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어느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잠시 호흡을 정돈하고 문을 두드렸다. 나긋나긋한 여성의 ‘들어오세요’하는 소리에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한 우마무스메가 앉아서 출력된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고객......”

밝은 톤의 세미 정장을 입은 그 우마무스메는 서류를 내려놓고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고개를 들어 인사를 건네려다,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치더니 얼굴이 훅 붉어져버렸다. 한계까지 둥글게 뜨인 눈 안에서 눈동자가 갓 잡은 생선처럼 파닥거리고, 꼬리와 귀가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아, 예. 안녕하십니까.”

두 손을 맞잡아 모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하는 그녀에게 멋쩍게 고개숙여 답하면서, 남자는 테이블 앞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꼭 무슨 텔레마케터처럼 인사하는 특이한 곳이구나, 정도의 첫인상이었다. 푹신한 의자에 편안하게 앉자 그제서야 여자도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이곳은 한 결혼정보회사 사무실. 어느 트레이너가 결혼 상대를 찾겠다고 등록한 뒤 커플 매니저와 갖는 첫 만남이었다.


“우선 고객님. 고객님과 저희 회사의 상호 신뢰를 위해서 대화 내용은 녹취를 하셔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시는 걸 추천드리고요.”

다시 서류를 집어든 매니저가 트레이너를 힐끗거리면서 말했다. 차분하게 필요한 정보를 고지하는 투였지만, 내용은 회사에 굉장히 불리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결혼정보회사에서 가입자 상대로 말바꾸기를 한다거나 사기에 준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렇다고 회사 측에서 이렇게 고지를 해주는 경우는 절대 없지만. 트레이너는 별 신기한 일도 다 있다고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가요? 사실 잘 몰라서요. 그치만 뭐, 제가 보기에 크게 사기를 치신다거나 불성실하게 임하실 타입은 아니실 것 같은데요. 괜찮습니다.”

“어머, 부끄러워요......”

“예?”

몸을 배배 꼬던 그녀를 트레이너가 올려다보았다. 붉어진 얼굴을 홱 서류로 가리면서, 몇 번 헛기침을 한 매니저가 원래의 차분하고 싹싹한 태도로 돌아왔다.

“아닙니다. 그럼 제 쪽에서 녹취록을 만들어두려고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상관은 없습니다.”

“아싸오늘은이거들으면서자야지.”

“예?”

“아닙니다. 그럼 지금부터 녹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자기 핸드폰의 음성녹음 어플을 가동해 책상 위에 올려두는 것을 시작으로, 매니저는 목을 가다듬더니 아까보다 명백하게 2개 음 정도 올라간 활기찬 목소리로 상담을 시작했다.

“우선 우리 고객님께서 등록해두신 정보를 간단하게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나이는 ~~세시고, 직업은 중앙 트레센 학원의 트레이너라고 적어주셨는데요. 관련된 증빙서류 이번에 등록해주셨지요?”

“예.”

“보통 중앙 트레센 트레이너분들께서는 노블 결정사를 많이 이용하시는데, 실례지만 저희 회사를 이용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실례인 줄 알면서 무슨 무관계한 질문을 하는 건지. 트레이너는 잠깐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해가 되는 질문도 아니다. 아무래도 자신이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나보다고 생각하고 솔직하게 답변했다.

“아무래도 너무 급이 높으면 부담스럽기도 하고, 제 집안도 평범하기도 하고요. 여러가지로 최대한 비슷한 사람을 만나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저두요......”

“예?”

“아, 너무 공감되는 말씀을 하셔서요. 저도 모르게헤헤.”

매니저는 뒤통수에 손을 올려두고 혀를 가볍게 내밀어 웃었다. 아까까지 굉장히 차분하고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줬는데, 생각보다 감성적인 사람이었나보다고 트레이너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 예......”

“굳이 이렇게 저희 회사를 찾아주시구, 제가 이렇게 매니저를 맡은 걸 보니 운명적인 만남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용.”

“예?”

“운명적인 만남을 이룰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녀의 패기 있는 말에 트레이너가 처음으로 어색하게 웃었다. 그 웃음을 바라보면서 매니저 씨는 귀를 몇 번이나 쫑긋거리면서 오줌 마려운 표정을 지었다.



“다음은 우리 고객님께서 원하시는 이성상을 간략하게 확인하겠습니다.”

“예. 필요한 내용은 전부 기재되어 있지요?”

“네. 구체적으로 적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나이대가 비슷하거나 조금 어리고, 소득도 학력도 조금 낮은 수준으로. 흠흠. 이 부분은 많은 남성분들께서 그렇게 바라시는 편이네요.”

아무래도 남성들은 자신보다 조금 모자란 정도의 여자를 바란다. 그 점에 문제는 없지만, 매니저의 표정이 한 항목에서 굉장히 어두워졌다. 그런 눈치를 트레이너도 살폈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했는지 조금 걱정되는 눈치였다.

“문제가 되는 항목은 여기 정도네요.”

“혹시 무엇일까요?”

“인간 여성을 선호하시고 우마무스메 비선호라고 적으신 부분이요! 너무해요!”

“예?”

갑자기 볼을 부풀리고 책상을 두드려가며 불만을 표하는 매니저에게 트레이너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녀는 몇 번이나 주먹을 가볍게 내리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

“저도, 아니 우마무스메들도 분명 멋진 사랑을 꿈꾸고 있었을 텐데! 그저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당신같이 멋진 분을 만나뵐 수조차 없다니 너무해요! 우마무스메가 트레이너 씨에게 뭔가 잘못한 거라도 있는 건가요?”

“꼭 그런 건 아니고, 제 개인적인 선호가 그런 건데요.”

“우마무스메 레이스 업계에서 일하시면서 우마무스메를 증오하고 차별하신다니 이래도 되는 건가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오해입니다.”

“그럼 말씀하세요! 우마무스메도 좋아한다고!”

“제가 왜......”

“빨리요!”

“우, 우마무스메도 좋아합니다......”

매니저가 지금도 녹음이 착착 진행중인 자신의 핸드폰을 눈으로 흘겼다.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서류로 능숙하게 숨기고 벌떡 일어나 책상을 위협적으로 한 번 더 내리쳤다.

“더 큰 소리로 말씀하세요!”

“우마무스메도 좋아합니다.”

“더 크게!”

“우마무스메도! 좋아합니다!”

“좋아합니까?”

“좋아합니다!”

“사랑합니까?’

“사, 사랑합니다!”

“하아~.”

만족스러운 한숨과 함께 그녀가 헤벌쭉 웃어 자리에 앉았을 때, 트레이너는 어쩐지 기가 빨리는 느낌을 받았다. 몇 번 셔츠를 펄럭거려 불편한 마음을 표현하는 동안, 그걸 바라보던 매니저 씨도 갑자기 재킷 칼라에 양 손을 가져갔다.

“흥분해서 죄송해요. 답지않게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굴었네요.”

“아닙니다. 우마무스메분 앞에서 뭔가 제가 잘못한 게 있었겠죠.”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러니까, 어디까지 얘기했죠?”

“네. 선호하는 여성상이요.”

“그랬죠. 그러니까......”

서류를 뒤적이던 매니저 씨가 한 항목에 눈을 멈추고 트레이너를 바라보았다.

“성격란에 소탈하고 공감능력이 좋고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적어주셨네요.”

“예. 아무래도 함께 산다고 생각하면 그런 무난한 사람이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개성도 좋지만요.”

“아아, 그러니까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그런 느낌일까요?”

“그렇죠.”

“그렇구나!”

갑자기 말이 짧아지는 그녀에게 당혹스러운 시선을 보내기도 전, 매니저가 테이블 위에 몸을 편안하게 올려두고 앞으로 한껏 기울여 이를 드러내 웃었다.

“그럼 이제 말 편하게 할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친구처럼 말야! 야야, 너도 말 편하게 해! 우리 사이에 무슨.”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이런 느낌으로 괜찮으실까요?”

슬슬 불편함이 강해져 짜증을 내자 그녀가 몸을 다시 의자에 기대며 차분하게 물었다. 아무래도 좀 더 구체적인 사례로 확인하려 그랬나보다고 트레이너는 납득해버렸다. 성격이라는 게 자세하게 적어도 해석이 다를 수가 있으니까. 적어도 트레이너는 덕분에 자기 취향이 조금 더 확실하게 다가온 모양이었다.

“예, 방금 그런 느낌인데 조금 더 예의를 차린 정도면 괜찮겠네요.”

“그래? 알았어.”

“예?”

“이해했습니다. 고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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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 긴 시간 상담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 예. 다 된 건가요?”

몇 가지 질문과 응답이 나름대로 정리된 분위기에서 진행된 뒤, 트레이너는 어쩐지 조금 지친 모양이었다. 그냥 데이트 앱이나 쓸걸 가벼운 후회도 들었다. 그러는 사이 매니저는 서류를 가방에 챙겨넣고 싱긋 웃었다.

“고객님께서 바라실 법한 이성이 회사 데이터베이스에 등록이 되어있구요.”

“그런가요?”

“그 이성분께서도 굉장히 트레이너 씨를 마음에 들어하시고 만나고 싶어하실 것 같습니다. 원하신다면 오늘, 아니 지금 당장이라도 매칭이 가능할 것 같은데 어떠신지요?”

“지금 당장이요? 그렇게나 빨리요?”

놀란 트레이너의 반응에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매니저는 양 손을 모아쥐고 굽실거리며 권했다.

“예! 대단하죠? 지금이라면 무료 만남주선 4회 차감없이 해드릴 수도 있는데, 어떠신가요?”

“확실히 대단하네요. 페널티도 없으면, 뭐 괜찮습니다. 내일까지 휴일이기도 하고.”

“네! 그럼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싱글벙글 웃으면서 매니저가 테이블에 몸을 살짝 기댔다. 양 팔을 올려두고, 턱을 괴고,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저는 어떠세요?”

“......하?”

“안녕하세요, ~~ 씨. 저희 구면이죠? OO라고 해요.”

“......하?”

“이게 아닌가? 말 편하게 할까?”

“아니, 지금 장난해요?”

“장난 아닌뎅......”

상처받은 척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매니저는 투덜투덜 인적사항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 씨가 바라는 대로, ~~ 씨보다 학력도 조금 딸리고, 소득도 조금 딸리고, 나이도 살짝 어린 편이고, 그러면서도 최대한 비슷한 사람! 바로 나!”

“아니, 당신은 직원이잖아요?”

“저도 여기 등록 됐거든요?”

바로 가방에서 자기 등록서류를 꺼내 내밀려는 매니저를 손사래를 쳐 막고, 트레이너가 노발대발 화를 내기 시작했다.

“대체 뭐예요? 아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어! 회사가 문제인 거야, 당신이 문제인 거야?”

“당신이 문제예요! 왜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는 거죠?”

“댁이 너무 열린 거야! 아, 됐고. 다른 매니저 불러와요. 다른 매니저.”

“왜 저 말고 다른 우마무스메한테 눈 돌리시는 거죠?”

“다른 매니저! 인간으로!”

언성이 점점 높아지자 바깥에까지 소음이 들리는 건지,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다른 커플 매니저가 문을 열었다. 네이비색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사태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빼꼼 내밀고 물었다.

“무슨 일이야, OO 씨? 무슨 일이신가요?”

“아니, 이 여자가 아까부터 이상한 소리만 하고, 자기를 매칭시키니 어쩌니 하잖습니까?”

“아, 그러셨군요. 고객님.”

정장 입은 남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업무용 스마일을 띄우며 트레이너에게 꾸벅 인사를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OO 씨도 축하해.”

“아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아니, 야! 왜 그러는 건데? 당신 동료 왜 저래?”

“아잉, 몰라요오......”

“돌겠네.”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지 몸을 배배 꼬는 매니저와, 동료 매니저가 꾸벅 인사하고 사라져 열린 문을 바라보며 트레이너가 셔츠를 펄럭거렸다. 잔뜩 화가 난 소리로 말하고 있으니 사라졌던 남자가 다시 돌아와 얼굴을 내밀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고객님.”

“아, 그래. 이제 뭐가 문제인지 알겠어?”

“문 닫아드리겠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잖아?”

“불도 꺼드릴까요?”

“아니, 미치겠네 진짜. 아, 됐고. 책임자 나오라고 해!”

사무실이 어지간히도 시끄러웠던 건지 믹스커피를 타 거닐던 나이 좀 있어보이는 남자가 어슬렁어슬렁 등장했다. 책임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외모에서 직급을 느낀 트레이너가 항의했다.

“당신이 책임자요? 아니, 여기 회사가 이상하네. 매니저라는 사람이 자기랑 매칭을 하려고 하질 않나. 저기 저 남자는 불을 꺼준다느니 헛소리나 하고 있고!”

“그러셨습니까. 고객님. 자네 왜 그런 소리를 했어?”

“죄송합니다. 그런 분위기인 줄 알고.”

적당히 좋은 말로 남직원을 타일러 보낸 뒤 나이 있는 남자가 문에 들어와 꾸벅 고개숙여 사과의 인사를 건넸다. 사과는 됐다고 계약 해지할 테니 관련 서류나 가져오라고 트레이너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잠시 생각하던 책임자가 알았다고, 무거운 목소리와 함께 방을 떠났다. 침묵에 잠긴 방에서 얼마 뒤 OO 매니저가 훌쩍거렸다.

“정말 잘하려고 했는데......”

“......”

“당신은 결혼하려고 온 거고, 저는 결혼정보가 있으니까 서로 잘 맞는다고 생각해서......훌쩍.”

“하아.”

아직도 뭐가 문제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아쉬워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여자가 울고 있으면 남자는 어쩐지 마음이 불편해지는 게 당연하다. 트레이너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내밀고, 매니저는 눈물을 닦았다. 눈물을 닦으니 이상하게 더 눈물이 나서 그녀가 펑펑 울기 시작했다.

“저 아무한테나 이러는 여자 아니란 말예요......”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그만 합시다. 그치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어휴.”

“푸흐허어어엉! 흐앙!”

큰 소리로 울면서 손수건에 코를 풀어대는 매니저를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트레이너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시간이 좀 지나 그녀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트레이너는 자리에 앉아서 계약 해지 관련 서류를 들고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벌개진 코와 얼굴로 매니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었다.

“죄송했습니다......”

“됐어요, 이제. 손수건은 빨아서 그쪽이 갖든지, 나중에 줘요.”

“......우편으로 보내드릴게요. 다시 보고 싶어하시지 않으실 것 같아서요.”

의외로 포기가 빠른 건지, 아니면 극도로 상대를 배려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완전히 낙담했다. 귀는 힘없이 축 늘어지고, 고개도 아래로 쳐져 있었다. 눈물을 펑펑 흘려 벌개진 눈가를 손으로 비비다가, 그녀가 재킷을 몇 번 펄럭였다. 한참을 울었더니 더운 모양이었다.

“저는 이만 나가볼게요. 그 편이 편하시겠죠?”

“......”

대답하지 않는 그에게 슬픈 강아지같은 눈빛을 보내면서, 매니저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윗옷을 벗었다. 크림색 오버핏 재킷이 그녀의 상체에서 빠져나가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새하얀 블라우스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분명 일직선을 따라 단추가 잠기도록 만들어졌을 텐데, 그 직선이 왜곡시키는 대단히 대단한 두 개의 존재감이 빛을 발했다. 거기 대단히 대단한 것이 숨어있다고 굳이 표시하는 듯한, 하얀 블라우스 안에 붙어 드러난 어두운 색 속옷도 보였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마지막으로 트레이너 씨에게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했고, 자연스럽게 중력을 받아 물방울처럼 늘어진 것이 마지못해 인사를 받으려던 그의 두 눈에 새겨졌다. 그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제시된 어떤 정보보다도 중요한 것이었다.

물론 그녀는 자랑하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다. 지가 멋대로 튀어나와서 자기주장을 하는 거지. 실제로 그녀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포기한 표정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보여버린 건 필연적으로 남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선을 사로잡고 지능을 저하시킨다. 그녀가 허리를 숙였다가 다시 펴는 그 시간이 영겁과도 같이 길게 느껴졌다가, 돌아서서 문을 향해 나가는 시간이 찰나와 같이 짧게 느껴졌다.

“잠깐만.”

그가 문고리를 잡은 그녀에게 말했을 때는, 아쉽다는 감정조차 아직 뇌에서 전달되기 전의 일이었다. 부르는 소리에 멈칫해 매니저가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신가요?”

“......어흠. 아까는 너무 갑작스러워서 놀라서 그랬고, 조금 차분하게 생각해보니까 화가 좀 풀렸다고 해야 하나. 평정심을 잃어서 그, 미안했습니다.”

“......저야말로, 정말 죄송했습니다.”

다시 한 번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매니저, 트레이너는 사과하려고 숙이던 고개를 뻣뻣하게 쳐들고 2차 함수 그래프같은 능선을 감상하고는 몇 번 헛기침을 했다.

“사과라고 하긴 뭣하지만, 어디 나가서 차라도 한 잔 하면서 얘기를 좀 더 할까요?”

“정말요?!”

그 말에 매니저의 얼굴이 거짓말처럼 확 펴졌다. 집에 주인이 돌아온 강아지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모습이 아까와는 달리 퍽 귀엽게 보여 트레이너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정말요. 제가 커피 살 테니까, 바로 가죠.”

“정말요? 정말요? 갈래요! 갈래요!”

뭐가 그렇게 기쁜지 그녀가 펄쩍 펄쩍 뛰었다. 흔들흔들, 온 몸으로 기쁨을 표현하는게 이런 것일까. 트레이너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주면서 웃었다.

“말 편하게 해요.”

“오! 정말? 하긴, 우리 동갑이니까 그래도 되겠지?”

“그랬어?”

“그치만 뭐, 트레이너 씨는 3월생이고 나는 4월생이니까, 오빠라고 불러도 괜찮고.”

“참 나.”

계약 해지 서류를 인쇄하던 책임자를 향해 오후 반차를 쓴다고 큰 소리로 외치고, 동료들의 박수를 받으며 트레이너와 매니저가 회사 건물을 빠져나왔다. 건물 복도를 걷는 동안 벌써 아이스 브레이킹이 끝났는지, 서로의 호구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중앙 트레센 다녔어?”

“필기에서 떨어졌징~!”

“얼마나 바보인 거냐, 너.”

거기서 거기인 바보 둘이 히죽히죽 웃으며 택시에 나란히 올라타 어딘가로 떠난다. 쨍하니 날씨가 좋은 한낮, 뷰가 좋은 브런치 카페 같은데서 가볍게 한 끼 하든지, 어디 빵 맛있는 거 파는 카페에서 노닥거리기 좋은 시기였다. 아니면 뭐, 낮술이나 꺾으러 갈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걸 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들 무슨 얘기인지 알 테니 생략하겠다.

결혼정보회사의 실질적인 성혼률은 2% 남짓, 높게 잡아도 15%가 되지 않는다고들 한다. 그런 확률을 뚫고 그 둘이 제대로 된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 지 없을 지는, 이제 그들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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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 卒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