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벌대의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인하여 한 줌의 희망 속에 살아가던 수인들이 전멸 하게 되자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혁명군은 인간들로부터 자신들이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권리를 얻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그 자리에 남아있던 유일한 생존자인 멍멍이를 자신들의 아지트로 데려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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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잉! ...벌컥.”


“수술은 전부 끝난 건가 닥터? 그녀의 팔은… 다시 움직일 수 있는 건가?”


“…레온.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말해두겠는데, 시체를 가져다 놓고 그걸 살려놓으라는 말도 안되는 부탁은 자제하도록 해.” 


“이 녀석 하나 살리겠다고 얼마나 많은 약과 시간을 사용했는지 알기나 하는거야?”


“…이 아이는 아로미와 모두의 유산이다. 적어도 이 아이 만큼은 살려내지 못한다면… 나는 사후에 그들의 얼굴을 떳떳하게 바라볼 자격이 없어.”


항상 모든 것들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스스로를 자책하는 레온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닥터는 그녀를 향했던 공격적인 말투를 멈춘 후에, 멍멍이의 양팔에 새롭게 생겨난 의수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면서 설명을 시작하였다.


“내가 이 분야의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괴사해버린 팔을 다시 이어내서 그것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해.” 


“텅… 텅…”


“그래서 나는 남아있는 이 녀석의 신경을 최대한 복구 시킨 후에, 스페어 용도로 준비되어 있던 의수를 이 팔에 새롭게 달아주었어.” 


“거기다가, 완전히 시력을 잃어버리게 된 눈은 수술을 통해 비교적 최신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의안을 달아주었고, 목숨도 이어놨으니 내가 할 일은 이걸로 끝이야.” 


“이 이후의 일은 전부 전적으로 저 녀석의 책임이니까 빨리 수술실에서 나가도록 해.”


“매번 무리한 부탁을 하게 되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닥터. 그럼 이만…?!”


“그으… 그… 아아…?”


말을 마친 레온이 누워있는 상태의 멍멍이를 부축한 채로 자리를 뜨려는 그 순간, 멍멍이의 입에서는 이 세상의 슬픔을 전무 머금은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으며, 그녀의 모습은 마치 실타래가 끊어진 인형과도 같은 형태를 띄고 있었다.


“이건 좀 놀랍네… 꽤나 많은 양의 약을 주입했는데도  예상보다 빠른 시간에 의식을 되찾다니. 아무래도 약에 대한 저항력이 생각보다 높은 모양이야.”


“이봐, 팔은 움직일 수 있는 건가? 왼쪽 눈의 시야는 어떻지? 어딘가 불편한 곳은 없는 건가?”


“아로미… 어디에 있어? 모두는… 어디에 있는 거야?”


“…미안하다. 내가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그들은 구할 수 없었다. 전부… 전부 나의 책임이다.”


“돌려줘… 내게서 그들을! 모두를! 가족을 돌려달라고!”


한쪽 밖에 흐르지 않는 눈물.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양 팔. 


마지막으로 자신에게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며, 자신이 원하고 바래웠던 모든 것들은 항상 빼앗기고 말았다는 사실은 멍멍이에게 더 이상 살고자 하는 목표나 의지를 조금도 남기지 않게 만들어 내었다.


“괜히 나대지 말고 가만히 있어. 기껏 만들어 준 팔을 평생 사용하지 못하게 되고 싶은 거냐? 레온, 얼른 이 녀석을 다른 곳으로 치우…”


“왜 살려낸 거야? 눈을 뜨게 되었을 때 보이는 것이 이런 썩어빠진 세상이었다면, 악몽보다 현실이 더 끔찍한 세상이었다면!” 


“…차라리 죽게 내버려 두는 편이 더 좋았잖아.”


“...시발년이 진짜 밥맛 다 떨어지게 만드네. 오냐, 네가 원하는 대로 지금 죽게 해줄게.”


말을 마친 닥터는 자신의 옆에 놓여있는 메스를 손에 거머쥔 채로 멍멍이의 오른 쪽 눈을 찔러내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으나, 그 행위는 그의 팔을 힘껏 잡아내고 있는 레온에 의해 그대로 저지되었다.


“콰압!”


“진정해라 닥터! 저 아이도 정신적으로 몰렸기에 저런 말을 하는 거다! 그건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여기에 있는 녀석들 중에 사정 없는 녀석이 있어? 저 녀석 혼자서만 힘든 거냐고!” 


“기껏 있는 약, 없는 약, 전부 사용하면서 살려놨더니 뭐? 왜 살려내? 죽게 내버려두라고? 내 앞에서 응석 부리지 말란 말이다 이 빌어먹을 년아!”


“…”


“…꺼져.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서 자살을 하던, 인간들한테 가서 죽던지 알아서 하라고! …목숨의 가치도 모르는 한심한 년.”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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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나오게 된 멍멍이는 레온의 차량 앞 좌석에 앉은 채로 이동을 하면서 그녀와 어색한  대화를 하게 되었다.


“…조금 진정이 되었나? …닥터의 언행에 대해서는 내가 대신 사과를 하도록 하지.”


“…”


“그는 자신의 소중한 이들을 살려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항상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탓에, 생명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어.”


“…”


“…닥터의 말대로 여기에 있는 수인들은 제각각 다른 고통과 상처를 마음속에 담아둔 채 살아가고 있지. 그렇다면, 그들과 자네의 차이점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몰라.”


“받아들이는 거라네. 자신의 아픔, 고통, 슬픔을전부 인정하고, 그걸 전신으로 받아들이면서, 우리들은 자기 자신을 유지하며, 남은 것들과 앞으로 얻게 될 모든 것들을 지킬 힘을 얻을 수 있다네.”


“끼이익… 벌컥.”


“…이 앞에 있는 집이 그대가 앞으로 살아갈 집이라네. 무언가 필요한게 있다면 그리즐리를 부르도록 하게나.”


말을 마친 레온이 멍멍이를 집에 들여보낸 후에 자리를 떠나자, 멍멍이는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양 팔과 함께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하던 와중, 근처에서 들려온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하였으며, 서로의 눈이 마주치게 되자, 여성의 입에서 내뱉어진 말은…


“X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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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내가 눈을 뜨게 되었을 때, 나는 자신에게 처해있는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댓글로 ‘여장도 TS’라는 말 한마디 남겼다고 마지막으로 보던 소설로 빙의 하게 된다는 게 말이되나?”

 

하지만, 말을 내뱉고 있는 거울 속에 비치게 된 그녀의 갈색 머리와 그 위에 달려 있는 자그마한 귀와 형편없는 빈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머릿속에 남겨져 있는 원래 주인에 대한 기억까지. 


이 모든 정보들은 그녀가 수인이며, 이 세계가 수인들에게 있어서 지옥이나 다름 없다는 세상임으로 다시 한번 자각하게 만들어내었다. 


“하필이면… 하필이면 수인이라니! 거기다가 혁명군의 소속이면 어디 구석에 짱 박혀서 쥐 죽은 듯이 사는 것도 불가능 하잖아…!”


“…일단 기억을 통해 알게 된 이 몸의 원래 주인은 강하지도, 비중이 있는 것도 아닌 그냥 일반적인 수인 중 1명인 것 같은데…“


“이 말은 전쟁이라도 일어나게 되면 그냥 죽게 된다는 거잖아! …멋대로 빙의 된 것도 모자라서 나보고 고기 방패 신세가 되라고?”


“벌떡!”


자신의 처지에 대한 생각을 마친 그리즐리는  옷장에 있는 옷들을 급하게 챙겨 입은 후에, 이곳을 탈출하기로 마음을 먹은 채로 현관문이 있는 쪽을 향해 나아가려 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여성을 마주하게 된 그리즐리는 뇌를 거치지 않고 자신이 생각했던 말을 그대로 내뱉게 되었다.


“X됬네.”


생기를 찾아볼 수 없는 백발. 


왼쪽 눈에 달려있는 의안과 붉은 빛을 띄고 있는 오른쪽 눈. 


양팔에 달려있는 의수와 몸의 바깥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살기까지. 


그리즐리는 지금 자신이 가장 만나고 싶지 않았던, 아니. 영원히 만나고 싶지 않았던 존재와 코앞에서 마주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존재를 향해 욕설을 내뱉기까지 하였다.


“…눈알 수집가.”


“…뭐?”


‘X발, 또 입 밖으로 내뱉었네… 이제 나도 다른 인간들처럼 살아 있는 채로 눈알이 뽑히는 거구나…’


현재 자신이 속해있는 이 세계 내에서 멍멍이의 잔혹성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그리즐리는 두 눈을 감은 채로 자신을 향해 덮쳐오게 될 고통을 떨리는 몸으로 받아 내려 하였으나, 정작 그녀의 몸에는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뭐지? 평상시의 그녀라면 망가진 미소를 지으면서 내 눈깔을 뽑으려 했을텐데… 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날 바라 보고만 있는 거지?’


“…너. 날 알고 있어?”


“예? 아, 아뇨! 그게, 알고 있는데 모른다고 해야하나… 그 모르면서도 아는 뭔가 그런… 거라고 말해야 할까요?”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알면 안다, 모르면 모른다고 확실하게 말해.”


“모르겠습니다! 모르니까 제발 그 안면을 저한테서 치워주세요! 전 아직 죽고 싶지 않단 말이에요!”


진심으로 겁에 질려있는 그리즐리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 멍멍이는 그녀로부터 다시 거리를 벌려낸 후에, 의자에 앉아서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말을 내뱉기 시작하였다.


“…네가 그리즐리라고 하는 수인이지? 이제부터 너는 내가 단순히 이 팔을 움직일 수 있도록  재활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내가 이전보다 더 강해질 수 있도록 옆에서 나를 돕도록 해.”


“너희들이 무언가를 지키고자 한다면, 나는 그것들을 앗아가려 하는 놈들을 전부 죽이는 괴물이 되어주겠어. 그렇게 하면... 내 머리에 울리고 있는 모두의 목소리도 조금씩 사라지게 될 테니까.”


‘…제대로 사망 플래그가 떠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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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소설 외부에서 누군가가 들어오게 되는 건 좀 이상하려나요? 갑자기 떠오르게 되어서 써봤는데 이게 맞는지 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