뱌얀 씨를 뒤로하고 도착한 카페 칸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식당 칸도 그렇고 카페 칸도 그렇고 목재로 만들어진 인테리어로 인해 부드러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작은 공간이지만 눈에 보이는 것들은 낡고 오래된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손 떼 묻은 탁자와 사람들이 읽고 놔둔 신문들 그리고 나무 천장 사이로 고정된 찻잔들이 열차 소리에 맞춰 달그락 소리를 냈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좌우로는 테이블들과 의자들이 나열되어 있고 그 사이로 카페 카운터가 보였다.
놀랍게도 카페 칸 내부에서 제과도 하는지 맛있어 보이는 캐롯 케이크와 쿠키들 그리고 티라미수가 보였다.

말끔하게 잘 다려진 앞치마를 두른 젊은 종업원이 눈에 들어 왔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나를 바라보며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나는 묵례를 하면서 그의 살가운 인사를 받았다.

그는 앞머리를 기름으로 먹여 뒤로 넘긴 깔끔한 머리에 깔금하게 정리된 눈썹 그리고 총명해 보이는 눈과 러시아인으로 상상되는 특유의 서양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높은 코라던지 그의 턱과 구렛나루 그리고 코를 덮고 있는 잘 정돈된 수염이라던지 말이다. 목에는 나비 넥타이를 하고 하얀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베스트를 제외하고는
우리 바의 복장과 비슷해 보였다.

팔을 두 번 접어 올린 팔에 보이는 화상 자국들을 보아하니 그가 제과도 담당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름다운 여성분이시네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방금 전 손님이 많이 오셔서 정리중이었거든요."

"천천히 하세요. 그 때 동안 카페를 둘러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배려 감사합니다."
예의 바른 청년인 그는 내게 감사의 묵례를 한 뒤 천천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바얀 씨와 이야기하는 도중 많은 사람들이 나가는 것을 봤는데 그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들이 곳곳에 보였다.

"혹시 여기 놔두고 간 신문을 읽어봐도 될까요?"

"네, 러시아어 신문인 데 괜찮으신가요? 아. 죄송해요. 지금 대화도 러시아어로 하는 데 읽는 것도 능숙하시겠죠."
그는 웃으며 하던 일을 진행했다.

나는 신문을 펼쳐 러시아어 신문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수 많은 활자들이 읽히기 시작했다. 물론 그전에 열차 내에 비치된 팜플렛을 몇 번 읽어보면서 놀라움을 느꼈는데 신문도 읽힐 줄은 몰랐다.
수 많은 글자로 이루어진 신문이 부분적으로 읽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읽혔다.

-국민의 신문
러시아의 대표적인 신문인 것 같은 데 꽤 오래된 역사를 가진 신문으로 보였다.
위에 자랑스럽게 적힌 년도 수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길리안 씨가 생각이 났다.

그가 말 하길 신문은 오래될 수록 좋다고 하셨는데 여기에 통용되는 지는 잘모르겠다.

기사의 1면을 장식하는 건 러시아의 환경 변화에 대한 글이었다.
러시아는 21세기 이후 북극 항해를 개척하기 시작했는데 그이유는 환경 변화가 주된 이유였다.
유빙들이 떠다니는 그저 바다에 불과한 북극은 기후 변화로 수 많은 얼음들이 녹아 17세기 부터 탐험가들이 찾길 바랐던 북극 항로가 개척되었다.

러시아예서 배를 타고 바로 가로지르면 캐나다에 도착하거나 반대로 캐나다에서 러시아 혹은 동아시아로 배들이 오갔다.

이 북극 항로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는 건 러시아였고 다음이 캐나다, 알래스카를 점유한 미국 그리고 덴마크로 부터 그린란드를 할양 받은 스웨덴이었다.
그이유는 덴마크가 인구 고령화로 인해 과도한 세금으로 군인으로 봉사할 사람들이 부족했고 악재로 노르웨이, 스웨덴과 역사 분쟁으로 인해 마찰이 가속화 되어 국지전에 이르게 되었다.
스웨덴과 덴마크는 국지전 이후 협약을 했는데 스칸디나비아의 일부 영토를 덴마크에 할양하는 대신 얼음으로 뒤덮인 땅인 그린란드를 스웨덴에게 할양하는 것이었다.

21세기 당시에는 북극항로도 개척되지 않았고 캐나다와 영토 분쟁으로 종종 그린란드에 술병을 놓고 오는 간단한 대척점이 있었을뿐이었던 그린란드였다.
그런 그린란드를 노리던 캐나다를 방어할 병력이 없던 덴마크의 입장에서는 스웨덴에게 잘 넘겼다고 생각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항로인 북극 항로의 개발로 수에즈 운하를 통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거리보다 훨씬 단축되는 북극 항로가 개발되어서 덴마크는 당시 정부의 무능함을 아직도 비판하고 있다.

러시아의 1면을 장식한 환경 변화 기사는 이것과 꽤 긴말 하게 연결되었다.

오이먀콘을 제외한 모스크바 근처 그러니까 우랄 산맥 안쪽의 동토들이 개척되고 있었다.
광활한 대지가 깨어나고 있었다.

그 대지를 개발하는 것은 러시아의 기업인 RusTek라는 기업이었다.
GLL과 합작하여 치료제를 개발했던 기업이었던 이 기업은 원래 러시아 국토 개발 공사가 민자 회사로 전환된 회사였다.
지금은 러시아의 대표적인 회사로 언급된다.

동구권 나라 중에서 정교회의 나라로 손꼽히는 러시아는 그 어느나라보다 TS에 대해 우호적이지는 않았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그런 기류를 이용하여 성장한 회사가 RusTek였다.

1면은 그런 배경을 가진 RusTek의 Andeg라는 도시 개발에 대한 기사였다.
북극 항로의 중심 도시로 개발하려는 것이었다.

"북극 항로라 흥미로운 이야기죠?"

종업원 분이 정리가 끝났는 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네, 환경 변화가 늘 부정적인 것만 가져 오는 줄 알았는데 이런 변화가 올지는 몰랐어요."

"그렇죠. 21세기에는 북해의 빙하가 다 녹으면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고 말했으니까요."

"사실이긴 했죠. 해수면 상승으로 태평양의 몇몇 섬나라들은 사라졌으니까요."
나는 그 안타까운 이야기를 기억해냈다.

"환경 문제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 주죠."
그는 앞치마에 젖은 손을 닦으며 카운터에 자리 했다.

"저는 알렉세이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벨라라고 해요."

그러자 알렉세이는 놀란 눈을 하였다.

"러시아 분이신가요? 러시아 어도 유창하시고 말이에요. 고려인이신가요?"

"아니에요. 한국인이에요. 러시아어는 음...이유가 있어서 잘하게 되었어요."

"혹시 그 잘 어울리는 피어싱에 비밀이 숨겨져 있나요?"
그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단번에 그것을 알아챈 알렉세이의 농담에 식은땀이 조금 흘렀다.

"제가 사족이 길었네요. 홍차와 맛있는 디저트 어떠세요?"
알렉세이는 내게 주문을 권했다.

"레베카가 러시아 홍차를 추천하던 데 맛있게 해 주실 수 있나요?"

"아, 레베카의 친구분이시군요. 물론이죠. 영국 홍차 못 지 않는 맛있는 홍차가 준비되어 있답니다."

그는 계산대에 무언가를 적었다.

"다른 건 더 필요 없으신가요?"

"아, 디저트로 캐롯 케이크랑 음... 티라미수도 부탁할게요."

"단 것을 좋아하신다면 셰크셰크도 추천드려요. 중앙아시아랑 러시아예서 흔히 먹는 디저트인 데 러시야가 처음이라면 한 번 드셔보는 것도 좋아요."

"그것도 부탁드릴 게요."
나는 순간 너무 많이 시킨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 잠깐 후회가 들었다.
이럴 때 아테나나 애니가 있다면 부끄럼 없이 더 시켰을 텐데 라는 후회가 들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보통 러시아 여성분들도 이 정도는 드시니까요."

"하하...네."

또 들킨 내 얼굴이었다.

"자리에 앉아 계시면 가져다 드릴 게요."

"고마워요 알렉세이 씨."

"천만에요."
나는 그의 친절에 보답하듯 15%의 팁을 주었다.
물론 레베카에게도 주었다. 이건 사장님이 누누이 강조한 사항이었기 때문이었다.

팁 문화에 어색한 나는 그저 사장님의 충고에 따라 팁을 낼 뿐이었다.

손 잡이 부분이 닳아서 흰색 부분이 드러난 나무 의자에 앉아 테이블에 팔을 올려 기댔다.
덜그덕 거리는 소리와 함게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지나가는 것이 계속 봐도 질리지 않았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처음이세요?"
그는 홍차를 내리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네, 그렇게 티가 많이 나나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열차를 처음 타시는 분들이 바깥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 하니까요. 저도 처음 여기에 일하기 시작 했을 때도 그랬구요."

"오래 일하셨나요?"

"제과 학과를 졸업하고 바로 이곳에 취직 했으니 한 3년은 된 것 같네요."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놀랍네요. 매일 여행하는 기분이겠어요."

"매일매일이 신기하고 재밌어요. 그리고 매번 다른 고객들을 만나는 재미가 있죠."
알렉세이는 이 일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준비가 끝났는지 아름다운 3층 티 세트 플레이트를 먼저 가져 왔고 이후 홍차를 내게 건네주었다.

"제 자랑들이에요. 드셔보시면 영국의 티 타임은 깨끗이 잊혀질 겁니다."
그의 투박한 손이 잠깐 보였는데 멀리서 보이지 않았던 여러 가지 타투들이 보였다.
해골 무늬나 이런 것들이 있었다.

"정말맛있게 보이네요. 잘 먹을 게요."
나는 감사를 표하고 제일 윗층에 있는 신기한 모양의 셰크셰크를 손으로 집었다.
우리나라의 홈런볼 같은 옛날 과자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그 위에 꿀을 뿌린 것인지 반들 거리고 달콤한 향을 냈다.

살짝 베어 물었을 때 바삭한 감촉이 입안에 퍼졌고 달콤한 꿀과 섞인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엄청 맛있는 데요 알렉세이 씨?"

"제가 말했죠? 저희 누나의 특급 레시피랍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맛이죠."
카운터에 기댄채 웃으며 말했다.

"누나 분이 제과사셨나요?"

"라쟌에서 알아주는 제과사였죠. 제가 이 일을 하게 만들어준 제 은인이기도 하구요."

"라쟌에 꼭 들러봐야겠어요."

"안타깝지만 만나기는 어려울 거에요."
그의 얼굴에는 어둠이 드리웠다.

"미안해요."

"아니에요. 지나간 일인 걸요. 대신 제가 제 누나를 대신해 그녀의 레시피대로 이것을 만들고 행복을 나눠주고 있으니까요."
알렉세이는 웃으며 말했다.

클래식과 달콤한 디저트 그리고 향긋한 홍차가 기분 좋게 카페 칸을 채웠다.

"제가 여유로운 시간에 와서 이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행운을 얻었네요."

"좋게 이야기 해줘서 고마워요 벨라 씨."

나는 문득 바얀 씨가 생각났다.
그가 나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런 사치스러운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달콤한 디저트를 마무리하고 홍차를 마신 뒤 해 가 지는 것을 보고는 나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메릴에게 보여줄 디저트 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점과 디저트로 인해 그와 저녁을 먹을 수 있을까 라는 후회가 들었다.

아무리가 여자가 되어서 디저트 배가 따로 있다고 하더라도 이건 조금 무리였다.
그래도 약간의 양심이 남아서 반 만 먹고 남긴 디저트들을 마지막 남은 인내심으로 먹지 않았다.

"저 죄송한데 이 남은 것들을 포장해 주실 수 있나요? 조금 있다가 저녁을 먹어야 하는 데 너무 욕심을 부렸어요. 디저트가 너무 맛있어 보였거든요..."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애써 내 자신에게 변명하듯 말했다.

"제가 만든 것들을 사랑해 주셔서 저야 감사하죠. 포장해 드릴게요. 잠시만요."

그는 반듯한 종이를 접어서 자그마한 상자를 만들고 그 사이에 종이로 만든 칸막이를 두어 여러 디저트를 예쁘게 담아냈다.
내게 건네주면서도 그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다음에 또 오세요. 벨라 씨."

"고마워요. 알렉세이 씨 아무래도 열차를 타는 동안 살찌는 걸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겟어요. 여기에 매일 올 것 같거든요."

"언제든지 환영이에요."

알렉세이 씨의 미소를 뒤로하고 조그마한 디저트 상자를 들고 메릴에게 향했다. 


########


여자가 된 뒤로는 디저트는 못참는 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