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산 32전 8승. GII 3승 포함 중상 4승. GI 우승 없음.


이것만 들으면 흔히 보는 GII까지는 통하지만 GI에서는 이빨도 안먹히는 평범한 경주마라고 생각할수 있다.


거기에 통산 상금이 5억엔을 넘는다는 얘기를 들으면 'GI 우승은 못했어도 꽤 꾸준히 해줬나 보군'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GI에서 4착을 다섯번 하고, 세 종류의 다른 병으로 세 경주 연속 출주취소를 한 적이 있는데다 관서 말 주제에 관동에서만 잘 뛰었다는 얘기까지 듣는다면?


왜 얘가 나이스 네이처와 같은 팀 카노푸스 소속으로 설정되었는지 눈치를 챌 것이다.




평범해 보이나 평범하지 않은 개성파. 그것이 마치카네 탄호이저의 정체다.


(에이 에이 뭉!  바밤바~)


컬러링은 마치카네 일족 특유의 적청. 오른쪽으로 휜 블리치는 이 말의 가장 강렬한 외모 포인트인 유성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이 비대칭유성 때문에 코 자체가 비틀린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을 일으켰고, 그래서 현역시절 마방에서 부르는 별명은 하나모게라ハナモゲラ였다. 마방에선 꽤나 까탈스러운 녀석이라 이토 유우지 조교사가 '하나모게라를 탈 수 있다면 능숙한 조교보가 아닐까'라고 했을 정도.


외모도 튀지만 이름도 역설적으로 튀었는데, 웃기게도 '마치카네치고는 멀쩡한 이름이다'라는 이유였다. 마치카네 후쿠키타루편에서 이미 이야기한적 있지만, 마주 호소카와 마스오는 이름을 매우 개성적으로 짓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후쿠키타루부터가 '웃으면 복이와요笑う門には福来たる'를 쪼개서 마치카네 와라우카도와 세트로 지어진 이름이고, 그 외에도 킨노호시(황금별), 니혼바레(쾌청함), 이와시미즈(신사 이름) 이따위였으니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따온 탄호이저는 정말로 멀쩡해 보였던 것이다.


다만 관명에 이미 카타카나 4글자를 할당한 상황에서 탄호이저(タンホイザー)를 그대로 쓸수는 없어서 글자 하나를 잘라 탄호이저(タンホイザ)가 되고, 영문 표기로도 공백 포함 18글자를 넘어갈수가 없었기 때문에 Machikane가 아닌 Matikane에 공백없이 그대로 붙여서 Matikanetannhauser로 등록해야 했다.




(*이하 나이 표기는 현재보다 한살 더 많게 표기하던 당시 기준으로 표기)


마치카네 탄호이저의 아버지는 선데이 사일런스 도입 이전 일본을 지배하던 노던 테이스트. 외조부는 1980, 1981년 리딩 사이어였던 애로우 익스프레스. 그 시절 기준으로는 넘칠 정도로 훌륭한 혈통이다. 소속된 마방도 관서 리딩 7회, 전국 리딩을 4회 차지하고 샤다이 카구라, 다이이치 루비, 위닝 티켓, 에어 그루브, 파인 모션 등의 걸출한 명마를 키워냈던 이토 유우지 조교사의 마방.


노련한 조교사의 훈련을 거친후 1991년 9월 츄쿄에서 타케 유타카를 태우고 데뷔한 신마전에서 6마신차의 압승, 2차전에서는 산에이 생큐에게 밀려 4착을 거두고, 3차전부터 주전을 오카베 유키오로 체인지, 후츄 3세 스테이크스에서 낙승을 거두고 3세 챔피언전인 아사히배로 향하지만...


하필 같은 세대에 급이 다른 슈퍼 근육몬이 있었다. 미호노 부르봉.





엉덩이가 네쪽으로 갈라진 괴물은 여기서 데뷔 3연승을 거두며 스타 반열에 오르고, 마치카네 탄호이저는 3마신 넘게 벌어져 4착으로 들어오는데 만족해야 했다. 여기서부터 이듬해 클래식 시즌을 치르는 내내, 탄호이저는 부르봉의 그림자에 철저히 가려지게 된다.



클래식 시즌의 첫 시작은 교도통신배에서 4착, 그 다음 트라이얼로 참가한 스프링 스테이크스는 2착과의 거리를 7마신이나 벌린 미호노 부르봉의 쇼케이스였고 여기서도 3위 그룹에서 라이스 샤워를 포함 셋이서 겨루다 가장 처지는 5착을 기록한다.


클래식 초전인 사츠키상은 연승행진을 거듭하는 미호노 부르봉과 1초나 차이나는 7착. 더비 트라이얼인 NHK배(당시 GII, 2000m)에서 2착으로 상금을 벌어 더비에서 다시 부르봉에게 도전한다. 4코너에서 거의 최후방까지 포지션을 내렸다가 직선에서 모든 것을 걸고 스퍼트, 출전마중 두번째로 빠른 라스트 3펄롱(600m) 타임 37.1초를 찍지만...






그 타임은 선두에서 줄곧 도주하고 있던 미호노 부르봉이 기록한 3펄롱 타임과 동일했다. 야발놈의 근육몬...


미호노 부르봉 위주로 쫓고 있던 카메라가 그나마 비춰준 쪽은 2위 쟁탈전을 벌이던 라이스 샤워와 마야노 페트류스 쪽이었지 탄호이저 쪽은 아니었다...


마치카네 탄호이저 일본 더비 8마신차의 4착.


클래식 전초전에서도 한번도 못이기고, 그나마 제일 잘했던게 저런 꼴의 더비 4착. 이래서야 실력적으로 주목을 받기는 글러도 한참 글른 상태였으나


'노던 테이스트의 자식은 세번 달라진다'는 일본 경마의 오래된 격언이 탄호이저에게 먹히기 시작한다.




여름 방목을 마치고 돌아온 탄호이저의 복귀전은 고마들과의 혼합전인 카시오페아 스테이크스. 여기서 목 차이의 2착으로 건투하며 킷카상으로 간다. 그리고 클래식 시즌 탄호이저의 베스트 퍼포먼스가 바로 여기서 터진다.


또다른 도주마 쿄웨이 보우건에게 선두를 내주고 익숙하지 않은 추격 포지션을 잡은 미호노 부르봉이 4코너를 돌며 선두로 나섰지만 안쪽에서 마치카네 탄호이저, 그리고 바깥에서 라이스 샤워가 동시에 압박을 시작,





기어이 라이스 샤워가 미호노 부르봉을 넘어서고, 그에 호응하듯 마치카네 탄호이저도 미호노 부르봉을 제치는가 했지만 왕자의 자존심이 그것까지는 허락하지 않았는지 머리차로 3착에 들어온다. 탄호이저 뒤의 4착과는 7마신차.


라이스 샤워에게 3관을 저지당한 미호노 부르봉은 부상으로 은퇴했고, 결국 탄호이저는 부르봉을 단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



1993년. 5세 시즌. 새해 첫 중상인 나카야마 금배(GIII, 2000m)에 출전. 당당히 인기 1위에 올랐으나 뭘 잘못 먹었는지 8착으로 대패 참패 완패. 그러나 이어진 다이아몬드 스테이크스(당시 GIII, 3200m)에서 놀랍게도





3200m 잔디 주로의 JRA 레코드를 갱신하며 커리어 첫 중상 승리를 쟁취한다. 이어서 참가한 메구로 기념(GII, 2500m)에서도 58kg의 부담중량으로 59kg의 부담중량을 진 라이스 샤워를 2마신 반차로 격파하며 중상 2연승의 기쁨을 맛본다.


누가 보더라도 이건 스테이어 적성이었고, 당연히 다음 목표는 천황상·春(GI, 3200m)이었다. 그러나 이 경주는 불행히도 장거리의 전설이 둘이나 있었다. 이 경주 3연패를 노리는 메지로 맥퀸. 그리고 그 맥퀸을 잡아먹으려고 한계까지 몸을 바싹 깎아낸 라이스 샤워.


라이스 샤워가 메지로 맥퀸의 3연패를 저지하고 요도에 관중들의 고함이 메아리치는 순간, 카메라에 마치카네 탄호이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3착 메지로 파머보다도 6마신이나 뒤처진 4착이었으니까.



1993년의 나머지 기간은 오픈전에서만 두번 승리를 거두었을 뿐, GII인 타카마츠노미야배(2000m)의 4착, 재팬 컵(GI, 2400m) 13착, 그리고




테이오 기적의 부활극이 일어난 1993년 아리마 기념(GI, 2500m)에서 기수를 후반기의 주전이 되는 시바타 요시토미로 바꾸고 직선에서 인코스를 날카롭게 파고 들었지만 아리마 기념이라면 이골이 난 나이스 네이처를 제치지는 못하고 4착. 나이스 네이처의 3년 연속 아리마 3착이라는 또다른 위업의 조연이 된다. 탄호이저 스스로에게는 GI에서만 4번째 4착.



그리고 마치카네 탄호이저의 이름을 다른 의미로 팬들에게 각인시키는 전설의 1994년.


시작은 꽤 좋았다. 첫 경주인 아메리카 자키 클럽 컵(GII, 2200m)에서 후지야마 켄잔을 물리치고 승리하며 중상 3승째를 챙겼으니까.


하지만 이후 전적은

닛케이배(GII, 2500m) 3착 (우승 스테이지 챔프)

천황상·春(GI, 3200m) 5착 (우승 비와 하야히데)

케이한배(GIII, 2000m) 5착 (우승 네하이 시저)

타카라즈카 기념(GI, 2200m) 9착(우승 비와 하야히데)

마이니치 왕관(GII, 1800m) 5착 (우승 네하이 시저)

천황상·秋(GI, 2000m) 4착 (우승 네하이 시저)


3-5-5-9-5-4라는 딱 탄호이저의 이미지에 맞는 성적으로 일관했다. 타카라즈카 9착이 유독 눈에 띄지만, 그것은 뱀부 메모리가 첫 희생자였던 스기모토 키요시의 저주가 하필 이 해엔 탄호이저에게 갔을 뿐...


그리고 맞이한 재팬 컵(GI, 2400m). 지금까지의 전적으로 보면 절대 주목받을 리가 없었던 마치카네 탄호이저는 의외로 베팅의 중요 축으로 지목받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천황상·秋에서 비와 하야히데와 위닝 티켓이 굴건염을 일으켜 은퇴.

당년 3관마 나리타 브라이언과 천황상·秋 우승마 네하이 시저는 재팬 컵을 스킵하고 아리마로 직행.

당년 최강의 암말 히시 아마존은 엘리자베스 여왕배-아리마의 로테이션.

이러다 보니 일본 출전마의 층이 역대 최악의 수준으로 얇아져 있었던 것. 15마리 중 단 다섯마리만이 일본 출전마. 그 중 GI 타이틀 경력은 제로.

마블러스 크라운, 나이스 네이처, 마치카네 탄호이저, 후지야마 켄잔, 그리고 중상 타이틀도 없이 2착과 3착 전문으로만 유명해진 로이스 앤드 로이스.


직전까지의 퍼포먼스로 따지면 교토 대상전을 이기고 올라온 거세마 마블러스 크라운이 가장 괜찮았지만 도쿄에서 달리는 건 이번이 커리어 처음. 그렇다면 도쿄에서의 실적이 유독 괜찮은 마치카네 탄호이저가 차라리 낫지 않을까 하는 정도였던 것.


상위 인기를 외국말들이 독점한 가운데 애국베팅을 한 사람들은 찜찜한 마음을 안고 레이스 시작을 기다렸지만 잠시 후


"안내말씀드립니다. 8번, 마치카네 탄호이저 호는 비출혈로 인해 경주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토 조교사가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상태가 좋다'던 탄호이저의 도전은 코피가 터지면서 시작도 하기전에 끝나버렸다. 우승은 예상을 깨고 마블러스 크라운이 우승하며 일본 말의 자존심을 지켰지만...



재팬 컵의 씁쓸함을 뒤로하고 아리마 기념으로 향한 마치카네 탄호이저는


...이번엔 두드러기가 나면서 출전을 취소한다. 사료에 섞여들어간 거미를 집어먹고 그렇게 됐다는 썰이 나돌지만 진위는 알 수 없다.



연말 가장 주목받는 레이스 둘에서 연달아 다른 병으로 출주취소를 해 화제를 모은 마치카네 탄호이저.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해가 바뀌고 1995년의 복귀전으로 택하려던 아메리카 자키 클럽 컵은 화농이 생기면서 또다시 회피. 세번 연속 다른 병으로 연달아 출주를 못하는 위업을 달성한다.




3연병의 전설을 찍은 마치카네 탄호이저는 결국 7월이 되어서야 타카마츠노미야배(GII, 2000m)로 겨우 복귀한다. 이듬해부터 GI으로 승격되지만 1200m로 거리가 깎이면서 2000m로 치러지는 마지막 타카마츠노미야배. 이 경주의 유력 우승후보는 단연 히시 아마존이었다. 미국 원정을 고려하다 다리에 불안을 보이면서 탄호이저와 똑같이 이 해의 복귀전으로 맞이한 레이스.


그러나 근 반년의 공백이 영향을 끼쳤는지 추입마인 히시 아마존이 돌연 선두에 서서 폭주하면서 자멸, 레이스의 흐름이 크게 뒤틀려 버렸고, 직선에서 아일톤 심볼리와 댄싱 서퍼스가 인을 파고드는 사이



밖에서 단숨에 파고들어와 승리를 낚아챈 것은 바로 마치카네 탄호이저였다. 이야깃거리 이전에 실력마였다는걸 어필하는듯한 승리.



이 승리가 마지막 불꽃이었는지 이후 범주를 거듭하다 커리어 속행 여부를 걸고 출전한 스테이어즈 스테이크스(GIII, 3600m)에서도 역부족으로 7착으로 패배하자 이토 조교사는 은퇴시키기로 결단을 내린다. 이때까지의 전적은


32전 8승.

GII 3승,

GIII 1승,

그리고 GI 3착 1회, 4착 5회.

총상금은 5억 1752만 7400엔. 노던 테이스트의 자식들 중 수많은 GI마들을 제치고 가장 많은 상금을 벌어들인 말이었다.

좌회전 마장에서 주로 괜찮은 성적을 내고, 우회전이 약하지만 유독 나카야마의 성적은 괜찮았던 탓에 릿토 트레이닝 센터 소속이면서도 커리어 대부분을 관동 지역에서 활동했다.



은퇴 후 부모 모두 좋은 혈통에 노던 테이스트의 직계라는 위광을 업고 씨수말 생활을 시작했지만 시대는 이미 선데이 사일런스의 시대. 8년동안 단 45마리의 암말과만 교배할 수 있었고 그렇게 태어난 얼마 안되는 자식들도 중앙 중상은 커녕 지방교류 중상에서의 입상이 고작이었다. 2004년부터 교배가 끊기고 2010년에 공식적으로 씨수말을 은퇴, 마치카네 후쿠키타루와 같은 코스다 목장에서 공로마로 지내다 2013년 12월 7일 산통으로 사망했다. 향년 24세.


만년의 마치카네 후쿠키타루(左)와 마치카네 탄호이저(右)

나이도 먹고 느긋해져서 자동차 소리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밥먹을때 후쿠키타루가 치근댈 때만 빡쳐했다고.


출처 : 우마무스메 캐릭터 소개 66 - 마치카네 탄호이저(マチカネタンホイザ) - 우마무스메 갤러리 (dcinsi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