도 있었지만, 아까 스마트폰으로 근처의 서점의 위치를 찾았을 때 봤던 서점이 여기였다.


청하는 출입문 뒤로 내밀었던 상체를 도로 집어넣었고, 나는 심호흡을 한번 내쉬고는 서점의 출입문을 밀고 들어갔다.


겉으로 보이는 서점의 모습은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완전히 다른 내부를 내게 보여줬다.


작은 책장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아주 크나큰 착각이었다.


여기저기 높이를 헤아릴 수 없는 높디 높은 나무로 된 책장들과 바닥에는 대리석인지 무엇인지 모를 재질로 매끈하면서도 번뜩거렸고, 그런 공간이 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저 멀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어서오게나, 용의 도서관에!"


청하는 카운터 위에 앉아 발을 흔들거리며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청하의 등 뒤로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사장님. 손님에게 안내를 드리기 힘드니까 카운터에서 나와주세…요?"


거기에는 머리에 갈색의 사슴 뿔같은 게 달린, 검은색 스웨터와 빨간색 체크무늬 치마가 참으로 인상적인 여성이 있었다.


게다가 방금까지 책이라도 읽고 있었는 지 한 손에는 책갈피가 꽂힌 책이 보였다.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는 게 책 제목부터 내가 알 수 없는 언어로 된 책이다.


"어… 사람인데, 어떻게 안내해야 되는 거죠, 사장님?"


"내가 안내하려고 데려 왔으니, 하던 일이나 하시게나!"


"네…. 아, 혹시 사장님 말고 제가 안내하는 걸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내게 씩씩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직원의 모습에 약간 당황하면서도 고개를 끄덕거린다.


"아, 알겠습니다."


"잠깐! 내 손님을 멋대로 빼앗으려고 하지 말게!"


"다른 종족들은 많이 안내를 해봤지만, 사람은 저도 처음이라구요! 저에게도 기회를 주세요!"


"어허!"


"사장님은 사람들도 많이 봤잖아요!"


"그래도 안 되느니라!"


자기들끼리 티격태격 하기 시작한 두 명의 모습에 뭐랄까, 머리가 살짝 아파오기 시작했다.


내가 감기도 아닌데 왜 두통이 느껴지는 걸까.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아직까지도 투닥거리는 둘의 모습을 보며 갑자기 위장약의 필요성을 느꼈다.


꽤 오래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끝이 났다.


"힝… 나중에 보너스나 더 주세요!"


"마도서를 읽을 시간에 책 정리할 시간이나 더 늘리게나!"


"엑, 어떻게 아셨죠?"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게 뭐라고 생각하나?"


"…아."


쌔앵 이라는 소리가 어울릴 정도로 들고 있는 책을 카운터 밑의 공간에 집어넣고는 어딘가를 향해 급히 달려가기 시작하는 직원의 뒷모습을 보다가 청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 모습을 보며 몇번 헛기침을 한 청하의 볼은 약간이지만 빨갛게 변해있었다.


"…보이지 못할 모습을 보였네만, 잊어주게."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말이라도 고맙네. 아무튼, 내가 데려온 손님이니 원하는 곳으로 안내를 해줘야겠지."


원하는 책이라도 있나? 아니면, 원하는 부류라던가?


아주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으로 물어오는 청하의 질문에 생각해보면 그냥 도서관이나 서점에 오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었지, 정확히 어떤 책을 찾고 싶다는 생각하지 않고 와버렸다.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하면서, 적당히 말할 만한 소재로 뭐가 있나 고민하다가 마침 눈 앞에 보이는 청하도 있겠다 카페 사장님도 그렇고 궁금했던 걸 알아볼 기회였다.


"용의 역사라던가 구분에 대해 관련된 책도 있나요?"


"…있기는 하다만, 그렇게 재밌는 내용은 아닐텐데 괜찮겠나?"


"괜찮습니다. 카페 사장님이나 청하님도 용이고 하니 실례가 안 되는 부분들에 알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청하님이라니, 어허. 청하라고 부르라니까."


"청하라고 부르기에는 그… 나이가."


갑자기 청하가 큰 충격이라도 받은 것 마냥 두 눈을 크게 뜨고 벌벌 떨며 나를 쳐다본다.


"나, 나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네!"


"…아무리 그래도, 저보다 나이 많은 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조금…."


"청, 청하라고 부르게! 아니, 청하라고 불러줘!"


이제는 급기야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모습에 나도 놀랐다.


"아, 알겠으니 그렇게 말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이름! 불러주게!"


"…청하. 됐습니까?"


나보다 나이 많은 어르신의 이름을 부른다는 게 생각했던 것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청하라고 불렸다는 사실만으로 두 손을 번쩍 들고 이리저리 방방 뛰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할 말이 딱히 있지는 않았다.


…여기저기 뛰면서 가슴도 미친듯이 튕겼지만 고통이라던가 충격이 전혀 없는 모습이 좀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