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부탁이라는 말만 수십번을 들었지만, 그래도 나의 계속되는 거절에 둘 다 포기했는 지 그럼 옷이라도 같이 입어달라는 말만 남겼다.


…다만, 저 멀리 뚱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있는 청하가 보였지만.


사진을 남기는 게 싫어서 거절한 게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인지, 뿌우 하고 볼을 부풀린 채로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걸 곁눈질로 간간히 살펴보았지만, 몇십 분째 같은 반응이어서 적당히 넘기면서 눈 앞에 놓인 커피를 마신다.


역시 다른 곳에 비하면 여기의 커피가 훨씬 맛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니 금향이 내 표정을 보고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자기 입꼬리를 가리키는 데, 아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 모양이었다.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그래도 맛있는 것은 맛있는 것이었기에 금향에게 맛있다는 말을 전했다.


"맛있습니다."


"그 말은 매번 듣는 것 같아요, 주빈. 그래도 고마워요."


"아닙니다. 다른 곳보다 훨씬 맛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이죠?"


"정말입니다."


금향에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긍정하니 손에 든 쟁반으로 얼굴을 가리는 금향이 보였다.


청하는 그런 금향의 모습에 깔깔 하고 쾌활하게 웃었다가, 나를 보고는 금새 뾰루퉁한 표정으로 바뀌어 나를 쳐다본다.


저 부풀어오른 뺨이 눌러보고 싶게 생겼지만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아마 가까이 다가가면 나를 껴안고는 놓아주지 않을 것 같았다.


…화를 풀테니 껴안아달라는 부탁을 거부한 것도 좀 있는 것 같기는 하다.


빤히 쳐다보는 청하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보니 부우우 하고 입으로 바람을 불었다.


"…불만이 있다면 말하시죠."


"옆에 앉아준다면 불만이 없어질 것 같구나!"


"그렇습니까."


하고 청하에게 답하니 아까보다도 더 크게 볼을 부풀렸다. 그 모습이 꼭, 터지기 직전의 풍선을 보는 것 같아서 웃겼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허리 뒤의 꼬리가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서기 시작했고, 머리의 뿔의 색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여기서 더 건드렸다가는 진짜로 화를 내겠구나 싶어서 고개를 돌려 금향 쪽을 살펴보니 아직도 쟁반으로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너무 뭐라하는 것도 그러니 청하의 어리광을 적당히 받아주는 게 좋겠지.


그리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청하에게 걸어갔다.


내키지 않는 걸음이었기에 천천히 걸어갔지만, 가까이 가면 갈 수록 청하의 부풀어오른 볼이 점점 줄어드는 게 보인다.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호기심이 생겨 한 걸음 옮겨본다.


청하의 볼이 줄어든다.


한 걸음 뒤로 옮겨본다.


청하의 볼이 도로 부풀어오른다.


그걸 두 세번 정도 반복하니 청하의 볼이 부풀었다, 줄었다를 반복하는 모습이 진짜 풍선이랑 비슷해 보여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풋. 아무리 봐도 행동이 어린애랑 비슷하지 않습니까."


"어린애가… 아니, 나는 어린애가 맞느니라. 그러니 어린애처럼 행동해도 문제가 없다!"


"그렇습니까. 용처럼 행동하시는 건 포기하신겁니까?"


"포기했다니, 나는 용이니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용처럼 행동하는 게 맞다네!"


"알겠으니 볼에 넣은 바람은 좀, 빼주셨으면 합니다."


부, 부 하고 입으로 바람을 불며 내게 불만을 표현하는 청하의 옆자리에 앉으니 그제서야 청하의 볼에서 바람이 완전히 빠진다.


가슴에 비해 키도 그렇고 피부도 그렇고, 완전히 어린애처럼 보이는 청하였지만 그 나이를 생각해보면 정말로 의심이 든다.


일부러 이렇게 행동하는 게 아닐까 하고.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게 내 동정심이나 관심을 유발하는 방법이라는 걸 알고 그러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청하의 행동들이 전부 의심이 되기 시작했지만, 일부러 그렇게 행동한다고 생각하기에는 이틀 동안 있었던 일을 떠올려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게 본래의 성격이 맞는 것 같다.


청하는 자기 옆에 앉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그대로 내 앞으로 온 뒤, 그대로 내 다리 사이에 앉았다.


그리고는 생각보다 긴 꼬리로 내 몸을 한바퀴 휘감아서 청하의 몸에 딱 붙였다.


청하의 몸에 딱 붙으니 청하에게서 바다에서 나는 짠내 비슷한 것과, 코를 간질거리게 만드는 이상한 냄새가 났지만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몸이 뭔가 진정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냄새와 동시에 청하의 몸이 생각보다 따뜻하게 느껴졌고, 청하가 내 손을 잡고는 주물거렸다.


주물거리는 손을 통해 느껴지는 청하의 피부는 아기의 피부처럼 부드러운데다가 말랑거려서 나도 모르게 손을 만지작거릴 정도였다.


"그렇게나 마음에 드느냐?"


용의 피부를 허락도 없이 만지다니, 예전이었으면 아주 경을 쳤을 것이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전해오는 청하의 말에 사과라도 해야하는 걸까 싶었지만, 자기가 먼저 만졌으면서 내가 만질 수도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든다.


내 손도 남자였을 때에 비하면 매끈해졌지만, 그래도 청하만큼은 아니었다.


청하가 잡지않은 내 손을 들어 살펴본다.


굳은 살이라고는 아예 없는, 잔상처도 전허 보이지 않는 매끈하고 깨끗한, 곱고 하얀 손바닥이 보인다.


손바닥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다가 손가락으로 시선이 올라갔는데, 손톱이 깎은 지 꽤 되어 생각보다 더 길어보였다.


그리고, 손을 주물거리면서도 내가 내 손을 보는 게 뭐 그리 신기한 건지 쳐다보는 청하가 보인다.


청하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내 손을 주물거리던 것도 멈추고 손바닥을 뚫어져라 보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잠깐이었다.


관심이 사라졌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버리고는 다시 주물거리는 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흠. 생각했던 것보다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구나."


"예?"


"살면서 위험한 일없이 무난하게 간다는 말이야."


금향은 그렇게 말하며 어느샌가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을 금향이 차지했지만, 청하와는 다르게 금향은 팔짱을 끼며 내 어깨에 기댔다.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금향은 환하게 웃으며 내 얼굴을 올려다보는 것에 살짝, 쑥쓰러워 시선을 피했다.


"그나저나, 그 시간에 주빈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저도 원래는 일어나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원래라면 좀 더 지나서 일어났겠지만, 너무 피곤했던 나머지 일찍 잔 탓에 새벽에 깨어났다.


그 원인중 하나인 금향은 아하하 웃으면서도 내 시선을 피했고, 청하는 그런 내 반응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내게 달라붙은 금향에게 꼬리를 찰싹 거렸다.


"거치적거리니까 그만해."


"싫다. 내가 먼저 왔는데 왜 옆에 앉느냐."


"내 카페니까. 주인인 내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잖아?"


"그럼, 다음에는 내 도서관에 가자꾸나, 주빈."


"여기에 있는 게 더 편하죠, 주빈?"


…난데없이 둘 중 한 명을 선택하라는 말을 들은 것 같았지만, 일부러 무시하고 멍하니 창 밖을 지나다니는 종족들을 쳐다봤다.


이건 뭐라고 답하든 간에 한명은 좋아하고, 한명은 우울해질 질문이었기에 그냥 답을 안 하는게 나아보였다.


그런 내 선택에 금향과 청하, 둘 다 불만이 많아보였지만 내가 곤란할만한 질문을 했다는 걸 아는 지 불만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다만, 금향이 청하처럼 꼬리로 내 몸을 휘감더니 아까 금향이 당했던 대로 청하에게 꼬리를 찰싹 거리기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의 꼬리로 찰싹 거리면서 신경전을 벌이는 게 눈에 보였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꼬리로 휘감은 몸이 약간 불편해서 자세를 바꾸는 것이었다.


"아, 불편하게 만들어서 죄송해요."


"미안하느니라."


서로 내게 사과하고는 휘감았던 꼬리를 풀었다.


꼬리를 풀은 청하는 금향의 반대편, 내 다른 옆자리에 앉고는 금향처럼 팔짱을 꼈다.


…팔짱을 낀 팔 사이로 엄청난 크기의 가슴이 느껴졌고, 팔을 타고 감촉이라던가 무게감같은 게 느껴졌지만 기분이 좋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런 가슴을 달고 살면 얼마나 귀찮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청하도 살면서 이런 가슴때문에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 많았을 것 같았지만, 그걸 직접 물어보기에는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청하는 나와 친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고작해야 만난 지 이틀 쯤 된 내 입장에서는 물어보기 힘든 질문이다.


…고작해야 이틀 쯤 되었을 뿐인데, 이 만큼이나 친해진 것에 감탄해야 될 지, 아니면 청하의 뻔뻔함에 한탄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이 정도로 뻔뻔하면 과연, 용이라고 불릴 만 하다고 생각된다.


하물며 금향도 나름대로 부끄러움이나 쑥쓰러움을 느끼는 마당에, 용인 청하는 그런 감정이 전혀 보이지를 않았으니.


"그래서,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예정인게냐?"


"그러게요. 생각보다 오래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 갈 지 때를 못 잡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은 어느샌가 훌쩍 지나있었고,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어가는 무렵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한숨을 내쉬며 밥을 먹자고 둘에게 이야기를 꺼냈고, 둘은 그 말에 동의하며 어제처럼 둘 다 카운터 뒤쪽의 주방으로 향하다가 청하는 다시 내 옆으로 돌아왔다.


"…내 요리가 뭐가 어때서."


"적어도, 주인의 말에 따라야 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나는 밥이 먹고 싶었느니라."


"도서관이나 다른 곳에 가셔서 드시면 되지 않습니까. 아니, 그전에 도서관에 주방이 있습니까?"


"있느니라. 거기서 생활하는 데, 당연히 필요한 것들이 다 준비되어 있다네."


"그렇습니까."


…여기서 대충이나마 차려줬던 밥도 그 정도였는데 과연 도서관에 가서 먹는 밥은 얼마나 대단할까.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하고 넘어갔지만, 청하는 그런 내 반응을 보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내 침 삼키는 소리에 안타깝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주방으로 간 금향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나중에, 내 제대로 된 밥을 먹여주겠다."


"기대하겠습니다."


…근데, 이러면 점심을 먹고 나면 청하의 도서관에 가는 게 확정된 건가?


가도 상관이야 없었지만,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이 없다는 점은 꽤 곤란한 문제였다.


거기에 가서 계속 청하랑 놀 수도 없었으니.


청하도 계속 노는 것보다는 자기 할… 할… 일이 있기는 한 건지 의심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도서관의 주인이니 나름대로 할 일이 있지 않을까.


직원에게 다 떠넘기고 온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품고 청하의 얼굴을 내려다보니, 청하또한 내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 할 일은 다 끝 마친 지 오래느니라."


"…믿겠습니다."


"뭐냐, 그 표정은! 나도 할 일은 다 하고 온다네!"


빼애액! 하고 소리지르며 팔과 다리를 이리저리 휘두르는 청하를 피해 옆으로 좀 더 옮기자 곧바로 행동을 멈추고는 나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한 청하가 보인다.


눈 앞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눈만 꿈뻑거리며 보다가, 내가 옆으로 피했다는 사실에 눈가에 투명한 물이 맺힌다.


뭐지. 설마 옆으로 옮겼다고 눈물을 흘리는 건가, 지금?


청하에게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뭘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어버버거리며 청하가 내게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을 본다.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눈물을 달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청하의 모습은, 불쌍하다던가 그런 감정은 전혀 들지 않았다.


두려웠고, 당장이라도 도망가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기에는 청하에게 겁을 먹은 나머지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숨, 숨은 제대로 쉬고 있는 건가.


급하게 호흡을 확인해보지만 숨은 제대로 쉬고 있었다.


청하가 이제는 코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와서는 천천히, 내 입쪽으로 얼굴을….


딱!


청하의 머리에 숟가락이 내려쳐진다.


그것도 상당히 세게 내려친 것인지, 청하의 눈가에 매달리던 눈물이 바로 떨어졌다.


"뭐 하는 짓인가!"


"주빈이 겁 먹은 거 안 보여!?"


"…아, 어. 나, 나는 그럴 생각이…."


"진정하고, 밥이나 먹고 도서관에 같이 가기나 해. 또 싸우고 싶지는 않으니까."


"…알겠느니라."


아까와는 다르게 이상할 정도로 금향에게 순종적으로 반응하는 청하의 모습을 보며, 그제서야 호흡을 길게 내쉬며 진정할 수 있었다.


…진짜로, 용을 상대할 때에는 조심해야하는 게 맞았다.


방금 전에 보여줬던 모습이 아마 평소의 청하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런 청하의 모습을 예전 사람들은 그대로 보면서 살아왔던 게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방금 전에 보았던 청하의 모습은 이질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