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센 학원의 팀 시리우스 부실. 그곳은 언제나 사건 사고가 일어난다. 무언가가 깨지고 부서지며 누군가의 이유 모를 비명 소리가 종종 들려오는 곳. 이러한 시끌벅적한 일상의 중심에는 늘 그녀가 있었으니, 황금의 불침함으로 불려오는 그녀, 바로 골드쉽이다.



“... 그래서, 지금 이건 무슨 상황인 거냐.”


창문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며 팔짱을 끼고 있던 브라이언은 상당히 짜증 난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대답 대신 들려오는 것은 무척이나 기운 빠지는  한숨 소리뿐이었고, 마치 전염되듯 브라이언의 입안에서도 한숨이 흘러나왔다. 


천천히 몸을 틀어 부실 안을 바라보니 부실 곳곳에는 유치한 파티용 풍선이 곳곳에 떠다니고 있었고, 한 사람의 취향이 적극 반영된 간식거리가 정중앙에 놓여 있었다. 


“쓸데없이 귀찮은 일만 벌려놓고 정작 주인공은 방에 틀어박힌 채라니.”

“브, 브라이언 씨…”


가시 돋친 브라이언의 말에 안 그래도 작디작은 라이스의 빈약한 몸은 더욱 위축되었다. 그도 그럴게, 아침 훈련까지 취소해 가며 세운 축하 파티는 다름 아닌 라이스의 의견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옆에서 눈물을 흘리며 적극적으로 찬성한 위닝 티켓 또한 시무룩한 얼굴로 바닥을 응시할 뿐이었다. 


“어이, 맥퀸. 언제까지 기다릴 셈이냐. 너도 트레이너 말 들었잖아. 그 녀석은 올 생각이 없다고.”


그 녀석이라고 불리는 인물은 당연하게도 시리우스에서 골드쉽 말고는 없다. 불과 한 시간 전, 골드쉽과 개인 훈련을 떠났던 트레이너는 모두에게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다, 부디 나를 찾지 말아 달라는 등, 이상한 소리와 함께 개인 사정으로 골드쉽이 당분간 부실에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였다. 물론, 그런 트레이너의 뒷덜미 잡아 추궁하는 건 브라이언의 몫이었지만… 결국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듣지 못한 채로 이 적막한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 이만 정리하도록 하죠.”


마침내 포기를 선택한 맥퀸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라이스와 위닝 티켓은 매우 슬픈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자신들이 쓸데없는 의견을 낸 바람에 지금 같은 상황이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애초에 골드쉽의 상태 또한 걱정되었으니 표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골드쉽이 돌아오는 첫날은 그렇게 불편한 상황 속에서 끝이 났다. 이후 기숙사 방으로 다 같이 찾아가 보았지만 역시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기에 문을 억지로 부수고 들어가지 않는 이상은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건 무리였다. 이에 내일이 되면 골드쉽이 평소처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부실의 문을 박차고 돌아올 거라고, 맥퀸을 포함한 시리우스의 모두가 희망할 뿐이었다.


다음 날. 부실은 기대가 무색해질 만큼 무서울 정도로 조용하기만 했다. 전 날의 흔적인 터져 버린 풍선 조각을 치우는 라이스와 위닝 티켓, 그리고 묵묵히 아침 훈련을 준비하는 맥퀸과 브라이언은 점점 커져가는 골드쉽의 빈자리를 체감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훈련도 빠지고 틀어박혀 있는 거냐. 아니... 애초에 그 녀석이 제대로 훈련을 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부실에는 꼬박꼬박 나오는 놈이잖아.”

“라, 라이스는 골드쉽 씨가 걱정돼…”

“맥퀸 씨, 다시 한번 트레이너 씨에게 물어보는 건…”


그 순간, 위닝 티켓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지며 부실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익숙하고도 그리운 소리에 모두의 시선은 문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안도와 기쁨으로 가득했던 얼굴은 이윽고 의문과 실망으로 가득한 얼굴로 변하고 말았다.


“누구… 시죠…?”

“트, 트레이너 씨?!”


맥퀸의 물음에 대답하듯 위닝 티켓이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그제야 처음 보는 인물에게 붙들려 있는 트레이너의 모습을 모두가 확인할 수 있었다.


“자, 잠깐! 정말로 누구시죠? 어째서 트레이너 씨를…”


맥퀸이 재차 물어보았지만 의문의 상대는 대답 대신 예상치도 못한 인물의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었다.


“골드쉽은 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거죠! 당장 제 앞에 데려오도록 하세요!”


앙칼지면서 단호한 목소리에 부실의 모두가 놀란 눈으로 상대를 쳐다보았다. 트레센 학원의 인물로는 보이지 않는 그녀는 마치 파티장에서나 볼 법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으며, 붉은 빛을 띤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카락은 허리춤까지 내려와 마치 우아한 귀부인을 연상케 했다.


“젠틸돈나 씨! 제발 진정하세요!”


트레이너는 의문의 상대를 젠틸돈나라고 부르며 그녀의 손에서 빠져나가려 노력하지만 연약하고 가련해 보이는 젠틸돈나의 손은 조금의 미동도 없이 굳건했다.


“트레이너, 감히 저에게 거짓말을 치셨군요. 이곳이 골드쉽이 속한 팀의 부실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마, 맞아! 맞다고! 이곳이 시리우스의 부실이란 말이야!”

“호오, 아직도 거짓말을 하다니, 그 용기 있는 행동에 찬사를 보내드리죠. 하지만 저런 유약해 보이는 우마무스메들이 있는 곳에 골드쉽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정말이지, 무례하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언행이다.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을 기세로 브라이언이 앞으로 나아갔지만 이를 막아선 건 다름 아닌 맥퀸이었다.


“유약하다는 말은 그쪽에게 어울리는 것 같아 보이네요. 당장 트레이너 씨를 풀어주세요.”


라며 맥퀸은 당당한 걸음걸이로 젠틸돈나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그리고 젠틸돈나의 얼굴을 정면으로… 아니, 턱을 높이 치켜들어 바라보았다.


“어머나, 꼬마 아가씨께서 화가 많이 나셨나 보네요. 혹시 고개가 아프지는 않으신지?”

“저 새끼가? 어이, 맥퀸! 저 거만한 년의 얼굴에 한 방 갈겨주라고! 까치발 들면 얼굴에도 손이 닿을 거 아니야!”

“조, 조용히 하세요, 브라이언 씨! 들지 않아도 닿는다고요! 아니, 그것보다 그런 상스럽고 험악한 짓을 할 리가 없잖아요!”


비명에 가까운 맥퀸의 말에 브라이언은 나지막이 “그 녀석한테는 잘만 하는 주제에”라고 중얼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후후, 맥퀸이라고 했던 가요? 저 상스러운 우마무스메의 말대로 까치발을 들면 고개가 덜 아플지도 모르겠군요.”


이후, 도발하는 젠틸돈나와 양 주먹에 힘을 꽉 준 맥퀸을 상대로 상황을 무마시키는 것은 트레이너의 몫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트레이너의 얼굴에 크고 작은 멍이 3개 정도 생겼을 즈음, 골드쉽을 제외한 시리우스의 인원들과 젠틸돈나, 그리고 트레이너는 원형 테이블 앞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크흠, 서로의 소개가 조금 늦었지만, 이쪽은 골드쉽이 원정 갔던 곳의 대결 상대였던 젠틸돈나 씨. 그리고 여기는 차례대로 메지로 맥퀸, 라이스 샤워, 위닝 티켓, 그리고 나리타 브라이언이야. 모두 골드쉽과 같은 시리우스 팀의 부원들이지.”


트레이너의 소개에도 불구하고 맥퀸과 브라이언은 경계를 풀 생각도 없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젠틸돈나를 노려보았다. 라이스와 위닝 티켓은 불편하기 그지없는 상황 속에서 가지런히 두 손을 모은 채 모두의 눈치만을 살필 뿐이었다. 


“트레이너 씨, 혹시 골드쉽 씨가 방에서 나오지 않는 건, 여기 있는 무례한 젠틸돈나 씨 때문인가요?”


공격적인 맥퀸의 말투에도 불구하고 젠틸돈나는 앞의 말이 신경 쓰였는지 의문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방에서 나오지 않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그것보다 네 녀석은 그 녀석이랑 대체 무슨 관계길래 이 난리를 피우는 거냐.”

“네 녀석 이란 건 저를 말하는 건가요? 그 녀석은 설마 골드쉽? 하아, 정말이지 수준 낮은 단어 선택이군요. ”

“원한다면 말뿐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보여줄 수도 있다고, 수준 낮은 게 어떤 건지 말이야.”

“어머, 후회하실 텐데.”

“자자, 둘 다 이제 그만 싸우고 친하게 지내자.”

“트레이너 씨는 조용히 해주세요. 골드쉽 씨와 돌아온 이후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도망치시다가 저런 이상한 분에게 잡혀 오는 꼴이라니, 메지로 가문의 우마무스메 되는 자의 트레이너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일인 거에요.”

“저는 여러 번 말하는 걸 싫어한답니다? 골드쉽이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어요. 트레이너, 당신이 설명하세요. 이번에도 거짓말을 한다면 각오해 두시길.”


위압적인 명령과도 같은 젠틸돈나의 말에 맥퀸을 포함한 시리우스의 모두가 트레이너를 바라보았다. 껄끄러운 상대가 눈앞에 있긴 해도 더 중요한 건 골드쉽의 상태에 관한 것이었다.


“거, 거짓말 한 적 없는데… 그리고 나도 자세한 이유는 몰라. 다만 골드쉽이 경기에서 지고 난 후로…”

“무슨 말을 하는 건가요, 트레이너. 그날의 경기에서 1등을 한 건 골드쉽인데 말이죠.”


트레이너의 설명이 답답한 모양인지 젠틸돈나의 목소리에는 점점 짜증이 나타났다.


“그 경기를 말하는 게 아니야. 트레센 학원으로 돌아가기 전에  했던 경기를 말하는 거지.”


그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찻잔들이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테이블을 내려친 두 손을 분노로 떨고 있던 젠틸돈나는 아름다운 얼굴을 한껏 찌푸린 채로 말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군요.”

“여, 연습경기니까! 두 명이서만 했던 연습 경기. 제대로 된 트랙도 아니고, 골드쉽이 기분 전환으로 시작한 내기 게임 같은 느낌이야.”

“아무리 연습 경기라고 쉽게 납득할 수 없네요. 무려 저를 이긴 골드쉽이 누군가에게 졌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걸요.”

“아니, 상상이고 뭐고 그 녀석이 진지하게 임하는 경기는 별로 없으니까, 졌다고 해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은데.”

“그러네요. 확실히 골드쉽 씨는 연습 승부에 크게 집착하는 편이 아니에요. 오히려 장난치는 모습이 더 어울리니까요. 지금처럼, 고작 승부에서 졌다고 저희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방에 틀어박힐 정도로 좌절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워요.”


브라이언과 맥퀸의 말에 젠틸돈나는 그제야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으며 침착함을 되찾았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납득이 가지 않는 모양인지 다시금 트레이너에게 물었다.


“아까부터 신경 쓰였다만, 골드쉽이 방에 틀어박혔다는 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는 말 아닌가요?”

“뭐, 그렇지. 학원 밖으로 나가진 않았을 거야.”

“그렇다면 어째서 트레이너는 저를 그곳이 아닌 이곳으로 데려온 거죠?”

“아니, 아니, 나는 이쪽으로 끌려온 것뿐인데.”

“헛걸음을 했군요.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면 이렇게 시간 낭비할 필요 없잖아요. 당장 그곳으로 안내하도록 하세요.”


또다시 젠틸돈나의 손이 트레이너의 뒷덜미를 붙잡았고, 가련한 모습과는 반대로 엄청난 힘에 의해 트레이너는 질질 끌려갈 뿐이었다. 


“자, 잠깐만! 안내하라면서 어째서 끌고 가는 거야! 더는 싫다고! 강제로 끌려가는 건 골드쉽 만으로 충분하다고!”

“젠틸돈나 씨! 멋대로 어딜 가시는 거예요! 기다리세요!”


아까와 같은 상황에 브라이언은 욱신거리는 머리는 손으로 짓눌렀다. 분명 이대로 따라간다면 귀찮아질 것이 뻔했다. 


“어이, 나머지는 맥퀸이랑 트레이너한테 맡기고 우리는 여기 뒷정리나 하자고.”


브라이언은 계속해서 눈치만 살피던 라이스와 위닝티켓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귀찮은 것도 있었지만 굳이 상태가 좋지 않은 골드쉽의 방에 우르르 몰려갈 필요는 없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물론, 라이스와 위닝 티켓이 대답하기도 전에 젠틸돈나는 트레이너와 함께 이미 부실에서 사라진 후였지만.


“호오, 이곳이군요.”


거친 숨을 몰아쉬는 트레이너를 앞에 두고서, 젠틸돈나는 흥미롭다는 듯이 골드쉽이 있는 방문의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려고 했다.


“기다리라니까요! 함부로 들어가는 건 좋지 않아요. 그리고 문도 잠겨져 있다고요.”


뒤따라오던 맥퀸의 말에  젠틸돈나는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천천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젠틸돈나 씨!”


붙잡으려던 맥퀸의 손이 빠르게 뻗어 나갔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동시에 트레이너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무슨…!”


이내, 연약하기 그지없는 젠틸돈나의 몸이 엄청난 굉음과 함께 문에 부딪쳤고,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리고 열면 안 될 것만 같았던 골드쉽의 방 문이 힘없이 부서져 버렸다.


“자아, 골드쉽. 어서 나오도록 하세요. 그리고 당신 앞에 서있는 저를 보고 놀라도록 하세요! 저희의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랍니다!”


화려하고 거만한 말과 함께 거침없이 방 안으로 들어가는 젠틸돈나를 따라 맥퀸 또한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골드쉽의 방이라면 자주 갔던 지라 익숙한 가구와 물건들이 눈의 띄었다. 그리고 구석에 자리한 침대 위에서 이불로 온몸을 꽁꽁 싸맨 골드쉽의 모습까지.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맥퀸은 사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물론, 이를 모르는 젠틸돈나는 이미 골드쉽의 침대까지 다다르게 됐지만 말이다.


“언제까지 저를 무시할 셈인가요, 골드쉽!”


기어이 끝을 보려는 젤틴돈나가 골드쉽 위로 덮힌 이불을 잡아 채내었다. 일주일, 그리고 어제 하루 동안 대면하기는커녕 이야기조차 나눠보지도 못한 맥퀸의 눈앞에는 그리운 얼굴이, 그러나 평소와는 극명하게 다른 골드쉽이 차가운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곧바로, 뿌리 깊은 나무처럼 굳게 서있던 젠틸돈나의 몸이 급격하게 아래쪽으로 흔들렸고, 다름 아닌 골드쉽에게 멱살이 잡힌 채로 균형을 잃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서로의 얼굴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골드쉽은 매우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모두에게 충분히 들릴 만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지랄하지 말고 꺼져.”


골드쉽과 맥퀸의 첫 대면은 그렇게 끝이 났다.











1.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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