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집니다! 타카라즈카의 주인공을 차지한 것은 아그네스 타키... 앗!]


시니어 타카라즈카 기념을 1착으로 들어온 아그네스 타키온이 들은 해설의 마지막 말이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아그네스 타키온의 정신이 잠시 점멸했다.


그리고 느껴지는 왼 다리의 극심한 통증, 그에 따른 과호흡 증세, 이 정도만이 아그네스 타키온이 자기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였다.


타키온이 눈을 감았다가 뜰 때 마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이 계속 바뀌었다.


자신이 엎어져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듯 빛이 없어 검게 보이는 트랙의 잔디.


푸른 하늘의 색과 구급요원의 뒷 모습.


아마 구급차 천장으로 생각되는 흰색의 배경과 고개를 푹 숙인 자신의 트레이너.


다시 눈을 감은 아그네스 타키온은 왜인지 모르게 1년 전 즈음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



아그네스 타키온은 트레이너실에서 아침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근 1년 반 동안 매일마다 삼시세끼의 도시락을 만든 트레이너의 요리실력은 일취월장해 지금은 방심하면 오구리 캡이나 스페셜 위크가 냄새를 맡고 훔쳐갈 위험이 있었다.


덕분에 요즘에는 아그네스 타키온의 실험실이라고 불러도 상관 없을 트레이너실 한켠에는 조리도구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놓여져, 지금은 도시락 대신 트레이너실에서 트레이너가 직접 식사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트레이너군, 자네는 나의 달리기에 반해서 나의 담당 트레이너가 되고자 했었지?"


아그네스 타키온은 아침밥이 되기를 기다리며 트레이너실에 비치된 라꾸라꾸 침대 위에 무방비하게 누은채로 말했다.


"그랬었지, 거의 1년 반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너의 그 달리는 모습이 말이야. ... 덤으로 생전 처음으로 피부색이 바뀐것도."


트레이너로써 그 날은 잊고싶어도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아그네스 타키온의 담당 트레이너가 된 날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피부색이 황록색으로 발광할 수 있다는 것을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날이었으니까.


"아하하! 그건 어디까지나 실험과정에 있던 사소한 사고였을 뿐, 애초에 설명도 듣지 않고 멋대로 약물을 마셨으니 자업자득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그 때는 어떻게든 너를 잡고싶었어서 말이야."


"그것 참, 다른 우마무스메에게 그런 말을 한다면 오해를 살지도 모른다고, 트레이너군?"


"내가 이런 말을 하는건 타키온, 너 말고는 없을걸?"


트레이너의 대답에 아그네스 타키온은 순간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몸의 산소 요구량이 늘어나고, 혈압이 오르고, 뺨의 모세혈관에 피가 몰리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이 이상상황은 열심히 아침을 준비하는 트레이너는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렇겠지, 스스로 모르모트가 되고싶다고 하는 광인이 다른 우마무스메에게 꼬리치는 모습따위 상상조차 되지 않으니 말이네!"


평소와 같다면 평소와 같은 모습이다.


그 당시의 아그네스 타키온은 자신의 '감정'이라는 것을 직시하지 않았고, 트레이너는 그저 타키온이 말하는 '끝'을 보고자 하는 평소의 일상이었다.


이런 일상에 아그네스 타키온은 익숙해졌고,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는 삶 따위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타키온이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자, 아침 다 되었으니 일단 먹도록 하자."


지금의 일상은 이후의 삶에 대한 대조군이다. 이것은 사회 실험이다. 라고 생각하며 아그네스 타키온은 느긋하게 일어나서 테이블을 향해 걸어갔다.


클래식 국화상에 가기 전,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한 때였다.



***



"트... 레이너 군..."


아그네스 타키온이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하얀색 타일들과 커튼, 그리고 링거가 보였다.


그 순간 아그네스 타키온은 패닉에 빠졌다.


"트레... 헉... 이너어어... 헉... 모오르... 히엑... 모르모... 헤엑..."


평소 자신을 위해 항상 옆에 있던 트레이너가 보이지 않는다.


그 사실에 다시 과호흡증이 생겨 입 밖으로 제대로된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조금 전에 떠올린 과거의 한 장면 때문에 아그네스 타키온은 침착하지 못했다.


살짝 상체를 들은 지금은 자신의 왼쪽 무릎 아랫부분에 둘러긴 깁스가 너는 달리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고 단언하는 듯 했다.


달리 말하면,


[아그네스 타키온의 트레이너가 아그네스 타키온을 봐줄 이유 자체가 사라진게 아니냐?]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 환청에 아그네스 타키온은 입을 벌리고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우마무스메 속도의 정점을 확인하는게 목표가 아니었느냐?]


그랬었다. 분명 아그네스 타키온의 목표는 우마무스메가 낼 수 있는 속도의 저 너머를 보는 것 이었다.


[그 목표를 남이 이루는 플랜 B가 있지 않느냐?]


항상 툴툴대던 맨하탄 카페, 그녀는 마지못해 아그네스 타키온의 부탁을 들어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 의미가 없다.


[너의 다리는 플랜 A가 불가능하게 되었지 않느냐?]


아니다. 아닐 것이다. 아그네스 타키온의 다리를 보강하기 위해 그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 알고있지 않는가? 클래식 국화상에서의 성과로 그 가능성 또한 확실히 확인을 했었었다.


[하지만, 결과는 이 꼴이지.]


[트레이너는 밑바닥에 떨어진 너를 포기했을 거야.]


[생각해봐, 그는 너의 억지를 계속 받아주기만 했는데 그는 뭘 얻었지?]


[이 얼마나 좋은 이유야? 이 기분나쁜 우마무스메가 달리지 못하니 당연히 담당을 때려치는게 맞지.]


[애초에, 너는, 모르모트를, 조수를, 트레이너를, 그를, 생각해준 적이 있었어?]


다리의 깁스 틈새로 보이는 음영이 자신을 향해 조소하는 것 같다는 환각까지 보게 된 아그네스 타키온은 울부짖으며 양 팔을 내저었다.


"아냐! 나는! 나는! 모르모트! 트레이너어어어!"


그 외침이 밖에까지 나간 것일까, 갑자기 병실 문이 드륵 열리며 한 사람이 다가왔다.


하지만 그 인물은 아그네스 타키온이 찾던 사람은 아니었다.


"...! 타키온씨! 진정하세요!"


맨하탄 카페, 그녀는 빠져버린 링거바늘을 흘깃 보다가 아그네스 타키온의 머리를 품으로 안아주며 말했다.


"트레이너씨는 잠시 식사라도 하고 오라고 이야기 했어요. 하필이면 그 잠깐 교대하는 사이에 일어나실줄은..."


그로부터 약 10분이 지나서야 아그네스 타키온은 간신히 진정할 수 있었다.


"미안하군, 내가 평소같이 객관적으로 상황을 봤어야 하는데 말이야."


"... 아뇨 괜찮아요. 그런 일이 있었는걸요..."


"원인은 왼 다리의 골절, 다행히 심한 수준이 아니라 전치 2주에 1달 정도 안정을 취한다면 평소처럼 달릴 수 있다고 하니 정말 우마무스메의 신체능력은 내가 보더라도 신기할 정도야."


"우습게도 넘어지면서 약간의 뇌진탕으로 인해 3일간 혼수상태였다니, 이것 참 웃지 못할 이야기로군."


"트레이너군은 계속 내 옆에서 간호를 하다 식사시간에만 카페와 교대했다니, 그것도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는건 상당히 비효율적인데 말이야."


"그러고보니 1착이 없는 위닝 라이브는 잘 되었는지도 궁금해 지는군. 이것 참, 전무후무한 일이었겠는데? 기자들이 어떤 글을 썼을지 기대가 될 정도야."


"트레센 학원은 여름합숙 준비로 복잡하겠군. 이것 참, 돌아가는 것 보다 여기서 요양하는게 더 좋을지도 모르겠는걸? 그러고보니 이번 여름 합숙은..."


아그네스 타키온은 머릿속에서 정리된 정보들을 끊임없이 쏟아냈다.


좀 전에 보였던 모습을 잊고 싶었던 것 처럼.


"... 타키온씨. 무리하지 마세요. 친구가 타키온씨를 걱정할 정도로 지금의 타키온씨는 위태로운 것 같아요..."


그 말에 아그네스 타키온은 입을 다물었다.


약간의 침묵 뒤, 다시 입을 열은 아그네스 타키온은 물었다.


"카페, 트윙클 시리즈의 3년, 그 3년에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 담당 트레이너가 교체된다고 기억하고 있는데 혹시 이 조항에 대해 변경점은 있었던가?"


"아뇨, 그럴리가요..."


"그래, 그렇겠지..."


다시 약간의 침묵이 지났다.


"이건 좀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올해 초에 변경된 우마무스메 조기결혼 법안이 재정된 이후에 은퇴한 트레이너와 우마무스메가 많았지 않나?"


"글세요? 저는 그렇게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이것 참, 실례했네. 잠시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으니 나 혼자 있게 좀 해주겠나?"


조금 전 보다 평온하게 침대에 누워있는 아그네스 타키온은 맨하탄 카페가 보기에는 조금 전에 비해 상당히 안정된 것으로 보였다.


그렇기에 맨하탄 카페는 고개를 끄덕이고 순순히 병실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아그네스 타키온, 그녀의 마음속을 들여다본 사람이 있다면 말할 것이다.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은 조용한 광기이자 집착이라고.



***



퇴원한 아그네스 타키온은 여름 합숙에 가지 못했다.


애초에 안정을 취하라고 했던 1달의 기간을 채우지 않고 2주만에 병실에서 나온 아그네스 타키온은 트레이너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는 그녀의 엄포에 의해 그녀가 트레이너실에서 약품을 조제하는 동안에는 트레이너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트레이너실에 놓여져 있는 라꾸라꾸 침대에는 아그네스 타키온이 엎어져 냄새를 맡고 있었다.


"트레이너군, 트레이너군... 이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있으면 볼 수 있을거야."


여름 합숙을 가지 못한 7월 말, 그녀는 몇 달 전의 일을 회상했다.



***



트레센 학원에 재학중인 학생들이 우마무스메란 이유로 결혼이 가능한 나이가 되도록 법안이 재정된 이후, 아그네스 타키온은 꽤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여기, 부탁받았던 약이네. 사용 후 결과에 대해 확실히 이야기를 해주도록."


"감사합니다 타키온 선배님!"


아그네스 타키온에게서 미스트 스프레이통에 들어있는 약을 받은 처음보는 우마무스메는 연신 감사를 표하다가 가벼운 걸음으로 멀어져갔다.


그 모습을 본 맨하탄 카페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아그네스 타키온에게 말을 걸었다.


"... 이제 다른 우마무스메에게 실험을 하고 있는 건가요?"


"이거이거, 카페 아닌가? 자네도 약이 필요한가보지?"


"... 아뇨, 타키온씨의 실험에 휘둘리는건 사양이에요. 그런데 대체 무슨 약이길래 후배가 저리 좋아하는건가요?"


"호오, 카페가 내 약에 관심을 보이다니. 그렇다면 말해주지. 간단히 말하자면 '향수'라고 할 수 있는 약이야."


"향수요...?"


"정확히는 우마무스메의 땀에서 나오는 페로몬인 우마트로겐이 후각기에 결합하면 뇌에서 일종의 보상신호가 나와..."


"... 죄송하지만 짧게 이야기 해주세요."


"간단히 말해 우마무스메의 매력을 크게 올려주는 향수로, 우마트로겐이 특정 사람의 후각기에 좀 더 쉽게 결합하도록 재조합한 약이야. 솔직히 달리기 능력에는 영향이 없지만 우마트로겐이라는 페로몬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좀 더 확인하고 싶기도 하고 자금확보가 필요해서 판매하게 되었지."


"... 그런걸 팔아도 되는거에요?"


"이제 트레이너와 우마뾰이를 하던, 어떻게 되던 문제가 없는데 '향수' 정도를 파는 것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을테니까 말이야."


조금 전에 보였던 후배의 모습을 보면 이미 많은 우마무스메가 이 '향수'를 사용했고 효과를 본 것으로 생각되는 맨하탄 카페였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자신과 관련이...


"... 혹시 저도 하나 만들어 줄 수 있나요?"


"흐음? 핫핫! 카페가 내 약을 먼저 가지고 싶다고 하는건 처음이군! 카페 자네는 그간의 공적을 생각해서 그냥 주도록 하지. 아, 그래도 약 제조에 필요한 자네와 대상자의 DNA가 필요하니 머리카락 몇 가닥 정도는 가져와주게."


그로부터 몇 주 후, 맨하탄 카페는 향수를 받아갔고, 맨하탄 카페의 트레이너는 약간 살이 빠졌다.



***



"트레이너... 트레이너..."


아그네스 타키온의 트레이너는 그녀가 없을 때 트레이너실에 들어와 작업을 한 뒤 아그네스 타키온이 먹을 식사를 만들어 두고서는 이 라꾸라꾸 침대 위에서 간간히 잠을 잤었다.


분명 지금의 아그네스 타키온에게 아무 일정이 없을 터인데 마치 다른 중요한 일이 있는 것 마냥 트레이너실에 들어와 일을 하던 그를 생각하는 아그네스 타키온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를 남에게 보내고 싶지 않을 마음이 커져갈 뿐이었다.


불행중 다행이랄까, 그가 이곳에서 약간씩 잠을 청하기에 '향수' 제조에 필요한 재료는 손쉽게 구할 수 있어 앞으로 몇 분 뒤면 순조롭게 제작이 완료가 될 것이다.


"자, 그럼 실험을 시작할 준비를 해야..."


아그네스 타키온은 주섬주섬 물건을 꺼내다 끈을 하나 집어드는 순간 멈칫했다.


트레이너를 처음 만나서 의자에 묶었던 끈, 그 끈이었다.


이제 2년하고도 반 가량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삭은 곳 없이 멀쩡한 끈을 보던 아그네스 타키온은 결심했다.


이번 실험은 반드시 성과(기정사실)를 내야 한다고.


우선 자신의 트레이너를 전화로 부르고, 승부복을 입은 채로 아무도 없는 교내의 레이스장을 돌아 땀을 내고 트레이너실 앞에 돌아온 아그네스 타키온은 트레이너를 볼 수 있었다.


"타키온! 이제 괜찮은거야?"


"아아, 모르모트군, 이번 사고로 얻은 경험에 의해 새로운 플랜을 위한 연구를 하려던 것 뿐이야. 그러니 오늘, 그 연구 결과를 실험으로 입증하는 것 뿐이 남았지."


약간의 뜸을 들이며 트레이너실로 들어가던 아그네스 타키온이 말했다.


"그래, 말하자면 플랜 C(Child)라고 하면 되겠군. 이번 실험은 모르모트군이 꽤나 힘내야 할거야."



"혹시 타키온 너는 은퇴한다면 어떻게 할 생각인거야? 역시 다른 우마무스메의 속도의 한계를 보려고 하는... 아! 조금 살살 묶어주면 안될까?"


"그런 쓸데없는 상상은 할 필요가 없으니 내 미래에 대해서 억측은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군."


아그네스 타키온은 트레이너를 처음 봤을 때 처럼 의자에 묶었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트레이너가 깨어있다는 점, 자신이 달리지 못하는 미래를 이야기 하고 있다는 점일까.


"자, 그러면 실험을 시작하지!"


"그래, 그래서 오늘은 어떤 약을 먹으면 되는거야?"


"모르모트군은 거기서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네."


어리둥절해 하는 트레이너를 뒤로 하고 아그네스 타키온은 만들어뒀던 '향수'를 몸에 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다시 트레이너의 앞으로 가서는 가위로 조금전에 트레이너를 묶었던 끈을 잘라내고는 그의 앞에 서서 양 팔을 벌렸다.


"자, 자, 트레이너군. 지금의 감정은 어떻지?"


제대로 '향수'가 조제되었다면 트레이너는 뇌의 보상심리에 따라 감정의 고양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을 덮쳐야한다.


그렇기에 이전에 얻었던 데이터들을 토대로 판매했던 '향수'보다 효과가 5배는 강한 것으로 만들었었으니까.


"글세...? 평소와 다름이 없는데?"


하지만 트레이너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녀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이었다.


"어... 어째서..."


"원래 실험 결과가 어떻게 나와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이라도 말을 하는게 좋겠네. 올해로 끝나는 타키온의 트윙클 시리즈 3년..."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트레이너는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것을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모르모트군! 그만!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말아주게!"


갑자기 외치는 아그네스 타키온의 목소리를 들은 트레이너는 잠시 말을 멈췄다.


하지만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이건 너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말을 해야해. 이 3년이 지나면 나는 트레이너... 우왓!"


트레이너의 말이 나오려던 순간, 아그네스 타키온은 그를 메치듯이 옆에 있던 라꾸라꾸 침대 위로 던져버리고는 그 위에 올라타 빠져나오지 못하게 온몸으로 눌렀다.


그런 트레이너의 가슴팍은 아그네스 타키온의 눈물로 점점 젖어들었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단 한번의 실험 실패로 모든것이 무너져 내리는데! 왜 어째서 트레이너군은 나를 떠나가려고 하는건데! 왜! 왜!... 왜 나는 트레이너군을 사랑하고 있는 건데..."


그렇게 말한 아그네스 타키온의 온 몸에서 힘이 점차 빠지기 시작했다.


트레이너는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그는 이내 양 팔로 아그네스 타키온은 껴안았다.


"그렇구나...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고개만을 살짝 들어 아직도 서럽게 울고있는 아그네스 타키온을 본 뒤 왼손으로 천천히 그녀의 귀를 만지며 이야기했다.


"나는 말이야. 만약 타키온, 네가 은퇴한다면 나도 그대로 은퇴를 하려고 했어."


갑자기 나온 트레이너의 말에 타키온은 울음을 그쳤다.


"그날 그 레이스에서 네가 넘어지고, 다리가 퉁퉁 부어 실려갈 때 나는 확실히 깨달았거든. 내가 좋아하는 것은 너의 달리는 모습이었지만, 내가 사랑하는 것은 아크네스 타키온, 너였다는 것을 말이야."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얼굴을 들어 자신을 봐주는 아그네스 타키온을 보며 트레이너는 말했다.


"네가 말했듯이 이건 '광기'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오랜 기간동안 트레이너가 되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는데 우마무스메 한명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다는 것은 말이야."


"그러니까 이번에는 둘이서 계획을 짜보자."


"네가 달리지 못하게 되면 둘이서 어떤걸 해볼지 말이야."


"타키온이 연구자고, 내가 모르모트였는데 이제는 '조수'같은 역할을 해보는건 어떨까?"


그 이야기를 들은 타키온은 몸을 들어 트레이너의 허리에 걸터앉아 승부복의 가운을 벗어던지고 안에 있는 가디건을 벗으려던 찰나였다.


"어... 타키온? 지금 뭘 하는거야?"


"아무래도 플랜 C는 속행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 조금 전에 말했지만 트레이너군이 꽤나 힘내야 할거야. 오늘은 트레이너군에게 [introduction : My body]를 확실하게 해줄테니 꼼꼼히 가능성에 대해 검증해 보자고."


그리고 그날 트레이너는 아그네스 타키온의 승부복의 카디건과 스타킹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여름 합숙이 끝난 8월 말, 맨하탄 카페는 타키온의 연구실(트레이너실)에 들렀다.


"... 타키온씨? 안계신가... 히익!"


하지만 그곳에 있는 것은 인자냄새가 진하게 배긴 라꾸라꾸 침대, 그리고 약간 초췌해 보이는 타키온의 트레이너 뿐이었다.


"아, 카페구나. 타키온은 무슨 추가검증이라면서 잠시 달리러 갔다온다고 했어."


"... 무슨일이 있었던 건가요?"


그 말에 트레이너는 입을 다물고 딴청을 부렸다.


근 1달이라는 시간동안 둘은 저 자그마한 간이침대에서 우마뾰이를 했다.


문제는 아그네스 타키온이 타고난 스테이어로 중장거리를 계속 뛰었다는 점,

트레이너를 [속박]하기 위해 항상 트레이너의 한쪽 다리에 그녀의 다리를 칭칭 감아 우마뾰이를 강제로 이어나갔다는 점,

트레이너와의 [근간거리]를 위해 몸을 딱 붙여서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는 점,

[진창길]같은 둘 사이의 마장상태는 오히려 둘의 파워를 올려주는 원동력이었다는 점,

[레이스 플래너]인 그녀의 레이스는 말 그대로 끝이 없었다는 점,

마지막으로 [U=ma2]라고 하는 당신(you)은 나(me)만이 아니라(and) 두(2)명과 같이 살게 만들거라는 말


결과적으로 트레이너는 타키온의 [물고 늘어지기]를, 그녀의[독점력]을 증명하듯, 수없이 당했다.


"... 대충 어떤 상황인지는 알 것 같네요. 그러면 타키온씨는 이제 어떻게 할 예정인가요?"


"이번 경험을 반석삼아 마저 도전할 예정이야. 텐노상 가을, 그리고 아리마 기념에. 타키온은 인자계승을 하지 않고 도전하자는 말에 약간은 불만인 것 같았지만 이 레이스 역시 그녀의 목표였으니까."


"...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볼 수 있겠네요."


"그래. 다음에는..."


그 순간 트레이너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승부복을 입은 아그네스 타키온이 들어왔다.


그녀는 맨하탄 카페와 자신의 트레이너를 슥슥 훑어보더니 트레이너의 무릎 위에 올라앉고서야 입을 열었다.


"카페, 오랜만에 보는데 멜라닌 색소가 전혀 모이지 않았군. 평소와 같이 흰 피부를 보니 야외훈련은 많이 하지 않은건가?"


"... 저는 그냥 방해꾼인 것 같으니 나가볼게요. ... 조언 드리는데 다른사람이 들어오면 문제가 될테니 탈취제 정도는 뿌리시는게 좋을걸요?"


그렇게 말한 맨하탄 카페는 이 방에 배여있는 냄새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두 사람을 두고 웃으며 나갔다.



***



[아리마 기념의 승자는 아그네스 타키온! 부상을 딛고 일어선 아그네스 타키온이 꿈의 아리마를 거머쥡니다!]


포기하지 않은 그녀는 결국 자신의 다리로 '끝'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약한 다리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던 편견을 가능성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게... 역시 최선이었겠죠?"


아그네스 타키온의 트레이너는 자신의 옆에 있는 선배 트레이너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 레이스는 저에게 몇 번 째 인가요?"


"글세? 그런게 중요한걸까? 사실 그게 진짜 동작하긴 한걸까?"


"그렇네요. 타키온이 말한다면 관측되지 않은 현상은 실존한다고 정의할 수 없다고 말하겠죠."


트레이너는 자신의 오른손에 꼭 잡고있던 회중시계를 선배에게 넘기며 말했다.


"저는 더 이상 이 물건에 미련이 없어요. 다시 가져가세요."


"이것 참, 여름 합숙 기간 내도록 이거 하나 빌리려고 노력하던 녀석이 맞는지 모르겠군."


"지금의 저에게는 필요없는 물건이니까요."


빛보다 빠른 속도는 상대성 이론에 따라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 속에서 빛의 속도(타키온)를 가진 것은 다름아닌 아그네스 타키온이니까.


미래를 그리는 데에 이런 기술(tach-nology)은 필요 없으니까.


"그래, 그럼 난 이만 가보지. 그녀가 기다리고 있으니 자네도 어서 가봐."


선배의 말에 트레이너는 팔을 빙빙 돌리며 자신을 쳐다보지 않는다고 삐진듯이 볼을 부풀린 아그네스 타키온을 돌아보았다.


그래, 이게 나의 빛보다 소중한 그녀(타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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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 끝을 향해 나아가라!

전에 썼던 것에서 쬐끔 빼면 관련 없는 타키온 괴문서 써왔습니다

그냥 죽 쓴거라 오탈자 분명 있을듯


포키온이 되면 의존증 캐릭터가 될 거 같은게 꼴리는지라 의식의 흐름으로 쭉 써봤는데 묘하게 피폐물에 발 한번 담갔다 뺀 느낌의 괴문서가 나온게 묘하네요

시니어 타카라즈카에서 뽀각한 이유는 인게임 그 경기부터 타키온이 감정에 신경쓰기 시작하길래 여기서 뚜둑 시켜서 시작했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저는 순애가 좋으니 결말은 순애(순순히 애아빠가 되어라)로 어떻게든 끝냈네요

회중시계 이야기는 갑자기 꼴려서 시간을 달리는 황제님 괴문서가 될 수도, 그냥 맥거핀으로 될지도 몰?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