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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르릉거리며 귀를 날카롭게 때리는 자명종 소리에 의식이 급부상 한다. 평소라면 곧바로 일어날 테지만 오늘은 다르다.


눈은 뜬 채로, 일어나기 싫다는 의사를 몸으로 표현하는 듯, 베개에 얼굴을 파묻는다. 아침에, 그것도 외부의 자극으로 인해 깨서 일어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리는 없겠지만.


그러나 그녀는 다르다. 어제는 무척이나 끔찍한 하루를 보냈다. 밤의 공원, 피웅덩이, 사이렌, 그 외의 다른 자극적인 요소들은 꿈을 꾸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혼자만 붕 뜬 것 같았다.


시야를 가리고 눈을 다시 뜨면 릿토 기숙사에 있는 자신의 침대 위에서 눈을 뜰 것만 같았다.


점점 커지는 자명종 소리에 없던 힘이 생기고, 짜증이 몰려왔다. 뒤척이며 질끈 감았던 눈을 뜨자 변함없는 기숙사의 방 안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바라던 대로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그녀가 원할 때, 원하던 날에 이루어지지 않았는 것이 참으로 아쉽다. 솔직히 그녀가 그러한 것을 신경을 쓸까?


팔을 휘둘러 침대 옆 탁자에 놓인 저 가증스러운 소리를 내뱉는 고철덩어리를 부숴버리자 방 안이 조용해졌다. 차가운 침묵이 방을 집어삼키자 무언가의 불편함이 그녀를 자극했다.


달라진 거라곤 주위에 있던 사소한 요소 하나가 사라졌을 뿐인데도 평소라면 가볍게 넘길 것들이 신경 쓰이고 괜히 짜증이 났다. 그 사소한 요소가 본인에게는 매우 커다란 것 이었을 뿐.


‘오늘은 그냥 방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학원에서 여느 때처럼 지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고 한순간에 지쳐버린 심신을 안정시키려면 하루 정도는 푹 쉬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스스로를 변명하면서 어느 새인가 쉴 새 없이 울려대는 휴대폰을 무시한 채로 눈을 감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슬슬 잠이 몰려 오려고 하던 찰나에 누군가 방문을 품격과 예의라는 것은 뉘집 개에게 밥으로 던져준 채로 두들겼다.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음원이 문의 중간에서 반쯤 위에서 발생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체격은 꽤 있는 성인 남성일 것이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몰염치한 사람이 다른 이의 휴식을 방해했으니, 오조오억 배로 갚아줘야 한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힘없는 발걸음을 내딛으며 문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고리를 잡아 돌려 방문을 열었다.


잔바람이 불며 앞에 서 있는 남자의 체취가 물씬 풍겨왔다. 익숙한 신발, 항상 본인이 고집하는 바지, 낡고 해진 재킷과 가슴팍에 대충 달아놓은 뱃지.


“지금까지 경기 당일날 아침에 이런 적은 없었는데, 무슨 일 있었어?”


고풍스러운 느낌이 드는 작은 은색 로켓이 달려있는 심플한 목걸이, 살짝 너저분한 면도 자국이 남은 턱, 아직 앳된 티가 조금 남아 있는 얼굴과 상반되는 피곤으로 가득찬 흐리멍텅한 눈.


“옷도 아직 안 갈아입었고… 설마 늦잠 잔거야?”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을 나쁘게 만들지만 그녀에게는 무척이나 살갑고, 친숙한 사람.


“트레이너.”


다시는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트레이너가 눈앞에 서 있었다.


눈앞이 일렁이면서 뿌얘지고 코끝이 찡했다. 울컥하는 감정과 함께 목이 막혀 뭐라 말하지도 못해고 입만 벙긋거리는 모습이 참으로 꼴사납겠지. 그런 자신의 모습은 신경도 안 쓰고 그에게 안겼다.


“우왓?! 갑자기 왜 그래!”

“가만히 있어.”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눈앞의 그가 드물게 당황했지만 울먹이는 목소리에 담긴 감정을 알아챘을까, 금방 진정하고 그녀의 말에 따랐다.


“안아 줘.”


등 뒤를 감싸오는 따뜻한 손길. 투박하지만 편안하다. 그의 품에 안겨있으니 모든 피로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어 그의 체취를 느꼈다.


혹시라도 다시 한 번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을까, 문득 불안감이 느껴졌다. 좀 더 세게 안아달라고 그에게 청했다. 이번에는 곤란한 듯이 머뭇거리다가 자신을 안은 팔에 힘을 더욱 가했다.


“트레이너.”

“나 여기 있어.”

“트레이너.”

“쉽.”

“트레이너…”


반복되는 문답에도 자신을 따스히 품어준다. 그렇게 몇 분을 안겨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의 차 안에 있었다. 눈을 감고 기억을 되짚어보니, 그 후에 트레이너가 시간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 자신을 채근해 준비를 마쳐 서둘러서 경기장으로 향했다.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마음 속에 있던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아 몇 번이고 트레이너를 불렀다. 그 덕에 준비를 미처 다 하지 못한 그는 자신이 준비를 다 마치고 나서야 본인도 준비를 마칠 수 있었고, 때문에 조금 더 늦어졌다는 건 비밀.


“오늘 컨디션은 괜찮지?”

“…”

“경기장에 도착하면 대기실에서 잠깐 가볍게 간단한 트레이닝 좀 하자.”

“트레이너, 앞.”


운전하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곁눈질로 자신을 쳐다보는 모습에 핀잔을 주니 마지 못한 트레이너가 운전에 집중했다.


때때로 대화가 오가지만,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된 태도를 고수하는 골드 쉽에게 트레이너는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이유를 묻지 않는 것이 고마우면서도, 그것이 불만이었다. 경기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릴 때까지 침묵은 계속되었다.


“오늘 경기 끝나고 먹고 싶은 거 있어?”

“…”

“아니면 같이 어디 들렸다 갈래? 공원이라던가———”

“안 돼.”

“어?”


트레이너가 무심코 내뱉은 한 단어에 침묵이 깨졌다. 세 발 치 떨어져서 걷는 골드 쉽을 향해 뒤돌아 본 그는 인상을 찡그린 채로 서 있는 그녀를 보았다.


”…네가 그럴 기분이 아니라면.”

“…”


눈치가 빨라서 안 좋은 점은 이런 곳일까. 또 다시 캐묻지 않는 트레이너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무언가 텁텁하고 자꾸만 걸리는 부분이 자신의 안을 계속해서 흔들고 있는데, 그걸 담당이라는 자가 그대로 방치해두는 것은 나쁘다. 심지어 일부러, 그 이유가 ‘자신을 헤아려 주었다’ 라는 건 치사하지 않은가.


“기분이 안 좋은 거라면, 몸도 풀 겸 살짝 달리고 오는 건 어때?”


달린다. 문득, 그 단어에 꽂혔다. 답답하던 부분이 서서히 사라져간다. 앞서 걸어가는 트레이너를 놔둔 채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이기면 되는 거야.”


그렇게 하면 된다. 원인이 자신의 달리기 때문이었다면, 원인이 되지 않으면 된다. 자신이 이겨서, 그가 죽는 미래를 만들지 않으면 그것으로 해결이 된다.


“뭐해? 빨리 와. 경기 시작까지 1시간도 안 남았어.”

“…갈게.”


우선은 처리해야 할 건, 처리를 하도록 하자.


트레이너를 먼저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이에요.”

[…대가를 치르겠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상관 없어요. 당신들이 처리만 제대로 해주시면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해 드리겠습니다.“


내키진 않지만, 탈 없이 처리하려면 이 방법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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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오래 걸릴 만큼이 아닌데 왤케 늦게 썼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