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배를 한 뒤 사장님은 이반과 자비스 그리고 마리 씨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아스카와 베키가 내게 왔는데 메릴은 화장실을 가 버려서 내가 이 두 명의 소 악마를 감당해야 했다.

"왜 그렇게 죽상이야 벨라?"

"그러게 말이야."
어느새 한 몸처럼 말하는 베키와 아스카였다.

나는 두통이 내 머리를 쑤시는 느낌을 받았다.
내 머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통증이 칼처럼 말이다.

"아스카 한 명만으로도 고생했는데 말이야."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이들에게 내 표정이 다드러나는 이상 거짓말은 소용이 없었다.

"누가 잡아먹는다고 그래?"
아스카가 장난스럽게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응, 그리고 그랬던 적도 있었고 말이야."

"그때가 그리워?"

"장난이라도 삼가해 줘 아스카..."
나는 짐짓 화난 척 말했다.

"소용없어 벨라. 너는 화를 내는 법을 모르니까."

"...정답이야."
나는 순순히 항복했다.

"그나저나 결혼에 대한 이야기에 관해서 축하하고 싶어."
베키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맙게 받을 게."

"오늘 이반을 좀 괴롭혀야겠어."
베키는 사악하게 웃었는데 나는 소름이 돋는 느낌을 받았다.

"이반이랑 사이가 좋은데?"
아스카는 웃으며 말했다.

"맞아. 그와 같이 한국에 온 건 좋은 결정이었어."

"그러고 보니 이반이 한국어를 잘하던데 베키가 도와준 거지?"

"응, 그와 이야기하면서 네 이야기가 나왔고 그래서 한국에 오게 된 거니까."
베키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이야기?"

"응, 네가 호텔 이야기를 했고 나와 이반은 사귀기로 결정한 뒤로 정착할 곳을 찾기로 했거든.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좋은 곳이지만 오랫동안 객차안에서 지내는 건 지루한 일이야."

"공감해."
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면서 즐거워 했지만, 그 기쁨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바얀 씨와 알료샤의 제과 덕분에 잘 버텨 왔다.

"물론 네 칵테일도 도움 많이 받았어."

"고마워."
베키는 웃으며 말했다.

"베키는 좋은 친구야."
아스카가 웃으며 말했다.

"둘이 금세 친해질 거로 생각은 들었는데 이렇게 빨리 친해진 건 놀라워."
나는 내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베키는 친절하고 사려깊지 무엇보다 우리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리고는 다가오더라고."

"이렇게 귀여운 아스카와 친해지지 않으면 멍청한 짓이지."
베키는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둘 다 귀여워서 나는 입에 미소를 머금은 채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벨라의 표정이 무서운데?"
베키는 아스카를 바라보며 말했다.

"벨라는 귀여운 거에 약하거든. 아무래도 우리 둘이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나 봐."

"기분 좋은데?"
베키는 밝게 웃었다.

"나는 종종 벨라가 머리를 쓰담아 주기도해."

"그건 좀 부러운데?"
베키는 아스카를 부러워하며 말했다.

"나는 어때 벨라?"

"내 인내심을 시험 하는 거야?"

"벨라 같은 사랑스러운 여자라면 내 머리를 만지게 해 줄 수 있어."

"사양하지 않을 게."
나는 그대로 손을 뻗어 베키의 머리를 쓰담아 주었다.

손에 감기는 베키의 머리카락과 그 촉감 그리고 베키가 날 올려다보는 그 느낌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이곳은 천국일 거야."

"벨라가 끝내주는 섹스를 한 표정인데?"
아스카는 키득거리며 말했다.

"말조심해줘 아스카. 오늘은 메릴도 있다고."

"지금은 화장실을 가서 없잖아. 이때가 아니면 언제 또 놀려 보겠어. 그리고 메릴이 있더라도 내가 멈추는 것도 아니잖아."
아스카는 웃으며 말했다.

"어휴... 머리야."
나는 갑갑해서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아 참 아까 물어 보지 못했는데 베키 뭐 좀 물어 봐도 될까?"
아스카가 눈을 빛내며 베키를 바라보았다.

"뭐든 좋아 아스카. 너라면 내 몸까지 맡길 수 있어."
베키는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거부하지는 않을 게 하지만 곰한테 잡아먹힐 수도 있으니까 나중에 다시 말해 줘."
아스카는 그 농담을 다시 받아쳤다.

나는 그사이에 껴서 아햔 농담으로 인한 두통으로 인해 잠시 멈추었다.

"한국에 정착한 거야? 그렇다면 어디에 살고 있어?"

"우리 집 찾아오려고? 집들이는 환영이야. 지금은 안산에 새터민 구역에 지내고 있어."

그 말이 끝나고 메릴이 화장실에서 돌아왔다.

"여기 안산 전문가가 오셨네."
나는 메릴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야? 나 기다린 거야?"

"베키가 어디에 사는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어. 베키는 지금 안산에 살고 있대."

"아 새터민 구역 이야기하는구나? 중앙역 근처지. 내가 많이 다니던 곳이야."

"맞아. 어떻게 알아?"
베키는 놀란 눈치로 메릴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안산에서 살았거든. 그쪽은 너도 잘 알다시피 새터민,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TS등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지."

"맞아, 예전에 내가 살던 곳과 비슷한 느낌이라서 금방 적응했지."
베키는 웃으며 말했다.

"가보고 싶은데?"
아스카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여자 두 명이 가는 건 추천하지 않아."
메릴은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할렘 같은 곳인가?"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네."
베키는 아스카의 말에 대답했다.

"이반이랑 같이 다녀서 다행이네."
나는 베키를 바라보며 말했다.

"맞아, 이반이 날 지켜 주지. 지구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어디냐고 말한다면 난 이반의 옆이라고 말할 거야."
베키의 얼굴에는 자랑스러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래도 조심해. 안산에 많은 이야기가 들리니까."

"중국계 이민자들 이야기하는 거지?"
베키는 메릴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느와르 같은 이야기인데?"
아스카는 눈을 빛내며 흥미롭게 들었다.

"요즘 안산 쪽에 보안 관련 업무가 많이 내려왔어. 덕분에 우리는 돈을 벌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환경은 아니지."
메릴은 시큐리티 업체 사장 답게 냉철하게 이야기했다.

"무엇보다 러시아계 이민자들이랑 중국계 이민자들의 사이가 좋지 않아."

"RusTek 때문이지?"
나는 메릴의 말을 거들었다.

"맞아."

"두 나라의 사람들은 애국심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으니까."

지금 중국과 러시아는 다시 국경 문제로 분쟁에 드러섰다.
신의주를 점거한 중국과 경성을 점거한 러시아는 북한 분할 통치 중에 합작을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북극항로 개척에 대한 계약건이었다.
그 기점이 되는 곳이 블라디보스토크인데 이곳이 북극항로의 주요 항구가 된다면 이익을 내는 것이분명했다.

그렇기에 중국은 옛날 조약을 들먹이며 이곳에 대한 지분을 요구하는데 러시아는 거절하는 상황이었다.
러시아는 이미 북극항로 인근 도시 개발권을 RusTek에 넘길 정도로 국가채무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블라디보스토크 개발건에 대한 조약을 포기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중국의 자본이 필요했지만, 그 이익은 온전히 가져 가고 북극항로에 대한 이용권만을 무기한 공유하는 것으로 협의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민족주의가 강한 중국은 러시아를 향해 반러 운동하게 되었고 그것이 이민자들의 삶까지 들어온 것이었다.
이 틈을 RusTek는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어서 모두의 비난을 받고 있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메릴."

"내가 도와줄 일이 있을 것 같아. 출퇴근에도 어려우니 괜찮은 집 하나 얻어 보는 건 어때?"

"집?"

나는 문득 그 집이 생각났다.
메릴이 지내던 달동네 집 말이다.

"서울에 있는 집인데 내가 살던 집이야. 아직 팔지 않았는데 이렇게 유용해 질 줄은 몰랐네."

"서울에서 집구하기 어려웠는데 말이야. 무엇보다 우리가 외국인이잖아."
새터민인 베키와 러시아인인 이반은 한국에 보증인이 없으니 괜찮은 집을 얻기 어려웠다.
그래서 비교적 쉬운 안산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었다.

"달동네라 조금 높은데 그래도 출퇴근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거야."

"고마워 메릴."
베키는 고마움을 숨기지 않았다.

"그 집을 사버린 게 이렇게 되었네."
나는 메릴을 바라보며 말했다.

원래 월세로 살던 메릴은 HK그룹 해체전 그 집을 통째로 사버려서 애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와 살게 되면서 우리 집에 머물렀는데 그때 사둔 집을 추억으로 남겨둔 것 같았다.

"선견지명이라 이야기해줘."

"잘했어. 메릴. 그리고 고마워."

"아니야. 내 친구이기도 하니까."
메릴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계약은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자. 내가 이반한테 이야기해둘게."

"알겠어."

이반은 메릴의 회사 소속이니 이 부분에 관해서는 이반과 이야기를 하려는 메릴이었다.

"뭔가 훈훈한 이야기가 지나간 거 같은데?"
아스카는 눈알을 굴리며 상황을 살폈다.

"미안 해 아스카. 베키와 이반이 외국인이라서 말이야."

"이해해. 그런 것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야. 그저 지금 분위기가 너무 훈훈해서 그런 거지."
아스카는 장난스럽게 이야기했다.

"장난을 치고 싶어 하는 표정이야 아스카."

"정확해 벨라. 술자리에서는 재미있는 게 필요하지."

"술게임이라도 하자고?"
메릴은 아스카에게 물었다.

"좋아! 술 게임 좋네. 어느걸로 할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메릴을 바라보았다.
메릴은 미안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질문하고 대답하고 대답 못하면 술 마시기. 어때? 간단하지?"

"단순하지만 꽤 걱정되는 게임인데."
나는 아스카와 베키의 눈치를 살폈다.

둘 다 매운맛이라서 나는 이 게임의 행방을 이미 눈치챌 수 있었다.

"게임이야?"
사장 님은 우리 이야기에 끼어드셨다.
그 옆에는 마리 씨와 이반 그리고 자비스가 흥미롭게 우리를 바라보았다.

"다 같이 하실래요?"
베키는 사장 님을 보며 말했다.

"게임을 거부하는 건 아일랜드인이 아니라는 뜻이지."

나는 도대체 여기에 왜 아일랜드인이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술 게임은 즐거워. 어떤 게임이야?"

"질문하고 답하고 못하면 술을 마시는 게임인데... 아무래도 벌칙 수행이 좋겠네요."
나는 살짝 붉어진 마리 씨를 보며 벌칙을 바꾸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생각이야 벨라."
아스카는 내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좋아. 누가 먼저 할래?"
사장 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는 건 어때요?"
마리 씨가 모두 앞에 의견을 냈다.

"좋아. 반반 나눠서 가위바위보로 결정하고 시계방향으로 진행하자."

그렇게 가위바위보가 결정 되었는데 우선순위는 사장님을 시작으로 마리 씨, 자비스, 이반, 메릴, 베키, 나 그리고 아스카로 결정되었다.

"좋아. 나 먼저 시작할게. 언제 아스카랑 결혼할 거야?"

"시작부터 너무 강한 질문을 하시는 거 아니에요?"
마리 씨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마리 씨와 아스카는 사실혼이지만 그래도 결혼하길 바라는 사장님의 의도가 보였다.
이 질문에 눈을 빛내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아스카였다.

"확실하지 않아서 일단 마실게요."
마리 씨는 웃으며 술을 마셨다.

"으... 술 기운이 올라오네요.자비스 씨 항상 궁금하던 건데 실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마리 씨는 붉은 얼굴로 자비스를 보며 말했다.

"...마심."
자비스 역시 마셨다.

"뭐야 재미없어."
사장님이 자비스를 나무랐다.

"사장님 진정해요. 어쩌피 술은 많으니까요."
다들 술을 마시지 못할 때 나올 대답들이 벌써 기대가 되었다.

"이반, 지금까지 사귄 여자 수."
자비스는 술이 들어 갔는지 짓궂은 질문을 내었다.

이번에는 베키의 눈이 빛났다.

"...3...3명..."
이반은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비교적 쉬워 보이는 이 질문을 넘겼다.
베키는 자신이 아는 숫자와 일치해서 다행인지 표정이 풀렸다.

"메릴, 벨라와 결혼해서 아이를 몇 명 정도 생각하고 있어?"
이반은 메릴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이거에 관해서는 이야기해본 적이 없어서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메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다...다섯 명...정도?"
메릴은 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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