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임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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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했다고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일어나면 가슴을 만진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브라도 찢어버리고 싶은걸 참고 입는다. 청바지와 후드티를 입으면 끝, 머리는 대충 빗고 나간다. 알아서 마르겠지.


버스를 타고 회사로 갔다. 빌런이라고 따로 무시무시한 곳에 출근한다는게 아니라 그냥 사옥, 근데 10층 건물 하나를 다 쓰는 크기다.

지금 내 얼굴은 누가봐도 다크 팔라딘이라 걱정했는데 사람들이 못 알아본다. 적안이 아니라 그런가? 비슷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다행이다.


버스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으면 회사가 나온다. 카드를 찍고 들어가서 엘레베이터를 탄다. 내가 일하는 곳은 3층이다.



"다크 팔라딘.. 아, 형이네. 안녕하세요."


"김도윤, 아침부터 뒤지고 싶냐?"


"왜요, 그냥 인사만 했는데."


"몸 쳐다보지 말라고, 특히 가슴."


"아하하.. 눈이 지멋대로 가서요."



김도윤은 툭하면 날라가는 괴인 34다. 그냥 엑스트라라는거다.



"과장님, 안녕하십니까."


"그래, 할 일은 알지? 지뢰찾기 하지말고."



들켰나, 일 안 한걸 어째 알았다.



"예이, 커피 타드릴까요?"


"내 취향 알지? 타줘."



믹스커피를 뜯어 종이컵에 털어넣는다. 그리고 설탕 두 티스푼 넣고 소금 아주 조금, 소금은 왜 쳐넣는지 이해가 안 간다. 물을 적게 타고 휘휘 저으면 끝.



"역시 미녀가 타주니까 맛있네.. 음."



내가 짬이 5년인데도 과장놈은 꼭 내가 탄 커피를 마셔야된다고 고집을 부린다. 안 들어줘도 되지만 그러면 계속 깐다. 



커피를 음미하는 과장을 뒤로하고 내 자리로 가 컴퓨터를 켰다. 내 업무는 출동 및 빌런 관리다. 그냥 여론 조작한다 생각하면 편하다.


뉴튜브로 들어가 몇 개월 전의 영상을 켰다.


섬멸한다. 흐윽, 레드를 괴롭히지마! 

대충 이런 유치한 영상이다. 내가 싸우고 마법소녀가 극적으로 힘을 발휘해 부상을 입는 영상. 이때 레드가 피가 나서 끝나고 고기 사줬던 걸로 기억한다.



"다크 팔라딘 여왕님 사랑해요.. 좋아요 36.. 흐, 미친놈들."



빌런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투구를 써 목소리도 낮고 얼굴도 안 보이는데 공격을 받아 투구가 벗겨지자 들어나는 적안의 반쪽 얼굴, 그것도 미인이다. 영상이 공개된 직후에 실검에도 올랐다.


따봉, 좋아요를 눌러줬다. 

남자인 내가 여왕님 소리듣고 좋아하는게 이상하지만 그래도 좋다. 상단의 bring me magic girl! 좋아요 3.5만개의 댓글의 비하면 처랑해서도 있고.



"이거 다 쇼지.. 눈치가 빨라. 난 빠른 놈이 싫거든."



비추를 누르고 스크린샷을 찍어 처리부로 보냈다. 

이게 쇼라는 걸 알아차린 사람들은 지구의 대략 0.01%, 적어보이지만 지구 전체니까 꽤 많은 수치다. 

저 댓글은 곧 사라지고 쓴 사람은 이제 '교육'을 받겠지, 미안하지만 이게 내 일 인걸.


이렇게 처리하면 시간이 잘 간다. 9시에 시작했는데 어느덧 11시, 좀 출출한 시간이였다.



"5분 뒤에 회의 있으니까 오시면 됩니다."



자리에 일어선 팀장이 말했다. 회의하면 간식도 주니까 좋다. 저번에는 붕어빵이였는데 이번엔 뭐지, 커피말고 식혜 먹을까? 잡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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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크 팔라딘이 투구를 벗고 방패로.. 그러면 마법소녀가 이제 쉴드를.. "



음, 그렇구나. 우걱우걱, 찹쌀 도너츠를 먹었다. 어디 가게인줄은 모르겠는데 맛있다. 나중에 알려달라해야겠다.



"괴인 78번은 이제 날라가시면 되고.. 이제 자유 전투, 다들 아시죠?"



네에-

대충 대답했다. 이번엔 식혜를 시켰는데 쌀알이 없다. 쌀알 있는게 국룰인데.



"저기, 할 말이 있는데요."


"입에 묻은 설탕 때시고 말씀하시지."


"에, 그런가요."



대충 손으로 닦았다. 팀장 결백증 있다 하던데 진짜인가. 아무래도 진짜같다.


뜸을 들이고 말했다.


"테러는 이번엔 없습니까? 그거때문에 제가 이 모양이 됬는데?"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상부에서 경계를 강화한다고 합니다. 확실히 없을 겁니다."


"마법소녀한테도 쏜 거 아시죠? 이건 처음인데?"


"본부 쪽에서 답이 없어서.. 그건 모르겠습니다."



본부, 그러니까 마법소녀 쪽이다. 상부는 빌런 간부고.

본부 꼰대들은 정보를 주질 않는다, 더러운 빌런들한테 주기싫다했나? 

니네 뒤처리하는게 누군데. 당장 욕을 하고싶지만 팀장은 말단일 뿐이다. 욕해봤자 얻는 게 없다.



"하.. 알겠습니다, 경계 강화해주십쇼. 날짜는 언제입니까?"


"일주일 후입니다. 다들 대본 숙지바랍니다. 이상입니다."



회의가 끝났다. 다들 식당으로 향했다.



"흐음..."



본부에 가봐야하나. 혼자 남아 의자에 기댔다.

보통 테러라는건 정의에 빠진 일반인이 빌런을 공격하는 경우인데, 이번엔 마법소녀까지 공격했다. 그것도 확실히 죽일려고.

이건 쇼라는 걸 파악한 어느 집단의 소행이다. 그것도 저격총을 가지고 경계까지 뚫을 엄청난 집단의 행동.



"선배, 같이 밥 먹을래요?"


"응. 오늘 메뉴 뭐냐?"



하은이가 다가왔다. 은근히 나를 챙겨줘서 괜찮은 사이다. 



"오늘 양식이라던데."


"맛있겠네, 스테이크 나오나?"



이야기를 하며 식당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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