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내년 반편성 걱정과 내후년 진학 걱정을 하다보니 방학식은 어느새 끝나있었다.

반장이나 오타쿠 등 각자 자기네 그룹의 뒷풀이 약속을 잡았고 나는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차라리 반에서 모여서 간다고 했으면 끼워달라고 했을 것 같은데 조금 아쉬웠다.

동생은 외출복을 입은 채 집에 있었다.


"코트도 안 벗고 뭐해?"


나는 동생에게 말을 걸었고 동생은 다짜고짜 내 앞으로 걸어왔다.


"오빠, 오늘부터 방학 맞지?"

"어? 어... 그렇지."

"그럼 어디 놀러갈래?"


그렇게 말하며 성큼성큼 걸어오는 동생의 모습은 꼭 거대한 곰이 두 발로 서서 걸어온 것 같았다.

곰 같다고 말하는 게 칭찬으로 들리진 않겠지만 박력이 그러했다.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아무래도 동생을 올려다보게 되니 한층 더 커보였다.

덩치도, 박력도 말이다.

나는 반걸음 정도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 나는 딱히 나가고 싶진 않은데..."

"그러니까 친구가 없지."

"야!"

"그러지 말고 나가자, 오빠."


어차피 방학동안 공부만 한다면서 집안에 박혀있을 것이 아니냐,

차라리 나가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게 인생에 도움이 된다,

방학인데 동생하고도 좀 놀아줘라,

동생은 이런저런 말들을 뱉어대며, 방까지 졸졸 따라오면서 나가자고 졸랐다.


"그래서 어딜 가자는 건데, 그거부터 말을 해."


동생은 씨익 웃더니 다시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웬 오렌지주스를 들고 왔다.


"마시라고?"

"아니 이건 내가 마실건데?"


굳이 그걸 부엌까지 갔다가 다시 내 방까지 와서, 내 앞에서 마셔야 하나 싶었다.

표정으로 드러났는지, 애초에 숨길 생각도 없었지만, 동생은 내 반응을 살피더니 빙긋 웃고는 주스를 건넸다.


"근데 웬 주스?"


일단 받아들었지만 미심쩍었다.


"혹시 침이라도 뱉었어?"

"뱉었어도 그걸 말 할까?"

"...똑똑한데?"

"오빠가 멍청한게 아니라?"


난 바보같은 만담에 웃음이 나왔다.

일단 거의 입술만 적시는 느낌으로 조금만 입에 넣었다.

그냥 오렌지주스였다.


"...뭐 넣은 거 맞지?"


동생은 그냥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래서 표정을 읽기가 힘들었다.

허나 분명 뭘 넣은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소금 조금?"


나는 바로 컵을 내려놨다.


"소금? 왜?"

"오히려 소금을 넣으면 단맛이 더 잘 느껴진대."

"그럼 너나 많이 먹어."

"안 그래도 기숙사에서 몇 번 먹었어."

"뭐?"

"근데 난 잘 모르겠더라고."

"직접 해먹었다고?"

"친구가 해서 주기도 했고 내가 한 번 실험해보기도 했고."


그러니까 친구끼리 장난으로 주스에 소금을 타서 먹였는데 동생은 아무렇지 않았고,

그 반응을 보고 직접 마셔본 친구들 반응도 미묘했고,

오히려 달았다고 느끼기도 해서 나한테까지 가져왔다.

대충 여기까지가 이 일의 전말.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고?"

"어차피 못 먹을 것도 아닌데 마셔주면 안 돼?"

"그냥 나로 실험을 하겠다는 거잖아."

"먼저 내 혀로 실험도 해보고 가져온 건데 좀 어때."

"너를 어떻게 믿고?"

"나를 왜 못 믿어?"

"어?"

"나 오빠한테 딱히 심한 거짓말도 안 했잖아."

"..."


그렇더라도 보통 이 상황에서 마셔주면 그거야말로 호구짓이 아닌가.

그러나 마실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게 있는 선택지는 마시거나, 마실 때까지 이 만담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제까지 나는 동생을 이겨본 적이 없고 동생은 내가 마실 때까지 버틸 생각인 것 같았다.

결국 떨떠름한 표정으로 동생을 바라보면 홀짝홀짝 마셨다.

잔을 비워내고 내린 맛평가는 다음과 같았다.


'살짝 씁쓸하지만 오렌지주스맛에서 벗어나진 않았다.'

'달긴 커녕 오히려 없어도 되는 쓴 맛이 난다.'


그것보다,


"달다고 했는데 왜 쓰냐?"

"쓰기만 해?"

"일단 오렌지 주스맛은 있는데."

"그 살짝 쓴 맛 때문에 더 달지 않아?"

"그건 그냥 기분탓 아니야?"

"그런가?"

"에라이..."


쌉쌀한 느낌이 계속 남아있다.

입 안에 남은 무언가를 쩝쩝대면서 맛을 보는데 미묘한 느낌이다.

이거 소금이 맞나 싶은 의문이 들었다.


"애초에 이거 소금 맞아?"

"아닌 것 같아?"

"아닌 건 같... 아니, 그걸 묻는 다는 건 아니란 소리잖아!"

"예리하네."


한 번 소리를 질렀더니 갑자기 나른해졌다.

그렇게 화를 내진 않았는데 한바탕 열이 뻗쳤다가 사그라든 느낌이다.

동생은 내 반응이 재밌는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재밌어?"

"응!"

"힘차게도 말한다."

"그럼 슬슬 나갈까?"

"...나 졸린데 다음에 가면 안 돼?"

"응, 안 돼."

"아니 진짜 나른해서 그래."

"알아."

"뭘 안다는 거야."

"오빠 졸린 거."

"알면서 그러냐..."

"알고 있으니까 그러는 건데?"


장난칠 기력도 없이 진짜 바로 쓰러질 것 같은데 동생은 놔주질 않았다.

난 그대로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교복을 갈아입는 것이 귀찮을 정도로 너무 졸렸다.


"아 몰라 난 잘거니까 업고 나가던가."

"그럴 생각이었어."

"아니, 좀..."

"그러니까 수면제도 타서 먹였지."

"수면... 어?"

"소금 넣었다고 주스가 쓴맛으로 변하겠어? 약 때문에 그렇지."

"...므어?"

"참고로 수면유도제가 아니라 진짜 수면제라서 곧 잠들거야."

"얘가 지금 뭐라는 거ㅇ..."


난 동생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잠들어버렸다.


31화 올린 줄 알았는데 아니었음 ㅈㅅ



https://arca.live/b/umamusume/71132001

ㅈ박아버린 연재주기로 인해 기억 안 나실 분들을 위한 1화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