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내가 그린거 아님

출처 - https://arca.live/b/umamusume/54926349)


트득트득. 달력의 이음매에서 뜯어져 나간 종이들이 책상 위에 무질서하게 떨어져 내렸다. 이음매의 스프링 사이에 남은 종이 쪼가리를 모두 빼낸 네이처는 새로이 넘어간 달력을 책상 위에 바로 세웠다.

 

“새해… 인가…”

 

아무도 들을 사람이 없는 자신의 방에서 네이처는 작게 중얼거렸다. 뜯어낸 12월 달력 페이지를 버리기 좋게 접으면서 새로이 등장한 1월 페이지를 바라본다.

 

어떤 사람이든 새해를 맞이하여 한 살 나이가 들게 되면 여러가지 감정이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네이처의 경우에는 한층 더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33세.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숫자 3이 연속된 나이를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단순히 독신을 넘어선 처녀. 이제 그녀는 스스로 노처녀라고 불러야 할 나이가 된 건 아닌지 괴로웠다.

 

네이처는 손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이제는 달리지 않기 때문에 기르게 된 장발.

그 머리를 한데 묶어 왼쪽 가슴께로 내린 스타일.

젊은 시절보다 커져버린 가슴과 골반.

 

열정이 가득 넘쳐 달리는 것이 행복이었던 자신은

어느새 아줌마가 다 되어버렸다고, 무심코 생각하고 마는 것이었다.

 

물론 자존감이 낮은 네이처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

특유의 신체적 강인함과 생명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우마무스메들은 인간보다 훨씬 긴 젊음을 유지한다.

 

거울 속 네이처는

 

눈처럼 하얗고 탄력있는 피부.

은은하게 풍기는 요염한 향기.

한껏 물이 오른 성숙한 미모를 자랑했지만,

 

그녀 본인 스스로는 알지 못 했다.

 

“아, 이제 슬슬 준비하지 않으면…”

 

시계를 본 네이처는 외출을 준비했다.

어른이 되어가며 정신적으로 성숙해진 그녀는 이제 부정적인 생각에 삼켜지지 않도록 스스로 조절할 수 있었다.

 

***

 

“어! 저 사람 네이처씨 아니야?”

 

네이처가 외출한 곳은 트레센 학원이었다. 이사장실로 향하면서 젊은 우마무스메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던 그녀는 자신을 알아보는 학생 무리를 마주쳤다.

 

“나를 아니?”

 

“그럼요! 3착을 휩쓸었던 전설의 선배로 유명… 악!”

 

순순한 얼굴로 네이처의 경력을 이야기하던 학생은 같이 서 있던 다른 학생에게 옆구리를 맞고 침묵했다.

왜 때리냐고 따지는 그 모습에 네이처는 중학생의 순수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악의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씁쓸한 감정이 생기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비록 3착을 많이 하셨었지만! 끊임없이 노력하셔서 결국 1착을 따내신 선배로 유명해요!”

 

필사적으로 친구의 실언을 만회하려는 소녀를 보며 네이처는 인자한 미소로 감사의 말을 전했다.

 

***

 

“어머나. 일찍 오셨네요?”

 

웬 여성이 소리 없이 다가와 불쑥 말을 건 바람에 네이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휙 돌아보면 어느새 이사장실에 들어온 타즈나가 서 있었다. 녹색룩으로 깔맞춤한 그녀는, 15년도 더 전인, 자신이 중학생이던 시절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야카와씨는 세월도 피해가시는 것 같아요. 저 학창시절 모습 그대로에요.”

 

“후훗. 고마워요. 네이처씨는 더 예뻐졌네요.”

 

“…말씀이라도 감사해요.”

 

“?”

 

진심으로 한 말이었지만 왜인지 시무룩해진 네이처를 보며 타즈나는 ‘진짜에요’ 라는 사족을 덧붙일까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별로 효과가 있을 것 같지 않았기에. 대신 곧장 본론을 꺼냈다. 꽤 나 장대한 이야기를 한참을 듣던 네이처가 되물었다.

 

“코치…인가요.”

 

“네. 아무래도 인간 트레이너 혼자서 모든 트레이닝 스케쥴을 짜기 보다는, 실전 경험도 있고 같은 우마무스메인 코치가 도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트레이너에게 조언을 해주는 역할이니까 그렇게 할 일이 많지는 않으실거에요. 코치보다는 상임고문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거 같아요.

 

침묵이 흘렀다. 창 밖에서 저물어가는 노을이 이사장실을 조용히 물들였다. 몇 번을 보아도 계약서의 내용에는 나쁠 것이 없었다. 아니, 트레센 학원의 졸업생을 위한 직책인지 오히려 좋은 조건들로 가득했다. 일하는 시간도 적고 보수도 세다.

 

그러나 네이처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두려움을 느꼈다.

 

생소한 감정이 아니었다. 그녀의 가슴 속 한편에 남아있는 학생 네이처의 감정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3착까지밖에 할 수 없었던 과거의 자신. 그 정도 밖에 안 되었던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 결국 가르친 아이도 변변찮은 성적이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

 

다소곳하게 무릎에 올려놓은 네이처의 주먹이 작게 떨렸다. 그런 그녀를 보며 타즈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이처씨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몰라도 G1 3착 타이틀이면 충분히 실력자라구요? G2 1착도 해보셨고. 실력에 대한 부분은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네이처가 납득하는 표정이 아니자 타즈나는 작게 운을 뗐다.

 

“그리고…”

 

말끝을 흐리는 그녀는 ‘이런 것까지 이야기해도 되나?’라는 표정으로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이어서 말했다.

 

“사실 코치를 배정 받을 트레이너님이 네이처씨의 팬이었다고 하더라구요. ‘부디, 가능하다면 네이처씨에게 먼저 제안을 해달라’고 저한테 어찌나 부탁을 하던지.”

 

“네? 제 팬이요?”

 

번쩍 고개를 든 네이처의 모습에 타즈나는 작게 미소지었다.

 

***

 

타즈나가 같이 일하게 될 트레이너를 데려와 소개시켜준다며 나가고 홀로 남은 네이처는 어쩔 수 없이 긴장하고 있었다.

자신의 팬이라니. 멋있게 1착의 신화를 써내려간 우마무스메들도 많은데. 왜 자신을?

 

왼쪽으로 부드럽게 흘러 내린 머리를 베베 꼬며 한참을 상념에 빠졌던 네이처는 벌컥 문이 열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새로 입사하게 된 신임 트레이너입니다!”

 

타즈나 없이 혼자 이사장실에 들어온 젊은 트레이너는 기합이 바짝든 상태로 90도로 허리를 숙여  그녀에게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코치를 맡게 된 나이스 네이처입니다아…”

 

“저보다 연상이니까 말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저벅저벅. 거침없이 다가오는 젊은 트레이너를 보며 그녀는 왜인지 심장이 두근거림을 느끼고 있었다.

 

“으응, 그럴까? 그럼 부르는 건 트레이너군이라고 할게."

 

초면부터 적극적인 모습에 조금 부담스러우면서도, 이렇게 젊은 사람이 자신의 팬이었다는 사실에 더더욱 의문이 생긴 네이처였지만,

 

“넵! 혹시 저는 어떻게 부르면 될까요?”

 

“네이처씨…라고 불러도 돼.”

 

용기가 없어서 차마 자신의 팬이었냐고 물어볼 엄두도 안 나는 그녀였다.

 

그리고 이제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그녀가 고민하기도 전에, 네이처의 코 앞까지 다가온 트레이너는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럼 네이처씨. 이제 막 통성명 한 사이지만,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그거 한 번 보여주실 수 있나요?”

 

“그거? 그거라니?”

 

고개를 갸웃하는 네이처의 앞에서 트레이너는 한 손은 옆구리에 얹고, 반대 손의 검지를 펴보이며 발랄한 동작을 선보였다.

 

“오잇스, 나이스 네이처데스~”

 

“실례에욧!”

 

네이처는 얼굴이 새빨개져선 따라하지 말라며 트레이너의 팔뚝을 찰싹찰싹 두들겼다.

 

 

 

이렇게 33살이 된 해에 코치로서 새로이 시작한 네이처는 그 해에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 훌륭한 담당 학생. 평생을 사랑할 반려.

 

세가지를 모두 얻어내게 되지만, 그녀 스스로는 알지 못 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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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밀프 너무 이뻐서 갑자기 써봄

금손이 그린 네이처 밀프들 보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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