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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 저는 죽었습니다.

 

부끄럽지만 그렇다할 직업도 없고 평범한 일상을 살던 저는 죽고 말았습니다.

 

악플을 달며, 즐거워 하던 지난 날. 신은 저에게 벌이라도 줄 심산인지 제가 욕했던 소설속으로 빙의시키고 말았습니다. 

 

초보 작가의 습작 소설인 ‘리턴 투 하베스트’로 말이죠. 딱히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개연성을 욕하는 작품이었죠. 무능한 주인공과 덜떨어진 전개들. 고구마의 향연과 개연성 부족. 이런 소설에 빙의되느니 차라리 죽는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 입니다.

 

저는 그런 망작 소설의 공작가 악역영애. 아리사 폰 그린할데로 빙의하고 말았습니다. 은발에 청안, 누구나 아름답다고 할만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지만, 성격은 드세고 악독하기 그지 없어, 메이드들 사이에서는 피의 여인이라고 불리는 여자입니다.

 

하지만 제 성격 아시지 않습니까? 사람을 마주하는 일에는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란걸. 악플은 스트레스 해소용이지 절대 인간관계에서 사람을 그리 대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뭐,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요.

 

오히려, 저는 영지에서 피의 여인이 아닌, 누구나 사랑하는 그런 영애로 거듭났습니다. 아버지의 엄한 교육 아래. 저는 진정한 공작가의 아가씨로 태어나게 된겁니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까지 일겁니다.

 

악역영애. 아리사 폰 그린할데의 영애로서의 삶은 오늘로 끝이라는 말입니다.

 

“네? 결혼이라니요?”

 

내 나이 고작 스무살. 결혼을 해야만 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호위호식하는 인생은 이걸로 끝이다. 내 앞에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20살이 되는 동안, 그들의 등골을 빨며, 지낼 날들만 기대하고 있는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북부대공의 처로 시집을 가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게 될거란다.”

 

나는 어머니의 말에 아무말 할 수 없었다. 북부대공에게 시집을 가라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내 20대의 청춘 라이프는 대체 어떻게 보상을 한단 말인가. 분명 시집을 가게 되면, 아이를 낳아야 할테고 그렇다는 이야기는 남자와 잠자리를 가져야 된다는 수 밖에 없지 않는가.

 

덜컹.

문이 열리고 천천히 남자가 걸어 들어온다.

“대공님 오셨습니까?”

 

저게 북부대공.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응시한다. 분명 전형적인 북부대공이라 한다면, 잘생기고, 냉혈하지만 영애를 챙기는 그런 사람이 아니겠는가. 

 

“예. 아무래도 이쪽 지방은 따뜻하군요.”

 

잔뜩 호피 무늬 옷을 입은 남자. 게다가 산더미 만한 배와, 숨막힐 듯 한 이중턱. 전형적인 돼지상이다. 나는 숨을 참는다. 절대 시집갈 수 없다. 아니, 가선 안된다.

 

남자는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이쪽을 응시한다.

 

“오호, 이분이 늘 말하시던 아리사 영애님.”

 

북부대공은 숨막힐듯한 몸매로 내 앞에 선다. 내 손등에 뽀뽀를 하는 그. 그의 행동에 몸서리칠 정도로 소름이 돋는다. 나도 모르게 손을 오므리고 만다.

 

“어서 인사를 해야지. 아리사.”

“그래 어서, 네 주군이 되실분이란다.”

 

절대. 절대 나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

 

*

 

“흐아앙 … 씨발 절대 절대 안돼!”

 

나는 침대에 누워서 발버둥을 치고 있다. 절대 저런 놈이랑 결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지. 로맨스 판타지 속 여자들은 하나 같이 행동하는게 있지 않는가. 커튼을 이용해서, 이 집에서 뛰어내리는거다. 

 

야반도주.

 

돈될만한 물건을 챙겨 도망치는거지. 다른 영지로 간다면 아마 아버지도 나를 찾지 못하지 않을까. 까득- 나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생각한다. 어떻게, 어찌해야 할까.

 

“아가씨, 저 들어갈게요.”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견습 메이드, 우르. 예쁜 얼굴인 탓에 내가 고용을 하긴 했지만, 아직 어리숙한 부분이 많은 아이다. 늘 실수도 연발이고, 할 줄 아는거라곤 힘쓰는 일밖에 없는 아이.

 

“공작부인께서, 아가씨께 새 드레스를 입히라고 하셔서요. 이거랑 이거 어떤게 좋으세요.”

 

양손으로 새 드레스를 들고온 우르는 기분이 좋아보인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히히덕 거리기만 하다니. 내가 뾰루퉁하게 침대에 앉아 있자 우르는 이제야 내 얼굴을 본건지 놀란 표정이다.

 

“세상에 세상에. 어쩜 신부님 얼굴이 이렇게 죽상인걸까요?”

 

드레스를 급하게 옆에 개어두고 나에게 달려오는 우르. 우르는 내 표정이 왜 이런지 짐작도 하지 못하는듯 하다.

 

“딱 보면 몰라.”

“흐음. 저는 잘 모르겠는데 …”

“생각을 좀 해. 생각을!”

 

미간을 찌푸린채, 나의 생각을 일어보려 하는 우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바보 둔탱이를 데려갔다간 나만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나는 한숨을 탁- 쉬고는 운을 뗀다.

 

“나 도망갈거야. 결혼 같은거 안할거라고.”

“세, 세상에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을 꾸미신대요. 절대 안돼요. 절대! 공작부인께서 아시면 정말이지!”

 

우르의 말에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나게 된다. 아니, 절대 할 수 없다. 미남도 아니고 저런 오크와 결혼을 하라고 말도 안되는 일이지. 그리고 결혼 한다는거 자체가 …

 

“으 … 그럼 나보고 어쩌라는거야! 저런 돼지랑 절대 결혼 못해 죽어도 못해!”

 

나의 말에 잠시 고민하는듯한 우르는 잠시 머뭇거린다. 나의 앞에 앉은 우르. 우르는 천천히 그리고 유순하게 말을 꺼낸다. 나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대는 우르.

 

“혹시 아가씨 열이라도 나시는건.”

“아니라고! 싫어 싫단 말이야!”

 

아무래도 싫다. 절대, 절대 결혼 같은거 하지 않을테다.

 

“아니. 아가씨 그럼 진정을 하시고. 차분하게 아버님과 이야기 해볼 생각은 하셨습니까?”

 

우르는 진정이 된듯 나를 마주보며 이야기한다. 아버지와 상의를 하라고? 정말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건가.

 

“너 말이 되는 소리를 좀해. 아버지가 무슨 이야기를 들어주신다고.”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절대 마음을 알지 못하실걸요.”

 

우르는 천천히 자리에 일어나서 옆에 있는 드레스를 들어올린다. 양손에 드레스를 들고 있던 우르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을 건넨다.

 

“그래서요. 아가씨 어떤게 마음에 드세요? 분홍? 아니면 파랑?”

 

아무래도 좋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

 

“아버지 결혼은 할 수 없습니다.”

 

당차게, 아버지에게 출사표를 던졌다. 의자에 앉아 있던 아버지는 턱을 괴며 나를 응시한다. 단호한 나의 말투에 감동이라도 하신건가.

 

“왜 결혼을 할 수 없다는거냐.”

“북부대공님의 청혼은 감사하지만, 아직 청혼을 하기에는 이른 나이가 …”

“됐고, 본론만 간단히.”

“결혼은 죽어도 싫습니다. 차라리 농사를 한다면 했지. 결혼만은 …”

 

나의 말에 아버지는 눈하나 움찔하지 않는다. 철의 남자. 역시 이렇게 울어도 소용없다는건가, 나의 울음에 아버지는 머뭇거리더니 운을 뗀다.

 

“좋다. 그럼 아리사 너에게 제안을 하겠다.”

 

갑자기 왜, 제안을 하겠다니. 설마 … 양손을 모은채, 나를 응시하는 아버지.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그를 응시한다. 

 

“결혼을 하지 않게 해주겠다.”

“아버님 감사…”

 

의외의 대답이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새어나온다.

 

“단, 조건이 있다.”

 

아버지의 조건.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할거라고.

 

“가문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살아 남는거다. 앞으로 3년. 시간을 주마. 10억 골드를 벌어온다면, 결혼은 무효로 해주마.”

 

청천병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자력으로 살아남으라니, 그것도 3년안에 10억. 말도 안되는 제안이다.

 

“실패한다면 …”

“물론 북부대공님과 결혼해야 한다.”

“성공한다면 …”

“아리사 네가 원하는 자유를 얻게 되는거지 않겠느냐.”

 

실패 메리트가 크지만 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어차피, 지금 있으나 제안을 수락하나 결혼을 하게 되는 전재는 마찬가지.

 

그렇게 나는 아버지의 제안을 수락하고 말았다.

 

아리사 폰 그린할데.

 

저의 영애 생활은 이걸로 끝이 나고 맙니다. 

저는 잘 살아나갈 수 있을까요? 네 정말 괜찮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