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지구에서 떠난지 얼마나 흘렀을까. 이제는 기억도 안난다. 지금 내 주변에는 정처없이 떠도는 운석들과 푸른 빛을 내는 혜성들, 그리고 나보다 먼저 우주에 도착해서 생을 마친 선배들의 유해만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광엄하게 넓은 우주에 홀로 떠돌고 있던 나는 내 머리속에 각인된 마지막 임무를 행하고 있었다.


내가 왜, 언제 인격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이것 하나만큼은 알 것만 같았다.


나를 만든 사람들 중에는 마술사라는 인간이 내 몸에 몰래 무언가를 해뒀다는 것뿐?


그런건 이제 상관없다. 나는 그저 내 할일을 할뿐이니까. 나는 수많은 센서의 능력으로 인간들이 살 수 있는 수많은 외계행성들를 찾아내고 보고하는 것이 내 임무니까.

 

 하아... 내 몸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네. 그리고... 눈도 무거워지고 있어. 그렇게 나는 죽어가면서 여러 기억들을 떠올랐다.


내가 처음으로 눈을 뜬 그 날 나를 반갑게 맞이한 인간 부모들의 웃음을, 지구를 떠난 그 날 우주에 무사히 도착한 나를 보며 기쁨의 눈물을 흘린 인간 부모들을, 나의 인공 눈으로 본 우주의 광경들과 수많은 행성들을, 그리고 나의 날개가 망가졌던 것까지. 그래도 임무를 멈추지않고 인간들한테 내가 본 모든 것을 전해준 것을 모두 잊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우주만 바라보지않았다. 나는 아주 가끔씩 지구에 눈을 돌리면서 인간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했다. 그래서 아주 가끔씩 인간들의 삶을 보았다. 내가 어떻게 인간들의 소소한 삶까지 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깨우쳤다고 봐야하나?


그렇게 내 눈으로 본 지구 곳곳에는 자신들의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싸우는 인간들이 있거나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위해 다른 사람들을 거리낌없이 희생시키는 인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인간들만 있는게 아니었다. 말과 사는 곳이 달라도 그런 그들을 기꺼이 돕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타인인데도 위험에 처할 때 망설이지않고 뛰어드는 사람들, 피가 다름에도 서로를 친가족이상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까지.


온갖 역경에도 굴하지않고 타인을 구하려는 인간. 그리고 친절한 인간. 만약 내가 인간이 된다면 그들처럼 되고 싶다. 


이제는 저멀리에 있는 내 고향 지구를 보는 것도 마지막이겠지. 저 푸른 지구를 조금만 더 보고 싶은데. 그때부터였나?


하지만 지쳤다. 내 몸이 점점 더 망가지고 연료도 다 떨어져가고있는데 이제는 그만 쉬어야겠어.



케플러 망원경. 2018년 10월 30일 임무 수행에 필요한 연료가 고갈이 확인. 공식적 임무 종료가 되었다. 케플러는 모든 힘이 소모되고 시각센서가 불능이 되고 있었을 때 주변이 새하얗게 밝아지고있었다.



"나의 부름에 응하여 나와 계약하라! 서번트여!"


- 치이이이잉! -


일본의 후유키 시의 어느 대학교의 우주연구소. 어느 마술사 집안의 후예인 과학자는 지금까지 자신이 배우고 익혔던 과학과 깊은 유서와 마력을 자랑하는 마술을 융합시키고 그린 마법진을 연구소 한가운데에 그리고는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여느 마술사들과는 다르게 과학이 자신의 가문의 영광을 높여준다고 생각한 그는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드디어 서번트를 소환하였다. 그렇게 한순간의 강한 섬광을 비추던 마법진 위에는 드디어 서번트가 등장하였다.


"좋았어! 드디어 서번트를 뽑았다!"


마스터는 마법진 위에서 소환된 서번트를 보고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런 그를 더욱 흥분케한 것은 다름아닌 그 서번트의 외형이었다. 검은 진주를 연상시키는 눈동자와 검은색과 주황색이 섞인 장발의 물결 머리카락과 인형을 연상시키게하는 듯한 팔과 다리, 그리고 등에는 우주 망원경의 날개를 연상시키는 듯한 기계날개와 그 팔에 박힌듯한 전자장치들. 그리고... 보통 여자들보다 더 큰 매혹적인 가슴을 우주복과 카우보이를 합친듯한 옷을 입은 여자였다.


그 여자는 자신을 소환한 남자를 보고는 정중하게 물었다.


"묻겠습니다. 저를 소환한 당신이 저의 마스터이십니까?"



케플러 우주 망원경. 수많은 외계행성들을 찾은 업적이 후대에서는 그런 '그녀'를 영웅시하는 사람들의 기원으로 여러가지 구설이 흘러갔다. 시간이 흘러 케플러를 인간으로 인식하고 쓰는 작품들까지 등장하였다. 이에 인리는 케플러를 영령의 좌로 등록시켜 영령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